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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는 유령이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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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인간에게 제각기 다른 운명이 있다 할지라도 인간을 초월하는 운명은 없다. - A. 카뮈</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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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2 Sep 2009 09:48:40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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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는 유령이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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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인간에게 제각기 다른 운명이 있다 할지라도 인간을 초월하는 운명은 없다. - A. 카뮈</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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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아주 짧은 메모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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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1.<br>&nbsp;계급사회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 인류 역사상 계급이 없었던 시간은 아주 순간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점은 합리성 - 지인과 토론하던 때 사용하던 용어로는 에피스테메가 적합하지 않을까? - 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br><br>&nbsp;군과 사회의 계급제도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군의 특수성 보다는 군이 채택하고 있는 합리성이 사회의 합리성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어느 쪽이 채택하고 있는 합리성이 더 높은 단계에 있느냐 마느냐의 문제와는 상관없는 문제다.<br><br>&nbsp;어느 쪽이 더 높은 수준의 합리성이냐를 따진다면, 최근 이라크전의&nbsp;모습까지 고려할 때 명백히 한국군이 채택하고 있는 합리성은 시대에 지극히 뒤떨어진 19세기 말의 일본 무사들을 연상시키는 야쿠자들의 합리성이다. 서구 부르주아들의 자유주의적 합리성이 조금씩 조금씩 정착되어가고 있는 사회의 합리성과는 비교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아주 천박한 합리성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전사에서도 아주 쉽게 찾을 수 있다.<br><br><br>2.<br>&nbsp;사회 변혁을 이끄는 소수의 이상주의자들이라는 테제가 있다. 그러나 이 테제가 감추고 있는 진실은 이상주의자들의 이상은 결코 실현 불가능한 몽상이 아니라는 점이며 바로 그렇기에 사회가 움직여왔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미래는 가능성이 아니라 불확실성이 지배하고 있기에 그렇지만 말이다. 어쩌면 미래는 주사위 던지기 나름이다.<br><br>&nbsp;바로 그렇기에 나는 코뮤니즘의 승리를 확신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불확실성에 근거한, 알튀세르 말마따나 우발성에 근거한 것임을 확실히해둔다. 나는 역사 발전에 단계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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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메모</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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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2 Sep 2009 09:48:40 GMT</pubDate>
		<dc:creator>RedGhost</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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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그들이 사는 세상에 대한 메모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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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nbsp;이 드라마가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이 드라마가 어떤 진실을 뚫고 있기 때문이다.<br><br>&nbsp;대중들은 대중문화를 통해서 욕망한다. 무엇이 먼저이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대중문화가 대중들의 기호에 맞추어야만 자신들을 유지할 수 있듯이 대중들도 대중문화를 통해서만 욕망하기 때문이다. 겔브레이스와 촘스키의 글에 익숙한 나는 대중들은 대중문화를 통해서 욕망을 배운다는 쪽에 손을 들고 싶다.<br><br>&nbsp;그리고&nbsp;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대중문화를 통해서 부여되는 의미, 욕망들은 기본적으로&nbsp;비현실적이라는 점이다. 그 이유는&nbsp;일반적으로 현실적이라면 굳이 돈을 지불해서 대중문화를 향유할 필요가&nbsp;없기 때문이고,&nbsp;매우 현실적인 욕망, 의미에 천착해들어가는 사람이라면 굳이 대중문화에 천착할 이유가 없다.&nbsp;이런 사람들은 아마도&nbsp;아무도 읽지 않는 책들을 읽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여기서 말하는 현실적이라는 것은 일상적인 의미 이외에도 사회과학에 의해서 파헤쳐져서 이데올로기가 만든 정신착란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는&nbsp;의미도 있음을 밝혀둔다.)<br><br>&nbsp;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드라마의 내용은 이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사람들의 욕망을 조절하고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이런 문제의식에 충실하다. 비슷한 소재를 다루었을뿐, 흔해빠진 드라마였던 온에어 따위와는 비교를 거부하게 하는 점은 바로 이 때문이다.<br><br>&nbsp;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로 부딪치고 고생한다. 아마도 생계 현장에서 고생하거나, 삶을 조금이라도 되돌아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매우 보편적인 문제를 담고 있다.&nbsp;잘나가는 싸가지 없는 동료 때문에 한 별별 고생에,&nbsp;결혼 문제, 집안 문제 등등&nbsp;그러나 문제는 매우 현실적인 이들이 비현실적인 욕망들을 담는 드라마를&nbsp;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br><br>&nbsp;욕망은 비현실적이지만, 현실에 존재한다.&nbsp;드라마 속에서 욕망과 현실은 분리되어 있지만 말이다. 지오는 따라서 드라마는 삶을 반영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제는&nbsp;자기 욕망에 충실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다.<br><br>지오의 경우 그 자신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지 못하다. 그에게 현실은 버겁다.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인물 소개글처럼 그는&nbsp;바깥 세계에 나가는 것이 두렵다.&nbsp;그 때문에 준영과의&nbsp;결별을 선언하고, 한 여자와 수년간 엮이기도 한다.(전형적인 어장관리의&nbsp;사례가 아닐까?)<br><br>&nbsp;물론 준영의 아버지가&nbsp;준영에게 해준 말처럼 드라마처럼&nbsp;사는 것도, 자기 욕망에 충실한 것도&nbsp;쉬운&nbsp;것은 아니다. 알콜중독이고, 언제나 화려하지만 위태로운 삶을 사는 윤영의 모습처럼 말이다. 준영의 말처럼 윤영은 (드라마 속) 존재 자체가 비현실적이다.&nbsp;어쩌면 욕망은&nbsp;그 자체로 약간은 비현실적일지도 모른다.<br><br>&nbsp;진실이 버거워 자신의 눈을 찔러버린 오이디푸스처럼, 지오는 늘 눈이 아프다.&nbsp;자신이 만드는 드라마에서 현실과 욕망은 분리되어 있지만&nbsp;현실과 욕망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그는 늘 아프다.<br>&nbsp;그리고 시청자들도 이것이 버거운지 별로 안본다. 오히려 좀더 편안한 에덴의 동쪽을 더 많아 보는 듯 하다. 겉보기에 에덴의 동쪽보다 폭력씬도 없고 - 잘해야 술집에서 시비 붙는 거? - 역동적이지 않은 이 드라마가 더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드라마를 통해서 도피하고 싶은 현실을 드라마가 다시 들이밀기 떄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현실을 곱씹으라고 나레이션까지 달아주니 얼마나 불편한가? 이 드라마는 이런 의미에서 정말로 독한 드라마이다.<br><br>P.S 군대 갈때가 되니 생각이 정리가 안되는 것이 느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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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메모</category>

		<comments>http://redghost.egloos.com/1230324#comments</comments>
		<pubDate>Wed, 17 Dec 2008 05:02:12 GMT</pubDate>
		<dc:creator>RedGhost</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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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경제학은 없다. - 미셀 무솔리노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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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출처: <a href="http://gall.dcinside.com/list.php?id=economy&amp;no=29292&amp;page=2">http://gall.dcinside.com/list.php?id=economy&amp;no=29292&amp;page=2</a><br><br></p><div><span style="FONT-FAMILY: Verdana"><strong><span style="COLOR: #ff0000">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는, 경제학은 자신의 대상이 무엇인지 정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span><span style="COLOR: #2e8b57"></span><span style="COLOR: #4169e1"><span style="COLOR: #ff0000">경제학은 사실 방법의 학문(심지어는 종종 평균값의 학문)이지 결코 목표를 가진, 궁극 목적의 학문이 아니다.</span> </span></strong>공리주의자의 반성에서 출발한 경제학은 사고의 여러 영역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다양해졌다. 경제학은 정밀과학과 인문과학에서 도구를 빌려 왔다. 경제학에는 정밀과학과 같은 정확함을 지니고자 하는 야심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인문과학과 같은 신중함도 필수적으로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경제학은 수학에서 함수를 빌리고 수많은 정리(定理)를 만들었으나, <strong><span style="COLOR: #ff00ff">공리 중에서 검증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span></strong> 경제학은 논리학을 이용하지만 종종 결정이라는 어휘의 의미를 정의조차 못한다. (어떤 경제학자는 우산을 팔기 때문에 비가 온다고 완강하게 고집을 부릴 수도 있겠다.) <br><br>경제학은 역사학으로부터도 빌려온다. 그러나 역사학은 이론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오류가 있다고 경제학은 결론지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하여 『2차 세계 대전은 더 나중에 터졌어야 했다. 왜냐하면 전쟁은 팽창 단계의 산물이니까(누가 이 사실에 대해 의심을 하랴?)』라고 주장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경제학이 문학에, 즉 풍요하지만 또한 그런 만큼 잘 이해되지도 않는 문학에 빠져드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존 메이너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의 『일반이론 (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1936) 이래로 경제학이 생산해낸 것이라곤 무미건조한 산문뿐이었다. 내용에 대한 과도한 야심은 필연적으로 따분한 형식으로 표현된다. 어느 경제학자도 실질적으로 문체를 세련되게 다듬는 데 공헌한 바 없다. 어쩌면 마리가 '노련한 문체'라고 칭한 것은 예외랄 수 있겠다. 그러나 부르디외(Bourdieu)의 말에 따르면, 그 문체의 특성이란 "형식적으로는 정확하지만 의미적으로는 비어 있는 담론"을 생산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와 반대로 경제학자들은 흉물스런 신조어와 싫증날 정도로 반복되는 괴상한 이미지만을 생산해 내는 데에는 지대한 공헌을 한다. 그리하여 시장은 자주 '불안정하고' 자본은 정기적으로 '열에 들뜬다'. 불행하게도 전망은 여전히 '막혀 있다'. 심지어 경제학자가 자신의 어휘를 정의하는 순간에도 이런 인상주의적인 산문에 사로잡힌다. 그리하여 경제학은 '전체의 분배를 주재하는 질서'(Andre Chaineau, 통화정책과 기구, 1970)'이며 '기업가는 불확실한 차이를 지탱하는 주체 (Henri Guitton, 정치경제학, 1985)'이다. 첫 번째 정의는 논문의 구상에 적용 해볼 수 있고, 두 번째 정의는 복권 투기꾼에게 적용해 볼 수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서 경제학이라는 학문의 엄격함이 어떠한 것이지 알 수 있다. <br><br><strong><span style="COLOR: #0000ff">자신의 대상을 정의할 능력이 없는 경제학은 집중적으로 빌려 온다.</span></strong> 경제학의 차용에 기여하지 않는 학문은 거의 없다. 사회학, 유체역학, 언어학, 철학, 열역학, 심리학, 기호학, 기상학 등 이렇게 해서 경제학 지식은 엄청난 지식의 잡동사니로서, 상호학문성의 모습을 가장해 나타난다. 경제학자는 모든 수단을 이용한다. 그는 대단히 호기심이 많고, 그래서 자신의 건축물을 위해서는 철근 장선과 안개의 단면을 무차별적으로 사용하는 건축가다. <br><br>경제학의 수학적 공식을 위해 많은 일을 한 빌프레도 파레토(Vilfredo Parato)는 경제 변동을 순진하게도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 행위의 발현이 지속적인 행보로 나타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것은 대게는 구불구불한 곡선 모양을 한다. 인간이 정 중앙에서 걸음을 멈추는 경우는 대단히 드물다는 사실을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한다. 인간은 항상 이쪽이나 저쪽을 조금씩 강조한다. 인간은 희망에서 두려움으로, 지나친 신뢰에서 지나친 불신으로 옮겨간다. (Vilfredo Parato, 정치경제학강의, 1896)" <br><br>경제학자들로 구성된 종교집단은, 그 집단이 전파하는 지식처럼 대단히 많고 이질적이다. 이 거대한 가족의 구성원들을 혼동해서는 안 될 것이다. 모두가 똑같은 야심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며, 똑같은 권위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br><br><span style="COLOR: #0000ff">맨 밑에 보병, 해설자, 세속인이 있다. 말하자면 저널리스트, 시사평론가, 경제학과 사회학을 가르치는 사람들, 기업 컨설턴트, 이론에 대한 야망을 가진 실무 전문가들이 그들이다.</span><strong> </strong>이들의 임무는 대중을 가르치는 일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뛰어 넘을 수 없는 한계, 즉 자신들의 능력이라는 한계 안에서 거대한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있다. 이들은 문외한에게 경제를 설명하려 애쓰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마치 유행처럼 변하는 상투적인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것으로 그친다. <br><br><span style="COLOR: #0000ff">그보다 약간 위에는 수도사 계급의 세계가 있다. 사상의 예배당, 안락하고도 포근한 대학과 연구소라는 은신처, 비교적(秘敎的)인 종교의식에 헌신하는 숨겨진 조직이 그것이다.</span> 이 곳에 있는 수도사들의 첫째 임무는 쓰고 말하는 것이다. 끝없이 논문을 쓰고, 이어서 자신들이 쓴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지루하기 짝이 없는 토론회에 집결하는 것이다. 프랑스에는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이 우리에게 쏟아 붓다시피 하는 막대한 양의 출판물은 프랑스 문헌 관리소의 문에 이르자마자 곧장 절판된다. 이것이 그들의 수고가 현실적으로 어떠한 가치를 가지는가를 서글프게 반영한다. <br><br><span style="COLOR: #0000ff">최상층에는 무대의 불빛이 잘 비치는 곳에 고위 성직자들과 추기경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론을 창조해내는 수준까지 발돋움할 능력은 없으나 모든 이론을 자신들이 대표하겠다는 야심을 가진 이 사람들은 대중과 전문가들, 그리고 특히 권력자들로부터 무한대의 신뢰를 누리고 있다. </span>프랑스에서 이 계층은 아탈리-맹- 소르망(Attalie-Minc-Sorman ; 정치적 감수성을 고려해 좌파부터 우파까지)이라는 성스러운 삼위일체로 대표된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수히 많다. 평생토록 계급의 최상층에 위치하며 무시할 수 없는 저작을 정기적으로 쓰고자 하는 그들은 왕자에게 충고하는데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 (우리는 아탈이와 맹의 저서는 알고 있고, 기 소르망은 1989년에 쓴 『20세기를 움직인 사상가들』이라는 책의 제목이 저자의 야심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대단히 높기는 하나 그들이 뛰어 넘을 수 없는 이 수준이 바로 그들 능력의 한계이다. <br><br><span style="COLOR: #0000ff">경제학이라는 창공의 정점에는 모두가 인정하는 별들, 경제사상의 교황들이 빛나고 있다. 바로 노벨상 수상자들 말이다. </span>이들은 당연히 상당한 고령이다. 이들은 평생을 학설의 요점의 참뜻을 명확히 하는데 바쳤으며, 그런 경지에 이른 것으로 평가받지만, 대개는 앵글로색슨 경제사상이 지배하고 있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대변하는 것에 불과한 경우가 종종 있다. 진정 정당한 평가를 요구할 권리를 가졌던 예외적인 인물은, 한 명의 프랑스인과 한 명의 러시아인 뿐이었다. <strong><span style="COLOR: #ff0000">따라서 상당수에 이르는 수상자 명단에서 진정으로 그 영예를 받아 마땅한 전후의 많은 경제학자의 이름을 찾아보았자 헛일이다. 한 사람 만을 예를 들어보자면, <font size="+0">피에로 스라파(Piero Sraffa)</font>를 들 수 있을 것이다. <br></span></strong><br>모든 노벨상 수상자들이 자신들의 지고한 직무의 본질에 대해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몇몇은 지혜롭게도 자신들의 연구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다. 그런 이들은 주위에 대해 경멸어린 태도로 일관하며, 사람들이 간청해 올 때면 자신들은 이 속세의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할 말이 없노라고 말한다. 노벨상 수상자 중 유일한 프랑스인인 모리스 알레(Mourice Allais)의 경우가 그렇다. 반대로 다른 이들은 출판, 인터뷰, 여러 토론회에서 발언을 쏟아 낸다. 그야말로 정치 책임자들에게 영향력을 강제하고자 하는 것이 그들의 야심이며, 그들이 분명하게 밝히는 희망이다. 생존해 있는 경제학자 중에서 아마 가장 유명하고도 가장 존경받는 경제학자인 <strong><span style="COLOR: #0000ff">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span></strong>의 경우가 그렇다. <br><br>여느 전문가 집단과도 비교할래야 비교할 수 없는 이 종교집단이 지닌 권능이 어느 정도인지를 분명히 밝힐 때다. 철학자들이 생각해내는 데 2000년 걸린 것을, 경제학은 두 세기 만에 실현하려고 한다. 즉 문제는 세상에 대해 숙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변모시키는 것이다. 두 세기 만에 경제학은 자신의 계획을 실현했다. 즉 자신의 형상대로 세상을 만드는 것, 그리고 다른 모든 비전은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 말이다. <br><br>지금 세상은 전적으로 경제학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언뜻 보기에는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이 이념을 과소평가 한다면 실수하는 것이다. 지금 이 세상이 전적으로 경제학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은 경제학의 논리에 따른다는 의미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라면, 바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의미할 것이다. 즉 이 세상은 이제 지난 시대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효율성, 합리성, 자원의 최적 배분, 그리고 모든 형이상학의 거부라는, 말하자면 '당연한' 원칙들을 마침내는 받아 들인다는 뜻일 것이다. <br><br><strong><span style="COLOR: #ff0000">시간을 초월하는 논리이기를 바라지만, 경제학은 하나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다.</span></strong> 천성적으로 모든 이데올로기를 부인하는 이데올로기, 그리고 현실적으로 매일같이 자신에게 부과되는 반증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노동 방식, 삶의 방식, 심지어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방식까지 강요하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br><br>==================================</span></div><p><br>&nbsp;</p><div><span style="FONT-FAMILY: Verdana"></span></div><p><br>&nbsp;</p><div><span style="FONT-FAMILY: Verdana">원서명: L'imposture economique<br>저자: Musolino, Michel</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Verdana"></span></div><p><br>&nbsp;</p><div><span style="FONT-FAMILY: Verdana">김찬우 역『경제학은 없다』, 한국경제신문사, 1999 <br></span></d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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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NOTICS</category>

		<comments>http://redghost.egloos.com/1212333#comments</comments>
