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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당신들에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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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당신들에게 하고픈 이야기.</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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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5 Nov 2009 02:46:07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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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당신들에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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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no. 74 loser녀는 우리사회의 한 단면, 솔직해지자!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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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trong>논란의 중심 '미수다'방송 당일</strong><br>최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loser 발언". 그로 인한, 사건의 전개 양상.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 분노를 불러일으키기에 '남성의 키' 더 나아가 "외모"는 더할 나위 없는 소재이다. 거기에 "loser"라는 단어가 주는 임팩트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논란에 불을 지폈다. 몇몇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단순히 그 발언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서 그렇지, 그 날 방송분의 대부분의 소재들(데이트 비용, 결혼의 조건 등)이 상당히 거북한 내용이었음은 분명하다.<br>우연찮게 당일, 그 방송을 시청하게 되었다. 유독 "무슨 무슨 녀"가 많은 한국 사회. 그녀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br><br>- 무개념: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난 시크하니까!'<br>- 자기 중심주의: 자기 자신이 돋보이는 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br>- 외양 중시: "어떤 사람인가" 보다, "어떤 사람으로 보이는가"가 더 중요하다.<br>--&gt; 외모, <span class="pops" id="POPS20_266">다이어트</span>, 옷차림, <span class="pops" id="POPS216_37">명품</span> 등등에 신경쓰는 이유<br>- 흔들리는 자아 정체성: 내가 누구인가는 나를 둘러싼 환경, 즉 보여지는 것이 결정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nbsp;많은 것&nbsp;중 하나가 바로&nbsp;"남자"일 수 있다. 즉, 어떤 남자를 만나는가가 곧 나를 결정 할 수 있다.<br><br>문제가 되는 그날 방송은 위와 같은 의식들을 여러 소재를 갖고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들이&nbsp;"loser"라는 단어를 통해 사람들의 뇌리에 강력하게 박히며, 키 180cm 이하의 대다수의 남자들의 분노를 끌어올렸다. <br><br><strong>발언의 핵심: 남자의 키를 경쟁력과 연관시키다!</strong><br>사실, 이 발언의 핵심은 "loser" 혹은 "180cm" 라는 뇌리에 쉽게 박히는 몇몇 자극적인 단어가 아니라, 우리들이 너무도 당연시 여기고 있는 것, 더 이상 문제라고 생각하기 않을 만큼 무의식에 박혀 있는 것, 바로 "외모 지상주의"이다. 보여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외모 지상주의"가 아니다. 10개월 미만의 어린 아기들도 비율적으로 균형을 갖춘 미인의 사진에 더 오래 시선이 머문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시각적인 자극, 우리가 생각하는 미의 기준에는 어느 정도 보편적인 것이 있다. 다르게 말하면, 본능적으로 더 아름다운 것, 시각적인 만족감을 주는 것에 호감이 가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br>하지만 우리가 "외모 지상주의"라고 하는 것은 바로 외모가 사회적 평가의 기준이 되었다는 것에 대한 경종이다. 방송에서의 발언을 살펴보면, "요즘 같이 외모도 경쟁력인 시대에, 180cm가 안 되는 남성은 loser라고 생각한다"라는 것이 요지였다. 즉, 여성의 외모를 경쟁력으로 평가했던 잣대가 남성에게도 넘어간 것이다. 당연히 남성들은 불편하다. 그들의 무의식 속에서 여성의 외모에 대한 평가는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정당화가 되지만, 자신의 외모가 평가 기준이 된다고 하는 것은 저 깊은 곳에서부터 알 수 없는 "불편함"이 밀려오고, 더 나아가 그 기준에 속하지 못한다면 "분노"가 밀려온다. 그리고 그 분노는 발언을 한 개인에게 향했다.<br><br><strong>왜 '키'에 민감할까?<br></strong>결과적으로 그녀의 발언은 "loser"라는 자극적인 단어의 사용과 "남성의 키"라는 민감한 문제를 건드렸다는 점에서 논란의 중심이 될 수 있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여자보다 남자들이 "키"에 대해서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왜 그럴까? 여성들에게는 하이힐이 있기 때문에? 방송에서도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이 있다. "깔창은 남자의 자존심".<br>즉, 자신도 모르게 남녀 상관없이 내면화한 '외모 지상주의'에 따라 자신 스스로를 평가하고, 또 평가받을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남성들에게는 "키"였던 것이다. 여기에는 170cm, 180cm라는 절대적 기준 외에도 상대적 비교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키가 180cm가 넘는 사람도 자기 보다 작은 주변 친구들이 깔창을 통해서 위로 "올라"오자, 그대로 볼 수 없어 자신도 깔창을 깐다는 이야기는 우스갯 소리가 아니라, 실제 이야기다. 깔창이 왜 남자의 자존심인지 이제 알 것 같다.<br>요컨대, 보여지는 것이 평가 받는 시대에, 남자의 키는 절대적이고 상대적이고 객관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명확한 기준인 것이다. 그게 키에 민감한 이유이다.<br><br><strong>대본, 제작진의 불찰 논란<br></strong>사실 이 사건과 관련해서 그 후에 일어난 일들은 너무나도 흥미롭다. 네티즌들의 반응, 공인들의 발언, 관련 패러디물, 그리고 발언한 본인의 대응 방식, 같은 방송에 출연한 또 다른 "개념녀"에 대한 반응들까지. 하지만 더욱 흥미로운 것은 "대본대로 했을 뿐이다.", "사전에 편집했어야 하는 내용이었다."등등의 제작진에게 쏟아진 <span class="pops" id="POPS102957_473">화살</span>들이다. <br>사실, 대본에 loser라고 명시가 되어 있었든, 실수로 편집을 하지 못했든, 그날 방송에 대한 이러한 논란의 제작진의 예상 밖이었을 것이다. 아까 말했듯이 그날의 주제 자체가 전반적으로 '여대생의 솔직한 발언'이라는 컨셉으로 비슷한 논리들을 풀어냈었다. 기획 단계에서 큰 흐름이 그랬다면, 하나의 발언이 가져올 문제에 대해서 미처 예상하지 못하고 특별한 여과 과정 없이 넘어갔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이게 문제가 된 것이다.<br>더 흥미롭게도 제작진의 의도를 다시 한 번 뒤집어서 생각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lt;일부 한국 대학생들의 잘못 된 생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nbsp;외국인 '미녀들'의 입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비판하려고 했다.&gt;라는 의견이다.<br>내가 묻고 싶은 것은 그것이 "잘못된 생각" 혹은 "무개념"일까? 그렇다면 초점은 그 발언을 한 개인에게 갔어야 하는게 아니라,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에 맞춰야 하지 않을까?<br><br><strong>외모도 경쟁력?! 솔직해지자</strong><br>사실 누가 "외모도 경쟁력이다"라는 명제에 반발할 수 있을까? 당위적으로 "외모가 평가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라는 논리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접근했을 때, 명확한 논리를 보지 못했다. 그만큼 사회에 뿌리 깊은 인식이다. &nbsp;단지 그 정도에 있어서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개인적인 거부감도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문제된 방송에서의 발언이 자극적이고, 일부의 의견이 일반화되는 듯한 인상을 거둘 수는 없으나, 솔직하게 생각해 보자. 만약 그녀가 "loser"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만약 그녀가 180cm가 아니라 170cm를 기준으로 삼았으면 어땠을까? 