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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Eye to the world</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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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세상을 보는 눈</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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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0 Sep 2009 13:45:09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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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퍼온글) 강방천이야기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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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 class="g7"><span style="FONT-SIZE: 12pt"><strong><span style="FONT-SIZE: 14pt">[직격 인터뷰] </span></strong></span><p class="arti_ttl04" id="hollink_title" style="MARGIN-TOP: 4px"><span style="FONT-SIZE: 14pt"><strong><span style="FONT-SIZE: 14pt">수익률 1만5500% 신화 강방천, 발상전환으로 `대박`</span></strong> </span></p><p class="arti_txt4" style="MARGIN-TOP: 38px"><span style="COLOR: #666666"><strong></strong></span><div id="CLtag" style="FONT-SIZE: 15px; LINE-HEIGHT: 22px"><p class="arti_txt4" id="newsView" style="MARGIN-TOP: 38px; FONT-SIZE: 15px"><span style="FONT-SIZE: 12pt">1억원을&nbsp;156억원으로 불린 사나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펀드를 직접 판매하는 자산운용사의 대표, 펀드손실이 나면 보수를 안받겠다는 펀드매니저….</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사진ㆍ49)을 이야기할 때 따라다니는 대표적인 수식어들이다. 그는 156억원의 대박으로 남은 인생을 유유자적하면서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투자자문사를 차리고 이를 자산운용사로 키우면서 (자신의 말처럼) 고생길을 걷고 있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이 와중에 고된 출장길도 있었다. 강 회장은 7월 말부터 한 달여간 중국 출장을 다녀왔다. 에셋플러스자산운용이 지난 7월께 창립 1주년을 맞았다. 이와함께 가진 여러 행사들을 끝내고 중국을 다녀온 것이다.</span><br><br><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265" align="right" border="0"><tbody><tr><!-- 우측일때 노출 시작 --><td noWrap width="15" rowspan="6"></td><!-- 우측일때 노출 끝 --><td><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body><tr><td class="wh"><img id="userImg8789320" style="BORDER-RIGHT: #f3f3f3 5px solid; BORDER-TOP: #f3f3f3 5px solid; BORDER-LEFT: #f3f3f3 5px solid; CURSOR: pointer; BORDER-BOTTOM: #f3f3f3 5px solid" onclick="popview(this)" src="http://news.hankyung.com/photo/200909/2009090725286_2009090701971.jpg" onload="'setTimeout(" ?resizeImage(8789320)?,200)?></td></tr><!-- 사진설명 시작 --><tr class="bg48"><td class="f11 dm g11 sp01 he15" style="PADDING-RIGHT: 2px; PADDING-LEFT: 9px; PADDING-BOTTOM: 5px; PADDING-TOP: 4px"><span style="FONT-SIZE: 12pt">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span></td></tr><!-- 사진설명 끝 --></tbody></table></td><!-- 좌측일때 노출 시작 --><!-- 좌측일때 노출 끝 --></tr><tr><td colspan="2" height="10"></td></tr></tbody></table><span style="FONT-SIZE: 12pt">"중국에서 강행군을 했어요. 그래도 이번 출장으로 성과들이 꽤 있었습니다. 기대해도 좋습니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서울 역삼동 강남파이낸스센터 에셋플러스자산운용 본사에서 만난 강 회장은 다소 피곤해보였지만 얘기를 하는 내내 </span><span id="CLK_POP0" style="Z-INDEX: 999" onmouseover&#61;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a class="con_link" style="FONT-WEIGHT: 700; COLOR: #002f74;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 href="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upgrade_kl=yes&amp;status=ing&amp;afd=hankyung2_web&amp;is_click=yes&amp;keyword=%BC%B1%B9%B0" target="_blank"><span style="FONT-SIZE: 12pt">선물</span></a></span><span style="FONT-SIZE: 12pt">보따리를 풀어 놓듯이 투자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안경 너머로 자신감이 가득한 눈빛을 번뜩였다. 그는 중국에 갔던 이유부터 차근차근 설명했다. </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중국인들이 한국 자본시장에 투자하는 방법을 살펴보고 왔습니다. 물론 에셋플러스자산운용을 통해서죠. 또 중국의 그린산업의 현황을 좀 보러 갔습니다. 특히 전기자동차 산업의 현황을 직접 체크하고 싶었습니다."</span><br><br><strong><span style="FONT-SIZE: 12pt">◆중국인 한국투자 추진…전기자동차 종목 보기전에 '구리'시세 살펴야</span></strong><br><br><span style="FONT-SIZE: 12pt">지난 해 6월 중국 금융당국으로부터&nbsp;적격기관투자자(QDII)으로 인정받은 기관은 한국 자본시장 투자가 가능해졌다. 중국 금융당국은 은행 증권 보험사 등 기관투자가 중에서 적절한 자격을 갖춘 금융사를 QDII로 정해 해외 자본시장에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현재 QDII 허가를 받은 중국 금융회사는 은행 24개, 보험 22개, 증권·기금·신탁 41개 등 총 77곳으로 알려졌다. QDII 허가를 받은 자산운용사는 29개인데 강 회장은 이 중에 21개의 자산운용사 관계자들을 만났다고 한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강 회장은 중국 예찬론자다. 평소에도 △중국에 투자하라는 말과 △중국에 밀접하게 뿌리내린 기업을 주목하는 조언을 입에 달고 산다. </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그런 그가 우리 돈을 중국에 투자하는 동시에 중국인들의 돈을 끌어서 한국에 투자하겠다고 한다. 국내 자산운용사들이 중국 정부로부터 해외적격기관투자자(QFII) 자격을 받고 국내 돈을 중국에 쏟아붇는 것과는 대조적이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이렇게 남들과는 다른 강 회장식의 사고방식은 투자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가 말하는 투자는 '발상의 전환'에 가깝다. </span><span id="CLK_POP3" style="Z-INDEX: 999" onmouseover&#61;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a class="con_link" style="FONT-WEIGHT: 700; COLOR: #002f74;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 href="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upgrade_kl=yes&amp;status=ing&amp;afd=hankyung2_web&amp;is_click=yes&amp;keyword=%C0%BD%C1%D6%BF%EE%C0%FC" target="_blank"><span id="CLK_POP3" style="Z-INDEX: 999" onmouseover&#61;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a class="con_link" style="FONT-WEIGHT: 700; COLOR: #002f74;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 href="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upgrade_kl=yes&amp;status=ing&amp;afd=hankyung2_web&amp;is_click=yes&amp;keyword=%C0%BD%C1%D6%BF%EE%C0%FC" target="_blank"><span style="FONT-SIZE: 12pt">음주운전</span></a></span></a></span><span style="FONT-SIZE: 12pt"> 집중 단속 소식에는 보험주를 산다.&nbsp;사고가 줄어 보험사들의 이익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아파트 공급이 많아지면 건설주가 아닌 도시가스 공급회사의 주식을 사는 등의 방식은 일찌기 알려졌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최근 그에게 발상의 전환을 이끈 요인은 무엇일까? 바로 녹색성장산업을 일컫는 '그린혁명'이라고 한다. 그는 녹색산업들의 성장을 '산업혁명'에 빚대어 '그린혁명'이라고 불렀다. 지금의 사회현상을 그린혁명의 관점에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이 중 그의 방식(그는 '에셋플러스의 방식'이라고 불렀다)을 통해 해석해야만 가치투자에 나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그린혁명을 산업부문으로 나누면 △태양력이나 풍력과 같은 대체</span><span id="CLK_POP6" style="Z-INDEX: 999" onmouseover&#61;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a class="con_link" style="FONT-WEIGHT: 700; COLOR: #002f74;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 href="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upgrade_kl=yes&amp;status=ing&amp;afd=hankyung2_web&amp;is_click=yes&amp;keyword=%BF%A1%B3%CA%C1%F6" target="_blank"><span id="CLK_POP6" style="Z-INDEX: 999" onmouseover&#61;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a class="con_link" style="FONT-WEIGHT: 700; COLOR: #002f74;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 href="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upgrade_kl=yes&amp;status=ing&amp;afd=hankyung2_web&amp;is_click=yes&amp;keyword=%BF%A1%B3%CA%C1%F6" target="_blank"><span style="FONT-SIZE: 12pt">에너지</span></a></span></a></span><span style="FONT-SIZE: 12pt"> △발광다이오드(LED) 등과 같은 에너지절감 △전기자동차 등으로 요약됩니다. 이 중에 대체에너지나 에너지절감 산업은 화석연료에 종속되고 있습니다. 유가가 바닥이면 경쟁력이 없죠. 저는 그래서 전기자동차 산업을 주목했습니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전기자동차가 상용화되면 자동차 회사가 수혜를 입을 것이다. 전기배터리를 개발하는 관련 자동차 부품회사나 배터리 업체들도 시장에 엄연히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런 정보들을 놔두고 중국 현지탐방이라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강 회장은 중국에 대체 무엇을 보러 간 것일까?</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전기자동차가 언제부터 상용화가 될까? 배터리는 리튬이온일까, 수소전지일까? 이런 등등의 생각은 과학자가 연구할 일이죠. 저는 전기자동차가 과연 어떤 산업과 기업들에게 영향을 미칠까 현황을 알아보러 간 것입니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그는 얘기를 이어갔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전기자동차는 어떤 에너지로 달릴까요? 전기 에너지겠죠? 전기 에너지로 </span><span id="CLK_POP5" style="Z-INDEX: 999" onmouseover&#61;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a class="con_link" style="FONT-WEIGHT: 700; COLOR: #002f74;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 href="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upgrade_kl=yes&amp;status=ing&amp;afd=hankyung2_web&amp;is_click=yes&amp;keyword=%B9%D9%C4%FB" target="_blank"><span id="CLK_POP5" style="Z-INDEX: 999" onmouseover&#61;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a class="con_link" style="FONT-WEIGHT: 700; COLOR: #002f74;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 href="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upgrade_kl=yes&amp;status=ing&amp;afd=hankyung2_web&amp;is_click=yes&amp;keyword=%B9%D9%C4%FB" target="_blank"><span style="FONT-SIZE: 12pt">바퀴</span></a></span></a></span><span style="FONT-SIZE: 12pt">가 굴러가려면 분명히 </span><span id="CLK_POP2" style="Z-INDEX: 999" onmouseover&#61;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a class="con_link" style="FONT-WEIGHT: 700; COLOR: #002f74;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 href="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upgrade_kl=yes&amp;status=ing&amp;afd=hankyung2_web&amp;is_click=yes&amp;keyword=%B8%F0%C5%CD" target="_blank"><span id="CLK_POP2" style="Z-INDEX: 999" onmouseover&#61;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a class="con_link" style="FONT-WEIGHT: 700; COLOR: #002f74;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 href="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upgrade_kl=yes&amp;status=ing&amp;afd=hankyung2_web&amp;is_click=yes&amp;keyword=%B8%F0%C5%CD" target="_blank"><span style="FONT-SIZE: 12pt">모터</span></a></span></a></span><span style="FONT-SIZE: 12pt">가 필요할 꺼예요. 모터 속에는 구리가 있을 겁니다. 저는 그 구리가 모터속에 정말 들어가 있나 살펴봤습니다. 중국에는 BYD라는 전기자동차 부품회사가 있거든요."</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BYD는 1995년 세워진 세계 2위의 휴대폰 전지업체다. 전기차용 전지의 핵심기술을 보유하고 개발하고 전기자동차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세계적인 투자대가인 워런 버핏이 계열사를 통해 10% 가량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이기도 하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하지만 그의 궁금증은 BYD에 가기도 전에 해결됐다. 중국 상하이 길을 지나가던 중 전기자전거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강 회장은 중국인 전기자전거 주인에게 모터를 한번 뜯어보자고 제안했다. 자전거 주인은 당연히(?) 거절했고, 강 회장은 그 자리에서 자전거를 샀다. 그리곤&nbsp;자전거의 모터를 뜯었다. 역시 모터안에는 구리가 들어 있었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이제 '구리'라는 원자재 자체의 가격도 올라갈 것이고 이를 이용한 기술을 가진 기업들이 경쟁력을 갖게 될 꺼예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그 때가 온다고 생각하고 적당한 투자처를 빨리 찾아봐야죠."</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강 회장은 BYD를 방문하고 자동차 기술의 시대가 한 세기 넘어간다고 분석했다. 기계의 시대는 가고 전기·전자의 시대가 될 것이며, 차에 엔진이 사라지고 모터가 들어가면서 엔진과 관련된 업체들은 위기를 맞게될 것이라는 얘기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이렇게 남다른 안목을 가진 강 회장도 처음에는 평범한 증권맨이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회계학'을 좋아하는 점 정도였다. 증권회사 재직시절 회계적 논리에 근거해 기업들을 분석했고 이로 인해 높은 수익도 거둘 수 있었다. 그렇지만 회계학만으로는 기업들의 가치를 모두 투영해 볼 수는 없었다. 회계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가치투자'의 방법을 생각해 내게 됐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직접투자로&nbsp;'대박'을 터뜨리리면서 투자자문사의 사장으로 자산운용사의 회장으로 승승장구하게 됐다. 물론 적잖은 고비도 있었다. 그에게도 '쪽박'의 기억과 '백수'의 기억은 있으니 말이다.&nbsp;지금과 같은 가치투자를 발굴하기까지의 남다른 노력도 숨겨져 있었다.</span><br><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265" border="0"><tbody><tr><!-- 우측일때 노출 시작 --><!-- 우측일때 노출 끝 --><td><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body><tr><td class="wh"><img id="userImg2757519" style="BORDER-RIGHT: #f3f3f3 5px solid; BORDER-TOP: #f3f3f3 5px solid; BORDER-LEFT: #f3f3f3 5px solid; CURSOR: pointer; BORDER-BOTTOM: #f3f3f3 5px solid" onclick="popview(this)" src="http://news.hankyung.com/photo/200909/2009090725286_2009090702001.jpg" onload="'setTimeout(" ?resizeImage(2757519)?,200)?></td></tr><!-- 사진설명 시작 --><tr class="bg48"><td class="f11 dm g11 sp01 he15" style="PADDING-RIGHT: 2px; PADDING-LEFT: 9px; PADDING-BOTTOM: 5px; PADDING-TOP: 4px"><span style="FONT-SIZE: 12pt">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이 전기자전거의 모터를 분리하고 있다.</span></td></tr><!-- 사진설명 끝 --></tbody></table></td><!-- 좌측일때 노출 시작 --><!-- 좌측일때 노출 끝 --></tr><tr><td colspan="2" height="10"></td></tr></tbody></table><br><strong><span style="FONT-SIZE: 12pt">◆'대박' 뒤에 찾아온 '쪽박'…1등 기업에 투자키로 맘먹어</span><br></strong><br><span style="FONT-SIZE: 12pt">"글쎄요. 제가 왜 그랬을까요? 156억원 중에 40억원은 프리코스닥에 투자했다가 날렸습니다. 20억원은 자문사 설립할 때 투자했어요. 나머지는 개인 자산으로 묻어뒀습니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강 회장은 1960년생 전남 신안에서 태어났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영정보학과를 졸업하고 쌍용투자증권(현재 신한금융투자), 동부증권에서 펀드매니저로 근무했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1995년에는 3명의 동료들과 의기투합해 '이강파이낸셜서비스'라는 투자자문사를 설립했다. 하지만 자본금은 넉넉하지 못했다. 5000만원 정도만 손에 들고 있을 뿐이었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그 때 눈에 들어온 종목이 대성자원(현재 대성산업). 당시 대성자원의 보통주 주가는 2만원 안팎이었고 시가총액은 18억원에 불과했다. 강 회장은 대성자원의 재무제표를 들어다보고 무릎을 쳤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대성자원은 탄광자원개발 회사였어요. 대구도시가스나 다른 건실한 회사들의 지분을 20~30%씩 보유하고 있기도 했습니다. 당시에 탄광을 없애면 국고보조금을 줬습니다. 그런데 현금흐름표를 보니 이 돈이 '이익'이 아닌 '자본'으로 잡히더라구요. 주가가 뜰 수 밖에 없는 구조였죠."</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분석을 마친 그는 6개월동안 돈이 생기는 대로 대성자원을 샀다. 2만원대였던 주가는 20만원으로 뛰어오올랐다.&nbsp;순식간에 돈은 불어났고 자문사도 여유가 생겼다. 그러나 처음부터 대박을 낸 탓일까? 그의 다음 투자 결과는 시원치 않았고 투자의욕마저 잃게 됐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span><span id="CLK_POP1" style="Z-INDEX: 999" onmouseover&#61;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a class="con_link" style="FONT-WEIGHT: 700; COLOR: #002f74;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 href="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upgrade_kl=yes&amp;status=ing&amp;afd=hankyung2_web&amp;is_click=yes&amp;keyword=%C1%D6%BD%C4%C5%F5%C0%DA" target="_blank"><span id="CLK_POP1" style="Z-INDEX: 999" onmouseover&#61;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a class="con_link" style="FONT-WEIGHT: 700; COLOR: #002f74;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 href="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upgrade_kl=yes&amp;status=ing&amp;afd=hankyung2_web&amp;is_click=yes&amp;keyword=%C1%D6%BD%C4%C5%F5%C0%DA" target="_blank"><span style="FONT-SIZE: 12pt">주식투자</span></a></span></a></span><span style="FONT-SIZE: 12pt">파트 외에 대안투자나 </span><span id="CLK_POP4" style="Z-INDEX: 999" onmouseover&#61;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a class="con_link" style="FONT-WEIGHT: 700; COLOR: #002f74;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 href="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upgrade_kl=yes&amp;status=ing&amp;afd=hankyung2_web&amp;is_click=yes&amp;keyword=%C3%A4%B1%C7" target="_blank"><span id="CLK_POP4" style="Z-INDEX: 999" onmouseover&#61;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a class="con_link" style="FONT-WEIGHT: 700; COLOR: #002f74;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 href="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upgrade_kl=yes&amp;status=ing&amp;afd=hankyung2_web&amp;is_click=yes&amp;keyword=%C3%A4%B1%C7" target="_blank"><span style="FONT-SIZE: 12pt">채권</span></a></span></a></span><span style="FONT-SIZE: 12pt">투자 쪽에서 돈을 벌어서 월급을 받았었죠. 하는 일도 없이 월급만 받는 것 같아서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결국엔 회사를 그만두고 경기도 구리의 우리 집에서 백수로 지냈습니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1997년 회사를 그만둔 강 회장은 가진 돈 3800만원을 털어 달러로 입금했다. 외환위기로 달러가치가 올라갔을 때 6000만원까지 불어난 돈과 전세금을 빼서 1억원으로 주식에 뛰어들었다.&nbsp;이 때 산 종목이 </span><span style="CURSOR: pointer" ? onclick&#61;?location.href="http://www.hankyung.com/stockplus/snapshot/snapshot.php?itemcode=004130"><b><span style="FONT-SIZE: 12pt">대덕GDS</span></b></span><span style="FONT-SIZE: 12pt">, </span><span style="CURSOR: pointer" ? onclick&#61;?location.href="http://www.hankyung.com/stockplus/snapshot/snapshot.php?itemcode=111770"><b><span style="FONT-SIZE: 12pt">영원무역</span></b></span><span style="FONT-SIZE: 12pt">이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달러가 오르면 수출비중이 높은 기업에 투자한다'. 이제는 당연한 투자원칙이지만 당시에는 외환위기 때문에 주식투자 자체가 뜸했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니까 이들 종목의 주가는 치솟았죠."</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외환위기당시 4000원대에서 거래됐던 </span><span style="CURSOR: pointer" ? onclick&#61;?location.href="http://www.hankyung.com/stockplus/snapshot/snapshot.php?itemcode=004130"><b><span style="FONT-SIZE: 12pt">대덕GDS</span></b></span><span style="FONT-SIZE: 12pt"> 주가는 이듬해인 2~3월에는 9000원대까지 치솟았다. 1500원 이하로 거래됐던 </span><span style="CURSOR: pointer" ? onclick&#61;?location.href="http://www.hankyung.com/stockplus/snapshot/snapshot.php?itemcode=111770"><b><span style="FONT-SIZE: 12pt">영원무역</span></b></span><span style="FONT-SIZE: 12pt"> 또한 1998년 3월에는 3000원까지 상승했다. </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반 년만에 자산을 두배 가량으로 불린 강 회장은 '우선주'에 주목했다. 