		<pubDate>Wed, 03 Dec 2008 05:15:32 GMT</pubDate>
		<dc:creator>RedGhost</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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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과거를 향하여 앞으로 스라피언 경제학 - 박만섭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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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출처: <a href="http://sdocu.synap.co.kr/preview/view.php?seq=2092646">http://sdocu.synap.co.kr/preview/view.php?seq=2092646</a><br><br><!--StartFragment--><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4pt; FONT-FAMILY: 바탕">제 9장</span></p><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span lang="EN-US"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바탕"></span></p><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4pt; FONT-FAMILY: 바탕">과거를 향하여 앞으로 - 스라피언 경제학</span></p><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nbsp;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p><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right"><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박만섭 (고려대학교)</span></p><p class="바탕글">&nbsp; <o:p></o:p></p><p class="바탕글">&nbsp; <o:p></o:p></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약관 27세의 나이에 당시에 (적어도 영어권에서는) 경제학 그 자체라 여겨지고 있던 경제학 이론의 핵심을 비판하는 논문을 발표하여 경제학계를 뒤흔들다 ― 그로부터 35년이 지난 후 원숙기에 접어든 원로 경제학자로서, 다시 그 당시 (그리고 지금까지도) 주류를 형성하고 있던 (있는) 경제학 이론의 가장 중심개념을 비판하는 저서를 발표하여 다시 한 번 경제학계를 뒤흔들다. </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한 생애동안 경제학계를 두 번이나 ‘뒤흔든’ 이 경제학자는 피에로 스라파(Piero Sraffa, 1898-1983)이다. 이 장에서는 우선 스라파의 생애를 간략히 살펴본 후 그의 이론적 공헌을 소개한다. 다음에는 이에 영향받아 경제학 이론의 여러 부문에서 기존의 이론을 비판하면서 새로이 이루어지고 있는 연구방향―스라피언 경제학(Sraffian economics)이라 불리는 연구방향</span><span style="FONT-FAMILY: 바탕">―을 소개하기로 한다.</span></p><p class="바탕글">&nbsp; <o:p></o:p></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바탕">1. 사상적 소용돌이의 진원지로서, 그러나 조용한 학자의 생애</span></p><p class="바탕글">&nbsp; <o:p></o:p></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피에로 스라파는 1898년 이탈리아의 북부 토리노(Torino)에서 유복한 유대인 집안의 독자로 태어났다. 1916년 토리노 대학의 법학과에 들어간 스라파는 곧 맑스주의 철학자이자 운동가인 안토니오 그람쉬 (Antonio Gramsci, 1891-1937)와 친분을 맺게 된다. 그람쉬같은 행동가는 아니었지만, 스라파는 1919년 그람쉬가 창간한『오르디네 누오보』(</span><span lang="EN-US" style="FONT-STYLE: italic; mso-fareast-font-family: 바탕">L'Ordine Nuovo</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span><span style="FONT-FAMILY: 바탕">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정치적․철학적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21년 이후에는 편집진의 한명으로 활동한다).</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스라파의 학위논문(1920)은 에이나우디(Luigi Einaudi, 1874-1961)의 지도 하에 작성되었다. 논문의 주제는 전후 기간(1914-20년) 동안의 이탈리아 인플레이션에 대한 연구인데, 여기서 그는 기존의 단순한 화폐수량설을 넘어서서, 물가의 변동이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에 어떻게 서로 다른 영향을 끼치는가, 그리고 이 영향에 있어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이 어떻게 비대칭적인 영향을 끼치는가를 분석하고, 그에 기초하여 국내의 물가안정을 최우선으로 하는 경제정책을 주장하였다.</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학위를 마친 스라파는 잠시 동안 은행에서 근무한 후, 1921-22년 영국의 런던정경대학(London School of Economics)에서 강의를 듣는다. 이 기간 중에 케인즈와 접하게 되는데, 케인즈는 당시 23세의 이 젊은 학생이 화폐이론 및 정책에 대하여 갖고 있던 사고가 자신의 것과 매우 흡사함을 알고는,</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1922년 스라파로 하여금 이탈리아 은행시스템에 대한 논문 두 편을 영국의 왕립경제학회의 학회지인『이코노믹 저널』(</span><span lang="EN-US" style="FONT-STYLE: italic; mso-fareast-font-family: 바탕">Economic Journal</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과 맨체스터에서 발간되는 신문 『맨체스터 가디안』(</span><span lang="EN-US" style="FONT-STYLE: italic; mso-fareast-font-family: 바탕">Manchester Guardian</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특별호에 발간하도록 하였다. 이 논문에서 스라파는 이탈리아의 은행시스템이 은행지도부와 정부관료들의 부패와 무능 때문에 어떠한 상황에 처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묘사하였다.</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이렇게 화폐이론 및 정책에 대한 관심으로 경제학을 시작한 스라파는 1923년 이탈리아 남부 페루쟈(Perugia) 대학에서 경제학 이론 강의를 하면서부터 순수이론(가치분배이론)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 첫 번째 결과는 바로 위에서 말한 그의 첫 번째 ‘경제학 뒤흔들기’가 되었다. </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1925년 발표된 “비용과 생산량 사이의 관계에 대하여”(Sulle relazioni fra costo e quantità prodotta)는 당시 (적어도 영어권의 경제학계에서는) 경제학 그 자체라 불리던 마샬(Alfred Marshall, 1842-1924)의 경제학을 그 핵심부에서 비판한다. 이 논문은 마샬 경제학 전체의 존립근거가 되는 논의의 일부, 즉 상품공급곡선 개념에 대한 결정적인 비판을 담고 있다. 마샬의 우상향하는 공급곡선은 (1) 완전경쟁의 가정 하에서 (2) 부분균형 분석을 통하여 (3) 규모에 대한 수확체감의 법칙(혹은 규모에 대한 비용체증의 법칙)에 따라 도출된다. </span><span style="FONT-FAMILY: 바탕">스라파의 논문은 마샬의 공급이론의 핵심을 이루는 이 세 가지 요소가 서로 양립할 수 없음을 논증한 후, 이론경제학이 다루어야 할 것은 현실경제의 ‘제 1차적 근사치’로서 규모에 대한 비용일정의 경우라고 제안한다</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이 논문에 힘입어 스라파는 같은 해에 이탈리아 남부 사르디냐(Sardinia) 섬의 칼랴리(Cagliari) 대학의 정치경제학 교수에 임명된다. 또 이 논문은 </span><span style="FONT-FAMILY: 바탕">당시 『이코노믹 저널』의 편집인으로 있던 에지워스(Francis Ysidro Edgeworth, 1845-1926)의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에지워드는 곧 스라파에게 같은 주제의 영어논문을 이 학술지에 기고하도록 초청하였다. “완전경쟁 하에서 수확의 법칙”(The laws of returns under competitive conditions)이라는 제목의 이 1926년 논문에서 스라파는 현실경제의 ‘제 1차적 근사치’로서의 비용일정의 경우를 넘어서 경제학이 좀 더 현실적인 비용체감의 경우를 다룰 것을 제안한다. 그 방법은 마샬의 완전경쟁 가정을 버리고 불완전 경쟁의 가정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즉 한 상품의 생산량은 체증하는 생산비용에 의해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가격을 낮추지 않고는 더 많은 양을 판매할 수 없는 상황에 의해 제한된다는 것이다. </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1925년과 1926년의 두 논문은 젊은 경제학자 스라파를 일약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이론경제학자로 만들었다. 그리고 스라파의 1926년 제안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조운 로빈슨(Joan Robinson, 1903-1983)과 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챔벌린(Edward Chamberlin, 1899-1967)에 의해 시작된 1930년대의 불완전경쟁 이론의 시발점이 되었다. </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1927년 케인즈의 주선으로 스라파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강의를 맡게 된다. 그러나 3년 동안 강의를 한 후 스라파는 강사직을 사임하고 그 당시 개관한지 얼마되지 않은 정경학부 도서관인 마샬 도서관의 사서직과 학생 연구지도만을 담당하게 된다.</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강의직은 그만 두었지만 스라파가 케임브리지의 경제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케인즈가 1930년 『화폐론』(</span><span lang="EN-US" style="FONT-STYLE: italic; mso-fareast-font-family: 바탕">A Treatise on Money</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과 1936년 『일반이론』(</span><span lang="EN-US" style="FONT-STYLE: italic; mso-fareast-font-family: 바탕">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을 발간하는 동안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진행되었던 화폐이론의 논의에서, 스라파는 칸(Richard Kahn, 1905-1989)과 조운 로빈슨 등 젊은 경제학자들과 케인즈 사이의 연구모임이었던 ‘케임브리지 서커스’(Cambridge Circus)의 초기 활동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스라파는 케인즈의 이론(특히 『일반이론』에서 전개된 이론)을 그리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고 그 때문에 점차 ‘서커스’에서의 활동을 줄여갔다. 이 기간 동안 주목받을 만한 케인즈와의 협력작업은 흄(David Hume, 1711-1776)의 『인간본성론 요약본』(</span><span lang="EN-US" style="FONT-STYLE: italic; mso-fareast-font-family: 바탕">Abstract of a Treatise on Human Nature</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을 공동편집한 일이었다. 서문에서 이들은 이 책이 이전에 생각되었던 것처럼 아담 스미스의 저술이 아니라 흄의 것임을 결정적으로 밝혔다.</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1931년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망한 젊은 경제학자가 책을 출판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케인즈가 유효수요부족을 중심개념으로 하여 발전시키려고 하던 경기변동 설명과는 다른 경기변동이론을 제시한다. 물론 이 젊은 경제학자는 하이에크(Friedrich A. von Hayek, 1899-1992, 197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이고, 출판된 책은 『가격과 생산』(</span><span lang="EN-US" style="FONT-STYLE: italic; mso-fareast-font-family: 바탕">Prices and Production</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이다. 하이에크는 같은 해 케인즈의 『화폐론』을 비판하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케인즈는 이에 반박하려 했으나 하이에크가 사용하는 파레토(Vilfredo Pareto, 1848-1923)의 일반균형이론과 뵘-바베르크(Eugen von Böhm-Bawerk, 1851-1914)의 자본이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을 알고는, 이들에 능통했던 스라파에게 하이에크 비판을 부탁하였다.</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이에 부응하여 1932년 스라파는 ‘화폐와 자본에 대한 하이에크 박사의 이론’(Dr. Hayek on Money and Capital)을 발표한다. 이 논문은 하이에크의 화폐이론을 그의 이론체계 내부에서 논리적 모순점을 찾는 방식으로 비판한다. 결과적으로 이 논문은 크게 두 가지 면에서 의미를 갖게 되었다. 하나는 그의 결정적인 비판으로 인하여 하이에크의 경제이론은 그 이후 오랫동안 사장(死藏)되었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이 논문의 후반에서 제시하는 ‘상품이자율’(the commodity rate of interest) 개념은 이 후 케인즈가 그의 『일반이론』제 17장에서 화폐의 특성을 논의할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1951년 스라파는 경제학의 역사에서 결코 잊혀질 수 없는, 자타가 공인하는 업적을 이룬다. 1930년 강의직을 사임할 즈음, 스라파는 영국왕립협회의 부탁으로 『리카도 총서』(</span><span lang="EN-US" style="FONT-STYLE: italic; mso-fareast-font-family: 바탕">The Works and Correspondence of David Ricardo</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를 편집하기 시작했었다. 스라파는 이 총서가 리카도의 저술과 서한을 ‘완전하게 망라하는’ 것이 되기를 원했고, 이 작업은 스라파의 완벽주의를 여실히 보여주는 작업이었다 ― 몇 년으로 예상되었던 작업은 21년이 걸렸고 드디어 1951년 총서가 발간되었다. 경제학사 상 가장 중요한 경제학자들 중의 한 사람인 리카도의 저술과 서한을 완벽한 편집작업을 통해 후세의 학자들이 사용할 수 있게끔 했다는 공로 이외에도,</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이 총서의 편집은 또 다른 중요성을 갖는다. 이 총서의 제 1권―리카도의 『경제학 원리』(</span><span lang="EN-US" style="FONT-STYLE: italic; mso-fareast-font-family: 바탕">Principles of Economics</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의 ‘편집자 서문’에서 스라파는 리카도 가치이론의 발전과정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하여, 아담 스미스에서 리카도에 이르는 (그리고 맑스에까지 이어지는) 고전학파 경제이론의 구조를 새로운 시각에서 볼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하였다(상세한 논의는 아래 2절 참조). 이 해석은 그 이후 리카도 이론에 대한 해석과 고전학파에 대한 경제학사 상의 논의에서, 그 논의가 스라파의 해석을 보충하는 것이든 아니면 그 해석에 반대하는 것이든, 언제나 그 논의의 중심에 서게 된다. 또한 이 해석은 그의 1960년의 책에서 전개되는 그의 이론체계에 그 기초를 제공한다.</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1960년 스라파는 마침내 그의 책 『상품에 의한 상품생산』(</span><span lang="EN-US" style="FONT-STYLE: italic; mso-fareast-font-family: 바탕">Production of Commodities by Means of Commodities</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를 출간한다. 그리고 이는 스라파의 두 번째 ‘경제학 뒤흔들기’가 되었다. 이미 1928년 경에 스라파는 자신의 1960년 책에서 제시할 이론의 핵심을 케인즈에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1950년대 중반에 가서야 그는 그동안 작성해 놓았던 노트들을 정리하여 하나의 체계로 완성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책의 부제―『경제이론비판 서설』(</span><span lang="EN-US" style="FONT-STYLE: italic; mso-fareast-font-family: 바탕">Prelude to a Critique of Economic Theory</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가 말해주듯이, 그의 첫 번째 목표는 1870년 대 이후 경제학의 주류경제학으로 자리잡은 ‘한계주의 접근법’(the marginalist approach)에 대한 비판의 기초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1960-70년대의 자본논쟁은 그러한 비판의 구체적 형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스라파의 책이 부정적인 비판만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책은 1951년 『리카도 총서』의 ‘편집자 서문’에서 밝힌 고전학파 경제학의 이론체계를 발전시켜, 한계주의 경제학과는 그 기초가 전혀 다른 경제학을 성립시키려는 현대적 노력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스라파의 비판적인 결과와 건설적인 성과를 살펴보기 전에 스라파의 또 다른 공헌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 스라파는 현대철학의 전환점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1951)은 1922년 『논리-철학 논고』(</span><span lang="EN-US" style="FONT-STYLE: italic; mso-fareast-font-family: 바탕">Tractatus Logico-Philosophicus</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를 통해, 언어와 실재의 관계를 규명하려고 하였다. 그에 의하면, 언어와 실재는 동일한 논리적 구조를 갖는다 ― 즉 무엇인가를 말하는 문장(명제)은 그 무엇을 그대로 그림처럼 반영한다는 것이다. 『논고』 이후 더 이상 철학에 자신이 공헌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 비트겐슈타인은 그 후 케임브리지를 떠났다가 1929년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이 때 쯤에는 스라파도 이미 케임브리지에서 최고의 사상가(경제학자) 중의 하나로 명성을 굳히고 있었다. 같이 트리니티 컬리지(Trinity College)에 있었던 두 사람은 정기적인 대화를 나누었고, 이 대화를 통하여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1922년 사상을 부인하는 전혀 다른 사상을 형성하게 된다. 일화에 의하면, 어느 날 스라파는 비트겐슈타인에게 이탈리아의 나폴리 사람들이 하는 몸짓―손가락 끝으로 턱 아래를 밑에서 위로 긁어올리는 몸짓으로 경멸이나 의구심을 표현함―을 보이면서 이 행동의 논리적 형태가 무엇인가를 묻는다. 물론 이 몸짓으로 스라파가 전하고자 했던 것은, 실재와의 대응관계보다는 사회적 관습이 어떻게 인간의 언어(몸짓 포함)의 의미를 결정하는가라는 비판적 질문이었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관점의 변화는 그의 사후 출간된 『철학적 탐구』(</span><span lang="EN-US" style="FONT-STYLE: italic; mso-fareast-font-family: 바탕">Philosophical Investigations</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1953)로 결정화된다.</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이 책이 그 이후 철학에서 발전된 ‘일상언어학파’(ordinary language school)의 효시가 된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스라파는 1983년 케임브리지에서 생을 마감한다. 평생 몇몇 안되는 논문들과 단 한 권의 책(그것도 총 99쪽의 얇은 책)만을 발표하였지만 그 영향은 20세기의 경제학 (그리고 철학, 더 나아가 사회과학 전반의) 논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개인으로서의 그의 생애는 케임브리지의 이상적인 상아탑의 조용한 학자로서의 생애였지만, 그의 사상은 항상 사상적 소용돌이의 진원지로 작용하였다.</span></p><p class="바탕글">&nbsp; <o:p></o:p></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바탕">2. 잃어버린 경제학을 찾아서: 고전학파 경제학(잉여접근법)의 이론적 구조</span></p><p class="바탕글">&nbsp; <o:p></o:p></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1951년 『리카도 총서』의 제 1권 ‘편집자 서문’에서 스라파는 리카도의 가치분배이론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잉여’(social surplus)의 개념에 기초하여 이윤율 결정의 문제를 다룬다고 해석한다. 리카도의 이러한 접근방식은 케네(François Quesnay, 1694-1774)로부터 시작하여 아담 스미스와 리카도를 거쳐 맑스에 이르는 이론체계의 전통에 속한다. 그러나 ‘잉여접근법’(the surplus approach)이라 불릴 수 있는 이 전통은 1870년대 이후 ‘한계주의 접근법’이 도래하자 ‘묻혀지고 잊혀졌던’ 전통이기도 하다.</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스라파의 1951년 작품과 1960년 작품은 이 ‘묻혀지고 잊혀졌던’ 잉여접근법을 재발굴하는 작업이자 다듬는 작업의 결과이다.</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한계주의 접근법에서 이윤율, 임금 및 지대는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결정된다. 즉 각 분배변수에 대응하는 ‘생산요소’, 즉 ‘자본’, 노동 및 토지</span><span style="FONT-FAMILY: 바탕">에 대하여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을 구할 수 있고, 이 두 곡선이 일치하는 점에서 이들 분배변수들이 결정된다 [그림 2]. </span><span style="FONT-FAMILY: 바탕">그러나 잉여접근법에 따르면 이들 분배변수들은 각기 다른 방식에 따라서 결정된다. 먼저 지대를 살펴보자. 지대는 두 가지 형태, 즉 외연지대(extensive rent)와 내연지대(intensive rent)로 발생한다. 한 상품의 생산량이 증가하는 상황을 상정하자. 그러면 이전에는 상대적으로 ‘비옥도’가 낮아(=사용비용이 높아) 사용되지 않았던 토지를 이 상품의 생산에 투입할 필요가 발생한다. 비옥도가 높은 토지에서 생산되건 비옥도가 낮은 토지에서 생산되건 이 상품은 동일한 가격을 받을 것이고, 비옥도가 높은 토지를 사용하는 생산자는 비옥도가 낮은 토지를 사용하는 생산자에 비해 더 높은 ‘수익’을 올리게 될 것이다. 이 수익의 차이가 토지 소유자에게 지대의 형태로 돌아간다. 이것이 외연지대(extensive rent)이다. 반면 동일한 양의 토지를 사용하면서 생산성이 낮은(=비용이 높은) 생산기술을 이전의 생산성 높은 생산기술과 동시에 사용함으로써 생산량을 증가시킬 수도 있다. 