무의식적으로 그냥 지나치고 넘어갔을 지도 모른다. 개인적인 불편함은 있을지언정, 지금처럼 대 놓고 분노하고, 그것을 풀만한 새로운 대상을 찾으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br>이번 발언에 대해서 남자들은 함께 분노하고, 여자들은 조용히 넘어가고, 뭐 이런 식의 반응은 의미가 없어 보인다. '왜 불편했을까?'를 돌아보자. 그 기저에는 자신들도 모르게 내면화하고 당연시한 "외모도 경쟁력"이라는 의식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따라가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이 문제에 대한 공인들의 반응도 "난 170cm 정도가 좋아요.", "나도 180이 안되는데 loser다."라는 식이 아니라 사람들이 당연시 하는 생각에 자극을 줄 수 있는 내용이었으면 하고 바란다.<br/><br/>tag : <a href="/tag/loser녀" rel="tag">loser녀</a>,&nbsp;<a href="/tag/외모지상주의" rel="tag">외모지상주의</a>,&nbsp;<a href="/tag/경쟁력" rel="tag">경쟁력</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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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이상한 나라의 엘리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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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3 Nov 2009 08:11:22 GMT</pubDate>
		<dc:creator>섬진강</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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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no. 73 머물고 싶지 않은 나라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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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어제 시사매거진 2580을 보다가 이주노동자에 관한 르포를 보게되었다. 최근 강제추방 당한 미누와 함께 <span class="pops" id="POPS22033_91">밴드</span>활동을 하던 친구들의 모습이 비추어졌다. 한국에 들어와서 일하고, 문화에 적응하며 살아왔는데, 불법 체류자라는 이름으로 강제추방 당할 수 없는 그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호주에 가서 얼마 안되었을 때 우연히 보게된 뉴스가 생각났다.<br><br><span style="FONT-SIZE: 100%"><strong>Why me? There are a lot of Koreans<br></strong>호주에 간지 한 두 달쯤 되었을 때인것 같다. 기숙사에서 저녁을 해 먹으려던 참이었다. 거실에 틀어놓은 TV에서 익숙한 영어가 흘러나왔다. 한번에 듣기에도 친숙한 영어. 왠일인가 싶어, TV앞에 서니,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국인 여성이 호주 백인남성을 앞에두고 열심히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뉴스의 내용인 즉슨, 여행비자로 호주에 와서 일을 하다가 호주 관련 당국에 걸린 것이다. 그녀는 왠지모르게 친근한 억양의 영어로 "Why me? There are a lot of Koreans!"를 외치며 억울하다는 모션을 취했다. 그제서야 그녀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br>내 눈에는 그녀의 행동이 적반하장 격으로 보였다. 잔뜩 흥분한 그녀의 태도에 슈트를 완벽하게 차려 입은 관련 공무원은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으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조금 뒤에 들어온 중년의 백인 아주머니는 흥분한 그녀에게 차근차근 설명하려 했지만, 억울하다는 반응만이 돌아왔다.<br>&nbsp;<br><strong>다시 2009년의 한국<br></strong>다시 시사매거진 2580으로 시선이 돌아왔다. 화면에는&nbsp;대전의 한 중국인 여성이 식당에서 일하다가 공무원의 단속에 걸려 끌려가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때리지 마세요."라고 외치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였다. 뒤이어 공무원의 추격에 도망가다 건물에서 뛰어내려 다치 한 네팔 노동자가 소송을 준비중이라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네팔...<br><br>&nbsp;<strong>네팔에서 온&nbsp;루찌</strong><br>&nbsp;그가 네팔 출신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다시 호주에서 만났던 네팔 친구인 루찌가 떠올랐다. 그녀를 처음봤을 때, 도무지&nbsp;국적을 가늠할 수 없었다. 가무잡잡한 피부에 짙은 눈매는 인도인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인도식 억양을 찾아 볼 수 없었고, 인도인이라고 하기에도 어딘지 맞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네팔에서 왔다고 했다. 그때 처음으로 네팔 출신 사람을 만났다. <br>루찌는 네팔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환상을 모조리 깨주었다. 네팔이라고 하면 속세와는 멀리 떨어져서 천천히 걷는 삶을 실천하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하지만 루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자기 주장이 강했고, 성격이 급했으며, 특히 백인 남성들의 시각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었다. 백인 남자친구와 사귀면서 "백인 남자는 금발의 백인 미녀를 좋아한다"부터 시작해서 비판을 늘어놓는 그녀를 보면서 한때, 피해의식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모르게 동양인 그것도 동양인 여성에 대한 시선을 깨닫게 되면서 동류의식을 느끼기도 했다.<br>하지만 언뜻언뜻 스치는 그녀의 말 속에서 그녀가 네팔의 서민층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었다.&nbsp;그런 그녀와 같은 나라의 사람이 지금 한국에 대한 실망과 분노의 눈빛을 스크린 너머로 쏘아대고 있었다.<br><br><strong>아이러니<br></strong>우리 나라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위치에 놓여있는 것 같다. 제3세계의 노동자들에게는 머물고 싶지 않은 나라, 언제든 내쫓을 수 있는 힘을 가진 나라로 군림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서구 국가에서는 우리 나라의 사람들이 비슷한 취급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 본 기사에 따르면 호주와 한국은 앞으로도 더욱&nbsp;돈독한 동반자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한다. 호주의 총리인 "케빈 러드"와 이명박 대통령은 공식석상에서는 물론 사석에서도 친분을 유지하는 절친이라고 한다.<br>한국의 국제사회에서의 위치가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어느 정도인지 지표만 보아서는 잘 실감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실제 외국에서 잠시나마 생활하면서 느꼈던 것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국민으로서 느끼는 대한민국의 위치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경계선에 놓여있다는 점이었다.<br><br><strong>미시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고, 거시적인 관점으로 대안제시하기</strong><br>나는 인문학도 이고, 그 중에서도 심리학을 이중 전공으로 공부해서 인지, 원래 사회를 보는 시각이 그런 것인지, 어떤 것을 보더라도 개인적, 미시적인 측면에서 먼저 살펴보게 된다. 가끔 지하철에서 알 수 없은 외국어로 말을 하든 외국인들을 보면 복잡한 지하철에 대한 원망을 나도 모르게 그쪽에다 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들으라는 듯이 영어로 크게 통화하거나 대화하는 백인들을 보면&nbsp; 짜증이 나기도 하면서 나도 모르게 통화내용을 엿듣고 '쳇 뭐야, 별거 아닌 이야기 하는군'이라고 속으로 생각할 때가 있다.<br>나조차 타인을 대할 때, 이중적인&nbsp;태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물론 우리 나라 사람들이 서구 국가에서 받는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도 다른 어딘가에서 한국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받는 비슷한 시선을 받을 수도 있다.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 만으로. 뉴질랜드에 갔을 때, 오클랜드 시내 거리를 걸어다니는 대부분의 동양인들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오클랜드에 조금 떨어진 곳에 한국인들이 주로 하는 마을이 있다고 한다. 이처럼 한국인들이 해외에서 그들만의 공동체를 이루면 사는 이유가 분명있을 것이다.<br>조금은 감정적일지 몰라도, 이런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면, 한국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 실질적인 대안이 나오지 않을까? 적어도 한국문화에 동화되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대안 없이 본국으로 강제추방하지는 않을 것 같다. 현실적인 대안은 거기에서 시작하는게 아닐까?<br><br>이상 아직까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나이브한 내 개인적인 생각이었다.</span></p><br/><br/>tag : <a href="/tag/한국" rel="tag">한국</a>,&nbsp;<a href="/tag/이주노동자" rel="tag">이주노동자</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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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이상한 나라의 엘리스</category>