우선주는 저평가의 매력을 지녔으면서도 배당매력까지 갖췄다는 평가다. 우선주 중에서 고르고 고른 종목이 바로 </span><span style="CURSOR: pointer" ? onclick&#61;?location.href="http://www.hankyung.com/stockplus/snapshot/snapshot.php?itemcode=001270"><b><span style="FONT-SIZE: 12pt">부국증권</span></b></span><span style="FONT-SIZE: 12pt"> 우선주였다. </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1998년 7~8월께 600~700원을 맴돌던 </span><span style="CURSOR: pointer" ? onclick&#61;?location.href="http://www.hankyung.com/stockplus/snapshot/snapshot.php?itemcode=001270"><b><span style="FONT-SIZE: 12pt">부국증권</span></b></span><span style="FONT-SIZE: 12pt"> 우선주를 600원대에 담았다. 그해 11~12월께 이 주식은 1만4000~1만5000원으로 급등하면서 강 회장도 '대박'을 터뜨리게 됐다. 최저가와 최고가를 비교하면 약 2400%의 수익률을 기록했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엄청난 수익률을 다 따라잡지는 못했지만, 강 회장은 1억원의 주식투자는 156억원으로 불리면서 주식투자의 신화가 됐다. 이에 대해 정작 본인은 '시기가 좋았을 뿐'이라며 슈퍼</span><span id="CLK_POP7" style="Z-INDEX: 999" onmouseover&#61;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a class="con_link" style="FONT-WEIGHT: 700; COLOR: #002f74;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 href="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upgrade_kl=yes&amp;status=ing&amp;afd=hankyung2_web&amp;is_click=yes&amp;keyword=%B0%B3%B9%CC" target="_blank"><span style="FONT-SIZE: 12pt">개미</span></a></span><span style="FONT-SIZE: 12pt">는 아니라고 단언했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위기는 극복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외환위기 당시에 투자를 했고, 엄청난 수익을 얻게 된 겁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렇게까지 벌 기회가 없을 꺼예요. 이번 금융위기 때 보셔서 아시겠지만 이미 경험(외환위기)을 한 탓에 예전만큼 많이 떨어지지도 않았고 그만큼 오름폭도 적습니다. 당시에는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시기적으로 잘 맞아서 수익률이 높았어요. 슈퍼개미라고 할 수 없습니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한사코 '슈퍼개미'라는 호칭을 거부하는 그에게 '작위'를 내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복덩이 아빠'라는 호칭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주식 대박과 함께 강 회장은 1997년에 늦둥이 아들까지 보게 됐다. 집에서는 지금 13살인 이 아들에게 '복덩이'라고 부른단다. 강 회장은 주식 수익금으로 복덩이 아들과 가족들이 살집을 경기도 용인에 마련했다.</span><br><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265" border="0"><tbody><tr><!-- 우측일때 노출 시작 --><!-- 우측일때 노출 끝 --><td><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body><tr><td class="wh"><img id="userImg4618859" style="BORDER-RIGHT: #f3f3f3 5px solid; BORDER-TOP: #f3f3f3 5px solid; BORDER-LEFT: #f3f3f3 5px solid; CURSOR: pointer; BORDER-BOTTOM: #f3f3f3 5px solid" onclick="popview(this)" src="http://news.hankyung.com/photo/200909/2009090725286_2009090701991.jpg" onload="'setTimeout(" ?resizeImage(4618859)?,200)?></td></tr><!-- 사진설명 시작 --><tr class="bg48"><td class="f11 dm g11 sp01 he15" style="PADDING-RIGHT: 2px; PADDING-LEFT: 9px; PADDING-BOTTOM: 5px; PADDING-TOP: 4px"><span style="FONT-SIZE: 12pt">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span></td></tr><!-- 사진설명 끝 --></tbody></table></td><!-- 좌측일때 노출 시작 --><!-- 좌측일때 노출 끝 --></tr><tr><td colspan="2" height="10"></td></tr></tbody></table><br><span style="FONT-SIZE: 12pt">여기저기 투자해 달라는 코스닥 회사들에게 40억을 퍼줬다. 그는 40억원으로 코스닥 회사 49개에 투자했다. 이렇게 투자한 회사중에 코스닥 시장에 남아있는 회사는 하나 뿐이라고. 100%의 성공비결을 물어보러 왔는데 강 회장은 100%에 가까운 실패담을 얘기했다. 계속 듣고 있어야 하는지 엉덩이가 들썩여진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돈을 벌었다고 얘기가 나오니까 여기저기서 투자해 달라고 손을 뻗쳐왔습니다. 몇 백만원에서 1억~2억원까지 투자금액도 다양했죠. 투자금액의 크기를 떠나 이제는 날린 돈이지만요."</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쉽게 벌었기에 쉽게 써버린 것은 아닐까? 강 회장은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nbsp;투자의 지침으로 여길만한 교훈은 얻었다고 강조했다. 바로 강 회장의 가치투자 원칙인 '1등 기업에 투자한다'는 것이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투자에 실패를 하고 얻은 교훈은 바로 1등 기업에 투자하자는 것입니다. 경쟁력 있는 1등 기업은 망하지 않거든요. 그렇다고 회사가 망할 것을 염두해 두고 청산가치를 따지는 것은 아닙니다. 회사의 미래가치를 내다보고 투자합니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그리고 그의 숙원인 자산운용사 설립을 위해 한 걸음을 떼게 됐다. 20억원을 떼내고 지인들을 모아 투자자문사를 설립했다.</span><br><br><strong><span style="FONT-SIZE: 12pt">◆투자자들을 끌어 모으다…"돈 못벌면 보수 안받습니다"</span></strong><br><br><span style="FONT-SIZE: 12pt">1999년 7월 어느날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 강 회장은 에셋플러스투자자문주식회사 창립식에서 파격적인 선언을 했다. </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고객자산에 대한 운용보수는 1% 받겠습니다. 또 성과보수에 대해서는 20%의 보수를 받겠습니다. 그렇지만 수익이 나지 않으면 성과보수를 일체 받지 않겠습니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일명 '무수익, 무보수' 선언을 한 것이다. 강 회장은 1억원 이상의 자산을 일임계약시에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었다. 위탁성과보수가 있는 장기계약만 체결했다. 기준수익를 초과한 수익에 대해서는 20%의 보수를 받았다. </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이렇게 9년 동안 고객들의 자산을 관리했고 손실을 본 해는 두 해 뿐이었다. 가치주 발굴로 높은 수익률을 안겨준다는 소문이 나면서 에셋플러스는 2002년 3월에는&nbsp;국민연금 위탁운용사로 선정됐다.이후 군인공제회, 정보통신부, 사학 연금관리공단, 교직원 공제회 등 기관들의 자금을 안정적으로 운용했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자문사를 덩치를 키워갔고신뢰도 쌓았다. 지난해&nbsp; 6월에는 자산운용사를 설립했다. 국내 자산운용사로는 처음으로 '직접투자'를 내걸었다. '펀드'만 팔지 말고&nbsp;가치투자 철학과 장기투자의 원칙까지 전파하겠다는 의지였다. 고객들이 소중한 자산을 불완전판매 등으로 헛되이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하지만 '무수익, 무보수' 원칙은 이어갈 수 없었다. 이런 수수료 구조의 공모펀드는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운용보수 내에서 수수료를 가급적 인하할 계획입니다.&nbsp;장기투자를 우대하고 성과가 안 나면 수수료를 받지 않는 다른 방법을 꾸준히 모색하고 있어요.&nbsp;작년에는 직접판매를 고수하는 과정에서&nbsp;47억원의 적자가 났어요. 앞으로&nbsp;4년 정도 적자가 나도 버틸 수 있습니다. 다행히도 올해는 시장이 살아난 덕분에 적자는 면할 듯 싶습니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2pt">에셋플러스는 앞으로 1인 점포 등 다양한 판매형태를 취해 국내 판매망을 넓혀간다는 계획이다. 오는 10월 중에는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현지 사무소를 열고 교포 자금을 끌어들일 예정이다. 그의 가치투자 철학을 태평양 건너까지 전파하겠다는 의지다. 그의 투자철학이 중국과 미국에서 어떤 결실을 맺을 지 주목된다.</span><br><div class="autosourcing-stub"><p style="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FONT-WEIGHT: normal; FONT-SIZE: 12px; PADDING-BOTTOM: 0px; MARGIN: 11px 0px 7px; PADDING-TOP: 0px; FONT-STYLE: normal; FONT-FAMILY: Dotum"><a href="http://blog.naver.com/skjeon1" target="_blank"></a>&nbsp;</p></div></div>			 ]]> 
		</description>
		<category>Eye to the stock</category>

		<comments>http://ajaja77.egloos.com/4231688#comments</comments>
		<pubDate>Thu, 10 Sep 2009 13:44:21 GMT</pubDate>
		<dc:creator>하야니</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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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양용은 스토리(퍼온글)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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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class="imageblock right" style="FLOAT: right; MARGIN-LEFT: 10px"><img style="CURSOR: pointer" onclick="open_img('http://cfile5.uf.tistory.com/original/1176D1194A8A1F318AAFAA')" height="312" alt="양용은" src="http://cfile5.uf.tistory.com/image/1176D1194A8A1F318AAFAA" width="240"> <p class="cap1" style="WIDTH: 240px">쌍둥이 여동생과 한 컷</p></div>어린 시절<br><br>1972년 제주도에서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양용은.<br>미국 프로골프 PGA챔피언에 오른 그에게는 남다른 스토리가 있다.<br><br>3남5녀의 네째로 태어났고, 쌍둥이 여동생이 다섯째이다.<br>제주농고를 다니며 보디빌딩을 했고 몸짱으로 불렸다.<br>고교 3학년 때 꿈은 대학에 가는 것이었다.<br>그만큼 그에게 대학은 갈 수 없는 먼 곳이었다.<br><br>고등학교를 마치고 아버지를 도와 농사를 지었지만<br>양용은은&nbsp;평생 농사를 짓고 살기는 싫었다.<br>용돈이나 벌어보겠다고 나선 일이 바로 골프연습장에서 공 줍는 일.<br>공을 주으며 그곳에서 먹고 잤다.<br>골프에 빠져있는 사람들과 하루를 보내며<br>저녁에는 연습채를 잡고 휘둘러 보기도 했다.<br>정말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시작이었다.<br><br>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다. 골프는 부자나 하는 운동이라는 것.<br>건설회사에서 굴착기술을 배우다 다치면서 그만두고<br>나이트클럽 웨이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br>그의 말처럼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절이었다.<br><div><br><div><br></div><div class="imageblock right" style="FLOAT: right; MARGIN-LEFT: 10px"><img style="CURSOR: pointer" onclick="open_img('http://cfile22.uf.tistory.com/original/1276D1194A8A1F318BE9A3')" height="168" alt="양용은" src="http://cfile22.uf.tistory.com/image/1276D1194A8A1F318BE9A3" width="240"> <p class="cap1" style="WIDTH: 240px">중학생 시절. 위에서 두번째.</p></div><div>골프가 부르다 <div><br>단기사병으로 군대를 마친 그는 다시 골프연습장으로 갔다.<br>여러 아르바이트를 해보기도 했지만 골프를 잊을 수는 없었다.<br>골프장 일을 도우며, 밤이면 낡은 중고채를 휘둘렀다.</div><div><br>선생도 없었고 혼자서 무작정 휘두르는 연습이었다.<br>조명 시설이 없어서 플래시 하나를 켜두고 밤을 세웠다.<br>남들 10박스를 칠 때, 100박스를 칠 정도로 골프가 즐거웠단다.<br><br>미치다시피 골프공을 때려대던 그는 1996년 5년만에 프로테스트에 합격한다.<br>성인이 되어 처음 골프채를 잡은 사람이 <br>5년만에 프로테스트를 통과하여 프로가 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br>열심히 한 것 이외에도 타고난 재능이 있었다는 걸 말한다.<br><br><div class="imageblock right" style="FLOAT: right; MARGIN-LEFT: 10px"><img style="CURSOR: pointer" onclick="open_img('http://cfile23.uf.tistory.com/original/1476D1194A8A1F328CD3BC')" height="303" alt="양용은" src="http://cfile23.uf.tistory.com/image/1476D1194A8A1F328CD3BC" width="240"> <p class="cap1" style="WIDTH: 240px">교고시절 몸짱으로 불렸다.</p></div>독하게 마음 먹은 양용은은 프로 신인왕에 올랐고<br>1999년에는 상금랭킹 9위에 올랐다. <br>하지만 세금을 제외하고 그의 손에 들어온 돈은 1000만원 남짓.<br>국내에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먹고 살 길이 보이지 않았다.<br>레슨을 하며 연명을 할까 하는 유혹이 없지 않았지만<br>그렇게 물러서고 싶지는 않았다.<br><br><br>눈물을 삼키며 현해탄을 건너다<br><br>선수로 성공하겠다는 결심을 굳힌 양용은은 비장한 마음으로 일본투어에 도전한다.<br>보증금 250만원에 월세 15만원 단칸방에 아내와 두 아이들을 남겨두고<br>일본으로 떠나던 날, 그의 가슴에는 피눈물이 났다.<br>결혼하면서 아내에게 했던 약속, 10년만 기다려달라했던 그 약속을 <br>비행기에서 수도 없이 되내었다.<br><br>독하게 시작한 일본투어는 그에게 삶의 안정을 가져다 주었다.<br>2004년 일본 투어에서 2승을 올린 것이다.<br>그와 동시에 골프를 아는 사람들에게 양용은 이름 석자를 알렸다.<br>양용은이 일본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이는<br>이미 일본투어에서 활약하고 있던&nbsp;김종덕 프로다.<br>김종덕 프로의&nbsp;도움이 없었다면 대회출전 등이 만만치 않았을&nbsp;터,&nbsp;<br>일본 진출 후 곧 바로 성과를 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br><br><div class="imageblock right" style="FLOAT: right; MARGIN-LEFT: 10px"><img style="CURSOR: pointer" onclick="open_img('http://cfile2.uf.tistory.com/original/1776D1194A8A1F338EE365')" height="161" alt="양용은" src="http://cfile2.uf.tistory.com/image/1776D1194A8A1F338EE365" width="240"> <p class="cap1" style="WIDTH: 240px">1996년 프로테스트에 통과</p></div>양용은에게&nbsp;미국투어 진출을 권한 사람은 바로 최경주 프로다.<br>섬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고 어려운 환경에서 늦깎이로 성장하는 후배를<br>자신이 활동하고 있는 미국무대에 이끌어준 것이다.<br>하지만 미국무대 데뷔는 쉽지 않았다. <br>2005부터 자격시험인 퀄리파잉 스쿨에서 두 번 연거퍼 떨어진 것이다.<br><br>물론 이 기간 커다란 성과도 있었다.<br>2006년 한국 오픈 우승선수의 자격으로 출전권을 얻은<br>유럽투어 HSBC챔피언십에서 타이거우즈를 꺾고 우승컵을 안은 것.<br>이때 이미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양용은은<br>2009 PGA챔피언십에서 다시 한번 우즈를 꺾는 기염을 토하며<br>우즈 킬러로 부상하게 된다.<br><br>미국무대에서<br><br><div class="imageblock right" style="FLOAT: right; MARGIN-LEFT: 10px"><img style="CURSOR: pointer" onclick="open_img('http://cfile1.uf.tistory.com/original/207FB21D4A8A21C93E7B57')" height="372" alt="양용은" src="http://cfile1.uf.tistory.com/image/207FB21D4A8A21C93E7B57" width="240"> <p class="cap1" style="WIDTH: 240px">PGA 첫승! 혼다클래식 우승장면</p></div>2008 퀄리파잉 스쿨 3수만에 가까스로 통과하여 <br>대망의 미국무대에 나섰지만 역시 미국무대는 쉽지 않았다. <br>한국과 일본과는 달리 코스의 길이가 길었고<br>세계 정상급 선수들에 비해 비거리에서 밀리는 그로서는<br>경기 운영에서 많은 핸디캡이 있었다.<br><br>결국 29개 대회에 나섰지만 절반이 넘는 17차례에서는<br>컷통과마저 못하였고 상금순위는 157위로 밀려났다.<br>천신만고 끝에 쟁취한 투어자격도 날라갔다.<br><br>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nbsp;<br>자신의 핸디캡을 절감한 그는 본토의 체계적인 레슨을 받았다.<br>처음부터 독학으로 시작한 그는 체계적인 레슨을 받은 적이 없었다.<br>그러다보니&nbsp;스윙교정을 위해&nbsp;기초 ABC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br>양용은은 이때를 회상한다. <br>"골프 인생을 건 마지막 모험이라고 생각하고 아침부터&nbsp;밤까지 죽을 각오로 스윙교정에 매달렸다."<br>&nbsp;<br>또한 비거리 극복을 위해 새로운 클럽을 장착했다.<br>우드의 거리와 아이언의 정확성을 겸비한 하이브리드 클럽을 갈고 닦았다.<br>200야드가 넘는 거리에서도 핀에 볼을 가까이 붙일 수 있게 되면서<br>항상 좌절해야 했던 롱파4홀에서도 서서히 자신감이 생겨났다.&nbsp;&nbsp;&nbsp;&nbsp;<br><br>올해 다시 퀄리파잉 스쿨에 합격했지만&nbsp;그는 대기자 신분이다보니<br>출전 예정선수가 불참해야 기회가 주어지는 신세였다. <br>1월 소니오픈에서는 하와이까지 날라가 결국 자리가 나지 않아<br>상당한 비용만&nbsp;날리고 돌아오는 서러움을 겪기도 했다.<br><br><br><div class="imageblock right" style="FLOAT: right; MARGIN-LEFT: 10px"><img style="CURSOR: pointer" onclick="open_img('http://cfile3.uf.tistory.com/original/2076D1194A8A1F3591FA9A')" height="310" alt="양용은" src="http://cfile3.uf.tistory.com/image/2076D1194A8A1F3591FA9A" width="240"> <p class="cap1" style="WIDTH: 240px">PGA챔피언십 우승하는 순간</p></div>마침내 꿈을 이루다<br><br>그러던 그에게 결국 기회가 찾아왔다.<br>3월 혼다 클래식에서 PGA 첫승을 신고한 것이다. <br>그리고 5개월이 지난 2009년 8월, 양용은은<br>골프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PGA챔피언십에서<br>그것도 이 시대 최고의 골퍼로 불리는 타이거우즈와 맞붙어 우승한다.<br><br>우즈가 3라운드까지 리드하던 경기에서 막판에 역전당한 경우는<br>평생을 통틀어 37번 가운데 단 한 번,<br>메이저 14차례에서는 단 한 번도 없었을 만큼<br>우즈는 4라운드에서는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한다.<br>그의 카리스마에 세계 정상급 선수들도 질려버리고 스스로 무너지곤 했던 것이다.<br><br>하지만 양용은은 달랐다.<br>위기 상황에서도 거침없이 샷을 날렸고 정면돌파를 시도했다.<br>스윙교정의 효과가 그를 새롭게 만들었고 새로 장착한 클럽이 빛을 발했다.<br>그의 거침없는 샷에 주눅이든 것은 오히려 타이거 우즈였다.<br>심리적으로 흔들린 우즈는 퍼트에서 번번히 고개를 떨궜다.<br><br><br>삶의 명장면<br><br><div class="imageblock right" style="FLOAT: right; MARGIN-LEFT: 10px"><img style="CURSOR: pointer" onclick="open_img('http://cfile24.uf.tistory.com/original/1276D1194A8A1F36925FC6')" height="180" alt="양용은" src="http://cfile24.uf.tistory.com/image/1276D1194A8A1F36925FC6" width="240"> <p class="cap1" style="WIDTH: 240px">우즈의 축하를 받는 양용은</p></div>지금 자신이 꿈꾸던 인생 최고의 명장면,<br>그 장면의 주인공이 되어 감동을 자아내고 있는 양용은.<br>생활기록부에 남아있는 17살 그는 단지 '내성적이지만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학생'이었다.&nbsp;<br>이제 그는 그의 모교인 제주고(옛 제주농고) 교문에 플랭카드가 걸린 사람이 되었다.<br>학교 교장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br><br>"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목숨을 바칠 정도로 하면 세계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용은이의 모습에서 학생들이 많은 것을 느꼈으면 좋겠다."<br><br>미국 진출을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양용은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br><br>"열심히 노력해서 꿈을 향해 도전한다면&nbsp;반드시 기회는 찾아옵니다. 최경주 프로도 그런 마음가짐 때문에 성공했다고 봅니다. 만약 실패하더라도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지금 실패해도 또 다른 연장전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br><br><div class="imageblock right" style="FLOAT: right; MARGIN-LEFT: 10px"><img style="CURSOR: pointer" onclick="open_img('http://cfile21.uf.tistory.com/original/1376D1194A8A1F36934C4C')" height="360" alt="양용은" src="http://cfile21.uf.tistory.com/image/1376D1194A8A1F36934C4C" width="240"> <p class="cap1" style="WIDTH: 240px">꿈의 트로피</p></div>또 어떤 인터뷰에서 그는 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br><br>"지금도 골프코스에 서면 가슴이 뿌듯해요. 어린 시절 제가 여기 서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br><br>소명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br><blockquote>평범한 사람이 자신을 들뜨게 만드는 신나는 일을 만나게 되고<br>그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몰두하고<br>그 과정에서 만나는 어려움에 물러서지 않고 맞서며<br>작은 성공에도 안주하지 않고&nbsp;스스로 새로운 도전에&nbsp;임하게 하는 것.<br><br>그러다 문득 뒤돌아보면 많은 이들이 환호하고 있는 것.<br>그리고 ...<br>자신이 이 지구에 왜 왔는지 <br>조금이나마 어렴풋이 알게 되는 것.&nbsp;&nbsp;<br></blockquote></div></div></d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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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Eye to the world</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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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4 Aug 2009 20:31:12 GMT</pubDate>