이때 생산성 높은 생산기술이 사용되는 토지의 소유자에게 발생하는 지대가 내연지대(intensive rent)이다. </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임금률은 일반적으로 그 시대의 사회적 상황에 따라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아담 스미스에게 임금은 노동공급자와 노동사용자 사이의 권력관계에 따른 협상력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으로, 케네와 리카도에게는 사회적․문화적 요소를 고려한 폭넓은 의미의 ‘생계수준’(subsistence level)에서 결정되는 것으로, 맑스에게는 ‘산업예비군’의 크기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이해된다.</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지대이론에 따르면, 가장 ‘비옥도’가 낮은 토지의 소유자 혹은 가장 생산성이 낮은 생산기술이 사용되는 토지의 소유자에게는 지대가 발생하지 않는다. 이윤율 결정을 논의할 때 잉여접근법의 이론은 이러한 ‘한계토지’(marginal land)의 경우를 분석한다.</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다시 말하면, 이윤율 결정의 분석에서 지대의 문제는 제거된다. 이윤은 경제에서 주어진 기간에 생산되는 사회적 총생산물에서 그 생산을 진행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투입되어 소모되어야 하는 투입물―노동자에 대한 임금과 물질적인 투입물의 소모분―을 삭감한 ‘사회적 잉여’(social surplus)의 형태로 나타난다. </span></p><p class="바탕글">&nbsp; <o:p></o:p></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사회적 총생산물(</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 필수적인 투입물 소모량</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사회적 잉여(</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 이윤(</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총임금(</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물질적 투입물 소모량(</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span></p><p class="바탕글">&nbsp; <o:p></o:p></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이제 이윤율(</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은 이 이윤을 필수적인 투입물 사용량에 대한 비율로 표현한 것이다. </span></p><p class="바탕글">&nbsp; <o:p></o:p></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1)</span></p><p class="바탕글">&nbsp; <o:p></o:p></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따라서 이윤율은 사회적 총생산물(</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과 필수적 투입물 사용량(</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이 알려지면 결정될 수 있다. 이윤율 결정을 위한 이 조건은 잉여접근법에서 그대로 충족된다. 왜냐하면, 잉여접근법의 가치분배이론은 다음의 것들을 분석을 위해 주어져 있는 것(data)으로 가정하기 때문이다. </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S1: 생산기술상태</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S2: 임금률 </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S3: 사회적 생산물의 수준과 구성</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한 생산방법은 한 상품 한 단위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노동의 양과 물질적 투입물의 양을 결정한다. 주어진 한 시기에 한 경제가 사용할 수 있는 생산방법들의 집합은 주어져 있고, 위에서 언급한대로 임금률은 사회적 상황에 의해, 이윤율 결정에 앞서, 결정된다. 경제 전체의 생산물은 경제에서 진행되고 있는 자본축적의 상태와 상품들에 대한 수요에 의해 결정되지만, 이들이 끼치는 영향은 주어진 시기와 주어진 경제의 특수한 상황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에 순수이론적인 접근법보다는 역사적인 접근법으로 분석될 수 있다. S1에 의해 각 상품 생산량 한 단위당 필요한 노동투입량을 알 수 있고, 이것에 S2에서 주어진 임금률을 곱하면 총임금(</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을 구할 수 있다. 역시 S1에 의해 각 상품 생산량 한 단위당 필요한 물질적 투입물의 양을 알 수 있고, 이것에 S3에서 주어진 </span><span style="FONT-FAMILY: 바탕">를 곱하면 이 사회적 생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경제전체적으로 투입되어야 할 물질적 투입물의 양(</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을 구할 수 있다. 이제 </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span><span style="FONT-FAMILY: 바탕">의 크기를 모두 알고 있으므로 이윤율은 위의 (1)식에 따라 결정된다.</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그러나 이러한 이윤율 결정에 있어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것이 있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생산물(</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총임금(</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을 구성하는 임금재, 물질적 투입물(</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은 동질적인 단 하나의 상품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서로 이질적인 여러 상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위의 식에 따라 이윤율을 구하려고 할 때 이러한 이질적인 상품들을 그대로 </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에 대입한다면, 이윤율은 구해질 수 없다.</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이 문제는 각 상품이 하나의 공통된 척도로 측정될 때에만 해결될 수 있다. 고전학파의 가치이론은 바로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노력이라 볼 수 있다. 아담 스미스는 각 상품이 구입할 수 있는 노동의 양, 즉 지배노동(labour commanded)의 양으로 각 상품량을 표현하려 했고, 리카도와 맑스는 각 상품을 생산하는데 직접․간접적으로 투여되어야 하는 총노동, 즉 투하노동(labour embodied)의 양으로 각 상품량을 표현하려 했다.</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그러나 지배노동량으로 측정할 경우, 사회적 생산물의 크기 자체가 이윤율이 변화하면 같이 변화하는 특징을 갖는다. 그런데 이윤율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생산물의 크기를 먼저 알아야 하는데, 이 후자의 크기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이윤율을 알고 있어야 한다. 지배노동이론에 의한 이윤율 결정은 순환논법에 빠진다. 투하노동량으로 측정할 경우, 이윤율은 순환논법에 빠짐이 없이 위의 식에 따라 구해질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이렇게 결정되는 이윤율은 일반적으로 실제 경제에서 상품들의 생산과 교환활동에 의해 발생하는, 따라서 실제로 경제에서 관찰되는, 이윤율과 다르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상품들의 교환비율, 즉 상대가격이 일반적으로 상품들에 투하되는 노동량에 비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후자의 이윤율을 구하기 위해서는 상품들의 상대가격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상대가격을 알기 위해서는 이윤율이 미리 알려져 있어야 한다. 잉여접근법에 따른 이윤율 결정방식은 다시금 순환논법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스라파의 1960년 책의 공헌 중의 하나는 바로 이 문제를 밝히고 ‘해결’한 데 있다. 그 ‘해결’은, 상대가격과 이윤율은 </span><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FAMILY: 바탕">동시에 결정된다</span><span style="FONT-FAMILY: 바탕">는 것이고, 그러한 동시결정을 위한 방정식체계를 제시하는 것이었다. </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잉여접근법이 다루고자 하는 경제상태는 모든 산업에서 이윤율이 균등하게 되는 ‘장기위치’(long period position)이다.</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이윤율이 균등하게 되는 이유는, 한 산업에서 다른 산업보다 이윤율이 더 높다면 항상 더 높은 이윤율을 추구하는 생산자들은 자신들의 자본을 그 높은 이윤율 산업으로 이동시킬 것이고, 이러한 자본의 움직임은 모든 산업에서 이윤율이 균등하게 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러한 자본의 움직임이 바로 잉여접근법에서 상정하는 경쟁의 상황이다.</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이 없어지는 상태가 ‘장기위치’이다. </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상품들의 상대가격은 바로 이렇게 모든 산업에서 이윤율이 균등하게 되게끔 결정된다. 여기서 우리는 상품들의 상대가격 결정에 대한 잉여접근법의 이해와 한계주의 접근법의 이해가 기본적으로 다름을 알 수 있다. 후자에서 상대가격은 상품들의 수요-공급 메커니즘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전자에서 상대가격은 그러한 수요-공급의 메커니즘보다는 이윤율 균등이라는 장기 상황을 발생시키는 과정에서 결정된다.</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잉여접근법에서 이윤율과 상대가격은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주어진 것에 근거하여 결정된다. 이 결정을 다루는 부분이 가치분배이론이다. 그러나 경제학의 범위는 이 가치분배이론의 범위보다 훨씬 크다. 왜냐하면 이윤율과 상대가격을 결정하기 위해 주어진 것으로 상정하는 세 가지 항목들이 어떻게 결정되는가를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 설명은 경제학의 다른 분야들에 속한다. 그러나 가치분배이론에서의 이윤율과 상대가격의 결정이 수학적인 엄밀한 관계에 의해 설명될 수 있는 반면, 세 가지 주어진 것의 결정은 그렇지 못하다. 그 결정에는 수없이 많은 요소들―분석대상인 경제의 특성, 주어진 시기, 좀 더 넓은 의미의 사회적․정치적 상황 등등―이 관여하며, 주어진 것들 간의 상호 영향, 그리고 그 주어진 것에 따라 결정되는 상대가격과 이윤율로부터의 역영향 등도 고려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잉여접근법에서 이 주어진 것들의 분석은 좀 더 역사적인 분석방식을 채택한다―아니면 적어도 이 주어진 것들의 분석은 이윤율과 상대가격의 분석과 분리되어 진행된다.</span></p><p class="바탕글">&nbsp; <o:p></o:p></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바탕">3. 경제학 뒤흔들기: 자본논쟁</span></p><p class="바탕글">&nbsp; <o:p></o:p></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1870년대에 형성되기 시작한 한계주의 접근법은 그 때까지의 잉여접근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윤율(그리고 임금률과 지대)을 설명하려는 시도였다. 이들 이론체계의 출발점은 다음의 세 가지 주어진 것들이다.</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M1: 생산기술상태</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M2: 소비자 선호</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M3: 생산요소(토지, 노동, ‘자본’)의 부존량과 그 배분</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이들 세 가지 주어진 것에 근거하여, 한계주의 접근법은 각 상품 및 각 생산요소에 대한 수요함수와 공급함수를 도출한다. 수요함수는 상품 혹은 생산요소의 가격과 그 수요량의 역관계로 표현되고, 공급함수는 가격과 공급량의 정관계로 표현된다. 이 두 함수가 일치하는 점에서 가격과 양이 동시에 결정된다. </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1960-70년대의 자본논쟁은 바로 이러한 가격결정 방식에 대하여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경제학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표현된 근본적인 회의에서 시작되었다.</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이들에 의하면 한계주의 접근법의 근본적인 문제는 M3에 따라 그 양이 주어져 있는 ‘자본’의 개념에 있다. ‘자본’은 실제로는 생산에 투입되는 여러 이질적인 물질적 투입물(철, 쌀, 기계 등)을 일괄적으로 지칭하는 개념이다. 한계주의 접근법에서 주어진 자본의 부존량을 표현하는 방식은 커다랗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자본량’을 하나의 동질적인 크기로 표현하는 방식이고, 두 번째는 여러 이질적인 자본재들을 그 물질적 양으로 그대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1960-70년대의 자본논쟁에서 논쟁대상이 되었던 것은 첫 번째 방식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두 번째 방식에 대해서도 첫 번째 방식에 대해 가해졌던 것과 유사한 비판이 가해질 수 있다는 주장이, 가레냐니와 쉐폴트 (Bertram Schefold, 1943- ) 등에 의해 제기되고 있다). </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이질적인 상품들의 총체를 하나의 양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 상품들의 이질성을 초월하는 공통의 척도가 있어야 한다 ― 그리고 논리적으로 타당한 이 자본의 척도를 찾는데 한계주의 접근법은 문제에 봉착한다. 여기서 우리는 한계주의 접근법이 직면한 문제가 비록 다른 맥락에서이지만 스미스-리카도-맑스의 가치이론이 직면했던 문제와 동일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공통의 척도로서 한계주의 접근법에는 다시 두 가지 개념이 사용되었다.</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첫째는 제본스(Stanley Jevons, 1835-1882), 멩거(Carl Menger, 1840-1921), 뵘-바베르크 등에 의해 제시된 것으로서, ‘평균생산기간’(the average period of production) 개념이다. 그러나 스라파의 책과 자본논쟁은, 평균생산기간의 크기로 표현된 자본량이 이윤율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논증하였다. 그러나 한계주의 접근법의 이윤율 결정방식―자본의 공급함수와 수요함수의 교차를 통한 방식―을 위해서는 자본의 부존량이 이윤율로부터 독립적으로 주어져야 한다.</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빅셀(Knut Wicksell, 1851-1926)은 이러한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자본재들의 물질적인 양에 해당 자본재의 가격을 곱한 가치의 합으로 자본량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표현된 자본량도 이윤율의 변화에 따라 같이 변화하는 특성을 보이고, 이것은 이윤율을 결정하기 위해 이에 선행해서 주어져 있어야 하는 자본의 부존량이라는 한계주의 접근법의 조건을 위배한다.</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따라서 자본재의 총체를 하나의 ‘자본량’으로 표현하는 이론은 모두 논리적 타당성을 갖지 못한다. </span><span style="FONT-FAMILY: 바탕">이러한 논리적 결점을 모른 채, 혹은 알면서도 무시한 채, 한계주의 접근법은 자본의 부존량이 이윤율과 독립적으로 주어져 있다고 가정하고 이론을 전개한다. 한계주의 접근법에서건 잉여접근법에서건, 한 경제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주어져 있는 생산방법의 전체집합(위의 주어진 것 S1과 M1)에서 각 산업에 가장 낮은 비용을 발생시키는 생산방법들의 집합을 구할 수 있다. 이것을 경제학에서는 비용극소화 생산기술의 선택 문제라 부른다. 자본논쟁에서 밝혀진 논리적 결함을 무시한 한계주의 접근법은 이러한 비용극소화 생산기술을 이윤율에 대해 단조적으로 순서지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이윤율이 낮은 수준에서 높은 수준으로 변화함에 따라 비용극소화 생산기술은 좀 더 ‘자본집약적’인 생산기술에서 좀 더 ‘노동집약적’인 생산기술로 바뀌어 선택된다. 한 주어진 이윤율(의 범위)에서 한 특정 생산기술이 비용극소화하는 것으로 선택되면 다른 이윤율(의 범위)에서 이 생산기술은 결코 비용극소화 생산기술이 될 수 없다. 자본논쟁은 이러한 주장이 근거없는 주장임을 논리적․수학적으로 논증하였다. 즉 한 이윤율(의 범위)에서 비용을 극소화하는 생산기술이 이윤율이 증가함에 따라 비용극소화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다가 더 높은 이윤율(의 범위)에서 다시 비용극소화 조건을 만족시키는 현상을 논리적으로 배제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이 현상을 기술재전환(reswitching) 현상이라 부른다. </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이렇게 비용극소화하는 생산기술의 자본가치를 소비재를 가치척도로 하여 표현하자. 이제 이 자본가치 대 노동의 비율(=‘자본집약도’)은 한계주의 접근법에 의하면 이윤율과 역관계에 있다. 즉 자본의 수요함수―비용극소화 생산기술의 자본집약도와 이윤율 사이의 함수관계―는 우하향하는 곡선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역시 자본논쟁을 통해서 이윤율과 자본집약도 사이의 관계는 정관계를 가질 수 있음이 밝혀진다. 이것을 ‘자본역전’(capital reversal)이라 부른다.</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기술재전환이나 자본역전이 갖는 이론적 중요성은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기본적인 이유는 ‘자본’이 노동이나 토지와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른 생산투입물이기 때문이다. 한계주의 접근법은 ‘자본’을 노동 및 토지와 동일한 선상에서 취급한다. 이들을 동일한 용어 ‘생산요소’로 칭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기에 ‘생산요소 가격’의 결정은 ‘자본’, 노동, 토지 모두에 대해 동일한 방식―수요와 공급의 메커니즘―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본’을 형성하는 자본재들은 생산을 위해 사용되는 생산수단인 동시에 그 자체가 경제 내에서 (경제활동을 통해) 생산되는 상품이라는 점에서, 노동이나 토지와는 명확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자본재는 생산된 생산수단(produced menas of production)이다. 스라파의 1960년 책의 제목―『상품에 의한 상품의 생산』―은 이런 자본의 특성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었다.</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둘째, 이 두 현상은 한계주의 접근법에서 우하향하는 자본의 수요함수를 도출하기 위해 의존하는 생산과 소비에서의 대체현상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한계주의 접근법에 따르면, 이윤율이 상승하면 비용을 극소화하려는 생산자들은 자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용이 낮아진 노동을 더 많이 사용하는 생산기술을 사용한다 (생산에서의 대체). 다른 한편, 좀 더 자본집약적인 생산기술을 사용하여 생산되는 소비재의 가격은 좀 더 노동집약적인 생산기술을 사용하여 생산되는 소비재의 가격에 비해 상대적으로 상승할 것이고, 소비자들은 후자의 소비재를 더 많이 수요하게 된다 (소비에서의 대체). 이 두 대체현상의 결과가 바로 이윤율과 자본집약도(노동 한 단위당 자본의 가치)의 역관계, 즉 우하향하는 자본수요함수이다. 그러나 기술재전환과 자본역전은 자본의 수요함수가 우상향할 수 있음을 보인다. 대체현상의 부인은 곧 한계주의 접근법에서 경제적 분석의 기본이유라 생각되는 ‘희소성’ 개념에 대한 부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대체의 필요성은 대체되는 것들의 희소성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셋째, 우상향하는 자본수요함수의 가능성은 자본의 수요함수와 공급함수의 교차점에서 결정되는 균형점이 불안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균형의 불안정성은 다시, 한계주의 경제학에서 사용하는 경쟁개념이 그 주어진 역할을 다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그림 3]에서 실제 이윤율이 균형값인 </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보다 높게 되면, 자본에 대한 경쟁은 좀 더 많은 자본을 수요하게 하고 이것은 이윤율을 균형값에서 더욱 멀어지게 만든다. 이 과정은 임금률이 영이 되는 상황에 이를 때까지 계속된다. 역으로 실제 이윤율이 균형값보다 작게 되면 자본에 대한 경쟁을 통하여 이윤율은 영이 될 때까지 계속 하락하게 된다. 문제는 이렇게 작동하는 경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한계주의 경제학은 현실 경제를 설명하는 힘을 완전히 잃어버린다. 동일한 논의를 노동시장에도 적용할 수 있다. 노동수요함수는 노동집약도(자본가치 한 단위 당 노동)와 임금률 사이의 함수관계를 표현한다. 물론 한계주의 경제학에서 이 함수관계는 역관계이다. 그러나 자본논쟁을 통해 밝혀진 자본집약도와 이윤율의 관계는, 노동집약도와 임금률의 관계도 항상 역관계가 아닐 수 있음을 함축한다 (노동집약도가 자본집약도의 역수이고, 임금률이 이윤율과 역관계에 있음을 상기하라). 노동시장에서의 경쟁은 노동의 초과수요가 있을 때는 임금률이 상승하고 역으로 초과공급이 있을 때는 임금률이 하락함을 뜻한다. 이제 노동수요량과 임금률이 역관계가 아니라 정관계에 있는 경우, 노동시장에서의 경쟁은 노동의 완전고용을 보장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파괴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자본논쟁의 의미는, 단순히 한 산업 혹은 경제전체의 생산량을 그 산업 혹은 경제에서 사용하는 노동과 ‘자본량’의 함수로 표현하는 집계적 생산함수에 대한 비판에만 있지 않다.</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자본논쟁의 결과는 주어진 자본의 부존량, 자본의 희소성 그리고 생산에서의 대체와 소비에서의 대체 등과 같은 한계주의 접근법의 가장 근저에 있는 기본적인 개념들의 이론적 의미를 부정하는 것이다.</span></p><p class="바탕글">&nbsp; <o:p></o:p></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바탕">4. 과거를 향해 앞으로 (Forward to the Past): 잉여접근법의 부활 그리고 발전 </span></p><p class="바탕글">&nbsp; <o:p></o:p></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1960-70년대의 자본논쟁은 주로 가치분배이론 분야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 이후 스라피언 경제학은 경제학 전반에 걸쳐 신고전파 이론을 비판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국제무역이론에서 신고전파 이론의 가장 중심을 이루는 헥셔-올린-샤무엘슨(Heckscher-Ohlin-Samuelson) 모형은 요소가격에 대한 단조감소함수로서의 생산요소 수요함수와 상품가격에 대한 단조증가함수로서의 상품공급함수에 결정적으로 의존한다. 스티드만 (Ian Steedman, 1941- ), 멧카프 (Stan Metcalfe), 매너링(Lynn Mainwaring) 등은 이 이론을 자본논쟁의 결과에 비추어 비판하고, 생산된 생산수단으로서의 자본이 존재하고 그에 대하여 양(+)의 이윤율이 존재할 때 무역패턴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를 독자적인 이론을 사용하여 논의한다. 