		<category>한국</category>
		<category>이주노동자</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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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2 Nov 2009 06:44:11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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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렛츠리뷰]시사인100호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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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id="[렛츠리뷰]시사인100호" class="hentry" link="http://alice21c.egloos.com/4517494"><p>시사인 100호!<br>100호를 맞은 시사인의 테마는&nbsp; 저널리즘이었다.<br><img border="0" alt="" src="http://www.sisain.co.kr/news/photo/200908/5031_9770_2649.png"><br>무엇보다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신뢰도를 잃어버린 것에 대한 기사가 인상 깊었다.<br>이 기사를 읽고 어제 KBS가 수신료 인상이 불가피 하다는 것을 요지로 한 간담회를 열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KBS 스스로 수신료 인상에 대해서 부끄럽지 않은 방송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왜 지금 KBS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고 있는가 다시금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p><!--       <rdf:RDF xmlns:rdf="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xmlns:trackback="http://madskills.com/public/xml/rss/module/trackback/">       <rdf:Description	        rdf:about="http://alice21c.egloos.com/4517494"	        dc:identifier="http://alice21c.egloos.com/4517494"	        dc:title="[렛츠리뷰]시사인100호"	        trackback:ping="http://alice21c.egloos.com/tb/4517494"/>       </rdf:RDF>       --></div><br />
<a href="http://valley.egloos.com/review/item.php?id=10538"><img src="http://md.egloos.com/img/review/lets_banner.gif" border="0" alt="렛츠리뷰" /></a><br/><br/>tag : <a href="/tag/렛츠리뷰" rel="tag">렛츠리뷰</a>,&nbsp;<a href="/tag/시사인100호" rel="tag">시사인100호</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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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9 Sep 2009 14:31:44 GMT</pubDate>
		<dc:creator>섬진강</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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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no.72 파니 핑크 (Fanny Fink, Keiner liebt mich) 1994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사랑일까?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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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예전부터 보려고 했었던 <span class="pops" id="POPS322_350">영화</span>가 있다. 바로 이 영화 &lt;파니 핑크&gt;였다.<br>공부하려고 일찍 나간 학교에서 우연히 대출 목록을 살펴보았다. 이 영화는 몇 달전 대여 순위 50위에 있었다. 목록이 50위까지만 있었기 때문에, 이 영화가 그 달의 대여 순위 51위만 되었어도 나는 또 이 영화를 보는 것을 미뤘을 것이다. 다행히 50위에 랭크가 되어 오늘 나는 우연히, 혹은 의도적으로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br><br><strong>Non, je ne regrette rien - Edith Piaf<br></strong>이 영화는 에디트 피아프의 "아니요,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로&nbsp;시작한다. 에디트 피아프의 이름조차 생소한 나 조차 이 노래는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익숙한 노래였다. <br>주인공 파니는 진정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사람이 없는, 더 솔직하게 말하면 아무도 자기 자신을 <span class="pops" id="POPS24143_306">사랑</span>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이십대 후반의 여자이다. 스스로 결핍을 느끼고 사랑에&nbsp;매번 실패한&nbsp;트라우마를 갖고 있으면서도 누군가의 사랑을 갈구한다. 파니는 어떻게 보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외로움을 느끼는 여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믿어지는가? 그녀는 아직(?) 이십대 후반이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 생각은 지금의 기준에서 볼때 마치 30대 노처녀 처럼 행동한다.<br>이렇게 인생에서 결핍을 느끼고 죽음을 항상 염두에 둔채, 살아가는 그녀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노래 "아니요,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듯 하다. 그건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서 각자가 판단하면 좋을 것 같다.<br><br><strong>오르페오<br></strong>이 영화를 함께 이끌어가는 파니의 친구이다. 정말도 기이하면서도 유쾌하고 그리고 현실과 환상의 중간에 존재하여 결국 이상의 세계로 사라져 버리는 캐릭터이다. 아프리카와 독일의 피를 갖고 있는 흑인, 그리고 게이, 그리고 점성술사. 오르페오는 등장하는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배경과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아슬아슬한 불안감, 그리고 그 불안감 속에서 주눅들지 않고 오히려 오롯이 떠오르는 당당함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적어도 내가 접한 캐릭터들 중에서 가장 불안정하고, 그러면서도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매력적인 캐릭터이다.<br>그는 어쩌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 같기도 하다. 그는 마치 인디언들이 인생의 한 고비에서 찾아가 조언을 구하는 마을의 점성술사 혹은 나이 지긋한 예언자, 동시에 언제든 옆에 있어주는 친구처럼 느껴진다. 죽기 직전 그가 한 말이 인상 깊다.<br></p><div style="TEXT-ALIGN: center">"너의 과거는 너의 뒤에 있는 모습이고, <br>너의 미래는 너의 앞에 있는 모습이야. <br>그러니까 아무것도 두려워 하지마. <br>오직 '<em><span style="FONT-SIZE: 100%">지금</span></em>'만을 갖고 살아."<br></div><p><br><strong>지금, 여기, 이 시간</strong><br>어쩌면 이 영화는 "시간"에 대한 영화일지도 모른다.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해, 변하는 것에 대해, 사라지는 것 혹은 죽어가는 것에 대해, 사랑에 대해. 결국 "시간" 과 관계된 영화이다. <br><br>현재를 살라는 말. '지금'만을 갖고 살아가라는 말은 얼마나 역설적인가? 나의 뒤에 있는 나의 모습은 결국 오늘의 나를 만든다. 