		<dc:creator>하야니</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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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세계를 누비는 강익중,이희옥 부부(퍼온글)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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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trong>대지(大地)의 여신(女神)<br><br></strong><a class="lw" href="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cs=bz&amp;p=%C6%C4%B6%F3%B0%FA%C0%CC" target="_blank"><span style="COLOR: #000000">파라과이</span></a> 수도 <a class="lw" href="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cs=bz&amp;p=%BE%C6%BC%F8%BD%C3%BF%C2" target="_blank"><span style="COLOR: #000000">아순시온</span></a> 에서 승용차로 2시간 거리에 광활한 대지가 있다. 현지인들이 '악(惡)이 없는 땅(Land of No Evil)'이라 부르는 곳이다. <a class="lw" href="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cs=bz&amp;p=%B0%A1%B5%B5+%B0%A1%B5%B5" target="_blank"><span style="COLOR: #000000">가도 가도</span></a> 끝없는 9만 헥타르(2억7000만평)의 농장이 이희옥(미국명 마거릿 리·48)이 일하는 <a class="lw" href="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cs=bz&amp;p=%BA%CE%B5%BF%BB%EA" target="_blank"><span style="COLOR: #000000">부동산</span></a> 개발회사 YWA 소유다.<br><br><br><br><img title="클릭하시면 원본크기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style="MARGIN: 5px; CURSOR: hand" src="http://img.news.yahoo.co.kr/picture/2009/34/20090718/2009071803151725334_093515_0.jpg" align="left" border="0"><br>변호사 이희옥은 창업주 우영식과 함께 1998년부터 농장을 차례로 15개 사들였다. 농장 한복판에는 활주로가 있다. 경(輕)비행기 없이는 돌아볼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부근의 CNN 오너 <a class="lw" href="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cs=bz&amp;p=%C5%D7%B5%E5+%C5%CD%B3%CA" target="_blank"><span style="COLOR: #000000">테드 터너</span></a> 농장(4억평)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br><br>유기농 공법으로 생산되는 콩, 옥수수, 해바라기가 미국으로 수출된다. 가격이 시카고산(産) 곡물과 똑같다. 미국 본토와 견줘 인건비가 10분의 1, 땅값이 8분의 1이다. 미국에선 불가능한 한 해 이모작(二毛作) 반을 할 수 있다. 운송비를 빼도 수익성이 꽤 높다.<br><br><br><br>미국 뉴욕 맨해튼 <a class="lw" href="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cs=bz&amp;p=11%B9%F8%B0%A1" target="_blank"><span style="COLOR: #000000">11번가</span></a>에 16층 아파트가 2007년 완공됐다. 허드슨 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이 아파트는 착공 때부터 관심을 모았다. 승용차가 응접실 바로 옆까지 올라갈 수 있는 혁신적인 설계에 디자인도 빼어나기 때문이다.<br><br>'스카이개라지(Sky Garage)'라 불리는 아파트의 평당 가격은 미화 21만3480달러(한화 2억7752만원)다. 가장 맨 위 2개 층이 명품업체 <a class="lw" href="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cs=bz&amp;p=%B5%B9%C3%BC+%BE%D8+%B0%A1%B9%D9%B3%AA" target="_blank"><span style="COLOR: #000000">돌체 앤 가바나</span></a>에게 팔렸다. 파파라치의 접근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발상이 보기 좋게 적중한 것이다.<br><br>고가의 토지를 헐값에 횡재했을 때 미국인들은 '플럼 프라이스(plumb price)'라는 표현을 쓴다. 수도관 가격 정도만 주고 금싸라기 땅을 거저 주웠다는 뜻이다. 이희옥이 금호종금과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 매입한 맨해튼 AIG 본사가 딱 거기 맞는 경우다.<br><br>뉴욕의 한 부두에서는 개발사업이 한창이다. 여기서 유명 배우 로버트 드니로가 개최하는 '트리베카 영화제'가 열릴 예정이다. 출품작 시사회는 최첨단 워터프런트의 지붕에서 열린다. 이 발상도 이희옥의 머리에서 나왔다. 도대체 그는 누구인가.<br><br>■ <b>창조(創造)의 예인(藝人)</b><br><br>과천 현대미술관 1층에 TV를 쌓아올린 탑 모양의 작품이 있다. 고(故)백남준 의 '다다익선(多多益善)'이다. 그 주위를 가로세로 3인치 타일이 감싸고 있다. 무려 6만2000개나 된다. '제2의 백남준'이라는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강익중(姜益中·49)의 작품이다.<br><br>'삼라만상(森羅萬象)'이라는 이름처럼 타일 하나하나가 모두 그림이다. 부처부터 인물, 한글과 도형을 형상화한 뒤 투명 플라스틱을 입혀놓았다. 모두 그의 손길이 닿은 것들이다. 사이사이 강익중이 공방(工房)에 주문한 앙증맞은 토기와 장난감이 놓여 있다.<br><br><br><br><img title="클릭하시면 원본크기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style="MARGIN: 5px; CURSOR: hand" src="http://img.news.yahoo.co.kr/picture/2009/34/20090718/2009071803151725334_093515_1.jpg" align="left" border="0"><br>세계를 걷노라면 강익중의 작품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뉴저지주 프린스턴시 공립 도서관 로비에 나무판 그림 5000개로 만든 벽화가 있다. 아인슈타인의 담배 파이프가 있고 노벨상과 퓰리처상 수상자 20명이 보낸 메모와 서명이 있다. '해피월드'란 작품이다.<br><br>1994년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은 청사 복판에 그의 벽화를 걸었다. 설계자 크레이그 하트만은 강익중에게 "이 공항은 당신을 위해 지은 것"이라는 헌사(獻辭)를 보냈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는 수필가 민태원의 '청춘예찬'을 볼 수 있다. 강익중의 상설 전시작 '청춘'이다.<br><br>한창 복원 중인 서울 광화문에도 그의 작품이 있다. 광화문 전체를 덮은 가림막 '광화문에 뜬 달'은 폭 41m, 높이 27m다. 달항아리를 그려넣은 가로세로 60㎝인 베니어합판 2611개가 모자이크처럼 엮여 있다. 이 작품 때문에 그는 6개월간 밤을 새웠다.<br><br>강익중은 내년 5월부터 10월까지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열리는 엑스포 한국관 건설을 의뢰받았다. 건축가 조민석이 구조물을 지으면 그는 광화문의 20배 크기인 이 파빌리언을 가로세로 30㎝크기의 알루미늄 4만2000점으로 덮을 예정이다.<br><br>6개월 뒤 엑스포가 끝나면 4만2000점 하나하나가 모두 개개의 작품이 된다. 예술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리사이클링 미술'이 강익중에 의해 처음 시도되고 있다. 작품 하나를 보통 수만개의 또 다른 작품으로 구성하는…그는 도대체 누구인가.<br><br>■ <b>시라소니와 강세황</b><br><br>이희옥은 대한항공 관리직으로 일한 아버지의 세 딸 중 둘째다. 서울 혜화초교 3학년 1학기를 마친 희옥은 베트남 사이공을 시작으로 아버지와 세계를 방랑했다. 지금까지 다닌 학교 수만 19개다. 아버지가 서울로 돌아온 이후 그는 시애틀 부근 빌링햄에서 살았다.<br><br>강익중에 따르면 이희옥의 집안에는 '유명한 인물'이 있었다. 1940~50년대를 풍미한 주먹 시라소니(본명 이성순)가 그의 작은 외할아버지다. 강익중은 "아내가 체구는 자그마하지만 배포가 크다"며 "그분을 닮았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br><br>강익중은 약사(藥師) 아버지의 3형제 중 둘째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그가 그린 할머니 초상화를 보고 식구들이 외쳤다. "마침내 우리 집안에 그분이 현신(現身)하셨구나!" '그분'이 조상 강세황(姜世晃·1712~1791)이다. 강세황은 조선 진경산수화의 대가다.<br><br>그때부터 강익중에게 '미술'이외의 길이 없었다. 용산중, 장충고를 거치며 학원 한번 안 다녔던 그는 홍익대 서양화과에 합격했다. 그런데 막상 입학한 뒤 미술에 흥미를 잃게 됐다. 친구들 재주가 놀라웠던 것이다. 그는 수업에 자주 빠지고 딴짓만 하는 아웃사이더가 됐다.<br><br>저 멀리서 포물선을 그려온 두 사람이 1983년 마침내 접점(接點)을 찾았다. 미국 웨스턴 워싱턴주립대 3학년이던 이희옥이 6개월간 홍대에 교환학생으로 온 것이다. 둘은 미술과는 무관한 'UFO클럽'을 만들어 시간을 보냈다. 이희옥이 돌아간 뒤 펜팔이 시작됐다.<br><br>1984년 초 강익중은 졸업식도 마치지 않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낮에는 뉴욕 프랫(Pratt)대 석사과정을 밟고 밤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청과상에서 일했다. 그즈음 시애틀에 있던 이희옥도 미술로 유명한 헌터칼리지에서 학위과정을 밟기 위해 뉴욕으로 왔다.<br><br>다시 만난 지 1년 뒤인 1985년 둘은 결혼했다. 약혼식부터 하려 했지만 이희옥의 아버지가 강익중을 본 뒤 "밥을 세 공기나 먹는 게 믿음직스러우니 번거로운 절차 거치지 말고 그냥 혼인하라"고 한 것이다.<br><br>강익중의 증언은 전혀 다르다. "장인이 너무 무서웠다. 식탁에서 반찬을 집어먹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고개 푹 숙이고 밥만 세 그릇을 먹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은 서울 광림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린 뒤 다시 미국으로 갔다.<br><br>■ <b>갈림길</b><br><br>결혼은 가난한 청춘(靑春)에 결단을 요구한다. 변변한 벌이 없이 예술만 찾다가는 굶어죽기 딱 알맞다. 누가 미술을 계속할 것이며 누가 포기할 것인가? 포기는 곧 돈을 버는 것을 뜻했다. 부부가 결론을 낸 것은 1년이 지난 뒤였다. 이희옥에게 물었다.<br><br>―왜 미술을 포기했습니까. 재능이 남편보다 없었나요?<br><br>"둘 다 예술의 길을 걷길 원했어요. 하지만 그건 희망사항일 뿐이었습니다. 남편은 '나는 미술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고집을 부렸어요."<br><br>―그 고집에 진 겁니까.<br><br>"저도 고집을 부리긴 했지요. '내게도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당신만큼 나도 예술을 사랑한다'고. 남편은 제게 '당신이 나보다 영어를 더 잘하지 않느냐'고 했어요."<br><br>―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치사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법한데요.<br><br>"남편은 심지어 제가 사람을 잘 웃기니 코미디언이나 변호사가 되어야 한다고도 했어요. 제가 어려서부터 학생회장을 했고 토론을 좋아했거든요. 사실 저는 처음부터 강익중이 저보다 더 나은 예술가가 될 것이라는 걸 알았어요.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아 1년이 흘러간 겁니다."<br><br>―처음 직장이 YWA였지요.<br><br>"영우앤 어소시에이츠(Youngwoo&amp;Associates)였어요. 말단 사원으로 일했어요. 일을 하면서도 계속 미술이 생각나는 겁니다. 보스인 우영식씨에게 '나는 풀타임 헝그리 예술가가 되겠다'고 선언하고 사표를 냈지요."<br><br>―그런데요.<br><br>"우영식씨가 저희 부부에게 밥을 샀어요. 식사하면서 '예술은 강익중이 하고 당신은 돈을 벌어 서포트해주라'고 저를 설득했어요. 승낙할 수밖에 없었어요. 돌이켜보면 당시 결정이 현명했습니다."<br><br>―로스쿨 입학은 본격적인 사업가가 되겠다는 선언 같은 것이었습니까.<br><br>"미술대 학위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YWA에서 변호사들과 일할 기회가 많았는데 그들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창의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고 흥미를 느꼈어요."<br><br>―밤에 로스쿨을 다니며 변호사 자격증을 땄지요?<br><br>"브루클린 로스쿨이라고, 야간(夜間)코스가 있었습니다. 4년 동안 새벽 2~3시까지 공부하고 아침에 출근했습니다. 남편은 매일 저녁 학교로 저를 데리러왔고요. 제가 새벽 2시 이전에 잠들면 남편은 '공부 다 했느냐'며 저를 깨웠어요."<br><br>―남편이 학비는 도와주던가요?<br><br>"그런 돈이 어디 있겠어요. 당시만 해도 남편은 유명하지 않았으니까요. 저리(低利)로 대출을 받아 해결했어요."<br><br>―저런, 강익중이 얼마나 매력적이기에 조선시대 열녀(烈女)도 아닌데 남편을 위해 돈을 벌 생각을 한 겁니까.<br><br>"그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요. 펜팔이 처음에는 우정(友情)이었는데 나중에 사랑이 됐지요. 그는 한국어로, 저는 영어로 썼는데 남편의 글솜씨가 좋았어요. "<br><br>―누가 먼저 결혼하자고 했나요.<br><br>"특별한 프러포즈는 없었어요. 하지만 저희는 언젠가 서로 결혼하게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br><br>―강익중은 '장인이 밥 세 그릇 먹는 모습에 반해 결혼을 앞당기자고 했다'더군요. 그게 말이 되나요.<br><br>"제가 미국에 혼자 있었기 때문일 거예요. 게다가 뉴욕이니. 저는 제 어머니가 시부모님께 제안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등 떠밀려 결혼하게 돼 우리도 놀랐어요."<br><br>―그런 부부들도 싸움을 합니까?<br><br>"하지요. 다만 5분 이상 싸워본 적은 없어요."<br><br>―남편의 작품에 대해서도 평(評)을 합니까.<br><br>"그의 작품을 제일 먼저 평하는 게 접니다. 저는 항상 솔직하게 말해줘요. 남편은 너무 많은 정성을 들이기 때문에 자기 작품을 스스로 평가하기가 어렵지요."<br><br>―세계적인 예술가인데, 혹시 '당신이 뭘 안다고 그러느냐'며 벌컥 화를 내지는 않나요.<br><br>"미술은 가르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종종 코멘트를 하면 그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요. 저는 미술이건 사업이건 200%의 노력을 들여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에요."<br><br>■ <b>'백남준 특급열차'</b><br><br>아내가 돈을 벌어오는 동안 강익중도 미술계에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지하철 안에서도 그림을 그리기 위해 그가 고안한 게 3인치짜리 정사각형 캔버스였다. 청과상(靑果商)으로 가는 도중 그는 눈에 띄는 모든 것을 순식간에 그렸다. 강익중에게 물었다.<br><br>―세계에 이름을 알린 게 1994년 휘트니 미술관에서 백남준과의 2인전을 제안받은 것이었지요.<br><br>"그 제안을 받고 오히려 어리둥절했어요. '왜 내게 연락을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데이비드 로스 휘트니 미술관장이 어디선가 제 작품을 봤대요. 큐레이터 유지니 사이가 제게 '한국의 비빔밥처럼 갖가지 재료를 섞어 반복적으로 표현하는 공통점을 두 사람이 지닌 것 같아 함께 소개하고 싶다'고 했어요."<br><br>―예술이 비빔밥입니까?<br><br>"비빔밥에는 밥과 고기와 나물이 들어가잖아요. 예술도 유연해야 한다는 뜻이지요."<br><br>―당신과 백남준은 어떤 공통점이 있습니까.<br><br>"백 선생님은 TV 수상기를 여러 대 설치해 비디오로 표현하고 저는 캔버스를 사용하지요. 다만 같은 것을 반복하고 연결시키는 건 비슷한 점일 겁니다."<br><br>―휘트니 미술관 2인전 때 백남준이 좋은 자리를 강익중에게 주라고 했다던데, 무슨 사연입니까.<br><br>"당시 저는 34세, 백 선생님은 62세였어요. 그때 백 선생님은 독일에 있었는데 '더 좋은 자리를 익중에게 주라'는 팩시밀리를 보내왔어요. 솔로몬앤 브러더스라는 회사의 초대를 받아 회의하던 자리였어요. 그 제안이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후배 사랑에 모든 사람이 놀랐습니다."<br><br>―백남준을 처음 만난 게 언젭니까.<br><br>"1990년 뉴욕 소호의 화랑에서 그룹전 때였어요. 중국 천안문사태 기금마련 전시회였습니다. 그분이 제가 한국인인 걸 알고 세 가지 충고를 해줬어요. 그 이야기를 한 후 그가 '빠이빠이'하면서 자리를 떠나자 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했느냐고 몰려들었습니다."<br><br>―무슨 얘기였습니까.<br><br>"그림을 싸게 팔아라, 여행을 많이 다녀라, 파티에 많이 다녀라."<br><br>―가난한 화가가 어떻게 여행을 많이 다니고 파티에 많이 다닙니까?<br><br>"여행을 많이 다니라는 건 전시를 많이 하라는 뜻입니다. 미국이 파티 중심의 사회잖아요. 한국에서는 파티를 거창하게 생각하는데 여기서는 그렇지않아요."<br><br>―그 뒤에도 인연이 이어졌습니까.<br><br>"제 작업실이 차이나타운에 있고 집은 첼시쪽입니다. 걸어가다 보면 백 선생님이 집밖 휠체어에 앉아 계세요. 저를 보면 그분은 항상 '야! 강익중' 하고 부른 뒤 몇 마디 이야기를 주고받았어요."<br><br>―그러고 보니 얼굴이 백남준과 비슷하게 생겼습니다.<br><br>"독일에 가면 저보고 '미스터 백 아들이냐'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정말 비슷하죠? 그분은 제게 딜러(畵商)도 소개해주셨어요. 칼 솔로웨이라고 지금도 함께 일합니다."<br><br>―제2의 백남준이란 별명이 좋습니까.<br><br>"저는 백남준이라는 거대한 특급열차에 무임승차한 거나 마찬가지예요. 백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 비로소 제 발로 걷는 거죠. 하지만 저는 접니다."<br><br>―첫 전시회는 언제 했나요.<br><br>"대학원 시절 룸메이트가 케냐의 축구 대표선수 출신이었어요. 그의 특기가 저글링인데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특이한 재주를 가졌습니다. 이름이 '난종'이라고. 그는 로지스랜드대에 다녔는데 제 그림을 그 학교 미술교수에게 보여준 겁니다. 그걸 본 교수가 '강의실 복도에서 전시해보라'고 해 그때까지 그린 그림을 가방에 싸 갔지요."<br><br>―왜 프랫대학원에서 첫 전시회를 안 하고 남의 학교에서 한 겁니까.<br><br>"홍대에서 그랬지만 미국 와서도 나서는 걸 싫어했거든요. 오죽했으면 저를 가르친 선생님들이 저를 기억하지 못했겠어요."<br><br>―사람 많은 지하철에서 그림이 그려집니까.<br><br>"빠르면 한 호흡에 그려요."<br><br>―맨 먼저 팔린 작품이 어디에 있는지 혹시 압니까.<br><br>"일본인 딜러에게 처음 작품을 팔았는데 홍콩의 한 호텔 이발소에 걸려 있다더군요. 당시 몇백달러를 받은 것 같은데…."<br><br>■ <b>뉴욕의 '짠순이'</b><br><br>남편이 도약하는 사이 이희옥도 뛰어올랐다. 1996년 로스쿨을 졸업한 뒤 그는 회사의 파트너가 됐다. YWA의 파트너는 창업자 우영식과 이희옥, 2년 전 초빙한 그렉 카니 등 세 명이다.<br><br>―부동산개발이라는 게 뭘 개발하는 겁니까.<br><br>"신디케이트를 조합해 상업용이나 주거용 빌딩을 사는 겁니다. 90년대 데이터센터라는 사업이 우리 회사에 큰 원동력이 됐어요. 구체적으로 텔레커뮤니케이션 회사라고 합니다. 건물을 사 초대형 텔레커뮤니케이션 회사가 사용할 서버와 루터를 들여놓은 뒤 파는 거죠."<br><br>―그 사업이 왜 돈이 됩니까.<br><br>"쉬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침수 위험지역도 안 되고 비행기의 항로를 가로막아도 안됩니다. 발전기를 설치해야 하고 바닥은 두터워야죠. 지붕은 넉넉해야 하고요. 월가의 스타우드 캐피털, 앤절로 고든&amp;컴퍼니 같은 회사들이 우리와 함께 일하기를 원했지요. 많은 텔레커뮤니케이션 시설을 지었는데 세계적으로 이런 회사가 5개밖에 없어요."<br><br>―부동산개발사업이 한국에서도 험하다고 하던데.<br><br>"미국도 부동산은 남성 중심입니다. 24년간 일하면서 변호사나 브로커 말고 저 같은 택지개발업자는 한명도 못 봤어요. 대형 미팅에 나가면 동양여자라며 무시하는 사람도 있었죠."<br><br>―여성차별은 한국도 마찬가지죠.<br><br>"한국이 미국보다 더 심하더군요. 한번은 미국 남자 부하직원과 한국 공무원을 만났어요. 그가 헬리콥터에 우릴 태웠는데 부하직원을 앞에 앉히고 저보고는 뒷자리에 앉으래요. 소음 때문에 아무 설명도 못 들었어요. 분명히 제가 명함을 줬는데도요."<br><br>―왜 부동산 개발사업을 하다 파라과이에 땅을 산 겁니까.<br><br>"미국의 부동산이 내리막길을 걸을 걸 예상했지요. 회사 내부적으로 파라과이 토지 매입을 '기분 좋은 프로젝트(The Feel Good project)'라며 자랑스러워 합니다. 독특하고 거대한 농업생산모델이죠."<br><br>―뭐가 독특합니까.<br><br>"우리는 '트리플 보톰 라인(Triple- bottom-line)'이라는 접근법으로 농업을 합니다. 전체 농지의 3분의 1은 남겨놓는 거죠. 법으로 규정된 것보다 훨씬 큰 면적의 숲을 유지하고 물을 오염시키지 않는 공법입니다. 현지의 집과 물탱크도 저희가 지어줍니다."<br><br>―남미국가들은 독재가 많다던데.<br><br>"오해예요. 파라과이 정부는 친기업적이고 외국자본에도 우호적입니다. 외환 유입에 제한이 없고 세율도 남미에서 가장 낮아요. 법인세도 10%밖에 안 돼요. 내각회의에서 파라과이 부통령이 우리 농장이 모든 외국 투자가가 따라야 할 모델이라고 소개했을 정도입니다."<br><br>―1년에 3~4회 현장에 간다는데 가서 뭘 합니까.<br><br>"농업은 파라과이와 아르헨티나의 파트너들이 하기 때문에 제가 간여할 게 없어요. 전체적인 사업현황과 방향을 논의하는 정도입니다."<br><br>―미국과 남미는 꽤 먼데 파트너들이 사기칠 위험은 없나요.<br><br>"그분들은 능력 있고 좋은 사람들입니다. 농장 근로자와 매니저들이 전체 소득의 일부를 받기 때문에 모두 자기 농장처럼 열심히 일해요."<br><br>―부동산 폭락을 예측했으면서 왜 '스카이 개리지' 사업은 시작한 겁니까.<br><br>"경제위기일수록 최상위층 바이어들은 이제껏 갖지 못한 것을 갖기를 바란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승용차가 거실까지 간다는 것은 파파라치를 피하고 싶은 유명인들에게 최고 아니겠어요? 장바구니를 꺼낼 필요도 없지요. 그 아파트는 최고급 차를 사랑하는 분들께도 좋아요. 주차요원이 차에 흠집을 낼 걱정을 안 해도 되잖아요."<br><br>―화재라도 나면 차가 어떻게 빠져나옵니까.<br><br>"화재방지벽을 사이에 둔 2개의 방을 생각하면 됩니다. 아파트와 차고빌딩은 문으로 연결된 거예요. 문 하나 사이를 둔 빌딩이지요."<br><br>―미술을 하던 분이 부동산 개발사업을 하면서도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이 뭡니까.<br><br>"미술과 마찬가지로 시공간(時空間)을 앞서서 내다봐야 합니다. 부동산 업계의 원로가 이런 말을 했어요. '이 바닥은 최소한 30년은 있어봐야 이해할 수 있다'고요. 그의 말이 맞다고 생각해요."<br><br>―그렇게 돈을 많이 벌면서 매번 이코노미석을 탄다면서요.<br><br>"제가 짠순이거든요(Because I'm cheap)."<br><br>■ <b>미래를 꿈꾸다</b><br><br>아내가 미국과 파라과이의 토지 시장을 주무르는 사이 강익중은 역사와 철학이 가미된 세계로 자신의 경지를 넓혀가고 있었다. 그는 남북으로 갈린 분단된 조국을 예술로 이을 방법이 무엇인가를 고민했다.<br><br><br><br>―어떻게 남북을 잇겠다는 겁니까.<br><br>"제가 가장 듣고 싶은 긴급뉴스가 이런 겁니다. '남북한 군인들이 임진강에 다리를 놓기 위해 총을 놓고 삽을 들었습니다' 같은 거요. 파주 북쪽 임진강에 철제 빔으로 뼈대를 만들고 벽돌 100만개로 다리를 놓아보려 했었죠. 벽돌엔 세계 어린이 100만명이 그린 '꿈'을 주제로 한 그림을 새기고요."<br><br>―황당해 보입니다.<br><br>"그걸 실현해보려고 북한에도 2번이나 들어갔어요. 좌절됐지만요."<br><br>―왜요?<br><br>"돈을 요구하더군요. 그래서 다른 곳에서 그 꿈을 실현해보려 했는데 그것도 안 됐어요."<br><br>―뭡니까.<br><br>"2001년 9월 11일 130개국 어린이가 보내온 그림 3만5000장을 모아 뉴욕 UN본부에서 전시회를 열 예정이었어요. 그날이 무슨 날인지 아시죠?"<br><br>―1999년에 파주 통일동산에서 남북을 잇는 '10만의 꿈'이란 작품을 선보인 적이 있죠.<br><br>"작년에 <a class="lw" href="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cs=bz&amp;p=%C0%CC%B6%F3%C5%A9" target="_blank"><span style="COLOR: #000000">이라크</span></a>에서 한 '이라크 친구들에게 보내는 그림편지'도 비슷한 콘셉트입니다. 일산 호수공원에서 2004년에 한 '꿈의 달'이나 미국 켄터키 무하마드 알리센터에서 2005년에 한 '놀라운 세상'도 같은 성격이지요."<br><br>―2007년에 나온 '바람으로 섞이고 땅으로 이어지고'라는 책 서문이 인상적이더군요. '백 선생님, 30세기에 봬요!'라는 말로 끝나는데 그게 무슨 뜻입니까.<br><br>"월스트리트의 금융계 인사들과 저녁식사를 할 때 백남준 선생님이 갑자기 '30세기에는 세상이 어떻게 변할까?'하고 묻는 겁니다. 모두 놀랐지요. 남들은 겨우 백년 뒤를 내다볼 때 그분은 천년을 앞서본 겁니다."<br><br>―백남준은 한때 '예술은 사기다'라고 했는데.<br><br>"그 사기가 사기(詐欺)가 아니라 사기(史記)입니다. 그 말을 하실 때 사마천의 '사기'에 푹 빠져있었거든요. 늘 이중적 해독이 가능한 표현을 즐기셨죠."<br><br>―작품에 보면 영어 단어들이 많이 나오는데요.<br><br>"제가 미국에 올 때 들고왔던 'Vocabulary 22000'이라는 책에 나오는 단어들입니다. 그걸 새겨놓은 겁니다."<br><br>―그럼 문장은요.<br><br>"아! 제가 한때 매일 뉴욕타임스 2면을 외웠거든요. 두뇌훈련도 되고 괜찮은 거 같아요."<br><br>―백남준처럼 당신도 철학적이 돼가는 것 같습니다.<br><br>"문화가 뭡니까, 잠자는 저를 깨우는 거잖아요. 철학은 자기가 어느 위치에 있는가를 깨우는 거지요."<br><br>―어떻게 하면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습니까.<br><br>"반쯤 눈을 감고, 가능하면 왼손으로. 못 그려도 그리고 기뻐도 그리고 배고파도 그리고 졸려도 그립니다. 옆에 있는 걸 그리고 누워서도 그리고 뛰면서도 그리고…."<br><br>―아내는 세계의 땅을 주무릅니다.<br><br>"저는 미래를 꿈꾸지요."<br><br>―부부가 버는 돈이 도대체 얼마나 됩니까. 당신만 해도 작품값이 어마어마할 텐데.<br><br>"요즘은 에너지를 모으는 중입니다. 이거 비밀인데…, 그림은 남발하면 안 돼요. 안 팔리면 금세 망해요."<br><br>■ <b>이 부부가 사는 법</b><br><br>부부는 한쪽이 넘치면 한쪽은 모자라야 조화롭게 산다는 말이 있다. 이렇게 다이내믹한 부부는 도대체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에 대한 증언을 기자는 아내 이희옥에게 듣기로 했다.<br><br>―천재와 살면 힘들지 않나요.<br><br>"남편은 친구들에게 직접 요리해 대접하는 것을 좋아해요. 11살 난 아들에게 아침을 만들어주는 것도요. 저는 늦잠꾸러기지만 남편은 잠이 별로 없거든요!"<br><br>―강익중의 갤러리는 직접 꾸며줬습니까.<br><br>"100평(330㎡)쯤 되는데요. 문고리부터 타일을 고르는 일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건 제게 특별한 프로젝트였어요. 맨땅에서 완공까지 제가 간여했어요. 일꾼들과 일하는 게 힘들 때도 있었지만 눈앞에서 제 아이디어와 콘셉트가 현실화되는 게 너무 만족스러웠어요."<br><br>―참 대단한 것 같은데 사는 건 힘들 것 같은 가족입니다.<br><br>"그렇지 않아요. 우리 가족의 모토는 3H입니다. 행복, 건강, 겸손(Humble)이지요."<br><br>―부부가 세계를 헤매고 다니면 만날 시간은 있나요.<br><br>"저는 남편만큼 유명인이 아니에요. 같이 있을 때 좋은 시간을 가지려 노력하죠. 여행도 함께 다니고요."<br><br>―한국말을 얼마나 합니까.<br><br>"말하고 이해하는 것은 80%, 읽기는 60% 정도 되는데 쓰기와 타이핑은 못해요. 그래서 아들을 매주 토요일 3시간씩 한국어학원에 보내요."<br><br>―미술에의 꿈은 완전히 접은 겁니까.<br><br>"한번 예술가는 영원히 예술에서 멀어지지 않는다고 믿어요. 제가 전혀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요. 게다가 저는 퀸스 미술관의 이사로 미술업계와 계속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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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Eye to the world</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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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8 Jul 2009 02:39:57 GMT</pubDate>