그들에 의하면, 상품에 대한 특화는 부존자원(노동과 토지)의 비율과 일정한 관계를 갖지 않을 수 있으며(헥셔-올린 정리의 부정), 한 상품의 국내가격 상승이 그 상품의 생산에 상대적으로 집약적으로 사용되는 생산요소의 수익률을 증가시키지 않을 수도 있고 (스톨퍼-샤무엘슨 정리의 부정), 각 국가 간의 생산요소 수익률이 균등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요소가격균등화 정리 부정). 또 무역을 통해 이득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손해를 겪는 경우가 있을 수 있음을 밝힌다. 이러한 스라피언 모형은 국제투자의 경우까지 확장되어 어떻게 교역 중인 각 국가가 서로 비대칭적으로 발전하는가를 보여줄 수 있다.</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기술진보이론에서도 한계주의 접근법에서 실행되는 기술진보 분석, 즉 소득분배변수들의 비율변화 유무와 그 변화형태를 기준하여 실행되는 분석이 기술진보의 형태를 정확하고 일관되게 분류할 수 없음이 증명된다. 생산된 생산수단이 존재할 때 각 생산공정에서의 기술진보는 서로 상관적인 영향을 통해 경제전체에서 그 각 생산공정에서의 기술진보 정도보다 훨씬 큰 효과를 가져온다. 파지네티는 스라파가 1960년 제시한 소체계(subsystem)의 개념을 발전시킨 수직통합(vertical integration)의 방법을 이용하여 기술진보의 문제를 경제성장의 맥락 속에서 어떻게 다룰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으며, 쉐폴트는 스라파의 결합생산체계를 이용한 고정자본분석을 통해 기술진보 문제를 엄밀하게 다루고 있다.</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또한 조세귀착이론(tax incidence theory)에서 스티드먼은 생산된 생산수단이 존재할 때 각종의 조세(물품세, 생산요소세)가 한계주의 접근법에서 예측하는 것과는 다른 결과를 가져옴을 증명한다. 그 이유는 물론 후자의 접근법에서는 생산된 생산수단으로서의 자본을 고려하지 않고 자본을 마치 토지처럼 취급하기 때문이다. 조세가 소득분배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이 연구결과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스라파는 1960년 저서에서 화폐를 논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들은 내생적 화폐―현대산업사회에서의 화폐의 가장 주된 형태―가 어떻게 스라파 체계와 양립될 수 있는가를 논의하고 있다.</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또 스라파의 이론체계가 정학(靜學)적이라는 일반적인 이해를 넘어서, 장기균형분석이란 자본재들이 주어진 총생산의 구성에 조절되는 기간에 대한 분석이라는 점에 주안점을 두고, 1950-60년대의 신고전파 성장이론과 케임브리지 성장이론을 모두 비판하면서,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이 유효수요에 어떻게 영향받는가를 분석하려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이는 케인즈의 유효수요이론을 스라파의 가격․분배이론과 접목시키려는 시도의 일부라 볼 수 있다.</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좀더 기술적인 측면에서, 스라파의 1960년 책의 제 2부에서 제시된 결합생산이론을 수학적으로 좀더 정치하게 다듬고 그 분석을 확대하려는 시도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가 이러한 분석에 유의하는 것은 결합생산이론체계가 특히 고정자본의 문제(고정자본의 이용기간 결정이나 이론적으로 명확한 감가상각비의 결정 등의 문제)를 분석하는데 매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합생산체계는 환경문제의 분석에서도 유용한 역할을 한다. 기존의 경제이론에서 중요한 가정의 하나는 ‘무료의 처분(free disposal)’이다. 즉 (수요에 비교하여) 공급과잉이 되는 자원은 경제전체에 아무런 비용도 발생시키지 않으면서 처분될 수 있다는 가정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공급과잉되는 상품의 처분에는 비용이 발생하게 되고, 그 대표적인 예가 공해(pollution)라는 ‘상품’이다. 결합생산체계를 사용할 때, 한 상품의 생산과정을 통해 발생되는 공해는 그 상품과 결합돼서 생산되는 결합상품으로 취급될 수 있고, 이 공해를 처분하는 ‘생산방법’을 도입하게 되면 공해로부터 발생하는 비용을 다룰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때 기존의 경제학에서와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예를 들면 에너지 사용에 대한 조세는 오히려 경제전체의 에너지 사용을 증가시킬 수도 있다..</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스라파의 이론체계에서 수요의 역할은 많은 논의를 불러 일으켰다. 많은 스라피언 경제학자들이 이제 상품에 대한 수요가 스라파 체계에서도, 특히 결합생산 체계에서, 가격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상품수요의 가격에 대한 영향은 신고전파 경제학에서처럼 소비자의 선택을 통한 대체라는 좁은 개념에 기초하지 않고 다루어질 수 있다. 여기에는 좀더 폭넓은 시각에서 사회학적 ․ 인류학적 ․ 정치학적 분석이 요구된다.</span></p><p class="바탕글">&nbsp; <o:p></o:p></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스라파의 1960년 책은 한계주의 접근법에 대한 비판의 기초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그것을 통해 밝혀진 잉여접근법의 구조에 대한 새로운 이해 및 그 접근법이 풀지 못했던 문제의 해결은 새로운 이론체계를 구축할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스라피언 경제학’은 한계주의 접근법의 도래와 함께 ‘묻혀지고 잊혀졌던’ 경제학의 한 접근법을 새로이 발굴하고 다듬어서 현실 경제에 적용하려는 노력이다.</span></p><p class="바탕글">&nbsp; <o:p></o:p></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FAMILY: 바탕">더 읽을거리</span></p><p class="바탕글">&nbsp; <o:p></o:p></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1) 스라파 자신의 주요저술은 본문의 1절에서 언급되어 있다. 그의 1960년 책은『상품에 의한 상품생산』(박찬일 역, 비봉출판사, 1986)으로 번역되어 있다. 이 번역본은 스라파의 1926년 논문도 번역하여 수록하고 있다. 그의 1925년 논문의 영어번역본은 파지네티(Luigi Pasinetti, ed., </span><span lang="EN-US" style="FONT-STYLE: italic; mso-fareast-font-family: 바탕">Italian Economic Papers</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Vol. 3, 1998)에 수록되어 있다. 스라파는 방대한 양의 미발표 논문들과 메모 및 서한들을 남겼는데, 이것들은 현재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컬리지(Trinity College)의 렌 도서관(Wren Library)에 보관되어 있고, 현재 이들을 총정리한 스라파 총서가 가레냐니와 쿠르츠(H. Kurz)에 의해 편집되고 있다.</span></p><p class="바탕글">&nbsp; <o:p></o:p></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2) 스라파의 전기로는 포티에의 책(J.-P. Potier, </span><span lang="EN-US" style="FONT-STYLE: italic; mso-fareast-font-family: 바탕">Piero Sraffa, Unorthodox Economist (1898-1983)</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ondon: Routledge, 1991)를 보라. 또 롱칼랴 책(A. Roncaglia, </span><span lang="EN-US" style="FONT-STYLE: italic; mso-fareast-font-family: 바탕">Piero Sraffa: His Life, Thought and Cultural Heritage</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ondon: Routledge, 2000)의 1부를 보라. 최근에 스라파의 전기작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학자로는 날디(Nerio Naldi, 로마 제 1 대학)가 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0%; TEXT-ALIGN: left">&nbsp; <o:p></o:p></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3) 스라파 이론체계에 대한 소개서로는 롱칼랴의 1978년 책(</span><span lang="EN-US" style="FONT-STYLE: italic; mso-fareast-font-family: 바탕">Sraffa and the Theory of Prices</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ondon: Wiley)이 아직도 가장 추천할 만하다. 특히 이 책의 부록에는 1978년까지 스라파에 관하여 영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으로 발간된 거의 모든 주요 저서와 논문들에 대한 참고문헌목록이 있다 (그의 2000년 책의 제 2부는 자신의 1978년 책의 논의를 요약하고 있다). 매너링의 책(L. Mainwaring, </span><span lang="EN-US" style="FONT-STYLE: italic; mso-fareast-font-family: 바탕">Value and Distribution in Capitalist Economies: An Introduction to Sraffian Economics</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4)은 스라파의 『상품에 의한 상품생산』을 그래프를 통해 쉽게 설명한 소개서이다. 수학에 자신있는 독자라면 쿠르츠와 살바도리(H. Kurz and N. Salvadori)의 </span><span lang="EN-US" style="FONT-STYLE: italic; mso-fareast-font-family: 바탕">Theory of Production: A Long-Period Analysis </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5)를 보라. 특히 각 장 후미에 있는 연습문제들은 독자 자신의 논문을 발전시키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span></p><p class="바탕글">&nbsp; <o:p></o:p></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4) ‘스라피언 경제학’의 여러 발전방향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로는 롱칼랴의 2000년 책의 제 3부와 아스프로무르고스의 논문(T. Aspromourgos, “Sraffian Research Programmes and Unorthodox Economics”, </span><span lang="EN-US" style="FONT-STYLE: italic; mso-fareast-font-family: 바탕">Review of Political Economy</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Vol. 16, 2004)을 보라. 고전학파의 이론체계를 스라파가 제시한 방향으로 재해석한 논문으로는 단연 가레냐니의 논문(“Value and Distribution in the Classical Economists and Marx”, </span><span lang="EN-US" style="FONT-STYLE: italic; mso-fareast-font-family: 바탕">Oxford Economic Papers</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vol. 36, 1984)를 들 수 있다. 이 장의 제 2절 논의는 이 논문에 근거하고 있다. 이트웰과 밀게이트(J. Eatwell, 1945- and M. Milgate)의 책 </span><span lang="EN-US" style="FONT-STYLE: italic; mso-fareast-font-family: 바탕">Keynes's Economics and the Theory of Value and Distribution </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London: Duckworth, 1983)은 스라파의 이론체계에 기초하여 케인즈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조명하고 신고전파에 대응하는 거시이론을 성립시키려는 노력들을 편집한 책이다. 특히 여기에 재수록된 가레냐니의 1976년 논문과 1978-79년 논문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쿠르츠와 살바도리가 총 3권으로 편집한 논문집인 </span><span lang="EN-US" style="FONT-STYLE: italic; mso-fareast-font-family: 바탕">The Legacy of Piero Sraffa</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Cheltenham, Edward Elgar, 2003)은 1922년부터 2001년까지 발표된 ‘스라피언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논문들은 재수록하고 있다.</span></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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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3 Dec 2008 05:12:49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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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케인즈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비판 - 김수행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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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90%" border="0"><tbody><tr><td><b>[3회 맑스 코뮤날레 2차 워크숍 &lt;신자유주의, 케인스주의, 맑스주의&gt;] 1부 발표-케인즈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비판</b></td></td></tr><tr><td align="right">김수행 </a></td></tr></tbody></table><br><br><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5" width="90%" border="0"><tbody><tr><td class="justifyalign"><p><span style="FONT-SIZE: 12pt"><b>케인즈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비판</b></span></p><br><br>김수행*1) <br><br>1. 머리말 <br><br>최근에도 각국 대학의 경제학도들은 주류 경제학인 신고전파 경제학이 지닌 편파성을 비판하면서 브로드밴드 경제학(broadband economics)의 도입을 촉구하고 있고(Fullbrook, 2004), 이에 대응해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양식(良識), 인류 그리고 과학’(sanity, humanity and science)이라는 슬로건으로 ‘자폐증(自閉症)을 벗어던진 경제학’(Post-Autistic Economics: PAE)이라는 기치 아래 브로드밴드 경제학을 위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1) <br><br>경제학의 최근 역사를 보면, 1870년대의 ‘한계혁명’(marginal revolution)을 근거로 건설된 신고전파는 고전파 경제학(스미스, 리카도 등)을 비판하면서 주도권을 장악한 뒤, 특히 1930년대의 세계대불황을 겪으면서 그 세력이 상당히 약화됐으나, 1945년 이후에는 케인즈경제학을 흡수해 ‘신고전파 종합’(neoclassical synthesis)을 이룩함으로써 사실상 지배적인 위치를 그대로 유지했다. 그런데 1974～1975년의 세계 대불황 이후에는 신고전파 종합의 구성부분인 케인즈경제학이 대부분의 이론적 정책적 책임을 짊어지면서 물러나고 신고전파는 통화주의나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의 이름 아래 세력을 더욱 확장하고 있다. 더욱이 신고전파 경제학은 사회과학의 다른 분야에까지도 방법론적 개인주의와 극대화 논리를 전파하면서 그 분야들을 ‘식민지화’하고 있다(Fine, 2001). <br><br>물론 신고전파 종합에 참가한 케인즈경제학을 어떻게 평가하는가의 문제는 특히 케인즈주의자들 사이에 매우 큰 논쟁거리이다. 그 경제학은 케인즈의 ‘원래’의 뜻을 ‘올바로’ 반영하든 반영하지 않든 ‘주류’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주류 케인즈주의’라고 부른다(Fontana, 2005). 주류 케인즈주의를 비판하면서 ‘진짜’ 케인즈를 찾아 더욱 발전시키는 학파는 비주류 케인즈주의 또는 ‘포스트 케인즈주의’(post Keynesianism)이다. 이런 포스트 케인즈주의자들을 중심으로 1977년에는 ≪캐임브리지 저널 오브 이코노믹스≫(Cambridge Journal of Economics)가, 그리고 1978년에는 ≪저널 오브 포스트 케인지안 이코노믹스≫(Journal of Post Keynesian Economics)가 창간됐다. <br><br>이 글의 주된 목적은 케인즈와 마르크스를 개괄적으로 비교하는 것이다. 먼저 케인즈주의의 계보를 밝히고 신고전파 경제학과 비교하면서 케인즈경제학의 특징을 지적한다. 둘째로 케인즈의 최대 공적인 유효수요이론을 고찰하면서 마르크스와의 차이점을 찾아본다. 셋째로 공산주의와 파시즘 및 자본주의에 대한 케인즈의 사상을 추적하면서 자본주의의 장래에 관한 케인즈의 사상과 마르크스의 사상을 비교한다. 넷째로 케인즈와 마르크스의 국가관을 비교한다. 다섯째로는 케인즈가 국제거래의 활성화보다 자급자족을 선호한 이유를 살펴보고, 마르크스주의에도 ‘일국혁명론’과 ‘세계혁명론’이 대결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여섯째로는 국가지출이 경제의 불황을 타개한다는 케인즈의 기본이론이 마르크스주의에 미친 영향을 다룬다. <br><br><br>2. 케인즈경제학의 발달과정 <br><br>1) 케인즈의 일생 <br><br>먼저 케인즈의 일생을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스키델스키(R. Skidelsky)가 최근에 쓴 케인즈 전기가 매우 유용하다.2) 케인즈는 1883년3)에 태어나 1946년에 죽었기 때문에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강의하거나 재무부에서 일한 전문직 생활의 대부분은 두 개의 세계대전(제1차 1914～1918년, 제2차 1939～1945년)에 의해 큰 영향을 받았으며, 1920년대와 1930년대의 경험이 그의 사상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1920년대는 세계가 전쟁으로부터 회복되는 것 같다가 대불황으로 빠져버렸고, 1930년대는 대불황으로부터 회복되는 것 같다가 전쟁으로 빠져버렸다. 이런 재앙들은 19세기에 경제문제들을 해결했던 만국주의적이고 비개입주의적 원리들(cosmopolitan non-interventionist principles)을 믿을 수 없게 했다.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는 자기 혼자 내버려두면, 일하고자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직장을 주고 모든 나라에게 번영을 주며, 이리하여 국가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이유가 없다는 아이디어는 전혀 믿을 수 없게 됐다. 또한 제1차세계대전은 각국 정부가 ‘전시통제경제’(戰時統制經濟)를 통해 자기 나라의 자원을 최대로 동원함으로써 생산‧고용‧소득을 놀랠 만큼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정부가 전쟁 목적으로 이런 것들을 이룩할 수 있다면 왜 평화 목적을 위해 이런 것들을 이룩할 수 없단 말인가?4) <br><br>케인즈는 1919년｢평화의 경제적 귀결｣에서 파리평화회의의 문제점을 제기함으로써 국제적 명성을 얻은 뒤로 경제이론을 수단으로 합리적인 경제정책의 지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에 노력했으며, 1936년에는 그의 주저인『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을 발간했다. 그리고 만년에는 IMF와 IBRD의 설립에서 영국 대표로 참가해 영국의 이익을 도모하려고 애를 썼다. <br><br>케인즈는 자유당(Liberal Party)의 당원이었는데, 보수당(Conservative Party)에 대해서는 “장래가 없다. 어떤 이상(ideal)을 만족시키지도 않고 어떤 지적 수준에도 이르지 못하며, 안전성을 주지도 못하고 우리가 이미 달성한 정도의 문명을 약탈자로부터 보호하지도 못한다”(Keynes, 1925b)고 비판했고, 노동당(Labour Party)에 대해서는 “노동당은 계급정당인데 노동자계급은 나의 계급이 아니다. …… 계급전쟁에서 나는 교육받은 부르주아지(educated bourgeoisie)의 편에 설 것이다”(Ibid.)고 말했다. 이리하여 “자유당이 아직도 미래의 진보를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이다. …… 구식의 개인주의와 자유방임을 버리고 ……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자유주의(new liberalism)5)를 취해야 한다. 새로운 지혜를 받아들이는 새로운 자유주의는 …… 경제적 무정부상태로부터 사회정의와 사회안정을 위해 경제적 힘들을 통제하고 지도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지향하는 체제로 이행하는 것을 가리킨다”(Ibid.). <br><br>케인즈는 인생의 목적을 ‘넉넉한 생활’(good life)―여기에는 아름다움, 예술, 사랑, 도덕성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에 두었으며, 경제학의 가치는 이런 감정들이 꽃필 수 있도록 부(wealth)와 안정을 주는 것이었다(Farrell, 2004). 사실상 그는 케임브리지대학 교수의 아들로서 부유한 가정에서 넉넉한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케인즈는 열렬한 사회개혁자가 아니었으며, ‘요람에서 무덤으로’의 사회보장을 위한 비버리지계획(Beveridge Plan, 1942)이나 완전고용의 보장을 정부의 의무로 하는 ‘고용정책에 관한 백서’(1944)의 작성에서는 재무부 관리로서 ‘정부예산이 감당할 수 있을까’에만 관심을 가졌다(Skidelsky, 2004: 708-722). <br><br><br>2) 케인즈경제학의 계보 <br><br>흔히들 이야기하는 케인즈경제학은 신고전파 경제학과 달리 다음과 같은 세 개의 명제를 가지고 있다(Fontana, 2005). <br><br>1) 경제는 경제적 자원을 완전히 이용하는 방향으로 자동조절하지 못한다. 따라서 ‘비자발적’ 실업이 있을 수 있다. <br><br>2) 총수요는 경제의 조절 경로를 결정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다. 이것이 유효수요이론이다. <br><br>3) 정부의 안정화정책은 일정한 환경 아래에서 유효하다. 이것이 정책유효성의 이론이다. <br><br>이 세 개의 명제들은 일찍이 힉스(Hicks, 1937)와 모딜리아니(Modigliani, 1944)에 의해 IS-LM 모델에 포섭되면서 신고전파의 일반균형이론과 결합하게 된다. 단기(短期)에서는 케인즈의 화폐재정정책의 실용성을 받아들이면서, 장기(長期)에서는 신고전파의 수요-공급이론의 완전고용균형을 유지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됨으로써 케인즈의 불완전고용 균형은 “실업은 가격(임금)이 즉각적으로 균형으로 조정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경우”로 축소되어 버린다. 이 흐름이 이른바 주류 케인즈주의이다.6) <br><br>이 주류 케인즈주의는 1970년대 이후 치명적인 공격을 받았다(Eatwell, 1994). 1970년대에 받은 공격은, “경직적인 임금이 실업을 야기한다고 하면서 재정금융 확장정책을 채택하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재정금융 확장정책은 노동자들의 단체교섭력을 강화함으로써 임금의 경직성을 더욱 강화하게 되므로 실업이 더욱 많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임금의 경직성을 완화시키기 위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강조된 것이다. 