나의 앞에 있는 나의 모습은 지금 내 모습을 반영한다. 사실 오르페오는 한가지 말을 덧붙인다. 시계는 차지 말라고. 시계는 항상 지금이 어디에 있는지만을 말해준다고. 사실 중요한 것은 지금이 몇시인지가 아니다. 내 뒤에 있는 나와 내 앞에 있는 나 사이에 존재한 나. 그 관계에서 '지금의 나'를 인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시계는 의미 없는 것이다. 오히려 파니의 어머니처럼 밤에 자다가 '틱틱틱'하면서 시간이 나를 두고 흘러가 버리는 듯한 두려움 만을 심어준다.<br><br><strong>파니에게 필요한 것은?</strong><br>아무도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파니'에게 중요한 것, 필요한 것은 사랑을 채워줄 수 있는 <span class="pops" id="POPS31114_908">연인</span>일까?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시간 속의 자신을 찾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준비, 사랑에 대한 갈구, 지나간 연인에 대한 회상. 그녀의 뒤와 앞에 있는 것들로부터 현재의 자신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다.<br><br><strong>Non, je ne regrette rien <br></strong>그렇기 때문에 내겐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이 노래가 역설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모든 것을 후회하면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이는 노래가 아니다. 나의 뒤에 있는 과거는 결국 나를 여기에 존재하게 한다. 그리고 현재의 나는 내 앞에 있는 나를 향해 나아간다. 아무것도 후회할 것은 없다. 그 사실을 직시하고 있는 한.<br><br><br></p><div style="TEXT-ALIGN: right"><strong><span style="COLOR: #6633ff"><font size="+0">Non, je ne regrette rien- Edith Piaf</font> <br></span><span style="COLOR: #cc66cc">아니요,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span><br><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FAMILY: Verdana"></span></span></strong></div><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FAMILY: Verdana"><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FAMILY: Verdana"><div style="TEXT-ALIGN: right"><p><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FAMILY: Verdana"><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FAMILY: Verdana"><strong><span style="COLOR: #6633ff">Non ! Rien de rien<br>Non ! Je ne regrette rien<br>Ni le bien qu'on m'a fait<br>Ni le mal tout ça m'est bien égal ! <br></span><br></strong></span></span><span style="COLOR: #cc66cc"><strong>아니요! 그 무엇도 아무 것도. <br>아니요! 난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br>사람들이 내게 줬던 행복이건 <br>불행이건 간에. 그건 모두 나완 상관없어요! </strong></span><span style="FONT-SIZE: 9pt; COLOR: #ef007c; FONT-FAMILY: Verdana"><br><br><span style="COLOR: #6633ff"><strong>Non ! Rien de rien <br>Non ! Je ne regrette rien<br>C'est payé, balayé, oublié<br>Je me fous du passé ! </strong></span></span><br><br><span style="COLOR: #cc66cc"><strong>아니요! 그 무엇도 아무 것도. <br>아니요! 난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br>그건 대가를 치뤘고, 쓸어 버렸고, 잊혀졌어요. <br>난 과거에 신경쓰지 않아요! </strong></span><span style="FONT-SIZE: 9pt; COLOR: #ef007c; FONT-FAMILY: Verdana"><br><br><span style="COLOR: #000000"><strong><span style="COLOR: #6633ff">Avec mes souvenirs<br>J'ai allumé le feu<br>Mes chagrins, mes plaisirs<br>Je n'ai plus besoin d'eux !</span> </strong></span></span><br><br><span style="COLOR: #000000"><strong><span style="COLOR: #cc66cc">나의 추억들로 <br>난 불을 밝혔었죠. <br>나의 슬픔들, 나의 기쁨들 <br>이젠 더 이상 그것들이 필요치 않아요!</span> </strong></span><span style="FONT-SIZE: 9pt; COLOR: #ef007c; FONT-FAMILY: Verdana"><br><br><span style="COLOR: #6633ff"><strong>Balayées les amours<br>Et tous leurs trémolos<br>Balayés pour toujours<br>Je repars à zéro </strong></span></span><br><br><span style="COLOR: #cc66cc"><strong>사랑들을 쓸어 버렸고 <br>그 사랑들의 모든 전율도 쓸어 버렸어요. <br>영원히 쓸어 버렸어요. <br>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거예요. </strong></span><span style="FONT-SIZE: 9pt; COLOR: #ef007c; FONT-FAMILY: Verdana"><br><br><span style="COLOR: #000000"><strong><span style="COLOR: #6633ff">Non ! Rien de rien<br>Non ! Je ne regrette rien<br>Ni le bien, qu'on m'a fait<br>Ni le mal, tout ça m'est bien égal !</span> </strong></span></span><br><br><span style="COLOR: #cc66cc"><strong>아니요! 그 무엇도 아무 것도. <br>아니요! 난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br>사람들이 내게 줬던 행복이건 <br>불행이건 간에. 그건 모두 나완 상관없어요! </strong></span><span style="FONT-SIZE: 9pt; COLOR: #ef007c; FONT-FAMILY: Verdana"><br><br><span style="COLOR: #6633ff"><strong>Non ! Rien de rien<br>Non ! Je ne regrette rien<br>Car ma vie, car mes joies<br>Aujourd'hui, ça commence avec toi ! </strong></span></span><br><br><span style="COLOR: #cc66cc"><strong>아니요! 그 무엇도 아무 것도. <br>아니요! 난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br>왜냐하면 나의 삶, 나의 기쁨이 <br>오늘, 그대와 함께 시작되거든요</strong>! <br></span></span></span></p></div></span></span></span></span><br/><br/>tag : <a href="/tag/영화" rel="tag">영화</a>,&nbsp;<a href="/tag/파니핑크" rel="tag">파니핑크</a>,&nbsp;<a href="/tag/오르페오" rel="tag">오르페오</a>,&nbsp;<a href="/tag/시간" rel="tag">시간</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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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빨강머리 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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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5 Aug 2009 07:45:42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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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no. 71 [렛츠리뷰-시사IN 제 97호] 리뷰-탄소배출권?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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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평소에 관심있게 보던 주간지&nbsp;<span style="FONT-SIZE: 100%"><strong>시사in</strong></span> 렛츠리뷰에 당첨되어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br>이번주 커버스토리는 "팬클럽 민주주의"인데요. 