		<dc:creator>하야니</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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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단타쟁이의 최후(퍼온 글)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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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1. 차트는 과거의 거래 내역을 궤적화 시킨 그림에 불과하다. 만약 차트 분석이<br><br><br>가능하다면 단기 주식투자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사람들은 몇 년간 차트 분석에<br><br><br>통달한 사람들이므로 분명 수년 이상 장기간 연속적으로 대회에서 우승해야 한다.<br><br><br>하지만 지금까지 단기 주식투자 대회에서 수년 연속 우승한 사람은 본적이 없다.<br><br><br>대부분 단기 대회에서 우승 후 증권방송에서 강연 등으로 돈을 번다.<br><br><br>이유는 간단하다. 다시 우승할 확률이 지극히 낮다는 걸 그들 스스로가 알기 때문이다.<br><br><br>살다보면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불가능한 확률의 일도 매주 일어나는데<br><br><br>(복권의 경우, 각종 자동차 사건사고를 생각해보면 쉽다)<br><br><br>주식 대회에서도 우승한 사람들은 모두 승리-&gt; 승리-&gt; 승리-&gt; 승리-&gt; 승리-&gt; 승리-&gt;.. 등으로<br><br><br>평생의 운이 한번에 다 따라와서 최고의 수익률을 내는 경우다.<br><br><br>그들 스스로도 그게 공부에 의한 필연적인 법칙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br><br><br><br>행운의 연속으로 이뤄진 결과란 걸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br><br><br>만약 그것이 운이 아닌 필연적 필승 법칙이라면 세계의 각종 연금들은 각종 자산들을<br><br><br>그들에게 맡길 것이다. 단기간에 자금을 600% ~ 1000% 올려주는데 누가 돈을 맡기지 않으리?<br><br><br>하지만 어디에도 자산을 불려 달라며 그들에게 연금을 맡기는 곳은 없다.<br><br><br><br>만약 국가 재정을 그들에게 맡긴다면 대한민국은 재정적자든, 경상적자든<br><br>우려할 필요도 없이 세계에서 최고 부자 나라가 될 것이다. 하지만 세계 어느 나라도<br><br>나라의 재정을 그들에게 맡기지 않는다. 그런 수익률이 일관되게 계속 이어진다면<br><br>미국보다 더 큰 부자 나라가 될 수 있음에도 말이다.<br><br>그들은 한번 우승 후 "전문가"라는 명칭으로 책을 내고, 방송에서 주식 중개인으로 활약하며 돈을 번다.<br><br><br>방송에서 일부 솔직한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저는 신이 아닙니다. 제가 차트 분석해서 다 맞혔다면,<br><br><br>전 이미 빌딩 샀겠죠." 라고 솔직하게 차트분석의 한계를 인정하기도 하나 대부분의 전문가란 사람들은<br><br><br>사탕발림 말들로 목표가, 손절가 등의 의미 없는 기준 등을 제시하며 전문가 행세를 한다. 속지 말아야 한다.<br><br><br><br><br><br>2. 주식 시장에서 전문가는 따로 없다. 왜냐하면 시장은 분석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br><br><br>수십 년간 주식 시장에서 일정한 패턴이 있을 거라고 많은 사람들이 확신을 가지고 분석 연구하였지만,<br><br><br>그 어떠한 일정한 패턴도 없으며 마치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며 마치 정,신,병,자,처럼 항상 이해하기 힘든<br><br><br>행태를 띈다. 투자자가 시장을 계속해서 무한히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시장에 감정을 뺏기지 않아야 하고 (기쁨이든 공포든)<br><br><br>내가 이길 수 있는 상황이 올 때까지 몸을 깊숙이 숙이고 무한정 기다리는 방법뿐이다.<br><br><br><br><br><br>3. 증권사 방송은 마치 경마장의 장내 방송처럼 도박에 참여하라고<br><br><br>독려하는 도박 중개인에 불과하다. 그들의 목적은 어떻게든 시장 참여자들이<br><br><br>더 많은 거래를 하여 수수료를 챙기는데 목적이 있다. 절대 휘둘려서는 안된다.<br><br>또한 증시 관련 사이트의 메인 페이지에 가서 메인에 실린 글들이 어떻게 이렇게<br><br>예측이 정확한가 하며 놀래서도 안된다. 스포츠 뉴스도 이긴 팀의 뉴스를 처음 내보내고,<br><br>입시철 고등학교도 좋은 곳에 합격한 학생 순으로 합격 현수막을 적는다. 증권사 홈페이지<br><br>메인에 실린 각종 기사나 애널들의 글들은 수만명의 애널들이 쏟아낸 글중에 맞힌 것만 골라서<br><br>메인에 실은 것 뿐이다. 따라서 그 날 그 날 전부 다 맞힌 글들이 올라온다. 놀랄 필요가 없다.<br><br>또한 폐쇄형 유료 사이트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만약 당신이 1000명의 사람에게 사기를 친다고 하자.<br><br>1000명을 각각 500으로 나눠써 A그룹에게는 어떤 주식이 내일 오릅니다, B그룹에게는 내일 내립니다..<br><br>다시 250명으로 나눠서.. 다시 125명으로 나눠서.. 다시 62명으로 나눠서..<br><br>이런식으로 4번 정도 연속으로 맞힌 마지막으로 남은 62명은 아마 당신을 주식의 신으로 알고<br><br>모든 걸 바치려 할거다. 추천주를 알려 주겠다는 유료 사이트도 이런 원리로 돌아간다. 당신은 <br><br>어떠한 추천주를 받은 "특정 그룹"일 뿐이다. 그리고 그 사이트는 자신들의 수익률을 증명해줄 실제<br><br>증인들이 존재한다며 온갖 광고 문구들로 온 홈페이지를 치장한다. 그들에겐 사람이 많이 모이면 모일수록<br><br>좋은 일이다. 그룹이 많이 생기니까.<br><br><br>4. 손해를 보지 않는 것만으로도 수익률 상위에 링크된다.<br><br>증권사 투자대회의 결과표를 보면 모두 수익률 0%에서 시작하지만<br><br>대회가 끝날 때쯤엔 수익률 0%인 사람이 최종 순위의 최고 상위 20%,<br><br>아무리 낮아도 상위 45%에 포진해 있다. 대회 참가 신청만 해놓고 실제 거래를 하지 않은<br><br>수익률 0%의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참가자의 딱 가운데 평균순위보다<br><br>더 높은 순위에 위치해 있다. 거의 모든 투자대회의 99%가 같은 결과다. &nbsp;<br><br>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래를 하면 할수록 깡,통에 수렴하기 때문이다.<br><br>상위층에 랭크된 사람은 두 종류다.<br><br>단기의 경우&gt;<br>테마주 도박, 옵션의 경우 콜/풋등의 2분의 1도박 등이 기가막히게 연달아 계속 맞아 운이 한번에 따른 자<br>(그리고 어느 순간에 이르러 더이상의 위험 행위를 중단하고 그 수익률을 유지한자),<br><br>장기의 경우&gt;<br>버핏처럼 기업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으로 오를 기업을 고른 후 자신이 승리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린 자,<br>(무한정 기다리는게 전제 조건이 아니라 "기업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이 전제 조건..<br>하지만 대부분은 통찰력이 없다,)<br><br>를 제외하고는 시간이 지날수록 마치 벼랑 끝에 손목 힘 만으로 근근이 매달려 있는 사람들이<br><br>견디다 못해 폭포수 아래로 우수수 떨어지는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0%의 수익률 마저<br><br>지켜내지 못하고 결국 깡,통에 수렴하는 계좌를 보게 된다.<br><br><br>5. 투자는 기본이 30년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기간에 일확천금을 버는<br><br>요행수만을 바란다. 결국 자멸할 뿐이다. 부자가 되는 방법은 마음의 평정이다.<br><br>한번도 손실을 입지 않고 연간 7~12%씩만 꾸준히 수익을 내면 복리로<br><br>30년 후엔 1억이 20억~30억이 된다. 1억이란 원금에서 더이상 원금의 증가 없이 계산해도<br><br>저렇게 돈이 불어난다. 30년 동안 다른 수익원을 통해(직장월급 등) 저금을 통하여 원금이 계속 <br><br>늘어나면 완주 종착역엔 20억~30억 보다 더 큰 돈이 모인다.<br><br>담담하고도 태연하게 긴 마라톤을 완주만 하면 된다.<br><br><br>6. 경제 성장과 주가 상승은 반드시 일치 하지 않는다.<br><br>중국 증시가 6000을 돌파하고 중국 경제 성장률이 10%를 손쉽게 연이어 <br><br>돌파할 때 이런 경제 성장률이 20년은 넘게 이어진다고 전망하며 중국 증시도 <br><br>매년 10%씩 상승할거라고 &nbsp;전망한 사람들이 있다. 말도 안되는 소리다. <br><br>만약 중국 증시가 매년 10%씩 상승한다면 20년 뒤엔 전 세계 자본의 90%가 <br><br>중국 증시에 가있는 상황이 된다. <br><br>이런 식의 경제 성장률로 주가 상승을 따지면 우리나라 증시는 이미 종합주가지수<br><br>2000은 장난이고 10000을 돌파했어야 한다. 하지만 코스피 지수는 1989년에도<br><br>1000이었고 2009년 2월에도 1000이었다. 20년이 지났고 우리나라는 훨씬 더 성장했고<br><br>경제의 파이도 더 커졌지만 종합주가지수는 20년 전과 똑같다. 왜이럴까?<br><br>종합주가지수안에서 피,터,지,는 기업간의 전쟁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br><br>89년과 09년의 종합주가지수는 같은 1000이지만 살아남은 극히 일부 기업만을<br><br>제외하고는 상장 기업의 95%가 상,폐되어 물갈이 됐다.<br><br>KOSPI에 상장된 기업은 끊임없이 들어오고, 나가고를 반복하며 기업의 성장과 쇠퇴, 파산<br><br>그리고 신생 기업의 등장 다시 성장과 쇠퇴, 파산을 반복한다.<br><br>그리고 한 사업 분야의 파이가 커지면 경쟁 기업이 속속 몰려와 출혈 경쟁을 통해 이익을 나눠 가진다.<br><br>경제 성장과 주가 성장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이유다.<br><br>하나의 1위 기업이 영원히 그 사업을 독점하고, 무한히 그 사업분야의 이익을 가져갈 수 있다면<br><br>주가지수도 경제성장과 같이 함께 올라가겠지만 불행히도 주가지수의 동행은<br><br>자국내 상위 1위 기업이 경쟁에서 끝까지 살아 남을지 안남을지 알수가 없어 미지수이며,<br><br>(1위 기업이 2위 기업에 추격 당하며 1위 기업의 시총이 감소, 2위 기업의 시총이 증가하는<br><br>상황일때도 종합 주가 지수는 정체하는 모습을 보인다)<br><br>심지어 한국처럼 IMF같은 위기 상황으로 인해 상위 시가총액 종목이<br><br>줄줄이 상,폐되고 시가총액이 낮은 신생 기업들로 다시 채워질 경우 허망하게도<br><br>종합주가지수는 몇십년전 원점으로 돌아가기까지 한다.<br><br>일본은 버블 붕괴 후 10년이 넘는 장기 불황으로 니케이 지수 10년 차트가 우하향을 그리고 있다.<br><br>따라서 무작정 장기 보유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장기적으로 최고의 수익률을 얻는 방법은<br><br>버핏처럼 기업을 고르는 통찰력이 있어 30년 후에도 살아남을 개별기업만을 골라 투자하는 것이지만,<br><br>대부분의 경우 버핏처럼 기업을 고르는 통찰력이 없어 개별 기업에 대한 주식 투자는 매우 위험하며,<br><br>따라서 최선이자 최고의 대안은 KODEX200이다. 여기서 중간 매도 없는 무한한 장기 보유를 하느냐, <br><br>아니면 연간 단위의 수익률 관리를 하느냐 하는 갈림길에서는 시총 상위 기업의 무한한 장기 성장을 믿는다면<br><br>장기 보유, 아니라면 연간 수익률로 관리 해야 할 것이다.<br><br><br><br><br>7. PER, PBR같은 숫자 놀음에 현혹되지 않는다.<br><br><br>"과거"의 실적으로 "현재"의 주가가 저평가 되었나 고평가 되었나 평가하는 것은<br><br><br>무의미한, 짓이다. 왜냐하면 "미래"의 실적에 따라 PER, PBR은 언제든지 바뀌기 때문이다.<br><br><br>이리 튈지 저리 튈지 모르는 미래의 실적을 예측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br><br><br>며칠 후 나올 지난 분기 실적도 예측이 틀리는데, 2분기 이상의 미래 실적 예상은 신의 영역이다.<br><br><br>따라서 최고점에서 매수라는 최악의 매수 타이밍을 가정했을 때 실적이 Turn하지 않을 경우<br><br><br>물,타,기를 통해서도 영원히 원금을 찾지 못하게 될 수도 있으며, 심지어 실적의 끝없는 악화로 상장 폐지까지도 가능하다.<br><br><br><br><br><br>8. 회계 팀을 믿어선 안 된다. 특히 코스닥 기업의 회계 팀은 분식 회계 전문가들이다. 일부 대기업도 마찬가지다.<br><br><br>따라서 개별 기업에 대한 투자는 돈으로 할 수 있는 투자 행위 중 가장 위험하다.<br><br><br><br><br><br>9. 영속 기업은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1965년 10대 기업 중 30년 후 1995년 살아남은 기업이 하나도 없다.<br><br>1965년 100대 기업 중 30년 후 1995년 살아남은 기업은 16개 불과하다. 대기업 100개 중 16개만이 살아 남았다.<br><br>생존률 16%.. (미국 21%, 일본 22%) 그나마 대기업만을 표본으로 한 수치다. 중소기업까지 가면 초토화 된다.<br><br>코스닥에 상장됐던 전 세계를 휘어잡을 것 같았던 IT벤처기업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br><br><br>속칭 우량주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이 망,하기 전까진 절대 망,하지 않을 것 같았던<br><br><br>국내 5대 은행 한일은행, 상업은행, 제일은행, 서울은행, 조흥은행이 모두 망했다.<br><br><br>그 당시로 돌아가 사람들에게 한일은행이 혹시 망,할 것 같냐고 물어봤다면 모두 미,친,놈, 취급했을 것이다.<br><br><br>대우그룹도 마찬가지이며,우량주라는 기준은 현재에만 적용 될 뿐이다. 리스크를 제로에 가깝게<br><br><br>최소화하기 위해선 `그 어떤 경우에도 절대 상,폐되지 않는다`라는 절대적인 조건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br><br><br><br><br><br>10. IT/반도체, 굴뚝주, 금융주, 소비주, 제약주 중에 누가 랠리의 선두에 올지 예측 자체가 불가능하다.<br><br><br>세부적으로 업종을 나누면 더더욱 그렇다.<br><br><br>종합주가지수는 연중 최고치를 뚫고 있는데 본인이 산 종목은 소외되어 홀로 놀고 있을 수도 있다.<br><br><br>그저 시장만 추종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br><br><br><br><br><br>투자 (어기면 손목 자른다)<br><br><br><br><br><br>1. 주식에서 돈을 잃는 이유는 사람의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공포, 환희)<br><br><br>심리 작용을 원천 배제해야 한다. 매월 15일에 기계처럼 자동 매수한다.<br><br><br>매수하면서 지금 시장이 비싸다, 싸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br><br><br><br><br><br>2. 상폐의 위험이 없고, 무한히 보유해도 전혀 두려울 것이 없는<br><br><br>KODEX200만 매수한다. KODEX200은 코스피에 상장된 200개 기업의<br><br><br>주가를 단순 추종만 하는 상장 지수 인덱스 펀드로서, 만약 200개의 기업 중에<br><br><br>몇개의 기업이 대표 종목으로서 대표성을 잃고 쇠락할 경우 매년 심사를 통해<br><br><br>기업을 퇴출하고 새로운 신생 기업을 200에 추가한다.<br><br><br>따라서 KODEX200은 영원히 상폐될 위험이 없다.<br><br><br><br>또한 상장 지수 펀드인 KODEX200은 매도시 0.3%의 증권거래세가 없어서<br><br>단기적으로 매수와 매도를 반복해도 부담이 적다.<br><br>또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투자금액을 모두 투입 했음에도 수익을 내지 못하고<br><br>있을 때 1년간 4차례 1, 4, 7, 10월 나뉘어서 배당금까지 주므로 (1년으로 치면 시가배당률 평균 2% 안팎)<br><br>평균 단가까지 올라가는데 느끼는 "기다리는 지루함(?!)"이 덜하다. <br><br>(일반 펀드는 수수료는 꼬박꼬박 챙겨가도, 배당금은 주지 않는다)<br><br>게다가 상,폐될 염려가 없으므로 흔히 일반 주식을 샀을 때 느끼는 <br><br>"이 회사가 망,하면 어쩌지?"하는 공포가 거의 제로에 가깝다. <br><br>또한 1년 수수료가 0.35%에 불과해 기타 다른 펀드에 비해 월등히 수수료가 낮다.<br><br>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펀드 중에서 1년 수수료가 가장 높은 게 2.84%인데<br><br>만약 거치식으로 20년간 장기 보유 할 경우 수수료 만으로도 원금의 -56.8%가 날아간다.<br><br>자산운용사에서 발표하는 어떤 펀드의 수익률은 펀드를 사는 고객 입장에서 쓴 것이 아니다.<br><br>왜냐하면 연간 수수료를 빼먹은 수익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기 투자의 목적으로 <br><br>일반 뮤추얼 펀드를 사는 고객들은 3가지를 고려한다.<br><br>첫째, 펀드매니저가 20년 이상 계속 같은 펀드를 맡으며 일관적인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가?<br><br>둘째, 단순 시장만 추종하는 KODEX200 수익률을 상회할 수 있는가?<br><br>셋째, 만약 20년 후 KODEX200의 수익률을 상회하더라도 수수료까지도 이길 수 있는가?<br><br>대부분의 펀드매니저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결국은 자기 회사에서 매년 빼나가는 수수료와 싸움한다고 한다.<br><br>연간 -2.84%씩 무조건 손해를 확정하고 게임을 시작하기 때문에 펀드 매니저는 단순 시장만 추종하는<br><br>KODEX200을 따라가기만 해서는 수수료 때문에 무조건 지게 된다. 따라서 수많은 기업을 탐방하며 버핏같은 <br><br>혜안으로 미래에도 살아 남을 기업을 찾느라 분주하다. 하지만 10년 후, 20년 후, 30년 후 KODEX200과 같은<br><br>단순 시장만 추종하는 인덱스 펀드의 수익률을 이기는 펀드는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다.<br><br>펀드매니저는 수많은 기업 중 살아 남을 기업을 골라야 하고, 고객은 수많은 펀드 중 살아 남을 펀드를 골라야 한다.<br><br>배당은 커녕 수수료까지 내면서.<br><br>1983년부터 2003년까지 20년간 S&amp;P 연간수익률 대비 뮤추얼펀드 (수수료 포함) 평균수익률 차이는 <br><br>무려 -2.70%였다. 20년간 사고 팔고, 사고 팔고를 반복하며 수익률 관리를 하고 20년간 살아남을 기업을 <br><br>고르고 난리 부르스를 떨었지만 그저 아무것도 안하고 단순히 시장을 추종 한것만도 못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br><br>무츄얼 펀드가 시장 수익률을 이기지 못한 데는 대부분 펀드의 연 수수료 때문이었다. <br><br>수수료를 제외하면 시장 수익률을 이긴 펀드도 20년간 발생한 연 수수료 때문에 결국 시장수익률을 밑돌았다. <br><br>살아 남을 기업을 고르는 것이나, 살아 남을 펀드를 고르는 것이나 역시 같은 힘든 일이다.<br><br>최선이자 최고의 대안은 KODEX200 이다.<br><br>다른 종목은 아무리 좋게 보여도 절대로 매수하지 않는다.<br><br><br><br>무조건 KODEX200만 매수한다.<br><br><br>(참고 서적 - 존보글의 모든 주식을 소유하라)<br><br><br><br><br>3. 매수는 무조건 원금의 12분의 1로 쪼개서 한다.<br><br><br><br>나머지 여유 자금은 모두 CMA에 넣어 둔다.<br><br>거치식으로 한방에 전액을 투자하는 방식은 하락할 경우<br><br><br>빠져 나올 시간을 무한히 연장 시킨다. 따라서 위험성을 최소화해야 한다. <br><br>나는 현재 1억 5천만원이 원금이므로<br><br><br>1회 매수 1천2백만원, 2회 매수도 1천2백만원, 3회 매수도 1천2백만원..<br><br><br>이렇게 12회까지 가능하도록 반드시 12분의 1로 쪼개서 매수한다.<br><br><br><br><br><br>4. 매월 15일 기계적으로 매수를 하고 +4%가 되면 이익금을 기계적으로 매도한다.<br><br><br>그리고 즉시 다시 1회 금액부터 시작한다.<br><br><br><br><br><br>5. 매월 15일 매수 후에는 -10%가 되든 -20%가 되든 다음 달 15일이 될때까지<br><br><br>절대 추가 매수하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시장이 싸다, 비싸다 판단해서는 안된다.<br><br><br>나는 매월 15일 기계처럼 매수만 하면 된다.<br><br><br>15일 매수 후 +4%가 되면 매수 후 언제라도 매도한다. 그리고 즉시 1회 금액부터 다시 시작한다.<br><br><br>시장은 정신병자라서 내가 싸다, 비싸다 논하고 예측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br><br><br>그를 이기려면 심리 작용을 애초에 배제해야 한다.<br><br><br>6. 손절매도 반복하면 결국 깡,통에 수렴한다.<br><br>개인이 살아남지 못하는 이유는 파란불 일 때 공포를 느끼며 팔기 때문이다.<br><br>KODEX200은 상,폐 되지 않으므로 공포를 느낄 필요가 없다.<br><br>기다리면 결국 내가 이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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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Eye to the stock</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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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2 Jun 2009 10:57:44 GMT</pubDate>
		<dc:creator>하야니</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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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이글루 퍼온글)여수고래 36세 박현상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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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class="usermenu"><a href="http://www.egloos.com/"><span style="COLOR: #949494">Egloos</span></a> | <a href="http://www.egloos.com/login.php?returnurl=http%3A%2F%2Ffaith25.egloos.com%2F9817338"><span style="COLOR: #949494">Log-in</span></a>&nbsp;&nbsp;</p><!-- header end --><!-- content start --><div id="content"><!-- egloos content start --><div class="hentry" id="11년동안의 주식투자는 새로운 가치이다" posttitle="11년동안의 주식투자는 새로운 가치이다" link="http://faith25.egloos.com/9817338"><div class="post"><h2 class="postdate"><strong><span style="FONT-SIZE: 170%"><span style="FONT-SIZE: 130%">신용불량자,패밀리와 상금 휩쓸다…여수고래 36세 박현상 </span></span></strong></h2><div class="content"><p class="f13 b g10" style="MARGIN-TOP: 7px"><span style="FONT-SIZE: 130%"></span><p class="arti_txt4" style="MARGIN-TOP: 38px">"단타족이냐구요? 저희도 운용철학이 있습니다."<br><br>여수고래패밀리가 만든 투자법인 굿웨일즈(Good Whales)의 박현상 사장(36). <br><br>대부분의 전업투자자들은 '주식투자는 가족에게 절대 권하지 않겠다'고 입을 모으지만 그는 주식투자를 가족, 그것도 처갓집에 전파해 패밀리라는 이름을 달고 활동하고 있다.<br><br>그의 패밀리는 증권사가 주최하는 투자대회에서 온갖 상들을 휩쓴 '상금킬러'다. <br><br>세간에는&nbsp;단순한 '실전투자대회 다수 입상자' 정도로 알려졌지만 박 사장과 처갓집 식구들은 고객들의 돈을 대리해서 관리해 주는 엄연한 투자법인의 구성원이다.<br><br>여수고래패밀리의 일터는&nbsp;전남 여수가 아닌 광주다. <br><br>기자가 찾아간 곳은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에 있는 굿웨일즈 사무실. 박 사장을 비롯해 처남과 두 명의 처제 등 4명의 고래들은 이곳에서&nbsp;빠른 손놀림으로 주식매매를 하고 있었다. <br><br>모니터 앞에서 오른손과 왼손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클릭하는 솜씨에서 '단기매매 고수'의 내공이 배어 나왔다.<br><br><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265" border="0"><tbody><tr><!-- 우측일때 노출 시작 --><!-- 우측일때 노출 끝 --><td><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body><tr><td class="wh"><img style="BORDER-RIGHT: #f3f3f3 5px solid; BORDER-TOP: #f3f3f3 5px solid; BORDER-LEFT: #f3f3f3 5px solid; BORDER-BOTTOM: #f3f3f3 5px solid" src="http://www.hankyung.com/photo/200905/2009051915116_2009051280361.jpg"></td></tr><!-- 사진설명 시작 --><tr class="bg48"><td class="f11 dm g11 sp01 he15" style="PADDING-RIGHT: 2px; PADDING-LEFT: 9px; PADDING-BOTTOM: 5px; PADDING-TOP: 4px">여수고래패밀리인 박현상(36) 굿웨일즈 대표이사</td></tr><!-- 사진설명 끝 --></tbody></table></td><!-- 좌측일때 노출 시작 --><!-- 좌측일때 노출 끝 --></tr><tr><td colspan="2" height="10"></td></tr></tbody></table><br><br>주식시장이 끝나고 난 뒤 고래들은 이날의 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nbsp;<br><br>박 사장이 종목 선택을 제대로 하지 못한 둘째 처제를 질타하기도 한다.<br><br>"뭐야, 상한가 친 엔케이바이오. 그걸 왜 못잡았어!" (박 사장)<br><br>"다른 종목을 살피느라 미처 그 걸 잡지 못했어요. 또다른 종목들로 수익률을 맞출께요."(둘째 처제)<br><br>고래들은 1시간여의 회의를 마친 뒤 기자와&nbsp;인터뷰를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의 엄격했던 박 사장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고 부드러운 형부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br><br>환한 미소로 처제들을 살갑게 대하더니 휴대폰을 꺼내들고 아내와 통화하면서 '인터뷰를 시작해 잠시 통화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br><br>둘째 아이를 임신중인 아내가 행여라도 인터뷰중에 통화가 되지 않는 고래들을 걱정할까 미리 배려한 것이다.<br><br>60㎡ 남짓한 사무실의 한쪽 벽면에는 '실력, 겸손, 공존'이라는 단어가 써있는 액자가 걸려있다. <br><br>이들의 투자신념과 철학을 반영한 것이다. <br><br>사무실 한켠에 마련된 별도공간에는&nbsp;각종 대회에서 받은 트로피와 상장들이 즐비했다.<br><br>박 사장이 2005년부터 최근까지 각종 실적 주식투자대회에서 5위권 안에 이름을 올린 횟수는 11회다. <br><br>처제인 김미영씨(29)는 5회, 정미씨(27)도 10회에 달하는 수상경력을 자랑한다. <br><br>처남인 성부씨(25)도 대학생투자대회까지 합치면 상위권에 일곱 차례나&nbsp;이름을 올렸다. <br><br>여수고래패밀리라는 이름은 박 사장이 증권계좌 아이디를 '돈고래'로 사용한 데에서 비롯됐다. 처가 식구들까지 증권투자에 나서면서 처갓집인 '여수'를 따서 여수고래패밀리로 이름을 붙였다.<br><br>박 사장의 고향은 전남 진도지만 처가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br><br>박 사장이 1남3녀 중 장녀인 부인과 결혼할 당시 처갓집은 전업투자자인 박 사장을 큰 반대없이 사위로 매형으로 형부로 받아줬다. <br><br>처제인 미영씨와 정미씨, 처남 성부씨까지 모든 형제들이 박 사장을 믿고 전업투자에 뛰어들면서 처가식구들이 든든한 지원군이자 동업자가 된 것이다.<br><br><strong>◆단기매매에서 돈을 벌기 위한 조건…타이밍과 손절매</strong><br><br>박 사장은 지난해 5월18일 여수고래패밀리에서 고래라는 이름을 따서 '굿웨일즈'라는 투자법인을 세웠다. <br><br>자본금 5500만원으로 세운 이 법인에 입소문만으로도 고객이 몰려들었고 그들이 맡긴 돈만도 50억원을 넘어섰다. <br><br>굿웨일즈가 주문대리인으로서 고객 계좌를 관리하고 있다.<br><br>박 사장은 "이제는 굿웨일즈의 고유자산을 불리기보다 고객돈 관리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고 있다"며<br>&nbsp;<br>"주식과 현금의 비중은 6대 4를 기본으로 유지하되 비율을 탄력적으로 조정하고 주로 단기 매매로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br><br>단기 매매가 기본이지만 종목에 따라서는 단기의 주기는 차이가 난다. <br><br>하루, 일주일, 이주일 등으로&nbsp;단위를 끊어서 매매할 종목들을 선택한다. <br><br>이렇다보니 하루에 거래하는 돈이 100억원을 넘나든다. <br><br>매매수수료만 하루 최대 1000만원을 내기도 한다.<br><br>박 사장은 <br><br><span style="FONT-SIZE: 100%"><span style="FONT-SIZE: 130%; COLOR: #cc0000"><strong>단기적인 운용전략에서 '타이밍'과 '손절매' <br></strong></span><br></span>등 두가지를 중시한다.<br><br>우선 기술적인 분석에 따라 매수타이밍을 잡는다. <br><br>주가가 1차 지지선을 형성한 뒤에 눌림목(단기조정 과정)이 발생하게 되는데&nbsp; 눌림목을 상향돌파할 때가 바로 '매수타이밍'이라고 박 사장은 설명한다.<br>&nbsp;<br>하지만 그 다음에 차트가 꼬부라지면 곧바로 손절매에 들어간다.<br><br>다시말해 주가는 소폭의 등락을 거치면서 일정가격대를 유지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어느 순간 오르는 타이밍이 있으며 이 시기가 주식을 사야할 때라는 이야기다.<br><br>차트가 꼬부라질 때, 즉 손절매를 해야할 때의 원칙은 '칼같은 2%'다. <br><br>단기매매에 있어서 '2%룰'은 반드시 지키는 것이 고래들의 법칙이다. <br><br>다만 대형주의 경우에는 5%까지도 가능한데 이는 대형주의 특성상 기관이든 외국인이든 누군가는 '매수'할 여력이 남아있다는 판단 때문이다.<br><br><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265" border="0"><tbody><tr><!-- 우측일때 노출 시작 --><!-- 우측일때 노출 끝 --><td><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body><tr><td class="wh"><img style="BORDER-RIGHT: #f3f3f3 5px solid; BORDER-TOP: #f3f3f3 5px solid; BORDER-LEFT: #f3f3f3 5px solid; BORDER-BOTTOM: #f3f3f3 5px solid" src="http://www.hankyung.com/photo/200905/2009051915116_2009051280371.jpg"></td></tr><!-- 사진설명 시작 --><tr class="bg48"><td class="f11 dm g11 sp01 he15" style="PADDING-RIGHT: 2px; PADDING-LEFT: 9px; PADDING-BOTTOM: 5px; PADDING-TOP: 4px">매매가 한창인 여수고래패밀리</td></tr><!-- 사진설명 끝 --></tbody></table></td><!-- 좌측일때 노출 시작 --><!