그리고 1980년대에 받은 공격은, “자유시장에 맡기면 장기적으로 완전고용이 달성되는 것인데, 사회보장제도의 강화를 통해 자유시장의 작용을 왜곡함으로써 실업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자유시장의 왜곡을 고치기 위해 부자에 대한 높은 세금과 서민에 대한 관대한 급부(benefits)를 감축하는 방안이 제시된 것이다. <br><br>그런데 사실상 케인즈의 제자들 중 제1세대(Richard Kahn, Joan Robinson, Nicholas Kaldor, Piero Sraffa, Michal Kalecki, Roy Harrod 등)와 제2세대(Paul Davidson, Geoff Harcourt, Luigi Pasinetti, Edward Nell 등)는 케인즈의 세 명제를 유지하면서도 주류 케인즈주의에 동의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신고전파 경제학을 비판한다 (King, 2002). 케인즈가 강조한 ‘구성의 모순’(fallacy of composition) 때문에 개인의 행동분석으로부터 경제 전체의 동향을 추론할 수 없다는 점, ‘불확실성’(uncertainty)7) 때문에 경제변수들 사이에 균형이 성립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점,8) 신고전학파가 가정하는 ‘완전경쟁’은 규모의 경제에 따른 독과점화 경향 때문에 현실성이 없으며 따라서 시장에 맡기면 효용의 극대화(maximisation)와 자원배분의 최적화(optimisation)가 이루어진다는 주장은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점, 신고전파의 분배이론은 모순덩어리라는 점, 경제학에서 수학을 사용하는 것은 우리의 통찰력을 제한한다는 점 등이 지적됐다. 이런 견해가 포스트 케인즈주의를 대표한다.9) <br><br>신고전파는 경제현상들을 개인의 의도와 행동으로부터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을 방법론적 개인주의(methodological individualism)라고 부르는데(Hodgson, 2004), 개인들의 이익의 합은 사회의 이익과 같다는 벤담의 공리주의(utilitarianism)와 맥을 같이한다.10) 그런데 케인즈는 저축을 예로 들면서 모든 개인들이 저축하려고 한다면, 상품들이 팔리지 않아 공장이 생산을 축소해야 하며 따라서 해고가 발생하고 소득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사회 전체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저축이 감소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리하여 소비‧투자‧고용‧국민소득 등 집계치(集計値)를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했다. “집계의 경제적 행동의 이론과 개별단위의 행동 이론 사이에는 매우 중대한 차이가 있다”(Keynes, 1936: 85). 그렇지만 케인즈도 집계치인 소비와 투자의 미시적 기초(micro-foundation)를 찾기 위해 소비자와 기업가 및 투기꾼의 심리와 행동을 연구했던 것이다. <br><br>스라파(Sraffa, 1960)는『상품에 의한 상품의 생산』을 통해 신고전파의 분배이론, 특히 “이자와 이윤은 균형상태에서는 자본의 한계생산물과 같다”는 이론을 논리적으로 격파했다. 이것이 이른바 영국의 케임브리지와 미국의 케임브리지 사이에 있었던 1960년대의 ‘자본논쟁’(capital controversy)이다. 미국 케임브리지의 사뮤엘슨(P. Samuelson)이 나중에 패배를 인정한 바와 같이, 자본은 다양한 기계와 원료 등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자본의 한계생산물은 실물로 측정할 수가 없고 가격으로 측정해야 하는데, 이 가격에는 이미 이자(또는 이윤)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자로 이자를 설명하는 순환논법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11) 그러나 스라파도 이자의 ‘원천’의 문제는 다루지 못했다. <br><br>케인즈는 수학에 정통했기 때문에 경제문제에 대한 수학적 접근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br><br>우리의 분석의 목적은 절대적으로 옳은 해답을 주는 기계나 맹목적인 조작방법을 마련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특수한 문제들을 곰곰이 생각하여 해결하는 조직적이고 질서정연한 방법을 얻는 데 있다. 그리고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들을 하나씩 분리시킴으로써 잠정적인 결론에 도달한 뒤, 우리는 다시 우리에게 되돌아와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능력을 다하여 요소들 사이의 있을 수 있는 상호작용들을 고찰해야 한다. 이것이 경제학적 사고(thinking)의 본질이다. 이런 사고의 형식적 원리들(이것들이 없다면 우리는 숲에서 헤매고 말 것이다)을 적용하는 이 밖의 어떤 방법도 우리를 오류에 빠뜨릴 것이다. 경제분석 체계의 공식화(公式化)를 위해 기호(symbol)를 사용하는 사이비 수학적 방법들(pseudo-mathematical methods)의 하나의 큰 맹점은, 그 방법들이 관련요소들 사이의 엄격한 독립성을 분명하게 가정(假定)하고 있으므로 이 가정이 무너지면 모든 설득력과 권위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우리가 맹목적으로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용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있는 보통의 담론(discourse)에서는 우리는 필요한 유보조건들과 제한들과 나중에 해야 할 조정들(adjustments)을 ‘뒤통수’에 간직할 수 있다. …… 최근의 ‘수리’ 경제학의 매우 큰 부분은 그것이 근거하는 최초의 가정들만큼이나 부정확한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다. 이렇기 때문에 과시적이고 쓸모없는 기호들의 미로에서 현실 세계의 복잡성과 상호의존들을 보지 못하게 된다(Keynes, 1936: 297～298). <br><br>사실상 조순(1983)이 주장하는 것처럼, 케인즈는 “불확실성, 불합리성, 불가역성 등에 의해 특징 지워지는 인간사회를 자연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다.12) 그러므로 경제학은, 수학을 사용하지 않고 지식의 큰 발전을 이룩한 1860～1945년의 의학으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Gillies, 2004). 1860년에는 그 당시의 주요한 질병들(결핵‧콜레라‧디프테리아‧폐렴 등)이 왜 발생하는지를 설명하는 이론이 없었다. 1860～1900년에 파스퇴르(L. Pasteur), 리스터(J. Lister), 코흐(R. Koch) 등이 질병의 세균이론(germ theory of disease)을 전개하고 다수의 질병들이 박테리아에 의해 생긴다는 것을 증명했고 각 질병들을 야기하는 박테리아도 확인했다. 이리하여 질병의 원인을 알게 되니 병의 예방과 치료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이처럼 경제학에서도 계량경제학적 모델(econometric models)을 설정하여 피상적인 통계수자들 사이의 상관관계를 발견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가시적이고 경험적인 표층(the exoteric)을 배후에서 통제하고 제약하는 심층(the esoteric)을 발견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또한 심층의 모순들이 표층으로 표출되는 형태들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김수행, 2004: 34). 물론 경제학에서는 의학과는 달리 “현미경도 시약(試藥)도 소용이 없고 추상력(抽象力)이 이것들을 대신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Marx, 1867a: 4).13) <br><br>3) ‘새로운 주류 경제학’(?) <br><br>위와 같이 포스트 케인즈주의자들은 ‘진짜’ 케인즈를 찾거나 케인즈이론을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하여 주류인 신고전파 경제학에 도전하고 있는데, 파시네티(Pasinetti, 2005)는 포스트 케인즈주의자들의 업적에 다음과 같은 여덟 개의 ‘건설적인’ 특징들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br><br>1) 추상적인 합리성14)뿐 아니라 현실을 이론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예컨대 칼도(N. Kaldor)는 ‘정형화된 사실들’(stylised facts)을 제시한 뒤 이론적 연구를 시작한다. <br><br>2) 형식상의 정밀성뿐 아니라 내적 일관성을 가진 경제논리를 개발한다. 신고전파는 수학적 언어, 공리에 따른 연역적 논리(axiomatic deductive logic), 형식상의 검증에 의거하여 형식상의 엄밀성을 가지고 있지만 내적 일관성은 부족하다. 경제학에는 아이디어들과 현상들의 미로를 하나의 일관성 있는 전체로 조직하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br><br>3) 왈라스와 한계학파들이 아니라 맬더스와 고전파 경제학자들(스미스, 리카도, 마르크스)을 경제학사에서 부활시키고 재평가하려고 한다. 이것은 ‘교환’보다는 ‘생산’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br><br>4) 정상적(stationary)이고 시간이 문제되지 않는 경제체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역동적이고 불가역적인(irreversible) 경제체제를 다룬다. <br><br>5) 미시경제학보다 거시경제학을 먼저 다룬다. 주관적인 행동(또는 선호)이나 한 개인에 관한 연구로부터 이론을 전개하지 않는다. 경제체제 전체의 행동은 단일의 개별적인 부분들의 합계로 환원되지 않는다. <br><br>6) 균형이 아니라 불균형과 불안정을 산업경제의 정상적인 상태라고 본다. <br><br>7) 경제성장과 소득분배가 가장 중요한 연구주제이다. <br><br>8) 사회에 관한 관심이 강하다. 현대경제가 끊임없이 직면하는 적어도 두 개의 핵심적인 위험들―일국적‧국제적 차원에서 대규모 실업의 위험과 불평등한 소득분배의 위험―에 큰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며 정책을 제시한다. <br><br>파시네티의 희망대로 포스트 케인즈주의자들이 “케인즈혁명을 영속적인 승리 패러다임으로 만들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포스트 케인즈주의자들도 자본주의 경제가 어떤 내부동력에 의해 어떻게 발전하고 있으며 그것의 종점은 어디일까에 대한 연구는 거의 하지 않는다. <br><br>3. 케인즈의 유효수요이론 <br><br>1) 자본주의 사회의 구성원과 그들의 행동양식 <br><br>케인즈는 자본주의 사회의 구성원을 소비자‧투기꾼‧기업가로 구분하는데,15) 이것은 그의 유효수요(effective demand, 소비수요와 투자수요)이론에 봉사한다. 이들은 모두 치부욕과 개인주의에 사로잡혀 있으며, 장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무지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 대처해 나가고 있다. 예컨대 소비자는 소득이 오름에 따라 저축성향을 높이며, 투기꾼은 단기적인 투기이익을 노려 자기의 금융자산을 유가증권(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할까 아니면 현금형태로 보유할까를 결정하고, 기업가는 이자율과 장래의 예상투자수익율(투자의 한계효율; marginal efficiency of investment)을 비교해 투자를 결정한다고 케인즈는 본다. 한계소비성향(marginal propensity to consume), 유동성선호(liquidity preference)와 투자의 한계효율은 사회구성원들이 불확실한 장래에 대처하는 심리적 행동양식을 파악하는 개념들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이 개념들은 유효수요이론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br><br>사실상 케인즈는 자본주의 사회의 ‘뚜렷한 결점’인 실업과 소득분배의 불평등(Keynes, 1936: 372)이 불확실성과 그것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대응방식 때문에 발생한다고 본다. <br><br>이 시대의 주요한 경제적 폐해의 다수는 위험성과 불확실성 및 무지의 소산이다. 상황이나 능력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특정의 개인이 불확실성과 무지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재산의 심한 불평등 분배가 나타난다. 이것은 또한 대기업들이 때때로 투기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나타나기도 한다. 더욱이 불확실성과 무지에 대한 개인들의 이기적 반응 때문에, 유망한 기업들이 실패하여 실업을 발생시키고 능률과 생산을 저해하고 있다(Keynes, 1926). <br><br>여기에서 케인즈는 자본주의 사회의 구성원들을 ‘노름꾼들’(Shackle, 1974: 67)로 간주하고, 노름꾼들의 요행에 따라 재산의 불평등이 일어나고, 노름꾼들이 판돈을 거두어들일 때 실업과 유휴설비가 발생한다고 보는데, 이것은 자기의 주식투자 경험에서 유추한 것일지라도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속성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마르크스가 말한 것처럼 노동자계급은 노동력을 팔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는 무산 대중이라는 것을 지적해야만, 자본주의 사회는 처음부터 재산이 불평등하게 분배되어 있다는 것과, 실업이 소득분배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것을 곧 알 수 있는 것이다. <br><br>2) 심리적 성향의 자의성 <br><br>케인즈의 유효수요이론에 의하면, 소비자와 투기꾼과 기업가의 개인주의에 맡겨두면 소비와 투자가 완전고용을 달성하는 규모에 도달하지 않기 때문에, 비자발적 실업이 생기고 물적 자원이 유휴상태에 빠지며, 따라서 사회구성원이 아닌 ‘제3자’로서 국가가 개입해 국가지출을 통해 소비와 투자를 증대시켜야만 실업이 제거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결론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케인즈는 한계소비성향과 유동성선호 및 투자의 한계효율에 관해 ‘자기 마음대로’ 가정했다(Schumpeter, 1954: 1177)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br><br>예컨대 소비자의 한계소비성향이 1보다 작다는 주장은 여러 가지 가능성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소득이 증가하면 장래의 소득을 선취(先取)하여 소비함으로써 한계소비성향이 1을 넘을 수도 있다. 요사이 말하는 부의 효과(wealth effect)가 바로 그것일 것이다. 다음으로 투기꾼의 유동성선호(현금을 지니려는 성향)로 이자율이 ‘소망스러운’ 수준까지 저하하지 않아 기업가의 투자가 완전고용을 달성하는 규모까지 증가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투자의 결정에서 투자의 장래수익률에 대한 기업가의 기대가 가지고 있는 ‘지배적인 역할’에 비하면 전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유동성선호의 급증은 케인즈 자신도 인정하듯이(Keynes, 1936: 316) 투자의 한계효율이 폭락한 ‘뒤’에 나타나기 때문에(다시 말해 투자를 해도 큰 수익을 얻을 수 없다고 예상하기 때문에 현금을 지니려고 한다), 유동성선호와 투자의 부족(나아가서 비자발적 실업 또는 불황의 발생)을 인과관계로 연결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결국 기업가의 장래예상(즉 투자의 한계효율)만 남게 되는데, 이것은 ‘설명할 수 없는’ 심리의 작용이기 때문에 케인즈가 ‘마음대로’ 지금의 상태를 가정할 수 있는 것이다. <br><br>이렇게 볼 때, 케인즈에 의하면 불황의 발생과 회복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기업가의 장래예상이고, 이것은 전혀 ‘통제할 수 없는 기업가의 심리’ 또는 ‘혈기’(animal spirit)에 의존한다. 따라서 이자율을 현실적으로 가능한 최저 수준까지 인하하더라도, 기업가의 장래예상(즉 투자의 한계효율)이 너무나 비관적이어서 투자가 촉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케인즈는 말한다(Keynes, 1936: 316-317). 쉽게 말하면, 자본주의 사회의 불황은 기업가의 장래예상이 낙관에서 비관으로 교체하기 때문에 발생하며, 비관론이 낙관론으로 전환되지 않는 한, 불황은 계속된다고 케인즈는 생각한 것이다.16) 어느 경제학자는 케인즈의 불황이론과 태양흑점설(sun-spot theory)을 다음과 같이 비교한다. <br><br>물론 그 인과관계가 주관적이냐 객관적이냐에 차이가 나지만, 방법론적으로는 똑같다. 즉, 경기순환을 자본주의 경제의 내부 작용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요인에 의해 설명하기 때문이다. 케인즈의 경우는 개별 자본가의 기분에서 찾고, 태양흑점설은 태양흑점의 크기에서 찾는다. 그러나 자본가의 기분이 태양흑점의 크기에 따라 변화한다고 하여도 케인즈의 이론에는 전혀 상관이 없다(Sutcliffe, 1977). <br><br>요약하자면, 케인즈는 자본주의 사회의 구성원을 기본적으로 소비자‧투기꾼‧기업가로 구분하고, 장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직면한 그들의 자율적인 심리와 행동의 변화에서 경제의 역동성(dynamics)과 경기변동을 설명하려고 했다. <br><br>3) 케인즈와 마르크스의 연구방법상 차이 <br><br>이런 연구방법은 마르크스와는 크게 다르다. 첫째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가 기본적으로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이 계급들의 심리와 행동의 자율성은 자본의 이윤추구욕이나 가치증식욕(valorisation drive)에 의해 제약을 받고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자본가는 하나의 인간으로서 동정(同情)‧인류애‧사치욕 등을 가지지만 노동자를 착취하여 자본의 가치를 증식시키지 않는다면 자본가라고 부를 수 없다. 또한 노동자는 자기의 노동력(labour-power)을 자본가 계급에게 팔아 자본가 계급의 지휘 아래에서 잉여노동(surplus labour)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자본가계급과 대립하고 투쟁한다. 마르크스는 경제학상의 ‘개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br><br>여기서 개인들이 문제로 되는 것은 오직 그들이 경제적 범주의 인격화(personification of economic categories), 일정한 계급관계와 이해관계의 담지자(bearer)들인 한에서다.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발전을 자연사적 과정으로 보는 나의 입장에서는, 다른 입장과는 달리, 개인이 이러한 관계들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은 주관적으로 아무리 이러한 관계들을 초월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그것들의 산물이다(Marx, 1867a: 6). <br><br>둘째로 케인즈에 의하면 기업가는 장래의 이윤 전망이 비관적이면 투자를 중단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에 의하면 이윤추구욕과 경쟁 때문에 기업가는 ‘끊임없이’ 투자에 몰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기업가는 경쟁에서 이겨 초과이윤을 얻고 시장 점유율을 올리기 위해 끊임없이 혁신(innovation; 새로운 상품‧생산방법‧원료‧시장‧노동조직‧기업조직의 개발과 도입)과 대량생산에 박차를 가한다. 현재와 같은 불황기에도 기업들은 낮은 임금수준으로 수많은 노동자들을 고용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노동절약적인 신기술을 착실히 도입하고 있다. 이것은 상품의 단위가격을 인하하여 ‘무한경쟁’에서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므로, 마르크스의 기업가이론이 더욱 정확하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br><br>따라서 마르크스의 경기변동론에는 기업가의 투자하려는 ‘의지’보다는 투자할 수 있는 ‘능력’과 그 능력의 ‘한계’에 관한 연구가 진행된다. 이윤율은, 모든 이윤이 투자된다고 가정하면, 자본의 최대 팽창률과 같은 크기이기 때문에,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Tendency of the Rate of Profit to Fall; TRPF)이 경제위기와 공황에서 핵심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TRPF법칙은 이윤율이 장기에 걸쳐 현실적으로 저하한다는 것을 예측하는 법칙이 아니라, 자본축적 과정에서 노동절약적 기술의 도입은 자본의 ‘기술적 구성’을 상승시켜 이윤율을 저하시키는 경향이 있지만, 그 반면에 노동절약적 기술의 도입은 기계‧원료‧생활재료 등을 값싸게 함으로써 자본투자 필요액을 줄이고 잉여가치율(또는 착취율)을 높이기 때문에 이윤율을 상승시키는 경향도 있다는 사실을 함께 파악하는 법칙이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이윤율이 저하하는가는 위의 두 경향의 현실적인 크기에 달려있으며, 현실적으로 이윤율이 저하하는 경우에는 투자‘능력’이 감소하기 때문에 불황이 올 수가 있다. 물론 이윤율이 현실적으로 저하하지 않더라도 기술혁신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경쟁력이 약한 기업들이 대규모로 도산하거나, 산업부문들 사이의 불균등발전으로 일부의 중요한 산업에서 과잉생산이 발생하거나, 실업이 대규모로 발생하여 소비재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면서 소비재산업과 나아가서 생산재산업의 시장이 축소하는 경우에도 불황이 올 수가 있다(김수행, 2004: 233-243). <br><br>셋째로 투기꾼의 유동성선호 또는 화폐의 퇴장(hoarding)이 일으키는 악영향을 케인즈와 마르크스 모두가 인정한다. 화폐가 시장에서 사라지거나 부족하게 되면, 이자율이 올라가고 채무자는 화폐를 구할 수 없어 도산한다. 그러나 케인즈는 이것이 투기꾼의 투기적 ‘동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반하여, 마르크스는 화폐가 가진 일반적 등가(general equivalent; 화폐는 어떤 상품이라도 구매할 수 있다)로서의 성질 때문이라고 본다. 물론 케인즈가 화폐의 일반적 등가로서의 성질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투기적 ‘동기’를 유동성선호에 결부시킴으로써 유동성선호의 객관적 의미(즉, 화폐는 모든 상품들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보유하려고 한다는 것)를 충분히 개발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Brunhoff, 1976: 41). <br><br>사실상 마르크스는 화폐가 지불수단으로 기능하기 때문에 신용공황‧주식공황‧화폐공황‧은행공황 등이 발생하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다(김수행, 2004: 60-62; 255-269). 호황에서는 어음과 수표 등에 의한 상업신용(commercial credit)이 은행신용(bank credit; 은행이 대부하는 화폐)보다 더욱 증가한다. 그런데 상품의 판매가 순조롭지 못해 자금의 회수가 제대로 되지 못하면 어음과 수표를 기한 안에 지불하는 것이 어려워지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상업신용은 대폭 축소하면서 화폐(일반적 등가)에 의한 지불을 요구하게 된다. 신용경색이 강화되면서 신용공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채무자들은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으려고 노력하게 되는데, 은행은 이자율을 올리면서 대출 심사를 강화하게 된다. 이에 따라 주식이나 채권(bond)을 가진 채무자들은 그것들을 팔아 채무를 갚으려고 하기 때문에, 증권시장에서는 대규모의 투매(fire sale) 현상이 나타나고 주식과 채권의 가격은 폭락하게 된다. 이것이 주식공황이다. 그 뒤 은행의 예금자들은 은행에 몰려 예금을 인출하기 시작하는데, 현금이 부족한 은행들은 예금을 지불할 수 없어 도산하게 된다. 이것이 은행공황이다. 이렇게 되면 처음에 시작된 상공업의 위기(industrial and commercial crisis)가 이제 상공업의 공황(crash)으로 전환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마르크스는 투기꾼의 심리 즉 ‘투기적 동기’를 도입하지 않고서도 유동성선호가 야기하는 악영향을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17) <br><br>넷째로 금리생활자(rentier)에 대한 인식에서도 케인즈와 마르크스는 그 입장을 달리한다. 금리생활자는 coupon-clipper라고도 표현되고 있으므로, 화폐를 대부하여 이자를 얻거나 주식에 투자하여 배당과 자본이득을 얻는 화폐자본가(또는 금융자본가)를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케인즈는 금리생활자의 죄목으로, 아무런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이자(와 배당)를 취득함으로써 소득분배의 불균등을 야기하고, 화폐를 투기적인 동기로 보유함으로써 이자율이 완전고용을 이룩하는데 필요한 규모의 투자를 유인할 수 있을 정도로 저하하는 것을 막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케인즈는 ‘금리생활자의 안락사’(euthanasia of the rentier) 따라서 ‘자본의 희소가치를 악용하는 자본가의 누적적인 억압권력의 안락사’(euthanasia of the cumulative oppressive power of the capitalist to exploit the scarcity-value of capital)를 원했으며, 국가의 금융정책에 의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었다(Keynes, 1936: 375-378). 