딱딱하고 멀게만 느껴지는 정치인과 시민들이 "팬클럽"이라는 매개로 소통을 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팬클럽 민주주의"라 이름 붙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정치인들의 다양한 팬클럽을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br><br>제가 지금부터 쓰려고 하는 리뷰는 제 97호 중에서 <strong><span style="FONT-SIZE: 100%">[특집] 탄소시장의 본격 출범과 세계 자본주의 1편</span></strong>에 대한 것입니다.<br><br>우선 탄소배출권 거래(Cap and Trade)법에 대해서 생소한 만큼 그것이 무엇인지가 궁금했습니다.<br>이번 호에는 탄소배출권 거래법이 지난 6월 미국에서 어떻게 통과되었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며, 세계적인 환경과 자본주의와 연결하여 설명하고, 이 법안의 전망에 대해서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br>그래서 탄소배출권이 무엇이고, 자세히 알 수 있어서 무척 유익했던 것 같습니다.<br>개인적으로 환경 문제에 큰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탄소배출권을 물건처럼 거래 한다는 것에 흥미를 느껴, 이번 호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br><br>그럼, 탄소배출권에 대해서 시사 in에서 읽은 내용을 바탕으로 제 생각을 간단히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br><br>탄소배출권 거래법은 아직 하원밖에 통과하지 않았습니다. 가을에 열리는 상원에서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12월 유엔기후변화회의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br>그렇다면 과연 탄소배출권 거래는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br>이것은 세계적인 환경 문제와 연관되어 있습니다.<br>사실, 저는 환경 문제에 대해서 매일매일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루하루 실생활에서 부딪치는 문제에 더 고민하고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 중 한명이죠. 하지만 요즘 환경, 혹은 지속가능한 성장, 녹색 성장 등의 이슈는 우리 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인 관심사이자, 흐름인 것 같습니다. "환경"이라는 것이 당위론적 문제 인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우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문제라는 거죠. <br><br>환경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것은 우선 여기까지 하고 "탄소배출권거래법"에 초점을 맞춰보도록 하겠습니다.<br>이 법안은 말그대로 탄소를 배출할 수 있도록 허용된 권한을 마치 물건처럼 사고 팔 수 있도록 하는 법안입니다.<br>우리 나라에서 하고 있는 쓰레기 종량제를 예로 들어보자면 쓰레기를 버릴 때 사용하는 규격 봉투를 사람과 사람이 사고 파는 거죠. 예를 들어, 한달에 규격봉투를 10장씩 샀는데, "갑"이 쓰레기를 적게 만들어서 3장이 남고, 이번달에 "을"이 쓰레기가 많이 나와서 부족하면 "갑"에게서 쓰레기 봉투를 살 수 있는 것고 같은 원리로 "탄소배출권"을 사고 팔 수 있게 됩니다.<br>만약 쓰레기 봉투 가격이 비싸진다면 당연히 사람들은 쓰레기를 적게 배출하려고 노력하겠죠.<br>이와 마찬가지로 탄소배출권이 정해지고 거래된다면, 각 국가들은 탄소를 적게 배출하기 위한 노력을 하여 배출권을 절약하고, 더 나아가 절약한 배출권을 팔아서 이익을 얻으려고 하겠죠.<br>이것이 탄소배출권거래법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입니다.<br><br>이 법안에 대한 제 의견은 한마디로 "빚좋은 개살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br>우선 배출권을 사고 판다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사고 판다는 것에 대해서 구체적인 예상은 못하겠습니다.<br>하지만 기본적인 생각인 탄소배출을 줄이는 기술을 개발하게 하여, 결과적으로 환경을 보호하고자 한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br>한가지 씁쓸한 것은, 환경보호라는 취지에 "자본의 논리"인 "돈"이 개입한다는 것이죠. <br>하지만 "돈"이 국제사회에서 강제력 혹은 유도력을 갖고 있다면 이 법안은 나름 효과적인 법안이 될 것 같습니다.<br>보다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할 부분은,<br>탄소배출량을 어떻게 정하고, 배출권의 가격은 얼마로 하며, 거래 시 일어날 수 있는 제반 문제에 대한 규제 등이 있겠죠.<br>이 과정에서 본래의 목적이었던 "환경 보호"가 아닌 각국의 이익을 조금이라도 확대할 수 있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된다면 이 법안이 정말 "빚좋은 개살구"를 넘어서 또 하나의 골칫덩이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을 것입니다.<br><br>환경 문제에 자본주의적 해결의 칼을 들이댔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양날의 칼과도 같다고 생각합니다.<br>그 양날의 칼이, 환경을 향해 나아갈 지, 이권 다툼을 향해 나아갈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br>우선 미국 내에서도 아직 상원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 논의할 시간은 남아있습니다.<br><br>마지막으로 이번 호 시사in을 통해서 이 법안에 대해서 알게 되어 만족스럽습니다.<br>특집 다음편에서 이 법안에 대한 어떤 기사가 나올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br></p><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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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이상한 나라의 엘리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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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9 Jul 2009 05:30:04 GMT</pubDate>
		<dc:creator>섬진강</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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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no.70 새로운 실패, 그리도 또 하나의 성장 동력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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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지난 며칠간은 내게 폭풍과도 같았다. 또 하나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뭉쳐서 토론대회를 준비했다. 생각보다 어이없는 결과에 실망하기도 했지만...<br>어제 오전에 생중계로 다른 팀들의 토론 내용을 보았다. 내가 직접할 때는 몰랐는데, 다들 주제에 관한 지식이 풍부하고 말도 잘했지만, 대회의 특성상 서로에 대한 적대감은 숨길 수 없었다. 그게 말그대로 치열함일 것이리라.&nbsp;<br><br>국회의사당을 나오며 생각했다. 무엇 때문에? 토론이라는 것이 명확한 승패가 나지 않는 것이지만, 이러한 방식의 토론은 대개 승패가 몸으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던 PSI에서 밀려다고 생각하니 다들 어안이 벙벙했다. <br><br><strong>지난 시간들...<br></strong>사실 준비과정만 놓고 본다면 가장 큰 문제점은 내 스스로 주도적으로 또 즐겁게 참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결과가 좋았던 것들은 내 스스로 내적인 의지가 있었고, 준비 과정에서도 순간적인 몰입과 즐거움을 경험했다. 그것이 결국 토론에 대한 자신감, 주제에 대한 기본기로 다져져서 보다 여유로운 태도로 토론에 임할 수 있었다. 이번 토론대회의 경우에는 내 스스로 준비과정에서 울타리를 쳐 놓았던 것 같다. <br><br><strong>새로운 성장 동력</strong><br>결과를 떠나서 이번 기회를 통해서 얻은 것이 있다. 가장 큰 것은 새로운 사람들이고 그 다음은 내 자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어떻게 경험을 받아들일지 내공을 쌓아가고 있다는 것이다.<br>팀원들 모두 그렇게 생각했지만, 팀원 각자의 역량에 대해서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소위 말하면 될 것 같았다. 아쉬운 것은 너무 늦게 뭉쳤다는 것. 사실 이번 주, 그리고 직접 대회에 참가하면서 같은 팀 사람들에 대해 더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한 명, 한 명 내가 배울 것들이 너무 많은 사람들이었다. 실제로 많은 것을 배웠다. 앞으로 다시 만나게 될지 어떨지 모른다. 하지만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는 서로 많이 성장해 있으리라는 것을 믿어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나의 좀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이다.<br><br>두 번째로 내 자신에 대해서 돌아보게 되었다. 