-- 좌측일때 노출 끝 --></tr><tr><td colspan="2" height="10"></td></tr></tbody></table><br><br>가족과 더불어 전업투자자로서 행복해 보이는 박 사장도 불과 10년전에는&nbsp;가족 때문에 눈물을 삼켰던 날이 많았다.<br><br>박 사장은 1973년 전남 진도에서 교육자 집안의 1남5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br><br>어린 시절부터 누나나 여동생과는 다르게 귀한 아들 대접을 받으며 곱게 자랐다.<br><br>청소년 시절 박 사장은 부모님 속 한 번 썩히지 않았다. <br><br>그러나&nbsp;1999년 주식시장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부모님의 기대와는 다른 길을&nbsp;걷게 됐다.&nbsp;<br><br>당시&nbsp;인터파크의 공모주를 청약했는데 배정을 받은 뒤 주가가 치솟는 것을 보면서&nbsp;직접투자를 결심했다.<br><br>이듬 해인 2000년 그는 대학졸업을 앞두고 주식 직접투자에 빠져 등록금은 물론 아버지가 물려주신 집 한채와 1억5000만원의 현금까지 몽땅 날리게 됐다. <br><br>주식을 제대로 시작해 보려는 찰나에 IT(정보기술) 버블 붕괴를 만났기 때문이다. <br><br>"2000년 1월2일과 3일에는 주가가 조금 올랐습니다. <br><br>그런데 다음 날부터는 걷잡을 수없이 떨어지더군요. <br><br>당시 삼보컴퓨터 계열 IT주로 각광받던 KDS 주가는 순식간에 6만원에서 5000원까지 꼬꾸라졌습니다."<br><br>떨어지는 주가가 오르기를 기대하면서 미수금까지 동원해 물타기를 했지만 주가는 하락을 거듭했다. <br><br>결국 신용불량자가 되어버렸다. <br><br>절망에 빠져있던 박 사장을 구제해 준 것은 다름아닌 부모였다. <br><br>집안 재산을 날린 박 사장였지만 부모님은 미수금을 해결해줬고 박 사장을&nbsp;신용불량자의 늪에서 건져줬다.<br><br>"아버지가 당시 당뇨 합병증으로 병원을 들락날락할 때 즈음이었습니다. <br><br>병상에 계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도움으로 두 달여만에 신용불량자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br><br>그렇게 신용불량자에서 벗어났지만 주식투자는 계속했습니다."<br><br>박 사장은 위기를 벗어난 뒤 2001년 결혼했다. <br><br>하지만 아버지는 병상에서 계속 치료를 받아야 했고 박 사장은 주식투자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br><br>오히려&nbsp;몇 천만원이나 되는 아버님 병원비를 보며 '내가 주식으로 많이 버나 병원비가 더 많이 나오나 해보자'는&nbsp;죽기살기 심정으로 주식투자에 매달리게 됐다. <br><br>박 사장이 병원비를 벌겠다며 주식투자에 매달리는 동안 아내는 병원에서 시아버지의 병수발을 들면서 신혼생활을 보냈다.<br><br>4년여를 병원에서 보낸 아버지는 2004년 결국 세상을 떠났다. <br><br>박 사장은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보며 마음을 다져먹는다. <br><br>그는 아버지가 투병 중에 사용했던 휠체어에 앉아 매매를 시작했다. <br><br>오후 3시 주식시장이 끝난 뒤 휠체어를 만지면서&nbsp;자신의 불효에 대한&nbsp;자책감과 아버지에 대한 죄스러움에 눈물을 쏟아내곤 했다. <br><br>눈물과 후회 속에서도 그는 투자패턴을 분석하고 실패요인을 뜯어보면서 자신만의 매매기법을 만들어갔다.<br><br><strong>◆사부(師父)이자 형부(兄夫)…처가에 주식투자를 전파하다<br></strong><br>자신의 매매기법에 확신을 얻은 박 사장은 같은 해 광주 시내의 금융학원에서 강의를 시작했다.<br>&nbsp;<br>이 즈음에 처제와 처남들에게 직접투자를 권하면서 '돈고래'는 '여수고래패밀리'로 덩치를 키우게 된다.<br><br>당시 미영씨는 서울에서 일반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정미씨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취업을 준비중이었다. <br><br>형부의 권유를 받아들여 각종 증권관련 자격증을 따고 여수고래패밀리로 합류했다. <br><br>전남대에 재학중이었던 처남 성부씨는 학원에서 매형의 강의를 듣고 대학생 투자대회에 참여하면서 주식시장에 발을 내딛게 됐다.<br><br>이들의 매매스타일은 비슷하다. <br><br>각자 관심있는 종목들이 조금 다를 뿐 매매하는 타이밍을 잡거나 손절매하는 방식은 같다. <br><br>처음에 사부로부터 전수받은 노하우를 그대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br><br>백지장도 맞들면 낫고 뭉치면 산다고 했던가. <br><br>트레이딩의 세계에서 함께하는 기쁨은 큰 수익률로 돌아왔다. <br><br>투자대회에서 개인참가전은 물론이고 단체참가전까지 휩쓸었다. <br><br>'돈고래' 또는 '후천성돈결핍증'이란 아이디로 각종 대회에 참가한 뒤 오늘날&nbsp;'여수고래패밀리'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br>&nbsp;<br>2007년 부상으로 받은 상품권을 이용해 홍콩과 중국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br><br>패밀리들은 연습삼아 증권사 투자대회를 참여하기 시작했고 상위권에 들면서&nbsp;종잣돈을 불리기 시작했다. <br><br>이들이 3위권에 들어 각종 상을 휩쓴 대회들만도 2006년에 6개, 2007년에는 5개, 2008년에는 10개에 달한다. <br><br><strong>◆지난해 4분기에 원금손실…"전투적인 매매로 수익률 폭발할 것"</strong><br><br>그렇지만 여수고래패밀리는 올해들어선 각종 투자대회에 전혀&nbsp;참여하지 않고 있다. <br><br>외부활동도 최대한 자제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지난 4분기에 입은 손실을 복구하고 내실을 기하기 위해서다. <br><br>투자대회의 이점이 예전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br><br>"2008년 10월말에서 12월은 악몽같은 시간이었습니다. <br><br>계좌가 반토막이 나는데 처참한 심정이었죠. <br><br>하지만 이럴수록 '겸손'하자며 마음을 다져먹고 회사 구조조정을 단행했습니다."<br><br>박 사장은 2008년 5월 투자법인 굿웨일즈를 설립할 때만해도 자산운용사까지 사업을 확대할 요량이었다. <br><br>서울사무소는 파생상품을 주로 다루고 그 분야 전문가 2명을 영입했다. <br><br>광주사무소는 고객들의 돈을 받아 패밀리를 주축으로 현물매매에 나섰다.<br><br>대회에서 경험을 바탕으로 50억원의 고객돈을 크게 불리겠다고 마음먹었다. <br><br>하지만 지난해 10월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인한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좌절을 경험했다. <br><br>고객들의&nbsp;자금은&nbsp;큰 타격이 없었지만 고래패밀리 개인 계좌는 손실이 컸다. <br><br>중소형 종목들은 손절매를 했지만 금호산업, KB금융, 두산중공업 등 대형주에 투자했던 고래패밀리들의 자금은 반토막이 됐다.<br><br>박 사장은 자신이 관여할 수 없는 분야인 파생상품 부분을 정리하기로 결심했다. <br><br>지난해 12월말 서울사무소의 문을 닫고 광주사무소만 유지하기로 결정했다.<br>&nbsp;<br>광주사무소에서도 패밀리를 제외한 직원들을 모두 내보냈다. <br><br>사업을 늘리기 전인 지난해 4월의 대형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셈이다.<br><br>"시장이 우리에게 겸손하라고 충고해 준 것 같습니다. <br><br>고객들의 돈에서 손실을 보게된 뒤엔 더욱 전투적으로 매매에 매달렸습니다."<br><br>박 사장을 비롯한 패밀리들은 요즘 어느 때보다 전투력을 발휘하고 있다. <br><br>특히 3월부터&nbsp;시장이 살아나기 시작하면서는 ‘선도주(先導株)’의 움직임을 잘 살폈다. <br><br>선도주란 주가지수 또는 업종지수의&nbsp;움직임에 앞서서 이끌어 주는 종목을 말한다. <br><br>"업종별로 선도주가 오르기 시작하면 나머지 종목들은 따라 오르기 십상입니다. <br><br>여기에 주가가&nbsp;저평가된 주식을 골라 ‘매수’에 들어갔습니다."<br><br>박 사장이 꼽은 선도주는&nbsp;다음과 같다. 건설업종에서는 GS건설이나 대림산업이 선도주이며 금융주에서는 KB금융을 시작으로 하나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의 순으로 주가가 움직인다. <br><br>중공업에서는 대우조선해양, 한진중공업, 삼성중공업 등이 앞서서 업종의 주가를 주도한다는 이야기다.<br><br>고래패밀리들은 지난&nbsp;4분기에 입었던 손실을&nbsp;70%까지 복구했다.<br>&nbsp;<br>고객들의 돈은 최대한 안정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잡으면서 매매하고 있다. <br><br>그러나 월등한 수익률을 올릴 때까지&nbsp;실전투자대회 참여 등 외부활동을 자제한다는 방침은 아직까지 변함이 없다.<br><br>박 사장은 실전투자대회가 직접투자하는 것과 비교해 상대적인 장점이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br><br>주식시장은 커지고 있고 개인투자자들의 저변도 확대되고 있는 반면, 실전투자대회의 상금이나 부상은&nbsp;물가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주장이다.<br><br>"주식투자자들은 집을 사기위해 가족을 위해 등의 목적으로 주식투자를 합니다.<br>&nbsp;<br>이러한 점을 헤아린다면 실전투자대회의 부상으로&nbsp;단순히 상금뿐 아니라 '아파트'나 '가족해외여행권' 등을 내걸어야 맞지 않을까요? 상금도 몇 년동안 비슷한 수준인데 투자자들이 많이 몰려들 수 있는 수준으로 높여야 합니다."<br><br>각종 실전투자대회를 휩쓴 고수답게 대회에 대한 조언을 빼놓치 않았다. <br><br>상금의 수준을 높인다면 예전에 투자대회를 휩쓸었던 개미들까지도 다시 끌어모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br><br>그렇다면 실전투자대회는 '프로의 격전지'로 한단계 높은 투자대회로 주목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br><br>가족을 생각할 수 있는 부상들을 내놓는다면 투자자들이 단순하게 '돈이나 따자'는 개념에서 '나는 왜 주식투자를 하는가'의 목표의식도 생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br><br>상을 타게 된 투자자라면 든든한 가족들의 후원까지 덤으로 받을 수 있는 계기도 마련될 수 있다고 박 사장은 주장했다.<br><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265" border="0"><tbody><tr><!-- 우측일때 노출 시작 --><!-- 우측일때 노출 끝 --><td><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body><tr><td class="wh"><img style="BORDER-RIGHT: #f3f3f3 5px solid; BORDER-TOP: #f3f3f3 5px solid; BORDER-LEFT: #f3f3f3 5px solid; BORDER-BOTTOM: #f3f3f3 5px solid" src="http://www.hankyung.com/photo/200905/2009051915116_2009051280301.jpg"></td></tr><!-- 사진설명 시작 --><tr class="bg48"><td class="f11 dm g11 sp01 he15" style="PADDING-RIGHT: 2px; PADDING-LEFT: 9px; PADDING-BOTTOM: 5px; PADDING-TOP: 4px">(왼쪽부터) 여수고래패밀리인 김미영씨(29), 성부씨(25), 박현상(36)씨, 정미씨(27)</td></tr><!-- 사진설명 끝 --></tbody></table></td><!-- 좌측일때 노출 시작 --><!-- 좌측일때 노출 끝 --></tr><tr><td colspan="2" height="10"></td></tr></tbody></table><br><strong></strong><br><strong>◆"말보다 수익률이 앞서는 트레이더 될터"<br></strong><br>"말만 앞서는 전문가는 되고 싶지 않습니다. <br><br>실전에서 돈을&nbsp;버는 모습을 보여준 뒤에 투자를 권하든 조언을 하든 해야겠지요."<br><br>박 사장이 2006년 모 증권사 실전투자대회에서 상위권에 입상을 하고 '부드러운 주식, 더러운 주식'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한적이 있다. 당시 주최 증권사의 리서치센터장도 강의에 나섰는데 그가 '하이닉스반도체'를 추천했다고 한다.<br><br>"하이닉스는 주식매매를 좀 한다하는 사람들이 느끼기에는 오를 만큼 오른 꼭지수준의 종목이었습니다. <br><br>그런데 증권사 리서치 센터장이라는 분이 하이닉스를 꼽더라구요. <br><br>이건 아니다 싶었죠. 꼭지종목을 추천하는 그 분이 과연 직접투자해서는 얼마를 벌 수 있을까요? <br><br>저는 그 날을 마지막으로 누구 앞에 나서서 강의는 하지 않습니다. 직접 수익률로 보여줄 뿐이죠."<br><br>박 사장이 당시에 꼽은 '더러운 주식'은 이른바 작전 내지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 종목들이다. <br><br>보이지 않는 세력들은 교묘한 주가흐름으로 개인투자자들이 '매수'에 나서도록 유인하고 정작 팔려고 할때는 팔 수 없도록 한다. <br><br>결국 피보는 개미들은 시장에서 전사하고 계좌도 멍들게 되기 때문에 아예 가까이 하지 말라는 박 사장은 조언했다.<br><br>현재 박 사장을 비롯한 패밀리들이 주목하고 있는 테마는 환경이다. 환경관련 종목중에서도 테마는 순환되는데 일부 테마들이 소외받고 있다는 설명이다.<br><br>박 사장은 특히 바다에 적조현상이 발생할 것을 대비해 적조테마주를 주목하고 있다. <br><br>앤엘바이오는 적조테마 중 하나로 예상돼 매수했지만 바이오테마로 휩쓸려 너무 급등해 팔아치웠다고 한다.&nbsp;<br><br>나머지 종목들에 대해서는 공개를 꺼렸지만 이들 종목중 하나는 주요 주주로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귀띔했다.<br><br>패밀리들은 지금 높은 수익률을 내는 것과&nbsp;앞으로의 계획이 가장 큰 고민꺼리다. <br><br>사업을 키우기 위해 법인까지 설립했지만 1년도 안돼 실패를 겪었기 때문이다. <br><br>지금과 같은 규모로 사업을 유지하는 데 의미를 둘 것인지 아니면 예전 결심과 같이 사업을 키워갈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br><br>"고민이 많이 됩니다만 사업을 키우기 위해 먼저 내실을 다지는 게 중요하다고&nbsp;생각합니다.<br>&nbsp;<br>먼 훗날을 생각하면 이런 수준으로만 머물러서는 안되지요. <br><br>자본시장법 이후에 헤지펀드의 설립추이와 자산운용업계의 변화를 살펴보면서 사업확대를 살펴보겠습니다."<br><br>남들은 가족이라면 말린다는 주식투자를 가족이 함께 하기에 힘이 난다는 박 사장. <br><br>그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돈에 구애받지 않는 것'을 운용의 목표이자&nbsp;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다. <br><br>그런 그도 처제들에게는 신랑감으로&nbsp; <br><br>△주식을 하지 말 것과 <br><br>△나(형부)보다 나이가 적을 것을 주문하곤 한다.<br><br>"주식투자의 과정은 어려운 과정입니다. <br><br>그 어려운 과정은 비정하고 인간적이지 못하죠. 돈을 잃은 만큼 자책감도 많이 듭니다. <br><br>힘든 짐을 지는 사람은 한 집에 하나면 족합니다."<br><br>박 사장의 마지막 한 마디에는 온갖 풍파를 겪으며 11년동안 주식투자를 해 온 고뇌와 역경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p></div></div></div></d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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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0 Jun 2009 15:20:33 GMT</pubDate>
		<dc:creator>하야니</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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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퍼온글) 욕심을 버린 도예공의 마음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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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우크라이나의 옛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span> </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br></span></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옛날 왕이 있었는데 그 왕에게는 대대로 물러내려오는 애지중지하는 황금으로 만든 그릇이 있었습니다.</span><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span> </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br></span></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어느날 왕이 실수로 그 그릇을 떨어뜨려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span><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span> </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br></span></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왕은 신하들을 불러 다시 완벽하게 붙여두지 않으면 모두 목숨을 각오하라고 명령을 하였지요.</span><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span> </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br></span></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신하들은 모두 모여 궁리를 하다가 깨진 그롯조각들을 가지고 가장 실력이 있다는 도예공을 찾아가서 이 그릇을 붙이지 못하면 우린 죽은목숨이니 제발 고쳐달라고 호소하지요.</span><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span> </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br></span></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도예공은 한참 생각하다가 1년의 시간을 달라고 했고 그후로 도예공은 오직 그릇 고치는데만 메달렸습니다.</span><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span> </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br></span></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손자가 걱정을 해도 듣지도 않고 말이죠. 그러다가 1년이 지났고 신하들이 다시 찾아왔습니다.</span> </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br></span></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도예공은 완벽하게 말끔해진 황금그릇을 주고 신하들은 기쁜마음으로 왕에게 갖다줍니다. 왕은 너무나 기뻐서 그 도예공에게 많은 선물을 내리고 궁궐로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span> </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br></span></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하지만 신하들이 도예공의 집에 도착했을때 도예공의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도예공은 어디로 떠나간 후였습니다.</span><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span> </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br></span></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그 시간 도예공은 손자와 함께 먼 길을 나서고 있었습니다. 도예공의 손자가 도예공에서 왜 집을 떠나가야 하냐고 질문을 합니다.</span> </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br></span></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도예공 왈, 만약 내가 떠나지않으면 왕이 많은 선물을 줄 것이고 궁궐로 불러서 더 좋은 도자기를 만들라고 할 것이다.</span> </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br></span></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왕은 더 좋은 그릇, 더 좋은 그릇을 계속 요구할 것이고 결국 그 요구를 만족못할때가 되면 우리는 벌을 받게 될 것이다.</span><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span> </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br></span></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에 욕심을 쫓아가면 파멸 뿐이다.</span><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span> </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br></span></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그러면서 도예공은 보자기를 여는데 깨진 도자기가 있었고 도예공은 그 깨진 도자기 조각들을 땅속에 깊숙이 묻고 새로운 그릇을 만들기 위하여 길을 떠났다.</span><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span> </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br></span></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도예공은 깨진 그릇은 붙여달라고 했을때 안된다고하면 신하들이 죽을 것이기에 결국 똑같은 새도자기를 만들어서 신하들을 살려주고 왕의 계속되는 요구가 있을 것을 알고 길을 떠난 것이다.</span> </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br></span></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우리 인간은 깨진 그릇에 미련을 가지고 새 그릇을 깨진그릇을 붙인 것이라고 착각을 하고 더 좋은 그릇을 요구하는 욕심을 부리기도 합니다.</span><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span> </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br></span></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부동산도 그렇습니다.</span><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span> </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br></span></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부동산가격이 떨어졌을때는 한참 올랐던 시절의 시세에 미련을 가지고 하락하다가 거래가 되면 상승이 되었다고 즐거워하고 상승을 하게되면 계속 상승을 하게 될거라는 욕심을 부리게 됩니다.</span><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span> </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br></span></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반대로 한번 하락세가 되면 영원히 하락을 할것처럼 난리를 치고 불안해하고 굳이 팔지 않아도 됨에도 섣불리 팔아버리는 우를 범하기도 합니다.</span><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span> </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br></span></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현재 경제상황이 너무 좋지않기때문에 많은 분들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span><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span> </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br></span></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작년 11-12월보다 경제상황은 더욱 안좋아졌지만 많은 사람들의 반응은 불안에 떨면서 갈팡질팡하던 작년 11-12월보다는 많이 차분하고 안정적이며 경제극복을 위하여 조금씩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span><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span> </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br></span></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불황의 터널에 이미 진입을 하였고 빠르지는 않지만 앞으로 전진하고 있습니다.</span><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span> </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br></span></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터널밖에서 터널을 들어올때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불안감이 엄습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앞이 보이면서 나름대로 적응을 하게 됩니다.</span><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span> </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br></span></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그렇게 적응을 하면서 앞으로 가다보면 조금씩 밝은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span><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span> </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br></span></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세상에는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밤이 있으면 낮이 있고 새벽이 있으면 아침이 있습니다.</span> </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br></span></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결국 아침은 오고 해는 다시 뜰 것입니다.</span><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span> </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br></span></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하지만 그 해가 언제 뜨느냐는 단정짓기 어렵고 결국 미국금융시장과 부동산시장이 안정이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span><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span> </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br></span></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지금도 많은 분들이 지금 집을 헐값이라도 팔아야 할까요? 계속 보유해야 할까요? 기다리면 얼마나 더 오를까요? 궁금해 합니다.</span><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span> </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br></span></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결국에는 불황을 터널을 빠져나올 것이고 터널에 있는 동안 풀렸던 규제완화, 저금리, 주택공급급감 때문에 더욱 눈 부신 상황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span><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span> </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br></span></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하지만 꼭 찍어서 언제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고 미래의 불확실성은 항상 존재하기에 섣부른 욕심은 버리고 조금은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span> </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br></span></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너무 무리한 대출로 도저히 버틸 수 없거나 일시적 2주택으로 1주택을 손해없이 팔아야할 상황이거나 적당한 이익을 보았고 더 좋은 곳으로 갈아타는 상황이라면 미련없이 정리하시기 바랍니다.