이리하여 케인즈는 기생적인 금리생활자(금융자본가)에 대항하는 산업자본가와 노동자의 연합을 생각하고 있었다. <br><br>물론 마르크스도 화폐자본가를 ‘가장 가치 없고 비열하다’고 평가한다. 왜냐하면 화폐자본가는 최초의 혁신적인 기업가들이 운영하다가 도산한 기업을 값싸게 매수하여 큰 이익을 얻기 때문이며(Marx, 1894a: 120), 경제위기에서는 일부러 화폐부족을 심화시켜 높은 이자를 갈취하거나 산업자본을 망하게 하여 사회적 생산력을 파괴하기 때문이다(Marx, 1894b: 636-637). 또한 마르크스도 신용공황과 화폐공황이 진행할 때 중앙은행이 더욱 많은 화폐를 발행하여 공황을 완화시키는 것이 사회적 생산력을 보존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Ibid.). <br><br>그러나 마르크스는 자본축적이 더욱 발전함에 따라 신용의 자금원천이 더욱 증가하고 따라서 금리생활자들이 더욱 증가하리라고 보았다. 예컨대 점점 더 거대한 산업자본이 순환하는 과정에서 고정자본의 감가상각액, 자본으로 재투자되기 위해 화폐로 적립되고 있는 잉여가치, 긴급한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그리고 채무지불에 대비하기 위해 가지고 있는 준비금 등의 형태로 유휴화폐자본(idle money capital)이 발생하여 대부와 증권투자의 자금원천으로 되고 있다. 그밖에도 기업가가 생산 활동을 중단하고 자기의 화폐자본을 대부나 증권투자에 사용하는 경우, 자본가와 노동자가 소득을 점차로 지출하기 때문에 소득의 일부를 짧은 기간 은행에 예금하는 경우 등도 있다. 또한 기업의 대규모화에 따라 산업자본으로 기능할 수 있는 자본의 최소단위가 상승하면, 이 최소단위에 미달하는 자본은 신용제도(은행과 증권시장)를 통해 기업이나 투기에 사용될 것이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신용제도의 역할을 높이 평가한다. 사회의 각계각층이 가지고 있는 유휴화폐자본을 수집하여 기업이 이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개인자본으로서는 불가능한 철도 등 대규모의 사업들(자본의 회임기간(gestation period)이 긴 사업들)이 가능하게 되어 생산력의 발전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br><br>물론 마르크스는 잉여가치가 이자와 기업가이득으로 분할되는 과정에서 산업자본가와 화폐자본가가 대립하는 것을 결코 무시하지는 않는다. 경기순환의 국면마다 이자율(또는 대부자본)과 이윤율(또는 산업자본)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변하는가를 고찰하면서, 공황이 발생하기 직전의 위기국면에서는 최고의 이자율과 최저의 이윤율이 공존한다고 말하면서, 이것은 화폐소유자 또는 대부자본가가 산업자본가와 상업자본가를 희생시키면서 자기들의 이익을 증가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 위기국면에서 만약 정부 또는 중앙은행이 화폐공급을 증가시키면, 산업자본가와 상업자본가는 화폐를 구하기 위해 상품들을 투매할 필요가 없게 되며 공황의 격렬성과 심각성은 약화될 것이다. 사실상 케인즈가 주창한 관리통화제도(또는 불환지폐제도)는 바로 이것을 겨냥한 것이었다. 1945년 이래 불황에서도 상품들의 가격이 하락하지 않은 것은 기본적으로 관리통화제도 아래에서 정부가 화폐를 많이 방출했기 때문이다(김수행, 2004: 263-265). <br><br>4. 경제체제에 관하여 <br><br>1) 공산주의 <br><br>케인즈는 1925년 결혼한 뒤 곧 처가를 방문하기 위해 러시아에 갔다.18)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합(USSR)을 관찰한 뒤 쓴 글(Keynes, 1925a)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도덕적’ 문제를 크게 우려했다. 즉 사회생활의 거의 대부분이 치부동기에 의해 자극받고 있으며, 치부 그 자체가 성공의 지표가 되고, 개인의 경제적 안정이 모든 활동의 주요 목표가 되어 있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러시아 사회주의를 찬양한다. <br><br>레닌주의(Leninism)의 감정적‧윤리적 핵심은 치부욕에 대한 개인과 사회의 태도에 관한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러시아의 공산주의가 인간의 성격을 변화시키고 있다든가 변화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 러시아 공산주의는 새로운 이상(ideal)을 수립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회구조를 건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 새로운 사회구조 안에서는 인간의 행동을 자극하는 치부동기가 상대적으로 낮은 중요성을 가지게 될 것이고, 성공의 사회적 기준이 달라질 것이며. 종전에는 정상적이고 존경받던 행동이 더 이상 그렇게 간주되지 않을 것이다. …… 러시아는 도덕적인 측면에서만 서구사회에 대한 큰 도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Keynes, 1925a).19) <br><br>그런데 케인즈가 마르크스주의나 현실사회주의에 관해 ‘깊이’ 연구했다는 증거는 없다(Skidelsky, 2004). 다만 그 당시의 상황이 케인즈로 하여금 마르크스주의에 관심을 가지도록 한 것 같다. 젊은 자연과학자들을 중심으로 공산주의 세포(cell)가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만들어진 것은 1920년대 후반이었다. 그들은 마르크스주의를 최초의 진정한 ‘사회의 과학’이라고 보았고 스탈린의 러시아를 마르크스주의이론들을 시험하는 최초의 실험실로 보았다(Ibid. 402). 케인즈는 1930년대의 불황이 자본주의의 최후의 위기라는 볼셰비키의 주장이나 불황은 이전의 과잉을 치유하는 것이므로 가만히 두어야 한다는 하이에크류의 주장을 거부했다(Ibid. 437). 1934년경 케임브리지대학의 최고로 우수한 학생들의 대부분은 마르크스주의를 전쟁‧파시즘‧실업에 대한 구제책이라고 생각했다. 케임브리지대학의 사회주의클럽과 노동당클럽의 회원―모두가 마르크스주의자였다―수는 스페인내전이 발발하기(1936년)까지 약 1천 명(학부생 전체의 5분의 1)에 달했다. 케인즈의 케임브리지대학 요새(要塞)인 Apostles(Cambridge Conversazione Society; 케임브리지 좌담클럽)에도 마르크스주의가 침투해 장악했다.20) 케인즈는 젊은 학생들의 공산주의를 그들의 이상주의(idealism)로 사랑하면서도 그들의 정신적 혼란을 공격했다(Ibid. 514-516). <br><br>버나드 쇼(G. B. Shaw)는 1934년에 두 차례에 걸쳐 케인즈에게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하기를 촉구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케인즈는 1934년 12월 2일과 1935년 1월 1일에 각각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다. <br><br>『자본론』이 역사적으로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많은 사람들(모두가 바보는 아닐 것이다)이 그것을 일종의 만세반석(Rock of Ages)이고 그것으로부터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읽어보니 그 책이 왜 그렇게 평가받는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황량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학문적인 논쟁 제기는 위의 목적에는 전혀 맞지 않을 것 같다. 어떻게 이 책이 세계의 반을 차지하는 지역에서 영감을 주고 있는지 놀랄 뿐이다. …… 『자본론』의 사회학적 가치가 어떠하든 그것의 현대적인 경제학적 가치는, 이따금 나타나는 비건설적인 통찰력은 별도로 하면, 전혀 없다. <br><br>당신의 말을 명심하려 한다. 일반적으로 그랬던 것처럼 당신의 말에는 분명히 무엇이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지난주에 마르크스-엥겔스의 편지(방금 출판됐다)를 읽었지만 많이 읽지는 못했다. 나는 둘 중 엥겔스를 더 좋아한다. 그들이 어떤 연구방법과 졸렬하게 글 쓰는 태도를 발명한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이 경제적 수수께끼에 대한 어떤 해답을 찾았다고 당신이 주장한다면 나는 여전히 놀랄 뿐이다. 나는 시대에 뒤떨어진 논쟁 제기만을 보았을 뿐이다(Skidelsky, 2004: 517). <br><br>러시아의 현실에 관해서는 1933년에 매우 비판적으로 글을 썼다. <br><br>오늘 날 러시아는 행정이 능률적이지 못하다는 점과 인생을 풍부하게 할 모든 것을 바보 같은 짓으로 희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마 세계 최악의 예를 보여준다. …… 오늘 날 러시아에서 우리는 미친 사람처럼 불필요하게 급히 서두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재앙들을 보게 된다. …… 러시아에서 우리는 정부가 비판을 금지함으로써 저지르게 된 엄청난 실책들을 보게 된다(Keynes, 1933). <br><br>그 뒤 1943년 5월 케인즈는 휴가 중에 사랑하는 제자 로빈슨(J. Robinson)이 쓴『마르크스 경제학에 관한 에세이』(An Essay on Marxian Economics)를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로빈슨에게 보낸 편지에서 케인즈는 “마르크스는 투철하고 독창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지만 매우 부족한 사상가임에 틀임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고 썼다(Skidelsky, 2004: 663). <br><br>케인즈는 자본주의 체제가 자기 자신의 모순들을 통해 궁극적으로 붕괴한다는 마르크스의 아이디어에 동의하지 않았으며, 사회 구성원들이 자본주의 사회의 내생적인 힘들을 길들일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태도는 포스트 케인즈주의자들에게도 그대로 타당하며, 갈브레이스가 ≪저널 오브 포스트 케인지안 이코노믹스≫(Journal of Post Keynesian Economics)의 창간사에서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br><br>포스트 케인즈 경제학은 40년 전의 위대한 케인즈의 수정(revision)과 마찬가지로 혁명적이 아니라 개량적이다. 이 경제학의 주장은, 산업사회는 계속 유기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공공정책은 이런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공공의 활동에 의해 실적(performance)이 사실상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제학은 혁명이 아니라 개혁적 변화를 주창한다. 물론 이런 주창이 수동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Galbraith, 1978). <br><br>2) 파시즘 <br><br>케인즈가 독일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State socialism)를 바라본 태도에 기초하여 하이에크와 미제스(L. von Mises)를 숭배하는 극단적인 자유주의자들은 “케인즈가 자유주의자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Raico, 2002). 그 이유 중 하나는 마틴(Martin, 1971)과 쉐폴트(Schefold, 1980)가 찾아낸 『일반이론』의 독일어 초판의 서문이다. 케인즈는 영어 초판의 서문을 1935년 12월 13일에 썼고 독일어 초판의 서문을 1936년 9월 7일에 썼다. 그런데 독일어 초판에는 있었지만 제2판 이후 사라져 버린 문장들이 문제가 됐다. 아래의 인용문 중 [ ]가 제2판 이후 사라져 버린 문장들이다.21) <br><br>산출량 전체에 관한 이론―이것을 이 책이 제공하려고 한다―은 주어진 산출량의 생산과 분배를 자유경쟁과 자유방임의 조건에서 다루는 이론보다는 전체주의 국가의 조건에 훨씬 더 쉽게 적용된다. [이것이 나의 이론을 일반이론이라고 부르는 것을 정당화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나의 이론은 정통파 이론보다 더 적은 가정들에 의거하고 있기 때문에, 조건이 다른 더 넓은 영역에 훨씬 쉽게 적용될 수 있다. 나는 자유방임이 아직도 상당한 정도로 지배하고 있는 앵글로-색슨 나라들을 대상으로 나의 이론을 개발했지만, 나의 이론은 국가에 의한 경제운영이 더욱 현저한 상황에도 적용될 수 있다.](Schefold, 1980. 강조는 케인즈의 것). <br><br>실제로 케인즈가 실업해소와 불황극복의 관점에서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즉 나치즘)를 찬양하는 문장은『일반이론』의 본문에도 있다. <br><br>국가는, 부분적으로는 조세정책을 통해, 부분적으로는 이자율의 결정을 통해 그리고 아마도 다른 방법들을 통해, 소비성향에 대해 지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이자율에 대한 은행정책이 그 자체로서 최적의 투자율을 확보하기에 충분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므로 나는 투자의 상당히 광범한 사회화(a somewhat comprehensive socialisation of investment)가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태를 확보하는 유일한 수단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정부 당국이 민간의 제안(initiative)을 받아들이기 위해 제시하는 온갖 타협안들을 배제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상의 점 이외에는 국가사회주의체제―이 체제는 공동체의 거의 대부분의 경제생활을 장악할 것이다―를 옹호할 것이 없다. 국가가 떠맡아야 할 주요한 것은 생산수단의 소유가 아니다. 생산수단을 증가시키는 데 필요한 총투자액과 그 투자액을 소유한 사람들에 대한 보수의 기본수준을 국가가 결정할 수 있다면, 국가는 필요한 모든 것을 이룬 것과 마찬가지다. 더욱이 사회화의 필요한 조치들은 사회의 전반적인 전통들을 파괴하지 않고서 점진적으로 도입될 수 있다(Keynes, 1936: 378). <br><br>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케인즈가 자유방임 시장주의를 배척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정도로 국가물신주의(State fetishism)에 빠졌다는 점이고, 케인즈주의자들이 대체로 민중에 대한 관심이 없는 채로 국가의 개입을 주창하기 때문에 파시즘의 경제정책을 높이 평가한다는 점이다.22) 투자의 사회화가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와 마찬가지로 국가가 조세나 국채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그 자금을 산업정책(industrial policy)에 따라 전략산업 분야에 투자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23) 특히 케인즈는 1920년대의 대량실업을 해소하기 위해 공공사업(public works)을 대규모로 실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에(Skideksky, 2004: 407-408), 이런 사업을 정부가 집행하기 위해 투자의 사회화를 주장한 것 같다. 조순은 투자의 사회화가 야기할 장기적인 효과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br><br>『일반이론』의 가장 핵심적인 결론 중의 하나는 ‘투자의 사회화,’ 즉 자본주의경제에 있어서 투자를 개인에게 맡겨두면 항상 유효수요가 부족하게 될 것이므로 이것을 공공기관에게 위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장기(長期)의 문제를 수반하지 않을 수 없다. …… 투자가 사회화되면 자본주의 자체가 변질한다. 예를 들어 투자가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정부부문이 민간부문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비대해진다. 공공투자가 증대해지면 그 효율이 저하되지 않을 수 없다. 유효수요의 창출이라는 단기적인 견지로 보면 민간투자와 공공투자는 동일시될 수 있을지 모르나, 경제의 효율, 실질소득의 분배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그밖의 장기적인 견지로 보면 양자는 엄청나게 다르다. 다시 말해서 ‘투자의 사회화’는 단기적인 해결 방안이 아니라 장기적인 해결 방안인데, 케인즈는 이와 같은 장기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정책을 단기이론으로부터 도출해놓고도 그 효과의 의의가 무엇인지에 대하여는 거의 아무런 이론의 제시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조순, 1983). <br><br>케인즈는 히틀러의 경제정책 중 유효수요에 관한 정책을 자유방임보다는 훨씬 높게 평가했지만, ‘넉넉한 생활’과 자유를 강조하는 그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러시아의 공산주의나 독일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가 ‘능률과 자유를 희생’시킨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br><br>3) 주식회사 <br><br>케인즈는 자본주의를 지배하고 있는 치부욕과 개인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이것들에 일정한 제한과 규율을 가한다면, “자본주의 사회는 어느 사회체제보다 더욱 자유롭고 능률적인 사회”가 된다고 믿고 있었다.24) 치부욕과 개인주의는 다음과 같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Keynes, 1936: 374, 380). 치부욕과 사유재산 제도는 인간의 유용한 활동들을 최고도로 발휘하도록 하며, 인간의 위험한 성향들이 개인적 권위를 세우거나 잔인한 행동을 하는 방향으로 발산되지 않고 비교적 무해한 짓(예: 은행계정의 관리)에 집중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개인주의는 결정과 책임의 분산을 통해 능률을 향상시킬 수 있으며, 개인적 선택의 폭을 넓혀 인생의 다양성을 보호함으로써 미래를 개선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br><br>그런데 케인즈는 주식회사제도의 발달로 개인적 이윤동기가 사실상 제한받고 있다고 본다. <br><br>자본의 소유자(즉 주주)는 경영으로부터 거의 분리되어 있다. 따라서 경영자들의 직접적 개인적 관심에서 이윤추구는 제2차적으로 중요하다. 이 단계에서 경영자들은 주주를 위한 최대한의 이윤보다는 그 회사의 일반적인 안정과 평판을 더욱 고려하게 된다(Keynes, 1926: 289). <br><br>이것은 버남(J. Burnham)의 ‘경영자혁명’(managerial revolution)과 비슷한 주장이며, 기업이 주식회사제도를 채택함으로써 자본주의체제 안에서 공공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기구가 발전하게 된다고 케인즈는 말한다. 그러나 이 기구만으로는 완전고용과 소득분배의 균등화를 실현하기에 부족하기 때문에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25) 조세정책으로 사회 전체의 소비성향을 조절해 소비를 증가시키고, 금융정책으로 이자율 인하를 통해 투자를 자극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완전고용에 필요한 유효수요를 얻을 수 없으리라고 생각해 케인즈는 국가기구를 통한 투자의 사회화를 제안한 것이다. <br><br>4) 마르크스: 생산의 사회화 <br><br>자본주의 경제체제에 관한 견해에서 케인즈와 마르크스는 어떻게 다른가? <br><br>케인즈는 자본주의체제의 ‘특징’을 치부욕과 개인주의라고 보며, 자본주의의 ‘뚜렷한 결점’을 실업과 소득분배의 불평등이라고 보고, 자본주의의 ‘장래’는 주식회사나 국가에 의해 치부욕과 개인주의가 일정한 규율과 제한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체제의 경제적 운동법칙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본주의체제의 ‘기본동력’은 자본의 가치증식과, 그것을 둘러싼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계급투쟁이라고 보았으며, 자본주의체제는 생산력(productive forces)을 무한정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기존의 생산관계(relations of production)와 모순하게 되어 주기적으로 공황을 맞이하면서 생산력을 낭비하게 되고, 생산의 사회화(socialisation of production; 노동이 공장 안의 분업과 사회적 분업의 진전에 따라 점점 더 사회적 성격을 띠게 되고, 자본이 기업의 거대화와 주식회사로의 전환에 따라 점점 더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사회 모든 사람들의 소유로 되어간다)가 전개됨에 따라 궁극적으로 생산자들의 연합이 경제운영 전체를 장악하면서 공동소유‧공동노동‧공동분배를 실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노동자계급은 자본의 억압에서 해방되고 자본가계급은 가치증식욕으로부터 해방되어 노동해방과 인간해방의 ‘새로운’ 세계가 나타난다고 보았다(Marx, 1867b: 제32장). <br><br>케인즈는 주식회사의 발달에 의해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 경영자는 공공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나 마르크스는 전혀 그렇게 보지 않는다. 마르크스의 시대에는 주식회사가 아직 드문 회사형태이었으므로 힐퍼딩처럼 구체적으로 분석하지는 않았다. 그러나『자본론』제3권 제27장(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신용의 역할)에서 마르크스는 주식회사에 대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점을 지적한다. <br><br>첫째는 “자본은 이제 사적 자본에 대립하는 사회적 자본(직접적으로 결합한 개인들의 자본)의 형태를 직접적으로 취하며, 이러한 자본의 기업은 사적 기업에 대립하는 사회적 기업으로서 등장한다. 이것은 자본주의 생산양식 그것의 한계 안에서 사적 소유로서의 자본을 철폐하는 것이다”(Marx, 1894a: 541). 둘째로 주식회사에서는 “현실의 기능자본가(functioning capitalist)가 타인의 자본을 관리하는 단순한 경영자로 전환하며, 자본 소유자는 단순한 소유자―단순한 화폐자본가―로 전환한다.” 이에 따라 주식회사는 “자본을 생산자들의 소유―그러나 이제는 개별생산자들의 사적 소유로서가 아니라, 연합된 생산자들(associated producers)의 소유 또는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소유―로 재전환하기 위한 필연적인 통과이다”(Ibid. 542). 셋째는 “주식회사는 일정한 분야에서 독점을 낳고 이리하여 국가의 개입을 부른다”(Ibid. 544). 대자본가는 주식 소유를 통해 다수의 주식회사를 지배할 수 있기 때문에 독점이 형성되며, 독점은 생산량과 가격의 자의적인 결정을 통해 경제 전체의 운동에 큰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에 국가의 감독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26) 넷째는 “주식회사는 새로운 금융귀족을 재생산하고, 회사발기인‧투기꾼‧명목뿐인 임원의 형태로 새로운 종류의 기생층을 재생산하며 회사창립‧주식발행‧주식거래와 관련된 투기‧사기의 전체를 재생산한다. 결국 주식회사는 사적 소유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사적 생산이다”(Ibid. 544). 주식회사와 관련된 투기와 사기는 거래소시장과 코스닥시장을 보면 분명해지며, 주주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에서는 주가를 상승시키기 위해 단기적인 수익획득에 몰두하며 회계를 조작해야 할 유혹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주식회사가 아무리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더라도 여전히 가치증식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 자본주의 기업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br><br>5. 국가에 관하여 <br><br>1) 케인즈 <br><br>케인즈는 실업과 소득분배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 국가의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의 밑바탕에는 국가의 능력과 국가정책의 추진세력에 관한 그의 사상이 깔려있을 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사회적 위기에 대한 그의 인식이 깔려있다고 보아야 한다. <br><br>케인즈에 의하면, 국가는 사회구성원들의 심리와 행동 및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독립적으로 정책을 수행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국가는 ‘개인들 사이의 소득이전에 불과한 투기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Keynes, 1936: 158), 투자의 한계효율을 계산할 때도 ‘장기적 안목과 사회 전체의 이익’을 고려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Ibid. 164). 