결과에 연연하다 보면 내 스스로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겉으로 드러난 것으로 판단하려하고,&nbsp;또 겉으로 드러난 것으로 내가 판단받기를 기대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의 결과에 진정한 나를 감추고 타인들을 잠시 속이려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나 자신도, 타인도 속이지 못한다. 내 스스로에게 떳떳할 때, 비로소 타인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었다. 또한 내가 쓰는 글의 스타일에 대해서, 내가 하는&nbsp;말에 대해서, 또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는 면에서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조금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br><br>마지막으로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실패를 통해서 어떻게 나아가고 성공으로 이끌어 가야 할지에 대해서 느낀게 있다. 누구나 실패에 대해서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이다. <br><br><strong>국회...<br></strong>처음으로 국회에 들어가보았다. 내가 느낀 것은 그곳이 마치 하나의 자체 완결적인 공화국 같다는 것이었다. 언젠가 그 공화국과 현실을 연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그 성장 동력을 얻은 것에 감사하며, 그 동력을 잃지 말고 키워나가자.<br/><br/>tag : <a href="/tag/토론" rel="tag">토론</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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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일상의 조각</category>
		<category>토론</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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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7 Jul 2009 23:03:42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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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no. 69 마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불완전한 세계 속에서...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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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rong>봉테일, 영화의 숨막힌 개연성</strong>.<br>우선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시나리오에 대한 감탄이었다. 과연 디테일을 중시하는 봉준호 감독답게, 모든 이야기의 흐름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사실적 개연성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하나의 사건이 벌어지기까지, 그것은 우연이든, 이도적인 것이든, 수없이 많은 요소들이 결합하여 일어난다. 그 중 하나만 없었더라도 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그 중 하나만 빗겨났다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될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 영화는 영화의 중심이 되고 있는 사건이 일어나기까지의 개연성과 그리고 그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는 과정을 끌고가는 힘을 갖고 있다. <br>추리 소설 혹은 탐정 소설이 재미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과연 이 하나의 사건에 어떠한 연결고리가 있고, 이 모든것이 합해져서 어떻게 발현되었느냐가 바로 중요한 것이다. 범인이 누구인지는 사실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 사건을 추적해 나가면서 알게 되는 새로운 사실들, 그리고 관련된 사람들 각자의 주체성이 엮어내는 하나의 그물. 그 끝에 범인이 있을 뿐이다. <br>영화 마더는, 엄마가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는 새로운 사실과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서 관객들을 감독&nbsp;봉준호가 만들어낸 영화적 공간, 설득력 있는 무대로 이끌어 낸다.<br><br><strong>영화 마더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은 어디일까?<br></strong>영화 주인공이 살고 있는 공간, 시간은 한국에 기반해 있으면서도 그 배경을 콕 집어서 말할 수 없는 모호성을 지닌다. 예를 들어, 엄마는 작은 약재상을 도와가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때로는 야매로 침술을 놓기도 한다. <span class="pops" id="POPS8746_975">포토샵</span>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사진관집 <span class="pops" id="POPS47855_165">여자</span>는 엄마가 놓아주는 침을 맞으며, 그의 말대로 하면 애가 들어설 것이라는 말을 정말 말그대로 순수하게 믿는 듯하다. <br>경찰의 모습은 또 어떠한가? 온전한 정신을 갖고 있지 않은 도준을 향해, 연민의 시선을 갖고 있으면서도, 사과를 물게 하여 겁을 주어 사실대로 말하라고 협박하고, 왜 그랬냐며 되묻는다. 이렇게 피의자를 조사하는 경찰은 물론 현장에서는 <span class="pops" id="POPS13589_86">과학</span>수사대에 의존한다. 하지만 CSI의 반장님들이 말하듯이 "난 사람들의 증언은 믿지 않아. 오직 증거가 말해주는 것만을 믿지."라는 증거에 대한 어찌보면 차가운 믿음을 갖고 있지도 않다.&nbsp;현장 증거에 대한 보다 과학적인 분석은, 피의자의 진술이 있다면 생략가능하다.&nbsp;<br>경찰과 시민의 관계는&nbsp;유리된 듯 보이면서도 한국적 정서로 인해 연결되어 있다. 반장은 주인공 엄마와&nbsp;과거 <span class="pops" id="POPS33918_31">인연</span>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로 인해&nbsp;반장은 엄마를&nbsp;무시할 수도 없고, 인정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적정 선에서 도와주고 기회를 만들어준다.&nbsp;<br>단순한 배경 뿐만 아니라,&nbsp;인물들이 맺고 있는 관계, 주인공들의 의식에서 드러나는 이 영화의 배경은 모호하기만 하다. 과학적인 것에 의존하면서도 비과학적인 것에 대한 믿음을&nbsp;떨쳐내지 못하고. 전적으로 사회적&nbsp;관계와 이해관계에 얽매여서 조직내에서&nbsp;행동할 수 없으면서도, 이해관계와 관련없는 인간적인 관계에 의해서 움직이기도 하고.&nbsp;<br>사실, 현실은 하나다, 라고 느낀다면 얼마나 간편할까? 내가 보고 있는 현실이&nbsp;전부라고 믿는다면 혼란은 줄어들고, 인간은&nbsp;보다&nbsp;<span class="pops" id="POPS43188_758">행복</span>하게 살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디 현실이 그러한가? 이성과 비이성, 과학과 비과학이 혼란스러울 정도로 뒤섞여 있는 것이 바로 현실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지, 무엇에 기대야 할지 모른다. 그게 바로 이&nbsp;영화의 배경이자,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의' 영화속 배경이다.<br><br><strong>그렇다면 어떻게 현실을 살아가야 할까?<br></strong>정신병자는 어디에나 존재한다.&nbsp;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정신병자의 정의는 '정신병에 걸린 사람'이란다. 그렇다면 정신병, 정신은 무엇일까? 정신을 한 개인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사회를 이해하고 관계를 정의하는 개인적 요소,라고 정의한다면, 정신병자는&nbsp;단순히 현재의 사회를 그들 나름대로 바라보는 과정에서 실패한 사람들이다.<br>영화의 도준은 과연 정신지체일까? 혹은 단순히&nbsp;기억력이나 판단력이&nbsp;다른 사람에 비해 부족한 것일까? 영화를 보면 그는&nbsp;엄마나 다른 누구에게&nbsp;의존적이지 않다.&nbsp;본인의 주체성을 갖고&nbsp;상황을 판단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행동은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았을 때, '모자른' 것이다.<br>그렇다면 보통의 평범하고 혹은 정상적인 사람들이 바라보는 현실은 모두&nbsp;동일한 것일까?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나름대로 어울려서 정상적인 사회를 구성하며, 그 사회가 분열되지&nbsp;않고 살아가는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그 역시 동일하지는 않아 보인다.각자의 위치와, 각자가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에 따라 그 사람이 바라보는 현실, 즉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다르다. 아들이 한 짓이 아니라고 믿는 엄마. 당연히&nbsp;도준이 저지른 짓이라고 믿는 사람들. 