</span><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span> </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br></span></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가지고 있으면 대박나겠지라는 욕심은 더욱 큰 욕심을 만들고 결국 화를 입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span><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span> </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br></span></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반대로 굳이 팔 필요도 없고 실거주 하고있는데 경제가 어려우니 팔고 전세 살아야하는게 아닌가 라는 불안감으로 큰 손해를 보더라도 팔려고 하는 분들은 그럴 필요 없습니다.</span><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span> </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br></span></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살면서 기다리면 분명 때는 오기 마련입니다. 어려운 질문일수록 답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습니다.</span> </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br></span></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팔아야할 사람은 팔면 되고 팔 필요가 없는 분들은 안팔면 되고 살 사람은 사고 살 필요가 없는 사람은 안사면 됩니다.</span><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span> </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br></span></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주택이 있는 상황에서 지금 사두면 나중에 몇 배 오를꺼야라는 대박의 환상에 빠져 무리한 대출을 받아서 추가로 몇채씩 구입할 필요는 없고 불황의 터널에 진입한 마당에 불안감에 중간에서 내리면 영원히 어둠의 터널에서 벋어나지 못하는 낙오자가 될 수도 있기에 무리하게 급매물로 팔 필요도 없고 어차피 터널을 나올 것이기에 주택을 구입해야할 실수요자, 즉 차를 타야할 사람은 지금이라도 좋은 차를 타고 어둠에 적응하면서 터널의 끝을 기다리면 됩니다.</span> </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br></span></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도예공이 왕의 선물에 눈이 멀어서 선물을 받고 궁궐로 갔다면 아마 돈의 노예가 되어 끊임없이 더 좋은 그릇을 만들기 위하여 고생하다가 최후를 맞이했을 것이고 또한 처음부터 못한다고 거절했다면 죄없는 신하들의 목숨은 날아갔을 것입니다. </span></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br></span></p><p style="FONT-SIZE: 9pt; MARGIN: 2px 0px;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TEXT-INDENT: 0pt; XLINE-HEIGHT: 120%; X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살릴 수 있는 목숨은 살리고 무리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왕의 선물을 뒤로하고 깨끗하게 떠나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도예공의 마음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span><span style="FONT-SIZE: 9pt; COLOR: #505050; TEXT-ALIGN: left; XLINE-HEIGHT: 12pt; XFONT-FAMILY: '굴림'; XLETTER-SPACING: 0pt"></span>&nbsp; </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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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Eye to the realty</category>

		<comments>http://ajaja77.egloos.com/4145509#comments</comments>
		<pubDate>Thu, 21 May 2009 18:37:25 GMT</pubDate>
		<dc:creator>하야니</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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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한경기사)3초의 승부사가 된 가출소년 `원형지정` 황호철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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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 class="arti_txt4" style="MARGIN-TOP: 38px"><span style="COLOR: #666666"><strong></strong></span><div id="CLtag" style="FONT-SIZE: 15px; LINE-HEIGHT: 22px"><p class="arti_txt4" id="newsView" style="MARGIN-TOP: 38px; FONT-SIZE: 15px"><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 border="0"><tbody><tr><!-- 우측일때 노출 시작 --><!-- 우측일때 노출 끝 --><td><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body><tr><td class="wh"><img style="BORDER-RIGHT: #f3f3f3 5px solid; BORDER-TOP: #f3f3f3 5px solid; BORDER-LEFT: #f3f3f3 5px solid; BORDER-BOTTOM: #f3f3f3 5px solid" src="http://news.hankyung.com/photo/200905/2009051486436_2009051485421.jpg"></td></tr><!-- 사진설명 시작 --><!-- 사진설명 끝 --></tbody></table></td><!-- 좌측일때 노출 시작 --><!-- 좌측일때 노출 끝 --></tr><tr><td colspan="2" height="10"></td></tr></tbody></table><br><br>지천명(知天命)을 바라보는 미혼의 주식고수 원형지정(49·본명 황호철).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이자 가장 닮고 싶어하는 재야고수 중 한 명이다. 하루에 이메일 300통이 날아들고 자신을 '주군으로 삼고 싶다'는 전화가 100통 이상씩 걸려 올 정도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전형적인 슈퍼개미다. <br><br>2년간 430만원으로 시작해 300억원대의 자산가가 된 '주식투자의 귀재' 원형지정을 만나기 위해 지난 11일 오후 찾은 곳은 사무실이 아닌 방 네 개 짜리 서울 시내의 한 아파트였다. 여의도 증권가에 번듯한 사무실 하나쯤은 있을 것이란 생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br><br>일반인이면 평생 동안 꿈도 꾸지 못할 거액의 현금을 보유한 원형지정은 아이러니칼하게도 이렇게 별도의 사무실이 없었다. 평범한 아파트가 바로 '3초의 승부사' 원형지정의 일터였다. 방 두 개에는 마치 항공기 조종석 같이 컴퓨터 시스템으로 꾸며진 책상 다섯 개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식구는 출퇴근을 하는 문하생 3명과 함께 생활하는 제자 겸 비서 1명이 전부다. <br><br>편안한 옷차림으로 취재진을 맞은 황씨는 "4년전만 해도 남 보기에 그럴듯한 사무실을 차려놓고 일했습니다. 하지만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바로 집으로 옮겼죠. 불필요한 이동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쉬고 싶을 때 언제든지 잠을 청할 수 있어 지금도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br><br>조용히 독서를 하기에도 그만이고 스트레스에 찌들어 사는 전업투자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휴식도 인근에 있는 공원에서 해결할 수 있어 금상첨화라는 이야기다. 수없이 많은 부침을 통해 천당과 지옥을 오간 경험으로 이제는 나눔의 삶을 살겠다고 각오한 원형지정. 필명 '원형지정'(圓形之情)도 '모난 세상에서 둥글게 서로 돕고 살자'는 의미로 자신이 직접 지은 것이다. <br><br>훤칠한 키에 진한 쌍꺼풀이 돋보이는 호남형인 원형지정. 그는 주식투자에는 차갑고 냉정하지만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포근하고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평판을 얻고 있다. 특히 대부분의 슈퍼개미들이 초야에 묻혀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반면 원형지정은 1만명에 육박하는 적극적인 팬을 확보한 열린 사고를 하는 인물로도 유명하다. 자신의 1년 주식농사 결과를 인터넷 카페에 공개해 증권가에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br><br>2007년 2월부터 증권포털 팍스넷에 자신의 주식투자 실패담인 '똥파리 거지가 왕거미 귀족이 된 이야기'를 연재하며 개인투자자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현재도 자산 300억원 중 100억원 정도를 주식에 직접투자하고 있는 원형지정은 2009년 1분기에만 100%에 가까운 수익을 냈다고 귀띔했다. <br><br><strong>◆ "주식에 미칠 자신 없으면 손도 대지 마라"&nbsp;<br></strong><br>숱한 실패 뒤 남겨진 단돈 430만원으로 단숨에 91억원을 벌어 기사회생한 전설적 인물 원형지정도 삶을 포기한 채 도박에 빠지기도 하고 술과 담배로 하루하루를 연명해야 하는 고통의 나날들을 보낸 경험이 있다. <br><br><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265" align="left" border="0"><tbody><tr><!-- 우측일때 노출 시작 --><!-- 우측일때 노출 끝 --><td><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body><tr><td class="wh"><img style="BORDER-RIGHT: #f3f3f3 5px solid; BORDER-TOP: #f3f3f3 5px solid; BORDER-LEFT: #f3f3f3 5px solid; BORDER-BOTTOM: #f3f3f3 5px solid" src="http://news.hankyung.com/photo/200905/2009051486436_2009051485452.jpg"></td></tr><!-- 사진설명 시작 --><tr class="bg48"><td class="f11 dm g11 sp01 he15" style="PADDING-RIGHT: 2px; PADDING-LEFT: 9px; PADDING-BOTTOM: 5px; PADDING-TOP: 4px">원형지정은 순간 순간 잊지 말아야 하는 주식매매 철칙부터 나태해지는 자신을 추스르고 채찍질하기 위한 각오들을 적어놓고 수시로 들춰본다. 날선 각오들이 빽빽히 들어차 있다. 가장자리에는 손떼가 가득하고 너덜너덜 닳아 헤어진 곳도 많다.</td></tr><!-- 사진설명 끝 --></tbody></table></td><!-- 좌측일때 노출 시작 --><td noWrap width="15" rowspan="6"></td><!-- 좌측일때 노출 끝 --></tr><tr><td colspan="2" height="10"></td></tr></tbody></table><br>그런 그가 불과 2년여만에 300억원대의 거부로 거듭난 바탕은 초인적인 집중력과 피나는 노력의 결과였다. <br><br>"절실하고 절박해야 합니다. 컴퓨터 모니터 저 넘어에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의 현금을 쥔 최고의 주식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는 정글같은 주식시장에서 절실하게 성공을 꿈꾸며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 합니다" <br><br>원형지정이 주식 매매를 하는 책상 위에는 누렇게 색이 바랜 A4용지 수십장이 포개져 붙어 있다. 순간 순간 잊지 말아야 하는 매매 철칙부터 나태해지는 자신을 추스르고 채찍질 하기 위해 써놓은 날선 각오들이 빽빽히 들어차 있다. 얼마나 읽고 또 읽었는지 가장자리에는 손떼가 가득하고 너덜너덜 닳아 헤어진 곳도 많다. <br><br>그중 한 대목은 '거지되어 자살하고 싶지 않으면 꼭 지켜라'로 시작해 '주식을 해서 수익을 내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로 끝을 맺는다. <br><br>&lt;철칙 : 거지되어 자살하고 싶지 않으면 꼭 지켜라&gt; <br><br>1. 매매 시 특히 인내심을 갖고 참고 또 참아서 매수하라. <br>2.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매매는 절대 하지마라.<br>3. 종목분석을 철저히 하되 저가에 매수라.&nbsp;특히 테마주는 언제 폭락할 지 모른다. <br>4. 추격매수를 절대 하지 말라. <br>5. 초단타 매매는 적은 금액으로 짧게, 작은 수익에 만족하라. <br>6. 잦은 매매는 삼가고 신중히 생각하며 경솔히 행동하지 마라. <br>7. 수익이 났을때 특히 조심히 매매하고 수익을 지켜라. <br>8. 어떠한 경우에도 좌절하지 말고, 공부하고 노력하라.&nbsp; <br>9. 가급적 신용거래는 하지 말고 미수 쓸때는 상승 확인하고 하라. <br>10.탐욕을 부리지 말고 조급해 하지마라. 매매 시 한박자만 늦춰라. <br>11. 미친 듯 술에 취한 듯 얼토당토 않은 일을 저지를 수 있으니 조심하라.&nbsp;<br>12. 차근차근 적은 금액으로 3일을 쌓아가라. <br>13. 참고 또 참아서 매매하라. <br>14. 주식은 타이밍의 예술이다. 매수는 신중히 매도는 번개같이 <br>15. 주식을 해서 수익을 내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 <br><br><strong>◆ 15살에 가출해 주식 고수가 되기까지 <br></strong><br>원형지정의 고향은 강원도 인제다. 중학교 재학시절 아버지와 어머니의 불화로 항상 불안했던 가정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서울로 쫒겨와 술집 종업원으로 이곳 저곳을 전전하며 밥벌이를 해야 했다. <br><br>"당시 술집 손님 중에 비싼 공짜술을 먹는 사람들이 있어 궁금하기도 해 물어봤더니 세무공무원이라는 거예요. 그렇다면 나도 세무공무원이 되어야겠구나라고 생각했죠"&nbsp;<br><br>고등학교 졸업장은 간신히 받았지만 교과서를 달달 외워 2년제 국립세무대학에 무난히 입학할 수 있었다. 1984년 관악세무서에서 첫 공직생활을 시작해 1992년까지 순탄하게 살던 원형지정은 돈이 모이자 이를 당시 고려증권과 동서증권에 맡겼다 모두 날리고 말았다. 충격도 컸다. <br><br><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 align="right" border="0"><tbody><tr><!-- 우측일때 노출 시작 --><td noWrap width="15" rowspan="6"></td><!-- 우측일때 노출 끝 --><td><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body><tr><td class="wh"><img style="BORDER-RIGHT: #f3f3f3 5px solid; BORDER-TOP: #f3f3f3 5px solid; BORDER-LEFT: #f3f3f3 5px solid; BORDER-BOTTOM: #f3f3f3 5px solid" src="http://news.hankyung.com/photo/200905/2009051486436_2009051485442.jpg"></td></tr><!-- 사진설명 시작 --><!-- 사진설명 끝 --></tbody></table></td><!-- 좌측일때 노출 시작 --><!-- 좌측일때 노출 끝 --></tr><tr><td colspan="2" height="10"></td></tr></tbody></table>"이때 평소 알고 지내던 한보그룹 이사 한분이 건설업을 한번 해보라는 거예요. 한보그룹 총수가 세무공무원&nbsp;출신이어서 선배들이 그 그룹에 많이 포진해 있었거든요. 현직 세무공무원이 페이퍼 건설회사 50개를 만들어 한보그룹 하도급을 받아 재하청을 주는 방법으로 돈을 긁어 모으기 시작했죠. 지금 같으면 상상조차 할수 없는 일입니다. 곧바로 어머니의 반대를 무릎쓰고 세무서도 그만뒀습니다" <br><br>하지만 원형지정의 꿈 같은 시절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997년 IMF 구제금융 한파가 몰아치면서 한보그룹이 부도가 났고 원형지정의 건설사도 덩달아 무너지고 말았다. <br><br>"당시 제 개인통장에 400억원 정도 들어있었는데 전부 날아가 버렸습니다. 믿을 수가 없었죠. 더 참기 힘든 것은 그렇게 절친하게 지내던 친구며 사업상 만난 사람들이 모두 안면몰수를 해버리는 거였어요" <br><br>여인숙에 살면서 등산으로 소일을 하다 생활정보지에 난 부동산중개소의 구인광고를 보고 무작정 찾아 나섰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딴 뒤 경매업체에 취직했고 외환위기 여파로 쏟아지는 물건을 처리하는 것이 주임무였다. <br><br>건설업을 운영하며 직간접적인 실전 경험은 있어 자신감은 있었지만 이론이 부족해 수백권의 부동산 관련 서적을 탐독했다. 이때 서점에서 경매에 관한 책을 구입하던 중 주식 책이 눈에 띄어 한 20권 정도 사게된 것이 오늘날 원형지정을 전업투자자의 길로 이끈 단초다. <br><br>세무공무원 경험을 살려 부동산경매에서도 도사가 된 원형지정은 2년6개월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에 몰두했다. 광고를 통해 개인고객도 유치해 나갔다. 수수료가 작은 일반주택이 아니라 남들이 하지않는 다가구주택, 술집이 끼어있는 건물, 유치권이나 지상권이 설정된 부동산 등 난이도가 높은 경매물건만 골라 재미를 보기 시작했다. <span><a class="popup_link" onmouseover="javascript:KL_show_clk_pop('%C0%E7%B0%B3%B9%DF','1','')" style="FONT-WEIGHT: 700; FONT-SIZE: 14px; COLOR: #002f74; TEXT-DECORATION: underline" onmouseout="javascript:clear_pop_show_delay()" href="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afd=hankyung2_web&amp;is_click=yes&amp;keyword=%C0%E7%B0%B3%B9%DF" target="_blank">재개발</a></span>, <span><a class="popup_link" onmouseover="javascript:KL_show_clk_pop('%C0%E7%B0%C7%C3%E0','3','')" style="FONT-WEIGHT: 700; FONT-SIZE: 14px; COLOR: #002f74; TEXT-DECORATION: underline" onmouseout="javascript:clear_pop_show_delay()" href="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afd=hankyung2_web&amp;is_click=yes&amp;keyword=%C0%E7%B0%C7%C3%E0" target="_blank">재건축</a></span>으로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br><br>이렇게 해서 2000년 퇴직 할때는 현금 83억원과 아파트 13채가 손에 쥐어졌다. 벌어놓은 돈도 있겠다 당시 주식시장이 활황이라고 해서 굿모닝증권(현 굿모닝신한증권)에 8억원, 동양증권에 4억원, 리딩투자증권에 3억원을 예치하고 투자를 의뢰했다. 그런데 2년 후에 원금 15억원이 11억원으로 줄어 있었다. 자산이 불어나기는 커녕 4억원을 날린 것이다. <br><br>"너무 화가 났습니다. 주식이 뭐길래 이렇게 돈을 날리나 싶어 2004년 1월 직접 해보자는 생각으로 전업투자자의 길로 나서게 된 겁니다. 쉬워 보였지만 막상 해보려니 눈앞이 캄캄했죠" <br><br>평소 책을 한번 잡으면 맨 뒷장의 저자이름까지 꼭 확인해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남다른 독서습관을 지닌 원형지정은 주식 관련책을 다시 탐독하기 시작했다. 주식 관련 책을 500여권을 독파했지만 그것은 이론일뿐 실전 매매에는 영 적용이 되지 않았다. <br><br>우량주만 사면 되는 줄 알고 삼성전자에 '올인'했다가 큰 손실을 본 적도 있다. 원형지정이 가치분석을 버리게 된 계기이자 뼈아프게 생각하는 실패 사례가 바로 당시 삼성전자 관련 매매다. <br><br>"전업투자를 시작할 때인 2004년 주위에서 삼성전자가 100만원이 가니, 120만원이 가니 하면서 바람을 잡았고, 증권사도 주가수익비율(PER) 상 저평가 돼 있다며 매수 보고서를 연일 냈습니다. 이를 믿고 50만~60만원대에 매수했고 신용으로 물량을 추가하며 버티기를 몇번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주가는 39만원까지 곧두박질쳤고 41만원에 증권사 반대매매를 당하고 20억원을 날렸죠" <br><br>포기하지 않고 차트를 분석하고 새로운 매매기법 관련 책이 나오면 달달 외우는 등 더욱 주식 공부에 매달렸다. 급등구간 연구와 테마주 등에 눈을 뜨면서 2006년 초부터 조금씩 돈을 벌기 시작했다. <br><br>하지만 2006년 10월 폐암 1차 진단을 받으면서 평상심이 깨졌고 카지노와 홧김에 전재산을 옵션 투자에 쏟아부어 알거지 신세가 되고 말았다. <br><br>"주식은 가치, 수급, 심리 등 세가지 요소가 핵심입니다. 당시 저는 크나큰 실패를 경험하면서 주식투자는 매매기법도 펀더멘털도 아니고 결국 마음(심리)에 좌우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2008년말께 손실을 모두 회복하고 안정기에 접어들었을 때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았더니 의사가 깜짝 놀라더군요. 제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폐암 증상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거예요" <br><br><strong>◆ "주식은 수급과 심리다" <br></strong><br>본격적으로 주식에 입문한 2004년부터 안 해본 투자기법이 없는 원형지정이 집중적으로 지금의 부를 쌓은 구간은 대세 상승장과 대세 폭락장이 이어졌던 2007년과 2008년 딱 2년 간이다. 그 전에도 수십억원을 벌기도 했지만 이를 지키지 못해 깡통계좌의 경험을 네 번이나 맛봤다. <br><br>원형지정이 투자에 성공한 비결은 수급을 읽는 감각적인 눈과 방대한 독서량으로 집약된다. 기업의 펀더멘털이나 가치를 분석하지 않고 어떻게 주식의 수급만으로 상승을 예상하고 투자를 결심하는 것일까? <br><br>"주식입문 초기에는 단타매매를 주로 했습니다. 종목 관련 보고서도 보고 거래량에도 관심을 가졌을 때입니다. 하지만 주식은 수급입니다. 팔고자 하는 사람과 사고자 하는 사람들의 심리와 그 강도를 읽어내는 것이 곧 성공투자의 지름길이지요. 그 구간을 짚어내는 것은 철저히 기술적 분석을 통해 얻어냅니다" <br><br>원형지정은 우선 주가의 흐름을 결정하는 6가지 요소인 가격, 시간, 거래량, 움직임, 멈춤, 속도 등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스캘퍼나 데이트레이더, 스윙투자, 중장기투자자 등 어느 누구라도 오래도록 승자의 위치에 있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br><br>&nbsp;"평소의 속도가 아닌 급속도로 진행하며 가속하다 멈춤 현상이 오면 분할 매도로 대응해야 합니다. 멈춤 현상이 왔다는 것은 에너지 소진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br><br>그가 말하는 핵심이 바로 '매수절정' 구간이다. 상승 추세대 안에서 등락을 거듭하며 기존의 상승추세로 진행되던 주가가 어느 날 아주 강하게 상승 추세대 상단을 돌파하며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할 때, 이 구간이 매수절정 구간이라는 것. <br><br>"이 매수절정 구간을 관찰해 추세대 상단을 돌파하는 시점부터 시작해 통상적으로 마지막에 거래량이 터진 장대음봉이 나오는 음봉 몸통의 중간값까지 계산해 보니, 5거래일 안에 최하 50% 이상의 수익이 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br><br><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 border="0"><tbody><tr><!-- 우측일때 노출 시작 --><!-- 우측일때 노출 끝 --><td><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body><tr><td class="wh"><img style="BORDER-RIGHT: #f3f3f3 5px solid; BORDER-TOP: #f3f3f3 5px solid; BORDER-LEFT: #f3f3f3 5px solid; BORDER-BOTTOM: #f3f3f3 5px solid" src="http://news.hankyung.com/photo/200905/2009051486436_2009051485411.jpg"></td></tr><!-- 사진설명 시작 --><!-- 사진설명 끝 --></tbody></table></td><!-- 좌측일때 노출 시작 --><!-- 좌측일때 노출 끝 --></tr><tr><td colspan="2" height="10"></td></tr></tbody></table><br><br>원형지정이 목숨같이 중요시 여기고 활용하는 분석 지표는 바로 '볼린저 <span><a class="popup_link" onmouseover="javascript:KL_show_clk_pop('%B9%EA%B5%E5','4','')" style="FONT-WEIGHT: 700; FONT-SIZE: 14px; COLOR: #002f74; TEXT-DECORATION: underline" onmouseout="javascript:clear_pop_show_delay()" href="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afd=hankyung2_web&amp;is_click=yes&amp;keyword=%B9%EA%B5%E5" target="_blank">밴드</a></span>'(Bollinger bands)와 'RSI'(상대강도지수)이다. 매수든 매도든 진입할 수 있는 구간을 확인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볼린저 밴드는 주가의 움직임을 밴드 내에서 판단하기 위해 고안된 채널지표이다. <br><br>&nbsp;"제가 사용하는 기법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터득한 저만의 기술입니다. 결국 개인투자자들도 자신만의 전략과 기법을 만들어내야 승산이 있습니다. 자신만의 매매조건을 만드는 이유는 모든 구간에서 항상 진입하는 것이 아니라 확률이 높은 구간에서만 들어가서 이익을 내고 나오는 이기는 싸움을 하기 위함입니다" <br><br>2006년 10월 폐암 1차 진단을 받고 삶을 포기하려 했던 원형지정은&nbsp;어렵게 모은 수십억원의 재산을 정선 카지노와 <span><a class="popup_link" onmouseover="javascript:KL_show_clk_pop('%BC%B1%B9%B0','0','')" style="FONT-WEIGHT: 700; FONT-SIZE: 14px; COLOR: #002f74; TEXT-DECORATION: underline" onmouseout="javascript:clear_pop_show_delay()" href="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afd=hankyung2_web&amp;is_click=yes&amp;keyword=%BC%B1%B9%B0" target="_blank">선물</a></span> 양매도에 털어붓고 사채업자에게 쫒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nbsp;<br><br>"폐에 이상이 발견돼 암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넋을 잃고 말았지요. 당시 암 건진을 받으러 병원에 갔는데 환자들이 밀려 있어 검사 일정조차 잡을 수 없었죠. 해를 넘겨 1월에나 가능했습니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하루에 10갑 가까이 피워댄 담배가 주범이었을 겁니다" <br><br>억울했다. 폐암 생존률이 3년 이내라는 의사의 말에 더 절망했다. 죽을병에 걸렸다는 소문이 돌자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도 싸늘해졌다. 잠을 잘 수도 없었고 술로 밤을 지샜다. <br><br>"삶을 자포자기 한 상태에서 정선 카지노에 가서 이틀밤에 5억원을 잃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과 이란 관계가 전쟁 상황으로까지 몰릴 수 있다는 뉴스에 주식시장이 폭락할 것이란 단순한 생각으로 홧김에 풋 옵션 외가에 양매수를 걸었다 가진 전재산은 물론 사채 원금만 50억원대로 늘어나 버렸죠" <br><br>자살을 결심하고 한강을 몇 번이나 다녀왔다. 사채를 끌어다 써 병원에 갈 수도 없었다. 