따라서 국가는 완전고용을 달성하는 수준까지 투자 규모를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br><br>그런데 그 당시의 주류경제학은 모든 것을 개인에게 맡기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케인즈는 개인주의의 기초원리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었다. <br><br>개개인이 그들의 경제활동에서 법적인 ‘자연적 자유’(natural liberty)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소유주나 취득자에게 영구적인(eternal) 권리를 부여하는 ‘협약’은 없다. 개인적 이익과 사회적 이익이 항상 일치하도록 이 세계가 하나님에 의해 다스려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현실적으로도 개인적 이익과 사회적 이익은 일치하지 않는다. 계명된(enlightened) 이기심이 항상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작용한다는 것은 경제학원리로부터의 올바른 추론이 아니다. 이기심이 일반적으로 계명됐다는 것도 사실이 아닐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목표를 각자가 추구하는 경우 그 개인들은 너무나 무식하거나 연약하여 자기 자신의 목표까지도 성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Keyens, 1926: 287-288).27) <br><br>결국 케인즈는 개인은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지만 국가는 사회적 이익 또는 공공의 이익을 추구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당시의 국가가 사회적 이익―실업과 소득분배의 불평등을 해결하는 것―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br><br>케인즈에 의하면, 국가의 여러 가지 기구들(정부의 각 부처, 의회, 중앙은행 등)은 ‘기존 권익’(vested interests)보다는 그 기구의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사상’(ideas)에 의해 더욱 큰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국가의 경제정책이 실업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은, ‘낡은 사상’에 사로잡힌 정치가와 관료들 때문이지, 결코 어떤 권익집단이 실업을 부차적인 문제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케인즈는 “무식한 유권자들에 의해 선출된 의회나 정부의 위에 지식인들이 서서” 한 나라의 경제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며(Keynes, 1925b), 이를 위해 ‘반자율적인 기구들’(semi-autonomous bodies)을 설치하여 지식인들이 이 기구들을 장악하게 하고 국가의 임무를 이 기구들에게 맡길 것을 권고한다(Keynes, 1925b, 1926). 국가의 기구들이 자본가계급의 당파적 이익을 옹호한다고 보지 않기 때문에, 공평무사한 ‘지식귀족’이 국가기구를 장악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상은 케인즈의 ‘고정관념’(second nature)이었다(Harrod, 1972: 226). 어떻게 지식인들이 국가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분석은 전혀 없다. <br><br>케인즈는 그 당시의 정부가 경제문제의 해결에 속수무책인 것에 크게 실망했고 정부가 사회적 이익(즉 실업과 소득분배의 불평등의 해소)의 추구에 실패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지식인들의 정치 개입을 주창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왜 실업의 해소와 소득분배의 균등화가 사회적 이익이 된다고 케인즈는 생각했는가? 두 개의 세계대전 사이(1919～1939년)의 영국 사회는 ‘마르크스주의적 공산주의에 대한 현실적 대체물’을 만들어내야 할 단계에 있다고 케인즈는 보았다(Keynes, 1925b). 영국경제의 침체와 대량실업과는 대조적인 사회주의 러시아의 급속한 성장, 케임브리지 지식인들의 좌경화, 노동운동의 격화28) 등을 목격한 케인즈는 실업의 해소와 소득분배의 균등화를 통해 ‘사회정의’와 ‘사회안정’을 도모함으로써 자본주의 사회체제를 유지‧보존하려고 한 것이다. <br><br>소비성향과 투자유인을 조절하는 업무와 관련하여 국가의 기능이 확대하는 것은, 19세기의 시사평론가나 금일의 미국금융인의 눈에는 개인주의에 대한 거대한 침해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국가 기능의 확대가 지금의 경제형태의 전면적 파멸을 회피하는 유일한 현실적인 방법이며, 또한 개인의 독창력을 성공적으로 발휘하게 하는 조건이 된다는 점에서, 국가 기능의 확대를 옹호하는 바이다(Keynes, 1936: 380). <br><br>케인즈의 유효수요이론은 사회민주주의의 발달을 크게 도왔다(Lambert, 1963; Grahl, 1983). 왜냐하면 그의 이론은 평등주의의 팽창에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다. 케인즈 이전의 평등주의자들은 소득분배의 균등화가 모든 점에서 옳은 일이지만 저축의 감소를 가져와 경제성장을 저해한다는 한 가지 점 때문에 그것을 강력히 주장할 수 없었다. 그런데 케인즈는 소비를 늘리고 저축을 줄여야 실업을 해소하고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에 평등주의가 크게 팽창할 수 있었던 것이다(Schumpeter, 1954: 1171). 또한 케인즈의 경제정책은 국가 개입의 확대, 정부 지출의 증가,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등을 포함하고 있었으므로 진보적인 관료와 기업가 및 노동조합을 연합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사회민주주의가 발달한 것이다. <br><br>그러나 케인즈는 국가가 사회구성원들과는 완전히 분리‧독립된 ‘선의의 제3자’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고방식은 그가 맬더스(T. R. Malthus)를 가장 훌륭한 경제학자로 숭배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맬더스에 의하면, 노동자들의 임금으로는 사회의 총생산물을 소비할 수가 없어 과잉생산이 생기므로, ‘제3자’인 비생산적 계층(생산에 직접 참가하지 않고 소득을 얻는 계층으로 예컨대 자기와 같은 목사와 관리‧지주 등을 가리킨다)의 소비가 경제의 유지‧발전에 크게 공헌하고 있다는 것이다.29) 물론 맬더스의 ‘제3자’와 케인즈의 국가는 유효수요를 창출한다는 의미에서는 상당히 다른 ‘능력’을 가진다. 목사나 관리나 지주는 노동자나 기업가가 얻은 수입(收入) 중 일부를 재분배 받는 것이기 때문에 ‘제3자’의 지출은 일정한 한계를 가지지만, 정부는 각종 세입(歲入) 이외에 국채를 발행하여 얻은 자금도 지출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의 지출은 상당히 큰 규모에 달할 수 있다.30) <br><br>2) 마르크스 <br><br>마르크스는 국가는 자본가계급으로부터 ‘상대적 자율성’(relative autonomy)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본가계급의 이익에 봉사하는 ‘위원회’라고 본다. 다시 말해 국가 엘리트(대통령‧국무총리‧국회의원‧대법원장‧검찰총장‧경찰국장‧금융감독원장‧국정원장 등)가 국가기구를 통해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외형적으로는 국가 엘리트가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지배계급인 자본가계급의 이익에 봉사한다는 것이다. 물론 노동자계급과 이들을 지지하는 정치적‧문화적‧사회적 세력이 자본가세력과 대립‧충돌해 경제적‧정치적‧사회적 혼란이 계속된다면, 국가는 자본주의 사회를 유지‧옹호한다는 입장에서 자본가계급으로 하여금 노동자계급에게 일정하게 양보하도록 개입할 수 있다. 예컨대 국가가 근로기준법을 제정해 노동일의 제한과 근로조건의 개선을 자본가계급에게 명령하고, 노동조합의 결성권‧단체협약권‧단체행동권을 법률로 보호하며, 각종의 사회보장제도를 실시하는 것은, 국가가 제3자의 중립적 입장을 취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를 유지해야 한다는 자본가적 입장에서 자본가계급의 직접적‧단기적 이익을 물리치고 자율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br><br>그러므로 케인즈처럼 국가는 항상 자본주의의 ‘뚜렷한 결점’인 실업과 소득분배의 불평등을 해소하려고 노력한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1970년대 중반 이래 지금까지 계속되는 세계적 대불황 중에서 신자유주의적 국가가 실행한 여러 가지 조치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는 사회보장제도를 축소하고 소득세의 누진율을 인하함으로써 소득분배의 불평등을 강화했다. 국가는 실업의 해소보다는 인플레이션의 억제를 정책의 최대 목표로 삼아 재정금융의 긴축정책을 실시해 수많은 기업들을 도산시키고 실업을 대규모로 창출했다. 국가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노동조합의 활동을 규제하고 비정규직의 규모를 대폭 증가시켰다. 이런 조치들의 모두는 ‘낡은 사상’에 사로잡힌 정치가나 관료의 무식 때문이 아니라, 무한경쟁의 세계경제에서 자국 출신의 자본을 지원‧옹호하려는 계급국가의 의도된 정책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국가는 기본적으로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데, 자본의 가치증식 조건(정치적‧경제적‧이데올로기적‧국제적 조건)에 따라 어느 시기에는 파시즘으로 변형하고 다른 시기에는 사회민주주의로, 또 다른 시기에는 신자유주의로 변형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김수행, 2005: 85, 352). <br><br>6. 국제거래와 자급자족 <br><br>케인즈는 러시아의 사회주의,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즘 등을 새로운 경제체제를 찾으려는 ‘실험’(experiments)으로 규정하고, 모든 국가는 19세기의 자유무역적 경제적 국제주의를 버리고 ‘국민적 자급자족’(national self-sufficiency)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네 가지의 사실을 지적했다(Keynes, 1933). <br><br>첫째로 경제적 국제주의는 국제평화를 보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가) 각국 정부가 해외시장을 차지하려고 노력하고, 외국 자본가가 자본을 수출하여 일국의 경제구조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일국의 경제적 운명이 타국의 경제정책의 변동에 크게 의존하게 됨으로써, 각국 정부 사이에 마찰과 갈등이 생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 주식회사의 발달에 따라 외국의 (주식)소유자들이 국내기업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수익성 원리에 따라 행동한다면 국내기업과 국민경제는 큰 손실을 입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br><br>그러므로 케인즈는 나라들 사이의 경제적 얽힘(economic entanglements)을 최소화하기를 바랐다. “사상‧지식‧과학‧환대(hospitality)‧여행은 그 성격상 국제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재화들은 될 수 있는 한 국내에서 만들어야 하며, 특히 금융은 주로 국내에서 역할해야 한다. …… 국민적 자급자족과 나라들 사이의 고립의 정도가 1914년보다 더욱 강화되어야만 국제평화에 기여할 것이다.” <br><br>둘째로 국제적 분업의 경제적 이익이 옛날처럼 크지가 않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가) 각국에서 현대적 대량생산이 거의 비슷하게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 국민경제에서 제1차 산업과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비교역재(非交易財)인 주택‧개인서비스‧지방오락 등에 비해 줄어들고 있으므로, 더 큰 자급자족의 결과 제1차 산업과 제조업의 제품 가격이 상승하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이 가격 상승은 자급자족이 보존할 수 있는 농업‧목축업 및 그것에 종사하는 주민들과 그들의 전통문화가 가진 비경제적인 이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br><br>셋째로 무질서한 국제적이고 개인주의적 자본주의는 사적 기업을 유지‧보존할 것이므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적‧물적 자원과 기술이 허용하는 물질적 부를 얻게 할 수 없다. 특히 국제금융시장에서 결정되는 이자율은 완전고용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이자율보다 높게 결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금지하는 조치(자본통제)가 필요하다. <br><br>넷째로 각국 정부가 회계사의 ‘효율성’ 계산31)에서 벗어나 자국 안의 물적‧인적 자원을 완전히 사용하는 정책들을 실시한다면, 국제거래의 필요성은 상당히 줄어들 것이고 국제거래가 가져올 혼란에 대한 대비가 더욱 필요하게 될 것이다. <br><br>이런 케인즈의 ‘국민적 자급자족론’은 현재의 지구화 또는 세계화(globalisation), 특히 한미 FTA 체결에 대한 하나의 경종이 될 것이다. 그러나 케인즈의 주장과는 달리, 자급자족 ‘사상’이 아니라 세계화를 지지하는 ‘기존권익’(예를 들면 다국적기업과 제국주의국가)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화는 점점 더 진전하고 있다. <br><br>케인즈는 1944년 브레튼 우즈 회의에 영국대표로 참가해 IMF와 IBRD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영국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노력했다.32) 여기에서도 그는 환율의 고정과 자본이동의 통제를 강조했는데, 이 장치들은 한 나라의 정부가 유효수요정책을 통해 완전고용을 달성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어떤 정부가 이자율을 낮추어 투자를 유인하려고 하는 경우, 화폐자본가들이 이자율이 낮다고 다른 나라로 자금을 이동시키면 그 나라는 투자를 증대시킬 수 없게 된다. <br><br>그런데 현재와 같은 세계적인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국제적인 케인즈주의’(international Keynesianism)가 주창되고 있다. 이것은 각국이 함께 케인즈주의적 금융재정 확장정책을 동시에 실시함으로써 세계적인 불황을 해소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UN이나 IMF나 WTO에서 이런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케인즈는 국제수지의 악화가 완전고용 정책을 포기하도록 하는 것을 막기 위해, 무역수지 흑자국이 더욱 큰 책임을 지면서 흑자를 적자국에 대부하는 형태로 국제지불제도를 재편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브레튼 우즈 회의에서 영국의 케인즈 안이 채택되지 않고 미국의 화이트(H. D. White) 안이 채택되면서 IMF는 위와 같은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됐다. IMF 아래에서는 미국 달러가 금과 마찬가지로 세계화폐로서 기능했기 때문에, 미국 정부는 대외원조‧대외침략‧국제경쟁력 약화 등으로 미국 달러가 대외로 크게 유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미국 달러의 국제적 신뢰도가 크게 손상되어 달러 보유국들이 앞 다투어 미국 정부로부터 금을 인출해가는 바람에 미국 정부는 1971년 달러와 금과의 교환을 중단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여전히 세계에서 경제적‧군사적‧정치적‧이데올로기적으로 가장 강력했기 때문에, 값비싼 귀금속인 금의 뒷받침 없는 미국 지폐인 달러가 세계화폐로 그대로 통용되면서 고정환율제도는 변동환율제도로 바뀐 것이다. 현재에도 무역수지의 적자나 자본유출 등을 무서워하지 않고 경기를 계속 확대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미국 정부가 세계적인 불황을 해소하기 위해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Eatwell, 1994), 다른 일부에서는 미국은 무역수지 적자를 걱정하지 않고 외국 상품들을 거의 공짜로 소비하기 때문에 매우 ‘불공평’하다고 주장한다(Davidson, 2002). 사실상 국제통화제도를 재편해야 할 필요성은 긴급하지만 제국주의의 우두머리에 있는 미국이 자기의 이익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제도의 재편은 아직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br><br>마르크스에 의하면, 자본의 가치증식욕은 국경을 무너뜨리면서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적 문명을 세계로 전파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식민지와 종속국의 인민들을 억압하고 착취한다. 생산력이 크게 발달한 상황에서 그 생산력을 국민국가 안에 잡아둘 수는 없기 때문에, 국제무역과 국제대부 및 다국적 생산은 불가피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다수의 나라들이 하나의 세계로 통합되면서 세계적인 차원에서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이 형성될 것이고, 만약 이 세계적인 노동자계급이 계급투쟁에서 승리해 권력을 장악한다면 일국 사회주의가 아니라 만국 사회주의(cosmopolitan socialism)가 건설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자인 필링(G. Pilling, 1987)은 케인즈가 “좁은 반동적인 경제적 국민주의에 의존해 자본주의의 위대한 성과인 세계시장과 국제분업을 거부했다”고 비판한다. <br><br>그러나 마르크스의 이런 시나리오는 ‘궁극적으로’ 나타날 것을 예측한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현실적으로는 자본의 세계화 과정에서 국내에서는 각종의 ‘양극화’가 더욱 진행되고, 국제적으로는 발전의 불균등성이 더욱 심화되면서 제국주의적 지배와 종속이 강화되고 국제적인 금융공황이 일어나면서, 세계적인 공황이 발생하여 자본의 세계화가 머뭇거릴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유지‧보존하기 위해 거대한 생산력이 다시 파괴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거대한 생산력을 활용해 세계의 모든 주민들에게 ‘넉넉한 생활’을 보장할 세계혁명이 필요하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br><br>‘국제적 케인즈주의’와 관련해, 필링(Pilling, 1987)은 실질적인 가치가 없는 미국 달러는 세계화폐로서 적합하지 않지만 현재에는 미국의 국제적 지위 때문에 세계화폐로서 기능하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국제적 케인즈주의에 의거해 미국 정부가 특히 전쟁을 계속하면서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대규모로 야기한다면, 미국 달러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하고 미국 달러를 대체하는 새로운 화폐(예를 들면 유럽연합의 유로)가 등장하면서 뉴욕의 증권시장에서 공황이 일어나서 미국경제와 세계경제가 위기와 공황을 맞이할 것으로 예상한다(김수행, 2005: 201-208, 356-358). <br>7. 케인즈주의가 마르크스주의에 미친 영향 <br><br>필링(Pilling, 1987)은 케인즈주의가 마르크스주의에 미친 영향으로 다음과 같은 것을 지적했다. <br><br>1) 케인즈경제학이 자본주의의 경제문제를 해결했다고 믿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자본주의의 경제문제를 소홀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br><br>2) 케인즈주의적 장기정체설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 침투했다. 스위지(P. Sweezy)와 바란(P. Baran)의『독점자본』이 그 대표적인 예다. <br><br>3) 케인즈의 유효수요이론에 의거해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영구군비경제(永久軍備經濟)가 자본주의의 안정적 성장을 보증한다고 주장했다. <br><br>4) 노동당과 노동조합은 케인즈의 유효수요이론에 의거해 실업을 감소하기 위해서는 정부 지출의 증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br><br>1)에 관해서는 상당한 증거가 있다. 예컨대 “1950년대는 …… 영국 자본주의의 황금기로서 케인즈식의 금융재정정책으로 소득증대와 완전고용 및 소득재분배를 이룩할 수 있다는 신념이 노동당의 지도부와 이론가들 사이에 팽배했다. 이리하여 국유화나 계획화, 그리고 산업민주주의는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수정주의(revisionism)가 크게 대두했고, 이것의 대변자는 휴 게이츠켈(H. Gaitskell; 1955～1963년의 당수), 존 스트레이치(J. Strachey)와 토니 크로슬랜드(T. Crosland)였다”(김수행, 2006: 12). 그런데 필링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소외(alienation) 문제, 헤겔 철학, 환경 문제, 여성주의 등에 몰두하게 된 것도 케인즈경제학의 ‘성공’ 때문에 경제문제를 소홀히 다루는 과정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는데, 반드시 그렇게 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마르크스의 사상을 여러 분야에서 개척하는 과정에서 소외, 헤겔과 마르크스의 차이 등이 연구과제로 등장했고, 환경이나 여성주의나 새로운 사회운동 등은 자본주의의 현대적 발전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br><br>2)의 장기정체설과 장기정체를 해소하는 방법에 관한 논의는 아래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며, 3)과 4)의 문제는 결국 정부의 지출이 과연 경기를 회복시키고 안정시키는가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정부의 지출은 생산적인가?’에서 다룰 것이다. <br><br>1) 장기정체설 <br><br>케인즈주의자인 한센(A. Hansen, 1938)은 미국 자본주의의 현상분석을 통해, 한편으로는 소비성향이 증가하지 않아 소비수요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기 때문에, 다른 한편으로는 인구증가율이 저하하고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지 않으며 기술혁신 속도가 감소하고 새로운 프론티어(frontier)가 나타나지 않으므로, 투자기회가 감소하여 투자수요가 감소하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유효수요 부족으로 장기적인 정체경향을 나타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한센의 장기정체설은 하버드대학의 자기 동료인 스위지에게 영향을 미쳤는데, 스위지와 바란은 한센이 다루지 않은 독점을 추가로 도입함으로써 장기정체설(secular stagnation theory)을 더욱 정교하게 만들었다(King, 1992: 101, 112). <br><br>스위지와 바란은 먼저 독점자본주의에서는 경제잉여가 증가하는 경향(Tendency of the Economic Surplus to Rise; TESR)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 경향은 마르크스가 경쟁자본주의에서 정립한 ‘이윤율의 저하 경향’(TRPF)에 대립하는 것이라고 말한다(Sweezy &amp; Baran, 1966). <br><br>‘경제잉여’는 바란(Baran, 1957)이 만든 개념인데, 여기에는 현실적인 경제잉여(actual economic surplus), 잠재적인 경제잉여(potential economic surplus) 및 계획된 경제잉여(planned economic surplus)가 있다. ‘현실적인 경제잉여’는 현재의 생산과 소비의 차이로서 현재의 투자재원을 이룬다. 그런데 현실적인 경제잉여는 다음의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잠재적인 경제잉여’보다 적다. 