그들은 그들의 위치에서 동일한 한 점을 바라보고 그것이 맞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믿는 한 그것은 진실이다. <br>동전을&nbsp;가운데 세워 놓고 사람들&nbsp;각각 반대에 앉혀 놓고&nbsp;동전을 묘사하라고 한다면 당연히 그들이 본 면을&nbsp;묘사할 것이다. 그 동전의 &nbsp;반대편의 모양은 다를 수도 있고, 같을 수도 있다. 누군가는 당연히&nbsp;이쪽 편의 모양이 그림이니, 반대도 같은&nbsp;모양을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누군가는 다른 쪽은 아마 다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는 모양이 숫자인 한, 그것이 동전에 대해 유일하게 말할 수 있는 진실이라고 주장한다. 어느 누구도 각자의 위치를 벗어나지 않는 이상,&nbsp;이 이상의 생각을 하거나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br>그리고 영화속 엄마가 그랬듯이,&nbsp;용기를 내어 자신의 위치에서 벗어나 상대쪽으로 가서 동전의 뒷면을 보게&nbsp;되었을 때, 가능성은 두 가지이다. 하나,&nbsp;역시 내가 생각한 것이 맞았어.&nbsp;둘, 이럴 수가 다른 것이었잖아.<br>중요한 것은 두 번째 경우이다. 이때 개인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무수히&nbsp;많은 경우의 수를 가진다.&nbsp;또다른 현실을 인정하고 처음에 갖고 있던 인식과 조화를 이루게 하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고, 처음의 인식이 너무도 강력하여 다른 현실을 부정하려 할 수도 있다.혹은 둘 중 하나를 망각할 수도 있다. 실은 이것들은 심리학의 방어기제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우리가&nbsp;현실에 대응하는 방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nbsp;<br>현재 우리 나라에서 이슈가 되는 모든 것들, 비정규직, 쌍용자동차 파업, 미디어법, 4대강 살리기, 국민과 정부간의 소통. 서로 다르게 현실을 보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들이 그 자리에 있는 한 그것이 진실이다. 그리고 또 다른 진실 혹은 이해 관계에 맞닥뜨렸을 때, 이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br>영화 속, 엄마의 선택은 상징적이다. 미학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미학적으로 보았을 때, 비장미가 느껴진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영화 마지막 장면의 비장미를 마음으로 느껴보았을면 한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비장미가 아니다. 엄마의 슬픈 비장미가 지금도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br/><br/>tag : <a href="/tag/마더" rel="tag">마더</a>,&nbsp;<a href="/tag/봉준호감독" rel="tag">봉준호감독</a>,&nbsp;<a href="/tag/영화감상" rel="tag">영화감상</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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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빨강머리 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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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봉준호감독</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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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05 Jul 2009 07:20:42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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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no. 68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명백해진 지금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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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지난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br>다른 국민들처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슬퍼하고, 감정이 앞서 그저 눈물만 흐르기도 했다. <br>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는 한 농민의 말, 논문이 제대로 읽히지 않았다는 교수님의 말처럼 나 역시 멍해지는 때가 있었다. <br>한편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눈과 귀가 예민해졌다. 사소한 문제 하나, 사람들의 발언 하나하나를 귀담아 들었다. 쉴새 없이 변하는 정세와, 어제와 다른 오늘, 이번 한 주 만큼&nbsp;세상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으며, 그 속도에 압도된 듯한 느낌을 받았던 적이 없다.&nbsp;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고 다르게 판단하고 또 다르게 표현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나와 상관없던 문제들도 결국은 나와 연결된 문제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br>또 다른 한편으로는 눈앞에 있는 것만 보고, 그것에 연연해하는 내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다. <br>세상은 빠르게 변해가고 들려오는 이야기는 끊이없이 새롭지만, 내가 바라보는 딱 그만큼의 공간은 변한게 없었다. 하지만 "정중동"이라고 했던가? 그 속에서도 많은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적어도 인식은 많이 변하였을 것이다.<br><br>영결식에 다녀왔다.<br>그 전까지 무력하기만 했고, 슬프기만 했다면, 오늘 영결식을 다녀온 후로 하나의 방향성을 잡은 것 같다.<br>광장...<br>사람들은 진심으로 슬퍼했다. 누군가는 진심으로 눈물을 흘렸고, 고개를 떨구었고, 누군가는 대상이 분명치 않은 울분을 토해냈고, 누군가는 비난의 칼날을 들이댔다. 사람들은 광장에서 무엇을 느낄까? 촛불집회가 한창이었던 작년에 <span class="pops" id="POPS47860_69">한국</span>에 있지 않았던 나는, 당시 참여했던 많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무엇을 느꼈는지 진심으로 묻고 싶다.<br>나는 오늘 보았던 사람들의 감정적 진정성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것이 '집단 소요', '울분의 표출' 등으로 이어질까 두려웠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진심으로 슬퍼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감정이라는 것은 묘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당시의 진정성에 한조각 의문을 제기할 수 없는 것처럼, 후의 변화에도 역시 어떠한 잣대를 들이댈 수 없다. 쉽게 망각할 수 있다. <br>내가 오늘 느꼈던 것은, 이 많은 사람이 느끼는 슬픔을 나도 느끼고 있고, 그것이 군중 속의 한 사람으로서, 언제든 그 군중 속에 파묻힐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나 스스로에게 느끼는 두려움이었다.<br>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한 순간 느꼈던 분노, 슬픔은 생각보다 쉽게 가라앉는다. <br>중요한 것은 앞으로 무엇을 하는가이다.<br><br>이번에 내가 느낀 것이 하나 더 있다.<br>모두 각자의 자리가 있다는 것.<br>무엇을 하든, 동떨어져 있는 것은 없다. 동시에 눈앞에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br>모두에게 나름의 자리가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고, 서로 영향을 미친다.<br>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연관이 없다고 느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br>서로 무관하게 보이는 것을 유의미하게 연결시키는 것이 바로 '비유'란다.<br>'비유'를 통해 세상을 보면, 또 다른 것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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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이상한 나라의 엘리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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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29 May 2009 14:28:20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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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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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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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이상한 나라의 엘리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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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23 May 2009 15:02:54 GMT</pubDate>