이때 수중에 남은 돈이 430만원이었다. <br><br>한때 자신이 많은 도움을 줬던 주식 고수 친구에 빌붙다시피 하면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 친구는 '물을 먹여 줄 수는 없고 물 먹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말했고 그 기간도 정확히 일주일이었다. <br><br>"다른 사람들은 2007년 주식시장이 상승장이었다고 쉽게 말합니다. 저는 당시 살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호랑이 등에 타고 '볼린저 밴드'와 'RSI', 'MACD' 지표를 보며 폭등 구간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때 저의 운명을 바꾼 종목이 바로 '삼호개발'입니다" <br><br>이동평균 수렴·확산지수(MACD)는 장기 이동평균선과 단기이동평균선 사이의 관계에서 추세변화의 신호를 찾으려는 진동자 지표다. 이 지표는 서로 멀어지면(diverge) 결국 다시 가까워진다(converge)는 성질을 이용해 두 이평선이 가장 멀어지는 시점을 찾는 것이다.&nbsp; <br><br>2007년 2월 삼호개발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2800원부터 기본 물량을 보유하고 있었고 데이트레이딩을 병행하며 대주주 매도 공시가 나온 다음날 마지막 물량을 털어 1억4000만원을 만들었다. 매수절정 기법 전략을 활용해 성공한 것이다. 주식은 절박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교훈도 이때 얻었다. <br><br>"병원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친구들도 빨리 입원하라고 채근했죠. 하지만 한가하게 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가장 절박한 시기었습니다. 사채업자들은 빚을 갚지 않으면 다리 잘라간다고 협박하고, 금융권에서는 하루에 100~200통 가까이 빚독촉 전화를 해댔습니다. <br><br>2006년 11월부터 2007년 1월까지 단 석달만에 50억원대 빚쟁이로 전락한 내모습이 믿겨지지 않고 그저 꿈만 같았죠. 이것을 회복하는데 2년이 걸린 겁니다" <br><br><strong>◆ 공매도를 기다리는 고수</strong> <br><br>2007년 10월까지 대세상승기에 현물투자로 믿기지 않을 정도의 성적을 거둔 원형지정은 2008년 대세하락기에는 주식대차거래(공매도)를 이용해 그동안 벌었던 수익보다 더 많은 결실을 맺게 된다. <br><br>2007년 삼호개발로 재미를 본 원형지정은 같은해 6월말 금호산업의 챠트를 본 뒤 망설이지 않고 이른바 '몰빵'에 나섰다. 수급 분석을 마치고 매수해서 판 종목 중에 상승 시기를 정확히 맞추지 못했을뿐 안 오른 종목은 없었기때문에 자신감도 충만했다. <br><br>당시 금호산업 주식을 4만7000원에 17억원어치를 매수했다. 삼호개발로 번 돈을 모두 쏟아 붓고도 모자라 신용과 사채까지 동원해 '풀 베팅'했다. <br><br>"금호산업 주식을 사고나자 사흘연속 주가가 미끄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신용거래를 한 증권사에서는 손실분을 입금하지 않으면 반대매매에 들어가겠다고 으름장을 놓기 시작했죠. 답답하기가 칼 쓴 춘양이 마음 같았습니다. 그런데 5일째 되던날 기적적으로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어요. 4만원짜리 주식이 보름만에 7만원까지 치솟았고 이 종목으로만 15억원을 챙길 수 있었습니다" <br><br>그 다음이 남해화학이다. 같은 해 10월 중순 9500원에 매수해 단기간에 최종 물량을 1만8000원에 매도해 원금을 제외하고 25억원을 벌었다. 하지만 절반의 성공이었다. 빌어쓴 사채 이자는 꼬박꼬박 늘어만 갔다. 일단 원금만 갚고 이자는 동결시켰다. <br><br>"기회는 다시 찾아왔습니다. 저는 2007년 11월부터 국내 주식시장을 비관적으로 봤습니다. 어쩌면 폭락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그래서 대세하락기에 가장 유용한 투자기법인 공매도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nbsp;<br><br>그는 2008년 3월께 코스피 1350이 깨질 수 있다고 보고 주식대차거래에 손을 댔다. 주식대차거래는 특정 기관에서 일정 기간 주식을 빌렸다가 되갚는 것으로 빌린 주식을 판 뒤 나중에 매도가격보다 싼 값에 다시 주식을 사들여 갚는 매매기법이&nbsp;활용된다. 주로 외국인들이 사용하는 투자법이어서 개인이 하기에는 관련 정보나 책도 턱없이 부족했을 때다. <br><br>하지만 2008년 내내 주식시장은 내리막길을 걸었고 10월에는 리먼 브러더스 <span><a class="popup_link" onmouseover="javascript:KL_show_clk_pop('%C6%C4%BB%EA','2','')" style="FONT-WEIGHT: 700; FONT-SIZE: 14px; COLOR: #002f74; TEXT-DECORATION: underline" onmouseout="javascript:clear_pop_show_delay()" href="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afd=hankyung2_web&amp;is_click=yes&amp;keyword=%C6%C4%BB%EA" target="_blank">파산</a></span> 사태로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유례없는 주가 폭락사태가 발생했다. <br><br>"그때 제 인생 전부를 통틀어 가장 많은 돈을 벌었던 것 같습니다. 수천만원짜리 계좌에서 하루에 1억원 넘는 수익이 발생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재기를 노린 2년이 20년 같이 길었지만 노력한 자에게는 반드시 보상이 따른 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됐습니다" <br><br>공매도는 주가 폭락을 부채질하는 주범으로 인식되면서 한국을 포함한 세계 주요 국가에서 즉각 제한조치가 취해져 현재는 금지되고 있다. <br><br>"지금은 공매도를 할 수 없게 돼 있지만 언젠가는 풀릴 수밖에 없을 겁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에 투자하면서 위험회피(헤지) 수단으로 공매도가 필요하다며 이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때를 대비해 현금보유 비중을 계속 늘리고 있습니다" <br><br><strong>◆ "노력하는 자에게 기회는 온다"&nbsp;<br></strong><br>원형지정이 다른 슈퍼개미들과 달리 단단한 내공을 소유한 실력파라는 근거는 그의 독서량에 있다. 지난 10년 간 3000여권의 책을 읽었고, 중요한 부분을 잊지 않기 위해 틈틈히 적어놓은 메모량만 16절지로 6000페이지에 달한다. 장이 끝나면 그날의 투자상황을 복기해 가며 매매일지를 정리하는 것도 그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br><br>원형지정은 잠이 없다. 그의 수면시간은 많아야 하루 4시간 정도. 밤새 손에서 책이 떠나지 않는다. 취재진이 자택을 방문했을 때 원형지정은 '이사(李斯), 천하의 경영자'를 읽느라 정신이 없었다. 인터넷이 탄생시킨 중국 신세대 역사 스토리텔러 차오성이 쓴 이 책은 천하를 지배한 진시황의 재상 '이사'를 조명한 중국 역사서다.&nbsp;<br><br>그는 현실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픽션인 소설만&nbsp;독서목록에서 제외할 뿐 주식 관련 서적은 물론 채근담, 역사서, 종교서 등 다양한 장르의 책들을 섭렵한다. 특히 심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주식판에서 평상심을 유지하기 위해 성경과 코란, 불경 등은 십여차례 이상 반복해 읽었다. <br><br>"'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잠을 이기면 꿈을 이룬다'는 글귀를 무척 좋아합니다. 자면서 꾸는 꿈이 꿈이지만 시장에 갖는 희망도 한낱 꿈일수가 있습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자문자답해 봐야 합니다." <br><br><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 align="left" border="0"><tbody><tr><!-- 우측일때 노출 시작 --><!-- 우측일때 노출 끝 --><td><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body><tr><td class="wh"><img style="BORDER-RIGHT: #f3f3f3 5px solid; BORDER-TOP: #f3f3f3 5px solid; BORDER-LEFT: #f3f3f3 5px solid; BORDER-BOTTOM: #f3f3f3 5px solid" src="http://news.hankyung.com/photo/200905/2009051486436_2009051485432.jpg"></td></tr><!-- 사진설명 시작 --><!-- 사진설명 끝 --></tbody></table></td><!-- 좌측일때 노출 시작 --><td noWrap width="15" rowspan="6"></td><!-- 좌측일때 노출 끝 --></tr><tr><td colspan="2" height="10"></td></tr></tbody></table>원형지정은 장이 시작되는 오전 9시부터 10시까지, 장 종료 직전인 오후 2시부터 2시50분까지 하루에 단 두번 컴퓨터 앞에서 매매 시기를 노린다. 그의 기준에 합당한 종목이 발견되면 망설이지 않고 1초에 판단하고, 1초에 매수하고, 나머지 1초 동안은 검증하고 쉰다는 '3초의 승부사' 기질은 이러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br><br>"제도권 증권사 직원들을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에 달하는 고객들의 돈을 맡아 운용하면서 무엇을 근거로 하느냐는 겁니다. 열심히 책을 읽고 공부하고 노력해야 하는데 그런 증권사 직원을 만나볼 수가 없었어요" <br><br>최근 원형지정의 중요한 일정 중 하나가 고향인 강원도에서 자신의 카페 회원들을 대상으로 투자강연회를 여는 것이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몰려드는 전업투자자들로 강연회는 연일 만원사례를 이루고 있다. <br><br>일부 카페 회원들은 '이제야 선생님 투자기법을 배워 수익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이를 공개하면 어떡하느냐'며 이메일 항의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원형지정은 자신이 가진 노하우를 거의 완벽하게 공개한다.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다만 2%는 비밀의 영역이다. 그건 말이나 활자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 <br><br>"2011년쯤 능력있는 인재들을 키워 운용사와 '터틀 그룹'(Turtles Group)을 만들 계획입니다. 위탁매매가 아닌 제 개인 자산만을 운용할 겁니다. 강원도에서 여는 강연회는 함께 할 동지를 고르는 기나긴 여정이라고 생각해 투자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br><br>터틀 그룹은 주식매매에 대한 능력이 천부적인 감각인지 아니면 후천적교육을 통한 학습인지를 놓고 오래전부터 계속된 논쟁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 1984년 미국의 리차드 데니스(Richard Dennis)가 주식 매매가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을 모집해 이들에게 자신의 매매원칙을 교육시킨 후 성공으로 이끌었는데 이들을 '터틀(Turtles)그룹'이라고 불렀다. <br><br>슈퍼개미를 꿈꾸는 개인투자자들에게 조언 한마디를 부탁하자 원형지정은 탐욕을 버릴 것과 공부하고 노력하라는 말을 남겼다.<br><br>"제가 벤츠를 타고 다닙니다. 한번은 큰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차는 거의 폐차 수준인데도 저는 멀쩡했어요. 그래서 사치를 경계하는 저도 차는 좋은 것을 탑니다. 그런데 제 강의를 들은 한 청년이 자신도 저와 같은 기법으로 단기간에 벤츠를 탈 정도로 돈을 벌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저는 말했습니다. 제가 지금의 위치에 있기까지는 수많은 책을 읽으며 연구했고 수 차례의 자살을 결심할 정도로 낭떠러지에 떨어져 봤기때문에 가능했다고 말이예요" <br><br>세무공무원에서 건설업체 사장, 전문 부동산경매업자, 그리고 재야 주식고수까지 그의 인생편력은 참 다양하다. 주식 이후에는 무슨 일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원형지정은 망설임없이 자신은 오로지 '주식'밖에 없다고 말했다. <br><br>"제가 가정을 갖고 아들을 낳는다면 네 살때 부터 주식과 골프를 가르칠 겁니다. 주식은 자본주의 꽃이고 기업과 사회를 움직이는 핵심 동력이기 때문입니다. 노예가 아닌 자유인으로 살아가게 하는 지름길이기도 하고요. 또 금융을 모르면 세상을 모르는 것이기도 합니다" <br><br>자신의 현재 수익을 공개하고 인터넷 카페 회원들 모임에 수억원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는 실패하고 비참한 삶은 사는 수많은 개미들에게 희망을 버리지 말 것과 철저히 준비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해주기 싶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p></d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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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Eye to the stock</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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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8 May 2009 21:51:52 GMT</pubDate>
		<dc:creator>하야니</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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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포틀랜드 탐방(퍼온기사)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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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style="FONT-SIZE: 100%; LINE-HEIGHT: 150%" align="left"><img title="클릭하시면 원본크기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style="MARGIN: 5px 0px; CURSOR: hand" height="346" hspace="0" src="http://file.dkbnews.com/userdata9/f0/1040/news/261_4efdd2f969559e8b1c92e99f32ded48e.jpg" width="520" border="1"><br><br>▲포틀랜드의 상징인 마운트 후드 정상의 3월초 모습. 암봉 왼쪽 아래로 체어리프트가 보이는 설원이 한여름에도 스키를 즐기는 팔머 빙하지대다. 마운트후드는 북미대륙 서부를 남북으로 1100km나 달리는 캐스케이드 산맥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다. </div><br><br><br>만년설 절벽슬로프 아찔… 피노누아 와인계곡 포근<br>&nbsp;오리건 주라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이가 많다. 위치는 물론이고 단박에 떠오르는 것이 없어서다. <a class="lw" href="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cs=bz&amp;p=%C4%B6%B8%AE%C6%F7%B4%CF%BE%C6" target="_blank"><span style="COLOR: #000000">캘리포니아</span></a> 북쪽을 보자. 바로 거기다. 캐나다와 접경인 워싱턴 주와 남쪽 캘리포니아 주 사이의 <a class="lw" href="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cs=bz&amp;p=%C5%C2%C6%F2%BE%E7" target="_blank"><span style="COLOR: #000000">태평양</span></a>변, ‘나이키’의 고향이고 프랑스 것을 누른 ‘피노누아’ 와인 산지다. 하지만 오리건이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나이키도 피노누아도 아니다. 자연과 사람이다. 훼손되지 않고 순수한. 오리건 사람들은 특별하다. 남한의 2.6배나 되는 넓은 땅(25만5026km²), 우리(남한)의 7.65%에 불과한 적은 인구(379만여 명)가 선사한 공간적 여유 덕분일까. 오리건의 관문 <a class="lw" href="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cs=bz&amp;p=%C6%F7%C6%B2%B7%A3%B5%E5" target="_blank"><span style="COLOR: #000000">포틀랜드</span></a> <a class="lw" href="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cs=bz&amp;p=%B1%B9%C1%A6%B0%F8%C7%D7" target="_blank"><span style="COLOR: #000000">국제공항</span></a>에서다. <br><span style="FONT-SIZE: 100%; COLOR: #0000ff">- </span><span style="FONT-SIZE: 100%; COLOR: #0000ff">[화보] 美 오리건 주, ‘스키’와 ‘와인’의 천국&nbsp; </span><br><span style="FONT-SIZE: 100%; COLOR: #ff0000">-&nbsp;</span><span style="FONT-SIZE: 100%; COLOR: #ff0000">[화보] 설경이 아름다운 사호로 스키장 가는 길 </span><br><span style="FONT-SIZE: 100%; COLOR: #ff0000">- </span><span style="FONT-SIZE: 100%; COLOR: #ff0000">[화보] 日, 고원리조트에서 딥스노의 묘미 즐기기</span><span style="FONT-SIZE: 100%; COLOR: #ff0000"></span><br><span style="FONT-SIZE: 100%; COLOR: #ff0000">-&nbsp;</span><span style="FONT-SIZE: 100%; COLOR: #ff0000">[화보] 비밀스런 ‘미야코와스레 료칸’ 구경가기</span><br><br>&nbsp;미국의 여타 국제공항에서 느껴온 위압감이나 딱딱함이 한결 덜하다. 그것이 내가 포틀랜드공항을 선호하는 이유다. 그 오리건을 2주 전 다녀왔다. 여행 주제는 ‘스키와 와인’이었다. 만년설산 마운트 후드(3428m)와 마운트 배첼러(2764m)에서 봄 스키를, 윌러멧계곡에서 오리건 피노누아 와인을 즐겼다. ‘스키와 와인의 만남’을 통해 새롭게 미국 밖으로 창을 낸 오리건의 멋지고 맛있는 여행현장으로 안내한다.<br><br>&nbsp;미국을 동서로 나누는 기준. ‘<a class="lw" href="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cs=bz&amp;p=%B9%E9%B5%CE%B4%EB%B0%A3" target="_blank"><span style="COLOR: #000000">백두대간</span></a> 격’인 로키산맥(북미대륙 분수령)이다. 따라서 서부란 로키의 서쪽 땅이다. 19세기 중반 서부개척기. 40만 명이 서부로 이주했다. 땅을 찾아 혹은 금을 캐러. 초기 교통수단은 소가 끄는 왜건(포장마차)이었다. 그리고 길은 석 달간 2000km를 가야 할 만큼 멀고 험했다. 출발지는 중부 미주리 주의 세인트루이스, 그 끝은 포트 <a class="lw" href="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cs=bz&amp;p=%B9%EA%C4%ED%B9%F6" target="_blank"><span style="COLOR: #000000">밴쿠버</span></a>(컬럼비아 강 하구의 포틀랜드 부근). ‘오리건 테리토리’(오리건 워싱톤 아이다호 등 미국 ‘노스웨스트’ 세 주)라 불렸던 미지의 땅이다. 그 길이 ‘오리건 트레일’이다. 오리건 주는 이렇게 서부 역사와 더불어 세상에 태어났다.<br><br><center><br><center>&nbsp;</center></center><br><br><center><img title="클릭하시면 원본크기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style="MARGIN: 5px 0px; CURSOR: hand" height="346" hspace="0" src="http://file.dkbnews.com/userdata9/f0/1040/news/12_a269962fe1424e1ca3e68c328b9fed61.jpg" width="520" border="1"></center><br><br>아름다운 도시, 포틀랜드<br>&nbsp;오리건의 중심도시는 포틀랜드다. 이곳은 내가 미국을 종단 횡단하며 다녀본 도시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고 손꼽는 곳이다. 그 아름다움의 기준은 외양이 아니다. ‘사람’이다. 포틀랜드는 ‘사람을 위해’ 설계되고 운영되는 도시다. 다운타운을 보자. 그 흔한 마천루 하나 없다. 30여 층 건물이 최고다. 도심의 차량홍수도 먼 얘기다. 걷는 이와 자전거 통행인이 더 많다. 도로를 누비는 건 차가 아니다. ‘맥스(Max)’라고 불리는 경전철과 ‘스트리트 카’라고 불리는 전차다. 그 전차도 다운타운 일정 구간만큼은 무료다. <br><br>&nbsp;포틀랜드는 자전거 천국이다. 매일 6000명이 자전거로 출퇴근한단다. 이 수치는 미국 평균의 8배라고 한다. 자전거를 위한 도시설계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대표적인 곳이 윌러멧 강을 가로지르는 스틸브리지다. 그 다리는 강 양편 둔치에 마련한 자전거도로(산책로 겸용)와 연결돼 있다. 자전거는 다리를 건너 둔치로 막힘없이 달린다. 다리 통과를 위해 별도로 설치한 전용램프와 강상의 부교 덕분이다. <br><br>&nbsp;포틀랜드 다운타운에서 패스트푸드점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대신 커피숍은 곳곳에 보인다. 그런 점에서 포틀랜드 도심은 미국이 아니다. 아름드리 가로수가 우거진 거리의 도로 한가운데로 느릿느릿 전차가 다니고 고풍스런 석조건물마다 커피숍과 레스토랑이 자리 잡은 이 도시. 사진으로만 보면 영락없는 유럽이다.<br><br>&nbsp;한밤중. 맥주 한잔이 생각나 거리의 바를 찾았다. 그런데 대뜸 신분증을 보잔다. 여권을 두고 왔다고 하자 대번에 ‘입장 불가’다. 다른 바도 마찬가지다. 바마다 입구에서 모든 사람의 나이를 확인한다. 오리건 주의 ‘21세 미만 음주 단속’은 이렇듯 철저했다. 제한연령이 30세인 곳도 있단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이런 도시의 밤거리가 험할 리 없다. 혹시 오리건 주로 자녀를 유학 보내신 분. 선택에 후회 없을 것으로 장담한다.<br><br><br><center><img title="클릭하시면 원본크기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style="MARGIN: 5px 0px; CURSOR: hand" src="http://file.dkbnews.com/userdata9/f0/1040/news/20_9414a8f5b810972c3c9a0e2860c07532.jpg" border="1"></center><br><center>▲윌러멧 스키 리조트의 트리스킹</center><br>캐스케이드 산맥이 준 선물, ‘스키천국’ 오리건 <br><br>&nbsp;북미대륙에는 스키장이 많다. 그러나 빙하스키장은 손꼽을 정도다. 위슬러블랙컴(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정도다. 그런데 마운트 후드가 그렇다. 마운트 후드는 포틀랜드, 아니 오리건의 랜드마크다. <br><br>&nbsp;포틀랜드공항으로 하강하는 항공기 안. 마운트 후드의 설봉이 창밖으로 손을 뻗으면 잡힐 듯 가까이에 있다. 한여름에도 산정에 눈을 이고 있는 이 거산. 그 눈은 팔머 빙하를 덮은 만년설이다. 그리고 여름스키의 무대다.<br><br>&nbsp;마운트 후드의 스키장은 다섯 개. 이날 나는 규모와 고도차가 최대 최고인 ‘팀버라인(Timberline)’을 찾았다. 여름스키를 타는 팔머 빙하의 스키장도 여기다. 추적추적 봄비가 내리던 날. 우리 일행은 차를 몰아 이 산을 향했다. 포틀랜드 도심에서 88km. 하지만 한 시간 반 이상 걸렸다. 해발 1800m의 스키하우스까지 오르는 산길이 눈에 덮여서다. 스키장 규모는 고도차(리프트 최정점과 최저점의 차이)로 가늠한다. 1125m. 위슬러블랙컴에 조금 모자란 수준이다.<br><br>&nbsp;이 스키장에는 기념물이 있다. 해발 1829m 설원 기슭의 고풍스러운 호텔 ‘팀버라인 로지’다. 1937년 대공황 때 미연방은 뉴딜정책의 하나로 이곳을 개발했다. 로지는 그때 건축됐다. 팀버라인은 ‘수목생장한계선’을 뜻한다. 그 이름 그대로 로지 위 정상부는 숲으로 뒤덮인 아래와 달리 온통 흰 눈을 뒤집어쓴 빙하의 설원이다. 팔머 빙하의 슬로프(정점 2602m, 고도차 333m)로 데려다 주는 체어리프트가 스키어를 유혹하고 있다.<br><br><p style="LINE-HEIGHT: 150%" align="center"><img title="클릭하시면 원본크기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style="MARGIN: 5px 0px; CURSOR: hand" height="346" hspace="0" src="http://file.dkbnews.com/userdata9/f0/1040/news/38_62bf1edb36141f114521ec4bb4175579.jpg" width="520" border="1"></p><br><p style="LINE-HEIGHT: 150%" align="center">&nbsp;</p><br><p style="LINE-HEIGHT: 150%" align="center"><img title="클릭하시면 원본크기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style="MARGIN: 5px 0px; CURSOR: hand" height="346" hspace="0" src="http://file.dkbnews.com/userdata9/f0/1040/news/31_86c3cbc8cde622a8c725d89a88bdcb96.jpg" width="520" border="1"></p><br><p style="LINE-HEIGHT: 150%" align="center">&nbsp;</p><br><br><center><br><center><img title="클릭하시면 원본크기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style="MARGIN: 5px 0px; CURSOR: hand" height="346" hspace="0" src="http://file.dkbnews.com/userdata9/f0/1040/news/56_ae566253288191ce5d879e51dae1d8c3.jpg" width="520" border="1"></center><br><center><br>▲오리건 중부의 '하이 데저트'라고 불리는 건조기후대의 고원에 자리잡은 마운트 배첼러 스키장.</center></center><br><br><br>&nbsp;다음 행선지는 마운트 배첼러 스키장. ‘하이 데저트’라고 불리는 건조기후대의 ‘센트럴 오리건’(오리건 중부) 중심 타운, 벤드(Bend)의 고원에 있다. 마운트 후드를 내려서자 고원지대가 펼쳐진다. 벤드로 가는 길의 이 도로(하이웨이 26호선)는 오리건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멋진 드라이브 코스였다. 오른쪽 차창 밖으로 흰 눈에 덮인 캐스케이드 산맥이 고원의 들판과 어울려 빚어내는 멋진 풍광 덕분이다. 그 하이라이트는 세 봉우리가 사이좋게 어울린 ‘스리 시스터스’. ‘마운트 배첼러’(총각 산)라는 이 특별한 이름이 인근한 이 세자매봉에서 왔음은 물론이다. 곧이어 벤드. 마운트 배첼러는 거기서 하이웨이 58호선으로 35km 거리다. <br><br>&nbsp;해발 1737m 고원이 베이스인 마운트 배첼러 스키장. 산은 그 자체가 거대한 휴화산이다. 마운트 후드처럼 아래 3분의 1만 숲이 형성됐을 뿐 그 이상은 나무 한 그루 없는 광활한 설원. 최정점(2764m)은 백두산 최고봉(2750m)보다 높다. 고도차는 1027m로 마운트 후드에 비해 98m 짧다. 그러나 이 스키장은 원뿔형의 이 화산을 360도 모두 활용한다는 면에서 마운트 후드와 차별된다. 물론 산 뒷면(백 컨트리)은 최상급자에게나 권할 만한 코스다.<br><br>&nbsp;벤드의 멋진 숙소 선리버 리조트에서 하루를 묵고 스키여행을 계속했다. 이번에 찾은 곳은 윌러멧 계곡 초입의 큰 고개인 윌러멧패스의 스키 리조트(해발 1560m). 마운트 후드 등 에 비해 규모는 작아도 다운힐 즐거움에서는 차이가 없었다. 이웃한 세 봉우리를 두루 섭렵하는 다양한 슬로프, 북미대륙 최고 경사라는 52도의 ‘절벽’형 슬로프, 나무 사이 깊은 눈밭을 헤치는 트리 런(Tree run) 덕분이다. 여기서 또 한 사람의 스키친구를 사귀었다. 1992년 미국국가대표 스키 팀 감독이고 현재 세계스키연맹(FIS)의 미국기술위원인 랜드 로저스였다. 이 스키장 소유자와 평생 지기인 그는 여기서 고객만족팀을 이끌고 있었다.<br><br><br><center><img title="클릭하시면 원본크기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style="MARGIN: 5px 0px; CURSOR: hand" height="346" hspace="0" src="http://file.dkbnews.com/userdata9/f0/1040/news/109_f99687dd719c4e8bc6a39e946c3d9ef7.jpg" width="520" border="1"></center><br><div style="FONT-SIZE: 100%; LINE-HEIGHT: 150%" align="left">▲오리건 피노누아의 주산지인 윌러멧 계곡에 자리잡은 킹 에스테이트 와이너리(유진 소재) 모습. 