		<dc:creator>섬진강</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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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no. 67 김씨표류기, 독립영화의 감성으로 소통을 이야기 하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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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0.egloos.com/pds/200905/17/77/b0055177_4a101abcab526.jpg" width="266" height="33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0.egloos.com/pds/200905/17/77/b0055177_4a101abcab526.jpg');" /></div><strong>마이너적 감성?<br></strong><span class="pops" id="POPS322_799">영화</span>의 앵글, 구성, 그리고 영화가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 이 영화는 독립영화의 감성을 닮아있다.&nbsp;특히 배우의 클로즈업&nbsp;장면을 볼 때면 더더욱 그렇게 느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무엇을,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br><br><strong>하나, 뭐하는 사람?<br></strong>무엇하나&nbsp;남보다 뛰어날 것이 없는 남자 김씨.&nbsp;대부업체 광고에서 말하는 '무이자 <span class="pops" id="POPS21_139">대출</span>'에 의해 그는 자살을 선택한다. 왜 하필 한강이었는지, 그는 밤섬에 갇히고 만다.&nbsp;<br>무엇하나 모자란 것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span class="pops" id="POPS47855_779">여자</span> 김씨. 극중 이마의 흉터로 인해 세상과의 소통, 심지어 가족과의 소통도 거부한 채, 방 안에서만 생활한지 3년째다.&nbsp;매일 그녀의 일은 온라인 미니홈피 속으로의 출근.&nbsp;<br>이 둘, 뭐하는 사람들인가요?<br><br><strong>둘, 밤섬과 방<br></strong>지하철을 타고 다리를 건너다, 혹은 지나가다, 한 번쯤 <strong>밤섬</strong>을 본적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 내게 그 섬이 "밤섬"이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곳이 이름이 있는 섬이라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아니 내게는 저곳에 이름이 있다는 사실이 더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름이 생기는 순간 그 곳은 하나의 '공간'이 된다.&nbsp;도심속 고립된 공간, 바로 밤섬이다.&nbsp;한강에서 바라본 그곳은 눈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nbsp;다가갈 수 없는 곳처럼 보였다. 왜 였을까? 그 당시 나에게 그 섬은 하나의 환영처럼 보였다.&nbsp;<br>영화 속 밤섬은 남자 김씨가 벗어나려고 한 공간에서, 끝까지 남아있으려고 하느 공간을 변한다. 내가 느꼈던 밤섬은 내가 다가갈 수 없는 공간, 누구도 자기 안에 들여 놓으려 하지 않는 공간이었다. 영화속 밤섬은 일단 들어온 이 김씨에게 도전이라도 하듯 밖으로 나갈 구멍을 주지 않는다.<br><br>여자 김씨는 <strong>방</strong> 안에 산다. 하지만 그녀는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있지는 않다. 단지 자신의 방법으로&nbsp;가상의 자신을 만들어 가며&nbsp;소통을 시도할 뿐이다.&nbsp;정확하게 말하면 그것은 소통이 아니다. 누군가로부터 자신의 존재를&nbsp;인정받고 싶은 것의 표현이다.&nbsp;소통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본인을&nbsp;드러냈을 때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면 돌아오는 것은 허무한 메아리일 뿐. 영화 속 여자 김씨의 미니홈피 속 생활은 결국&nbsp;악플로 인해 눈물을 흘리며 끝이 나지만, 결국 세상을 향해 한&nbsp;발 다가가게 한다.<br><br><strong>셋, 이해준 감독, 소통에 대한 의지를 말하다.</strong><br>영화를 본 뒤, 감독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생겼다. 그는 이 영화가 "소통 그 자체보다는 소통하려는 의지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지금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것은 감독의 눈으로 관찰하고 세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라기 보다, 그의 <span class="pops" id="POPS13134_957">고백</span>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때문에 공감가는 이야기를 이끌어 냈던 것 같다. 감독의 눈이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동시대 영화 감독의 영화를 본다는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처럼, 한 조각의 공감과 다른 한 조각의 새로운 인식을 심어준다.<br><br>이해준 감독, 그는 내게 무엇을 건넸을까?<br>오늘 대한민국을 나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졸업한지 한 동안 연락이 안되던 동창과도 내 핸드폰에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는 한, 내가 마음만 먹으면 연락할 수 있다. 요즘 얼굴보기 뜸한 <span class="pops" id="POPS3464_800">친구</span>도 미니 홈피 한번만 방문하면 쉽게 최근 사진을 볼 수 있다. 단, 내 삶이 바빠 마음을 안 먹고 있을 뿐이라고 믿고 있다.<br>그런데 과연 나는 그들과 소통을 원하는 걸까? 아니면 단순히 연락이 끊기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걸까?<br>그렇다, 그런 소통이 아니다.<br><br>스물 초반 무렵, 나는 누군가와의 소통에 목말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인지 나에게 밤섬은 또 하나의 나처럼 느껴졌다. 살아있지 않는 공간이었지만, 밤섬 결국 "밤"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곳은 누구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지만, 동시에 누구라도 함께 해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 같았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더 이상 소통에 목말라 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와 소통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누구와도 언제든 연결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 자리를 메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br>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소통의 의지. 이것은 시간에 따라 마모되어 가는 것일까? 아니면 시간이 지날 수록 요원해지기 때문에 사람들의 삶에서 우선 순위를 빼앗기고 있는 것일까?<br><br/><br/>tag : <a href="/tag/영화" rel="tag">영화</a>,&nbsp;<a href="/tag/김씨표류기" rel="tag">김씨표류기</a>,&nbsp;<a href="/tag/이해준감독" rel="tag">이해준감독</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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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빨강머리 앤</category>
		<category>영화</category>
		<category>김씨표류기</category>
		<category>이해준감독</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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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7 May 2009 15:06:28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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