부드러운 굴곡의 둔덕으로 형성된 계곡이 피노누아의 명산지인 프랑스 브루고뉴지방을 연상시킨다. </div><br><br><br><br><center><img title="클릭하시면 원본크기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style="MARGIN: 5px 0px; CURSOR: hand" height="346" hspace="0" src="http://file.dkbnews.com/userdata9/f0/1040/news/16_85b6f89b41cae26786ac72365fff771b.jpg" width="520" border="1"></center><br><div style="FONT-SIZE: 100%; LINE-HEIGHT: 150%" align="left">▲플로렌스의 태평양변에 발달한 거대한 해안사구의 모래언덕을 시속 60km를 질주하며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짜릿함을 선사하는 듄버기 투어 모습. <a class="lw" href="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cs=bz&amp;p=%C7%C3%B7%CE%B7%BB%BD%BA" target="_blank"><span style="COLOR: #000000">플로렌스</span></a>는 하이웨이 101호선으로 달릴 수 있는 오리건 코스트의 대표적인 어촌관광지다.</div><br><br><br>천국으로 통하는 길, 101번 하이웨이를 타라, 아름다운 드라이브 도로, 오리건 코스트<br>&nbsp;자동차여행을 좋아하는 분. 죽기 전 오리건 코스트(태평양변)의 하이웨이 101호선(현지에서는 ‘하이웨이 원오원’이라고 부름)만큼은 꼭 한 번 달려보시기를 권한다. 세상에 이보다 아름다운, 그리고 편안히 드라이브를 즐길 만한 해안도로가 또 있을까 싶다. <br><br>&nbsp;그 시작은 플로렌스라는 어촌마을이다. 오리건 코스트에서도 아름답기로 이름난 타운으로 사이우슬로 강이 호수처럼 마을 배후를 장식한 멋진 곳이다. 어촌의 옛 모습은 올드타운에 잘 보존돼 있다. 묵은 곳은 고즈넉한 강 풍광을 발코니에서 즐길 수 있는 강변 모텔 리버하우스인. 그날 저녁은 왁자지껄 소란 피우며 맥주 잔 기울이는 선창주점 스타일의 펍에서 피시앤드칩스와 맥주로 식사를 들었다. 플로렌스에서는 그게 제격이다. <br><br>&nbsp;플로렌스에서는 꼭 즐겨야 할 세 가지가 있다. 사구 드라이빙과 바다사자 동굴관람, 그리고 헤세타 등대 촬영이다. 플로렌스의 해안사구는 규모도 크지만 아름답기도 그지없는 자연의 경이, 그 자체다. 그 사구를 제대로 보자면 시랜드어드벤처에서 운행하는 듄버기 탑승(사구 주행용 사륜구동차)이 제격인데 롤러코스터 이상의 짜릿함을 맛본다.<br><br>&nbsp;오리건 코스트는 미국에서 가장 멋진 등대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곳 중 하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19세기의 헤세타 등대. 헬기에서 내려다봐야 제격이지만 시라이언 케이브(바다사자 동굴)에서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 동굴은 태평양 해안의 절벽 아래 형성된 12층 건물 높이의 거대한 해식동굴로 바다사자가 새끼를 낳고 돌보는 천혜의 장소. 동굴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바다사자를 관찰한다. 헤세타 등대는 이 동굴의 반대편에 마련된 전망대에서 바라다 보인다.<br><br>&nbsp;헤세타 등대를 지나 닿은 곳은 뉴포트. 플로렌스만큼 아름다운 어촌마을이다. 플로렌스와 다른 점이라면 이곳만큼은 아직도 수백 척의 고깃배가 드나드는 진짜 어촌이라는 사실. 그래서 마을에는 해산물 식당이 많다. 비치도 잘 발달해 해안에는 휴가용 주택도 많다.<br><br><img title="클릭하시면 원본크기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style="MARGIN: 5px 0px; CURSOR: hand" height="346" hspace="0" src="http://file.dkbnews.com/userdata9/f0/1040/news/20_db3a17f7bcac837ecc1fe2bc630a5473.jpg" width="520" border="1"><br><center>▲오리건 피노누아의 주산지인 윌러멧 계곡의 스위트칙스 와이너리</center><br><br><br><center><img title="클릭하시면 원본크기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style="MARGIN: 5px 0px; CURSOR: hand" height="346" hspace="0" src="http://file.dkbnews.com/userdata9/f0/1040/news/71_135007e7085979a7d5b41ce54c0e54d7.jpg" width="520" border="1"></center><br><div style="FONT-SIZE: 100%; LINE-HEIGHT: 150%" align="left">▲오리건 피노누아의 주산지인 윌러멧 계곡의 던디에 자리잡은 랑에 와이너리의 와인. 백포도주는 피노그리, 적포도주가 피노누아다.</div><br><br><br>프랑스 와인 이긴 자부심…사랑방 같은 시음장, 하늘이 내린 선물, 오리건 피노누아 와인<br>&nbsp;와인 러버라면 ‘저지먼트 오브 파리’라는 말을 알 것이다. 1976년 파리에서 열린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미국 와인이 프랑스 와인을 이긴 ‘사건’을 말한다. 이때 출품된 것은 캘리포니아 레드와인. 오리건 피노누아도 비슷한 전기가 있었다. 1979년. 최초(1965년)로 윌러멧 계곡에 피노누아를 심은 데이비드 레트가 프랑스에서 열린 와인올림픽에서 예상을 뒤엎고 3등을 거머쥐었다. 피노누아라면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 것을 세계 최고로 쳤다. 그 때문에 자존심 상한 부르고뉴의 와인메이커 로베르토 드루엥은 이듬해 재경기를 요청했고 이번에는 레트가 2등으로 한 계단 더 올라섰다. 7년 후 드루엥은 윌러멧 계곡에 피노누아 포도밭을 일궜다.<br><br>&nbsp;기자가 찾은 곳은 윌러멧 계곡의 중심도시인 유진 외곽의 시골. 부드러운 능선의 구릉이 펼쳐진 작은 계곡은 무척이나 낯익은 모습이었다.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을 생각나게 할 만큼. 윌러멧 계곡은 부르고뉴와 위도도 비슷하다. 재배하기 까다롭기로 이름난 피노누아가 오리건에서 멋진 와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데는 이런 공통점도 작용했으리라. <br><br>&nbsp;킹에스테이트는 오리건에서도 손꼽히는 고급 와인 메이커다. 피노누아 품종만큼은 100% 유기농으로 재배할 만큼 애착이 강하다. 와이너리가 한눈에 조망되는 언덕마루의 방문센터는 자체가 멋진 레스토랑이다. 식탁에 제공되는 야채와 과일 잼 대부분이 직접 유기농기법으로 재배한 것이다. <br><br>&nbsp;멀지 않은 곳에 있는 스위트칙스 와이너리는 킹에스테이트와는 분위기가 정반대로 아주 캐주얼했다. 목조건물의 시음장은 서부개척시대의 바처럼 꾸며졌다. 카우보이 차림의 뮤지션이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손님들은 음식을 가져와 이곳 와인을 곁들여 먹는다. 동네 사랑방같이 이용되는 편안한 공간이었다.<br><br>‘관문’ 포틀랜드 가려면 노스웨스트항공 편리<br>오리건의 관문인 포틀랜드로 가는 가장 빠르고 편한 루트는 노스웨스트항공(NWA)을 이용하는 것. 노스웨스트는 지난해 델타와 합병해 미국 최대 규모 항공사가 됐다. 규모만 최고가 아니라 서비스에서도 최고다. 지난해 10월 발간(미국 교통부 항공정책시행처)된 ‘항공여행 소비자 보고서’에 따르면 6개 분야 중 4개에서 1위다. 그것은 △정시출발도착률(각각 85.3%) △수화물처리 오류 최저 △소비자불만 신고 최저 △최고 정시운항률(비행 취소율 0.5%). <br><br>로리 로프그렌 전무(아시아태평양지역 고객 서비스 및 공항운영담당)는 “지난해 연평균 정시출발률 82.8%는 정시운항능력을 한 차원 끌어올린 주목할 만한 수치”이라면서 “이를 바탕으로 아시아 허브인 나리타공항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br><br><br><center><img title="클릭하시면 원본크기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style="MARGIN: 5px 0px; CURSOR: hand" height="305" hspace="0" src="http://file.dkbnews.com/userdata9/f0/1040/news/6_e89666feb714ab9c3946f28f00c5d8c4.jpg" width="520" border="1"></center><br><br><br>여행정보<br>◇항공로=인천∼나리타∼포틀랜드. 이 노선은 노스웨스트항공( www.nwa.com/kr )이 매일 운항한다. 나리타(출발 오후 3시 25분)∼포틀랜드(도착 오전 7시 20분)는 10시간 30분 안팎 소요.<br><br>◇홈페이지<br>▽스키장 △www.timberlinelodge.com △www.mtbachelor.com △www.willamettepass.com ▽와이너리(유진) △www.kingestate.com △www.sweetcheekswinery.com △www.langewinery.com(던디) ▽숙소 △www.hotellucia.com △www.sunriver-resort.com △www.riverhouseflorence.com ▽어트랙션 △www.sealandadventures.com(플로렌스) △www.sealioncaves.com(플로렌스) △www.hecetalighthouse.com(플로렌스) ▽레스토랑 △www.theblacksmithrestaurant.com(벤드) △www.georgiesbeachsidegrill.com(뉴포트) ▽현지정보 △www.traveloregon.com △www.travelportland.com △www.mthoodterritory.com △www.visitcentraloregon.com △www.visitoregoncoast.com △www.visitlanecounty.org<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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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Eye to the world</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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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3 Apr 2009 15:34:28 GMT</pubDate>
		<dc:creator>하야니</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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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아프간의 역사(퍼온글)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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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00%" border="0"><tbody><tr><td width="80%"></td><td align="right" width="20%"></td></tr></tbody></table><div class="POST_BODY">아프가니스탄 공화국(Islamic Republic of Afganistan).<br>북부 평원지대는 농업지대고, 힌두쿠시 산맥으로 구성된 중부 산악지대와 리게스탄 사막을 포함한 남서부 고원지대로 나뉘어져 있다. 여러 광물 자원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교통 환경이 불편하여 거의 개발되지 못했으며 북부 평원지대의 천연가스만 개발되어 있다. 현재는 대규모 양귀비 재배로 아편 수출이 이 나라의 주된 수입원이다. 척박한 환경 탓에 양귀비 이외의 작물 재배가 어려워 양귀비 재배를 근절할 방법이 없다. 오죽하면 이 나라의 양귀비 재배를 허용하고 모르핀 등 약품 제조로 유도하자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겠는가.<br><br>국민의 절반 가량은 파슈툰 족(45%). 그외 타지크인(25%), 하자라인(10%), 우즈베크인(8%), 투르크멘인 등이 국민을 구성하고 있다. 공용어는 파슈투어고, 다리어가 1/3, 북부 지역에는 알타이어에 속하는 우즈베크어와 투르크멘어도 사용하고 있다.&nbsp;국민의 85%는 수니파 이슬람교도이고 15%는 시아파 이슬람교도다.<br><br>아프가니스탄 지역은 BC 6세기에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지배 아래 있었다. BC 4세기에 알렉산드로스(알렉산더)가 이 땅을 점령했다. 알렉산드로스 사후 셀레우코스 왕조가 일부를, 인도 북부의 마우리아 제국이 나머지 땅을 통치했다. 그 뒤에는 박트리아 왕국의 영토가 되었다. BC 2세기에는 인도 쿠샨 왕조의 카니슈카 왕에게 정복되었다. 불교가 전파되었고, 불교는 오랫동안 영향을 주었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나 현장의 대당서역기에도 이 곳의 불교 이야기가 나온다. 특히 바미얀 국의 신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는데, 이곳에 그 유명한 바미얀 석불이 있었다. 현장의 대당서역기에는 그 불상에 대해서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이 석상은 2001년 탈레반에 의해 파괴되었다. <br><br>이후 에프탈 왕조와 사산조 페르시아의 지배 아래 있을 때 힌두교가 전파되었다고 한다. 힌도교는 불교의 전파와 더불어 서서히 전파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쿠샨 왕조의 예술 양식에도 힌두교적인 흔적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힌두교도들은 아직도 남아있다. 탈레반은 이들 힌두교도들도 극렬 탄압 중이다. 힌두교도들은 힌두교도라는 표식을 붙이고 다녀야 한다.<br><br>870년경 이슬람 사파르 왕조 시대에 이슬람이 전파되어 이슬람교를 믿게 되었다. 1219년에 몽골에게 점령되었고 몽골 제국이 붕괴된 후에는 인도 무굴 제국과 페르시아 사파위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1700년대 초에 와서 페르시아 군주 나데르 샤에 의해서 무굴 제국의 영향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나데르의 경호대장이었던 아흐마드 칸 아브달리가 아흐마드 샤 두라니라는 이름으로 아프가니스탄 지역을 차지하여 독자 왕국으로 탄생했다.<br><br>그러나 1722년 두라니가 죽은 후 부족들의 불화와 영국, 러시아의 음모로 왕국은 붕괴되어 버렸다. 영국은 이 지역을 식민지로 만들고 싶어했으나 끊임없는 항쟁을 통해 독립을 유지했다. 3차례의 전쟁이 있었다. (1839~1842, 1878~80, 1919)&nbsp;<br><br>1919년 왕국으로 출발한 아프가니스탄은 1930년대부터 안정된 정치가 실시되었으나 1973년 국왕 외유 중에 국왕의 사촌에 의한 쿠데타가 일어났고 그 반동 여파로 좌파 혁명이 일어나 군주제를 종식시켰다. 공화국이 탄생했다. 1977년 좌파정당 PDPA(아프가니스탄 인민민주당)의 온건파 Parcham(파르캄)파와 급진파 Khalq(칼크)파는 1978년 정권을 잡자 곧 분열했다. 또한 맑시즘에 입각한 개혁 때문에 농촌에서는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다.<br><br>1979년에 좌익 정권을 수호하기 위해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 파병을 실시했다. 반군은 PDPA 정권을 무력화시키며 게릴라 전을 감행해 소련 군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이 시기에 수백만 명의 국민들이 파키스탄과 이란으로 망명했다. 수렁에 빠진 소련 군은 1988년 5월부터 철군하기 시작했다. 이 전쟁의 여파로 소련은 해체되고 만다.<br><br>이후 아프가니스탄은 정권을 둘러싼 길고 긴 내전에 돌입한다.<br><br>아프가니스탄 내전 (1989년 ~ 1992년) - 소련군 철수 완료(1989) PDPA 정권과 무자헤딘 간의 내전 종식 (2백만 명의 사망자와 5백만 명의 난민 발생...)<br>아프가니스탄 내전 (1992년 ~ 1996년) - 무자헤딘 간의 내전 끝에 탈레반 집권<br>아프가니스탄 내전 (1996년 ~ 2001년) - 탈레반 정권 시기의 내란<br>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2001년) - 9.11 테러로 인한 미국의 침공으로 탈레반 정권 붕괴<br><br>탈레반이 나왔다. 탈레반은 1994년 10월, 2만 5000여 명의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에서 결성한 수니파 무장 이슬람 정치조직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은 9.11 테러를 주도한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조직 알 카에다를 옹호하고 있는데, 같은 조직은 아니다. 이들은 근본주의 이슬람교도로 인류문화유산인 바야마 불상을 파괴해버리거나 여성의 인권을 극도로 제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는 과격파다.<br><br>1992년 공산 정권으로부터 수도 카불을 탈환한 사람은 Ahmad Shah Massoud(아마드 샤 마수드) 장군이었다. 타지크인 출신으로 소련 항쟁에서 가장 탁월한 전략가로 평가받은 사람이다. 마수드 장군은 1973년 공산 정권 수립 후 1975년 파키스탄으로 망명했다가 이슬람에 대한 탄압이 극심해지자 1978년 고향 판지시르에 잠입하여 게릴라 전을 펼치기 시작한다. 이때 나이가 26.<br><br>소련 군은 이 탁월한 전략가에 의해 극심한 피해를 입고 대규모 작전을 통해 마수드 검거에 나서지만 그때마다 농락만 당하고 만다. 마수드가 북부동맹(정식 명칭은 아프가니스탄 구국 이슬람연합전선 United Islamic Front for the Salvation of Afghanistan, UIF)을 이끌며 아프가니스탄의 동북부에서 소련 군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을 때, 아프가니스탄 남부에는 이슬람 당이라는 조직이 미국의 지원 아래 성장하고 있었다.<br><br>이슬람당과 마수드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자생 게릴라 조직을 이끄는 마수드가 보기에는 미국의 지원을 업은 이슬람당도 외세이기는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이 이슬람당이 훗날의 탈레반을 탄생시키는 모체다.<br><br>마수드 장군은 국방장관이 되었다. 내전은 끝나지 않았다. 이 시기의 아프가니스탄의 정권은 하도 복잡해서 정리하기도 쉽지 않다. 이 혼란기에 무자헤딘 단체들은 지방 군벌화 하여 국민들을 괴롭히는 집단이 되었다. 이때 사우디아라비아의 갑부 오사마 빈 라덴이 아프가니스탄 정국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4년 빈 라덴의 지원을 받아 결성된 탈레반은 산적떼나 다름없는 무자헤딘들을 격파하고 정국의 태풍으로 등장하게 된다. <br><br>빈 라덴은 소련 침공 시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가 소련 군과 싸웠기 때문에 그의 명성은 탈레반 결성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 무렵 미국이 빈 라덴을 직접 지원했다는 말도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br><br>1991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미국이 쿠웨이트 탈환에 나서며 사우디 아라비아 안에 미군 기지가 들어섰을 때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국을 비난하며 미국과의 밀월 관계를 끝냈다. 1991년 빈 라덴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아진 사우디 아라비아를 떠나 수단으로 이주했다. 1993년 빈 라덴은 소말리아에서 미군을 테러했으며, 미국은 수단에 있던 빈 라덴을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빈 라덴은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가 탈레반을 결성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들 탈레반의 목표는 오직 정권 장악에 있을 뿐이다. 그를 위해서는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들은 과격파 회교주의자로 비이성적인 집단에 불과하다. 빈 라덴이나 탈레반 지도자 오마르가 소련 군과 싸웠다고 해도 마수드 장군의 위업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행한 인권 침해는 끔찍한 수준이었다. 텔레비전 시청도 금지되었고, 여자들이 다니는 학교는 폐쇄되었으며, 원시적인 수준의 이슬람 형벌이 부활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타 종교에 대한 탄압도 극심하게 행해졌다.<br><br>강정구 교수는 탈레반을 우리나라의 임시정부와 비교했으나, 이는 말도 되지 않는 비교다. 탈레반은 1994년에 결성되었으며 소련 군과 싸운 집단도 아니다. (다만 탈레반의 지도자로 알려진 오마르는 소련 군과 싸운 인물이다. 그는 그 전쟁에서 한쪽 눈을 잃었다고 전해진다.) 더구나 이들은 민간인을 납치해서 자신들의 요구 조건을 관철하려는 파렴치한 집단이다. 김구 주석의 임시정부가 민간인 테러를 일삼았던가? 탈레반의 이런 행각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br><br>마수드 장군이 훗날 탈레반을 비난한 말이 있다.<br><br>"여자와 아이들을 죽이는 것을 어찌 지하드라 부를 수 있는가?"<br><br>탈레반은 원래 그런 집단이었던 것이다. 탈레반의 입장에서 눈의 가시였던 마수드 장군은 9.11 테러 직전에 탈레반에 의해서 제거되었다. 자살 특공대가 알 자지라 방송사 기자로 위장한 뒤 카메라에 넣어둔 폭탄을 폭발시킨 것이다. 판지시르의 사자라 불렸던 아프가니스탄의 전쟁 영웅은 동족의 손에 의해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마스드 장군에 대해서 좋은 트랙백이 걸렸네요. <a href="http://unbeliever.egloos.com/112425" target="new"><span style="COLOR: #800080">◆진짜 '이슬람 전사'를 아시나요?[클릭]</span></a>) <br><br>본래 학교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던 마수드 장군은 많은 학교들을 건립했는데, 이또한 근본주의자들과 충돌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가 세운 학교는 남녀공학이어서 공격받은 것이라고 한다. 마수드 장군은 그런 반발을 코웃음쳤다고 한다. <br><br>"조국을 재건하려면 여자도 배워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라면서.<br><br>마수드 장군의 문제와 빈라덴과 탈레반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런 반론도 들어와 있다. 여러가지 자료로 보아 상당한 근거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아프가니스탄 문제에 대해 더 깊은 관심이 있는 분들은 들러보면 좋겠다. <br><br><a href="http://sonnet.egloos.com/3319942" target="new"><span style="COLOR: #800080">CIA-마수드, 빈 라덴-탈리반 관계 [클릭]</span></a> sonnet님의 포스팅에 링크<br><br>현재 아프가니스탄의 대통령인 Hamid Karzai(하미드 카르자이)는 1957년생으로 이후이 부족의 족장이기도 하다. 그는 인도 유학생 출신으로 소련 군과 맞서 싸웠으며, 초기에는 탈레반과 사이가 좋았으나 탈레반의 무분별한 원칙주의에 반발하게 되었다. 그 대가로 탈레반은 1999년에 그의 부친을 암살했다. 그는 탈레반과 투쟁에 나섰으며 2001년 미군의 지지 아래 과도정부의 수반에 오를 수 있었다. 당시 그의 입각은 임시방편의 얼굴마담에 불과한 것이라고 했으나 아직까지는 정치력을 발휘해 아직까지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d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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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Eye to the world</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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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4 Mar 2009 14:22:34 GMT</pubDate>
		<dc:creator>하야니</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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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이라크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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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라크 2011년 내 철군 합의 <!-- e:post_title_for_opms_nochange --><p>&nbsp;</p><div class="postscrip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267" align="right" border="0"><tbody><tr><td width="15"></td><td><img src="http://news.joins.com/component/htmlphoto_mmdata/200808/htm_2008082301260840004100-001.GIF" width="250" border="0"></td></tr><tr><td width="0" colspan="2"><!--관련컴포넌트--></td></tr><tr><td colspan="2" height="15"></td></tr></tbody></table><!--img_tag_s-->　미국과 이라크가 2011년 말까지 이라크에서 미군을 철수하기로 사실상 합의했다.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를 21일 방문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누리 알말리키 총리와 호시야르 제바리 외무장관을 만나 ▶내년 6월까지 이라크 도시와 마을에서 미군을 철수하고 ▶2011년 12월 31일까지 미 전투병력을 완전 철수하는 것을 목표로 한 일정표(time table) 초안에 합의했다고 워싱턴 포스트(WP) 등 미 언론이 22일 보도했다.<br><br>제바리 장관은 라이스 장관과 회담한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초안 내용을 공개했다. 라이스 장관도 “협상 초안은 아주 좋다”며 “미국과 이라크는 희망적인 일정표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그동안 철군 시한을 정하는 것을 극력 반대해 왔다. 하지만 이라크 군경의 능력 향상으로 치안이 안정돼가는 데다 이라크 국민의 미군 철군 요구가 갈수록 높아지자 최근 입장을 완화했다. <br><br>이런 가운데 라이스 장관이 21일 이라크를 전격 방문, 알말리키 총리와 직접 담판을 벌여 철군 협상 타결의 돌파구가 열렸다. 철군안은 부시 대통령과 이라크 측의 알말리키 총리, 쿠르드족 자치정부 지도자의 승인을 거쳐 다음달 소집되는 이라크 의회에서 통과되면 최종 확정된다.<br><br>초안에 따르면 미군의 2011년 완전 철수는 시한(데드라인)이 아니라 이라크의 치안상황을 봐가며 결정하는 목표 시점으로 돼 있다. 또 미군이 완전 철수한 뒤에도 이라크군 훈련 등 지원 업무를 위해 미군 수만 명이 잔류하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라크 측 협상대표인 모하마드 하무드는 “2011년 말에 이라크 군경의 능력을 재평가할 것”이라고 밝혀 철군 시점이 조건부임을 확인했다. 이와 함께 초안은 미국이 고용한 용역 인력의 범죄 관할권을 이라크에 넘기도록 합의했다. <br><br>그러나 미국은 이라크 주둔 미군의 범죄 관할권에 대해선 미국에 맡긴다는 주둔군 지위협정(SOFA)을 유지할 것을 주장하는 반면 이라크는 이에 반대하고 있다. 따라서 초안이 최종 합의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AP 통신은 전망했다.<br><br>현재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은 14만4000명에 달한다. 2003년 3월 이라크전을 개시한 이래 현재까지 미군 전사자는 4100명을 넘는다. 이런 가운데 미국과 이라크가 철군에 합의할 경우 미국 대선에도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 후보는 “집권 후 16개월 안에 이라크에서 미군을 완전 철수시키겠다”는 조기 철군론을 공약 1호로 내세워 왔다. 반면 존 매케인 공화당 대선 후보는 “이라크 전쟁에서 이길 때까지 철군 시한을 정해선 안 된다”고 주장해 왔다. 미군 철군이 가시화될 경우 오바마는 “내 공약이 옳았다”며 철군 주장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일 것으로 전망된다. 매케인의 정책 변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br><br>이라크 주둔 한국군의 철수 시기도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이라크전 직후인 2003년 4월 말 서희·제마부대 1진을 보냈고 이듬해 8월 아르빌 지역에 자이툰부대 3650명을 파병했다. 그 뒤 매년 감군을 계속해 현재는 650명이 남아 있다. 　<br><br><br><stephan@JOONGANG.CO.KR></d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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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3 Mar 2009 15:08:02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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