첫째는 부유층이 사치생활을 함으로써 경제잉여의 일부가 투자재원을 형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비생산적’ 취업자들(군수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 정부관리, 군인, 법률가와 탈세전문가, 광고대리인, 상인, 투기꾼 등)이 경제잉여를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잠재적인 경제잉여는 현재의 생산과 ‘객관적으로 필요한 소비’ 사이의 차이를 말하는데, TESR에서 말하는 경제잉여는 당연히 잠재적 경제잉여를 가리킨다.33) 끝으로 ‘계획된 경제잉여’는 현재의 물적‧인적 자원을 모두 동원해서 얻을 수 있는 생산 가능액에서 ‘객관적으로 필요한 소비’를 뺀 것인데, 이 개념은 자본주의가 아닌 ‘새로운’ 사회에서는 공황이나 경기변동도 없이 모든 자원을 항상 완전히 사용해서 주민들의 복지를 중단 없이 향상시킨다는 가정에 의거하고 있다. <br><br>왜 독점자본주의에서는 잠재적 경제잉여가 증가하는가? 다수의 독점자본은 가격선도제(price leadership)와 암묵적인 공모(implicit collusion)를 통해 높은 독점가격을 유지하면서 생산비를 절감하는 경쟁에 몰두하기 때문에, 독점이윤은 증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독점이윤이 잠재적 경제잉여의 큰 항목이므로, 독점자본주의에서는 잠재적 경제잉여가 증가하는 것이다. <br><br>마르크스는 잉여가치가 노동자들에 의해 생산영역에서 창조되고 유통영역에서 실현된다고 주장했는데, 스위지와 바란은 노동과정을 분석하지 않은 채 경제잉여가 독점가격과 생산비의 차이 형태로 유통영역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을 그들은 경쟁자본주의와 독점자본주의의 특수한 차이점이라고 말한다. 물론 독점자본은 자기 상품의 가격을 높게 설정하여 소비자(소비재의 소비자든 생산재의 소비자든)의 주머니를 털 수 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잉여가치가 생산영역에서 창조되지 않는다면 독점이윤도 한계에 부닥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독점이윤이 계속 증가했다면, 어떻게 1970년대부터 미국의 대기업들이 도산 위기에 몰리면서 경제가 불황에 빠지게 됐는지를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마르크스의 TRPF는 잉여가치를 낳는 ‘가변자본’과 잉여가치를 낳지 않는 ‘불변자본’의 구별, 잉여가치율, 자본의 회전시간 등에 의거해 설정되어 있으므로, 자본주의의 어느 단계에서나 적용될 수 있는 일반적인 법칙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br><br>(잠재적) 경제잉여가 증가한다는 것은 독점기업이 생산하는 상품들(재화든 서비스든)의 총량 중 경제잉여를 대표하는 상품량(즉 잉여생산물)이 증가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 잉여생산물이 팔리지 않는다면 경제는 침체와 불황에 허덕이게 될 것이다. 이리하여 스위지와 바란은 이 잉여생산물의 판로를 연구하게 된다. 노동자들의 소비는 자본의 가치증식욕 때문에 최저수준으로 제한되어 있으며, 자본가들의 소비는 자본가들 사이의 투자 경쟁 때문에 크게 증가하지 않으며, 자본가들의 투자는 자기들의 독점적 지위를 위협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질 뿐이고, 인구 증가에 따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투자는 인구 증가율이 저하하기 때문에 제한되어 있으며, 지금의 상품과 생산방법이 높은 이윤을 낳기 때문에 혁신을 위해 투자할 필요가 없고, 해외투자는 곧 더 많은 이윤을 국내로 가져오기 때문에 이 이윤을 어디에 투자하는가의 문제를 다시 일으킨다. 이처럼 잉여생산물의 판로가 매우 좁기 때문에, 독점자본은 잉여생산물을 스스로 선전 광고와 판매 촉진으로 ‘낭비’하든지, 정부에게 팔아 정부로 하여금 전쟁준비나 전쟁에서 낭비하도록 한다.34) <br><br>정부가 이 잉여생산물을 세금으로 구매해서, 사회보장제도를 확대‧개선해 교육과 의료를 무상으로 한다든지 공공 임대주택을 지어 서민들에게 적은 임대료를 받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독점 자본가들은 교육‧의료‧주택 등에서 독점이윤을 얻을 기회를 놓치게 되므로 반대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증가하는 경제잉여를 흡수하여 경제의 호황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선전‧광고와 전쟁준비이기 때문에 독점자본주의는 ‘비합리적인’ 체제라고 스위지와 바란은 비난한다.35) <br><br>마르크스도 인정하는 바와 같이 잉여가치의 생산은 잉여가치의 실현이 뒤따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다시 말해 상품을 생산해도 그 상품이 팔리지 않으면 자본가는 헛짓을 한 것이다. 특히 생산력이 거대하게 발전한 독점자본주의에서는 시장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된다. 자본수출이나 식민지와 종속국의 획득, 나아가서 전쟁이 마르크스주의에서 큰 분석대상으로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도 세계화를 외치면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는 자본주의 최강국인 미국이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br><br>2) 경제의 군사화 <br><br>스위지와 바란이 주장하는 것처럼 경제의 군사화(militarisation of economy; 경제가 군수산업에 크게 의존하는 상황) 또는 영구군비경제(permanent arms economy)가 장기정체경향을 해소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을까? <br><br>케인즈는 전쟁이나 전쟁준비가 완전고용의 달성에 기여한다고 생각한 바가 없다. 제1차세계대전이 끝난 1920년대의 영국에서는 1930년대의 세계적 대공황보다 더 많은 실업자가 있었다. 세계경제의 중심지가 런던에서 뉴욕으로 옮겨가고 있었고, 영국의 주요 산업들(섬유‧선박‧석탄 등)은 국제경쟁력을 잃었으며, 제1차세계대전의 군인으로 또는 전시군수산업의 노동자로 동원된 인원들이 모두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케인즈가 제안한 것은 정부가 도로‧항만‧학교‧병원‧주택 등 ‘공공사업’(public works)을 대규모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공공사업으로 고용이 늘면 소득이 늘어 정부의 조세수입이 증가하게 됨으로써 적자재정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또한 1939년 영국이 독일에게 전쟁을 선포한 뒤, 케인즈는 영국경제의 활황을 예상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전쟁비용을 조달하는가에 몰두했다. 물자를 외국으로부터 수입해야 하고, 수많은 노동인구가 전쟁에 동원되면서 소득이 증가하면 물가가 상승하면서 수입이 더욱 증가할 것인데, 정부가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케인즈는 소득세의 누진율을 높이고, 일정한 최소 소득 이상의 소득은 강제저축으로 흡수하여 전쟁 이후에 지급하는 제도를 제안했다(Skidelsky, 2004: 586-589). 따라서 경제의 군사화가 자본주의를 지탱한다는 아이디어는 케인즈주의자들의 장기정체설을 토대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자본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다(Howard &amp; King, 1992: 제8장 참조). <br><br>군수산업은 전쟁에 필요한 군수품―무기와 탄약으로 국한하자―을 생산하는 산업이고36) 군수품은 전적으로 정부의 구매품목이라고 가정하면,37) 군수산업의 생산물(즉 군수품)에 대한 수요는 전적으로 정부의 조세수입이나 적자재정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다. <br><br>군수품은 사람들의 의식주생활이나 문화생활에 필요한 소비재도 아니고,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기계나 원료도 아니고, 오로지 인류의 문명과 생명 및 재산을 파괴하기 때문에, 군수품의 생산과 연구개발에 묶여있는 인적‧물적 자원은 낭비되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38) 그러나 자본가들은 이런 낭비적인 성질에도 불구하고 군수품의 생산과 판매가 이윤을 낳기 때문에 그것에 종사하는 것이다. 군수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자본가를 위해 직접적으로 잉여가치를 생산하며, 군수산업에 투자된 자본은 사회적 평균이윤율의 형성에 참가한다. 군수산업의 이윤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군수산업으로 자본이 이동할 것이며 사회적 평균이윤율은 상승할 것이다. <br><br>군수품의 가격(D3)은 군수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계와 원료의 가격(C3) + 임금(V3) + 잉여가치(S3)인데, 정부가 군수품을 구매한다면 군수품 가격 전체에 해당하는 화폐가 시중의 구매력으로 나타난다. 군수산업은 C3를 비군수산업으로부터 구매해야 하며, 노동자에게 V3를 지급하는데 이것은 소비재를 구매할 것이고, S3 중 일부는 자본가의 개인적 소비를 위해 다른 일부는 확대재생산을 위해 결국 비군수산업의 생산물을 구매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군수품은 정부가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구매하여 창고에 보관하기 때문에 시장에 나타나서 다른 상품들의 시장을 빼앗지도 않는다. 이에 따라 군수산업은 시장에 상품을 공급하지 않은 채 수요만 증대시키기 때문에 유효수요의 부족을 완화하고 제거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스위지와 바란(Sweezy &amp; Baran, 1966)이 주장하고 있다. <br><br>그러나 몇 가지 주목해야 할 문제점이 여기에 있다. <br><br>첫째로 정부가 군수품의 구매자금을 어떻게 조달하는가에 따라 사회의 총수요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만약 정부가 그 구매자금을 세금으로 조달한다면, 납세자들의 구매력이 정부로 이전된 것에 불과하므로 사회의 총구매력의 증대는 크게 기대할 수 없다.39) 비군수품의 구입에 지출될 납세자들의 구매력을 정부가 세금으로 흡수해 군수품의 구입에 지출하는 경우, 비군수품에 대한 수요는 감소하고 비군수산업은 정체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은 정부가 군수품의 구매자금을 국채(國債)의 발행을 통해 공개시장에서 조달하는 경우에도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정부가 국채를 중앙은행에 인수시키고 자금을 차입한다면, 그 차입액은 사회의 구매력을 증가시킬 것이다. <br><br>둘째로 정부 지출의 원천이 되는 세금이나 국가채무를 정부가 무한정 증가시킬 수 있는가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노동자들이 자기의 노동력(labour-power)의 가치에 해당하는 임금―즉 자기와 자기 가족의 물질적‧문화적 생활을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수준의 임금―을 받는다면 노동자들은 세금을 낼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모든 세금(과 국채의 원리금 상환액)은 결국 자본가계급이 얻는 잉여가치로부터 나와야 한다. 다시 말해 정부는 군수산업의 자본가들과 비군수산업의 자본가들이 얻는 잉여가치의 일부를 세금으로 거두어들여야 한다(군수산업의 자본가들이 내는 세금을 A라 부르고 비군수산업의 자본가들이 내는 세금을 B라 부르자). 정부는 이 세금으로 군수품을 구매함으로써, ‘직접적으로는 군수산업의 자본가가 얻는 잉여가치’(이것을 A' 라고 부르자)를 증가시키고 ‘간접적으로는 비군수산업의 자본가가 얻는 잉여가치’(이것을 B' 라고 부르자)를 증가시킨다고 말할 수 있다. 만약 자본가들이 내는 세금(A+B)이 자기들이 얻는 잉여가치(A' + B')보다 크다면 자본가들은 세금 납부에 저항할 것이므로 군수산업은 오래 유지될 수가 없다.40) 그러나 이 경우에도 A보다 A'이 크다면 정부는 군수산업을 유지하려고 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군수산업의 자본가들이 정치적‧경제적으로 강력하기 때문이다. 결국 경제적으로 볼 때 군수산업의 유지와 확장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으며, 따라서 장기정체 경향을 약화하거나 제거하는 방법으로도 일정한 한계가 있다. <br><br>셋째로 군대와 산업 및 무기과학이 한 통속이 된 군산학복합체(military-industrial-academic complex)는 “항구적인 평화가 유지되는 상황에서는 자기들의 이익은 사라진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냉전과 열전을 야기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석유생산이 집중되어 있는 중동에서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은 세계적인 석유자본과 군수자본이 반동적인 미국 정부와 야합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41) 이에 따라 경제의 군사화는 대규모의 반전운동에 부닥치고 있다. 또한 군수품의 제조과정은 ‘대외비’로 타인에게 공개되어서는 안 된다는 구실 아래 군수품의 가격은 ‘제조비용+일정한 이윤’으로 책정되기 때문에, 무기와 탄약의 가격이 정부와 군수산업 사이의 연줄(crony)에 의해 터무니없이 높아지고 군수산업은 ‘높은 이윤과 낮은 능률’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군수산업에 대한 추문(scandal)이 끊임없이 폭로되고 있기 때문에, 군수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에도 한계가 있다. <br><br>넷째로 군수산업의 확대가 비군수산업에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을 빼앗아간다면, 비군수산업이 정체할 뿐만 아니라 일국 경제의 국제경쟁력도 저하한다는 비판이 있다. 이 비판은 한편으로는 군수품은 사회적 낭비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의거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군사비의 부담이 적은 서독과 일본이 1950년대 급속히 회복하면서 국제경쟁력을 높인 사실에 의거하고 있다.42) 그런데 실업자와 유휴설비가 있는 불황에서는 경제의 군사화가 인적‧물적 자원을 완전히 이용함으로써 생산과 소득을 최고수준으로 올릴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그러나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군수품을 창고에 계속 보관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제2차세계대전 중의 전시통제경제(戰時統制經濟)에서 1930년대의 대불황이 끝났을 뿐 아니라 고용과 생산과 소득은 최고수준을 기록했다. <br><br>3) 정부의 지출은 ‘생산적’인가? <br><br>실업을 해소하기 위해 그리고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위해 정부의 지출을 증가시켜야 한다고 주장할 때, 케인즈주의자든 마르크스주의자든 정부의 지출이 생산적인지 아닌지를 묻지 않고 있다. 그들은 정부의 지출이 유효수요를 구성한다는 측면만을 강조하지 그것이 ‘비생산적’ 지출이라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는다. 정부는 잉여가치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자본가가 아니기 때문에, 국가의 지출은 모두 비생산적 지출이다. 다시 말해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않는다. 도로‧철도‧항만‧학교 등 사회간접자본 설비를 만들든, 수익성을 추구하지 않는 국영기업이나 공익사업에 투자하든, 사회보장제도의 개선과 확대에 투입하든, 공무원에게 봉급을 주든, 정부의 지출은 ‘직접적으로는’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않는다. 신고전파와 케인즈주의자들은 시장에서 보수를 받는 모든 노동은 ‘생산적(productive)’ 이라고 간주하지만, 마르크스는 ‘자본가를 위해 직접적으로 잉여가치를 창조하는 노동’만을 생산적이라고 보았다.43) <br><br>그러므로 정부의 지출은 위에서 본 군사비 지출과 마찬가지의 문제점을 가지게 된다. 세금이나 국채 등 어떤 방법으로 정부가 자금을 조달하든, 이 자금은 자본가계급의 잉여가치로부터 빼앗아 온 것이다. 그런데 이 자금을 정부는 잉여가치를 창조하지 않는 방식으로 지출 또는 ‘낭비’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의 지출(소비지출과 투자지출) 덕택으로 산업 자본가들이 자기들이 정부에 바친 세금보다 더 많은 잉여가치를 얻지 못한다면, 정부의 지출은 자본축적을 저해한다고 주장하게 될 것이다. 물론 정부의 지출이 경제 전체에 미치는 효과는 그 당시의 경제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다. 예컨대 불황이 심한 상황에서는 정부의 지출에 의해 지금까지 사용되지 않던 공장들이 가동되면서 생산‧고용‧임금‧이윤 등이 모두 증가할 수 있다. <br><br>어쨌든 정부의 지출은 비생산적이고 따라서 그 규모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만약 산업자본가들이 자기들이 정부에 바친 잉여가치(세금)보다 더 큰 잉여가치를 정부의 지출을 통해 얻지 못한다면, 산업자본가들은 정부에게 지출 축소를 요구하거나 사회보장제도의 해체를 요구하거나 노동자들에게 더 낮은 임금을 주거나 자본축적 규모를 축소할 수밖에 없다. 사실상 1970년대 이래의 대불황에서 자본가들과 그들의 이론적 대변인들이 신자유주의를 주창하고 있는 이유의 하나도 바로 여기에 있다. <br><br>그러나 정부의 지출이 비생산적이기 때문에 노동자계급은 사회보장제도의 개선과 확대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비정치적이다. 선진국의 국가는 보건과 교육, 실업수당과 노후연금, 저소득층에 대한 각종 보조 등 사회보장제도를 위해 사회복지비를 많이 지출하고 있기 때문에 복지국가(welfare state)라고 불린다. 사회보장제도는 노동자계급을 포함한 저소득층의 오랫동안에 걸친 투쟁의 산물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노동자계급이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등장함에 따라 사회보장제도는 개선되고 확대됐다. 그러나 사회보장제도에 의해 자본가계급도 이익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제도가 개선되고 확대됐다는 점을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예컨대 사회보장제도는 자본가계급 측에서 본다면 노동력의 질을 향상시키고 노동력의 양을 증가시키는 제도로서 노동인력이 부족한 고도성장기에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제도였는데, 보건과 교육 등을 개별 자본가들이 담당할 수 없기 때문에 자본가계급 전체를 위해 국가가 담당하게 된 것이다. <br><br>사회복지비 지출이 자본가계급 전체에게 그것에 상당하는 잉여가치를 제공하는 데 공헌하지 못한다면, 자본가계급은 사회복지비 지출을 삭감하라고 요구할 것이며 이에 따라 사회보장제도는 축소되고 복지국가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br><br>신자유주의가 복지국가를 해체시키면서 내세운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로 고소득층에 대한 세금을 삭감함으로써 고소득층의 근로의욕과 투자의욕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사실상 세금의 원천이 자본가계급의 잉여가치인데, 사회복지비 지출은 자본가계급에게 그 지출에 상당하는 잉여가치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주장과 거의 일치한다. 둘째로 사회복지비 지출로 실업자가 실업수당을 받거나 소득보조를 받기 때문에, 취업 노동자들이 자본가의 지휘와 명령에 복종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노동자들이 사회보장제도 때문에 임금과 노동조건의 협상에서 상대적으로 강력한 발언권을 가지게 되어 자본가들이 임금 인하나 노동시간의 연장이나 노동 강도의 강화 등을 통해 잉여가치를 증가시키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셋째로 사회복지비 지출은 노동생산성의 향상이나 국제경쟁력의 강화, 기업의 수익성 개선에는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넷째로 사회보장제도의 개선과 확장으로 학교‧병원‧법률상담소‧양로원‧탁아소 등등이 점점 비영리 공공기관으로 전환됐기 때문에, 민간자본의 영리활동 분야―다시 말해 투자기회 또는 투자처―가 축소됐다는 것이다. <br><br>결국 정부의 사회복지비 지출은 사회의 구매력을 증가시킬지는 모르지만 자본가들의 이윤 추구에는 많은 애로를 만들어내었다. 이에 따라 자본가계급은 복지국가의 해체를 요구하게 됐고, 노동자계급의 세력과 단결력이 약화되는 불황 아래에서 복지국가의 해체가 진행된 것이다. <br><br>8. 맺음말 <br><br>경제학의 역사에서 케인즈도 마르크스처럼 이론과 실천 모두에서 위대한 인물이며, 1945년 이후 30년 동안 세계의 경제학계을 지배한 부르주아 학자이다. 따라서 이 작은 글로 케인즈를 깊게 소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이 글에서 케인즈 사상의 특색을 유효수요이론, 자본주의관, 국가관, 국민적 자급자족, 국가의 지출에서 찾아 각각의 특색을 설명하면서 마르크스의 사상과 비교하려고 노력했다. <br><br>케인즈는 자본주의체제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체제를 타도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이 그들의 이론과 실천에 그대로 나타나도록 글쓰기에 유의했다. 이론적으로는 정부의 사회복지비 지출은 ‘비생산적’ 지출이고 자본가계급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이며, 나아가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노동자계급이 인간다운 삶을 위해 사회복지비의 지출을 요구하는 것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비판하는 것은 실천에서는 자본가계급에 투항하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이 이윤추구의 자본주의를 필요 충족의 새로운 사회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자본가들의 이윤추구 때문에 현재의 인적 물적 자원이 완전히 이용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폭로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에서는 이용 가능한 인적 물적 자원으로 달성할 수 있는 생산량‧고용량‧소득량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서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폭로함으로써,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철폐하면 모든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욱 높은 생활수준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이 점에서 케인즈의 ‘불완전고용’ 개념은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도 큰 의미를 가질 수 있으며, 자유시장 만능주의에 대한 케인즈의 비판도 참고해야 할 것이다. <br><br><br>------------------------------------------------------ <br>참고문헌 <br><br><br>김수행. 1983. ｢케인즈의 사회사상과 금일의 불황｣. 『케인즈와 슘페터의 경제학』. 서울 대학교 경제연구소. 제9회 경제학심포지엄(이 논문은 다음에도 실려 있음.『경제논집』. 22권 4호. 서울대학교 경제연구소.). <br><br>_____. 1984. 마르크스 / 슘페터 / 케인즈』. 중앙일보사. <br><br>_____. 1986.『경제변동론』. 비봉출판사. <br><br>_____. 1988.『자본론연구 1』. 한길사. <br><br>_____. 2004.『자본론의 현대적 해석』(제1개정판). 서울대학교출판부. <br><br>_____. 2005.『알기 쉬운 정치경제학』(제1개정판). 서울대학교출판부. <br><br>김수행‧정병기‧홍태영. 2006. 『제3의 길과 신자유주의: 영국 독일 프랑스를 중심으로』(제1개정판). 서울대학교출판부. <br><br>조순. 1983. ｢케인즈와 슘페터: 그 학문과 사상의 비교｣. 『케인즈와 슘페터의 경제학』. 서울대학교 경제연구소. 제9회 경제학심포지엄. <br><br>Baran,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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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son(2003)을 참조하라. <br><br><br><br>14) 신고전파는 일반균형에 도달하게 하는 개인의 행동만을 ‘합리적’이라고 본다(Fullbrook, 2004).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신고전파를 비판할 수 있다. “신고전파 경제학은 비사회적이고 비역사적인 개인(예: 절해고도에 사는 로빈슨 크루소)에게 온갖 ‘합리적인 속성’을 부여하여 ‘경제인’이라는 허수아비를 만들고 그 허수아비들의 행위를 통하여 그들의 사회 전체가 극대만족의 상태 즉 일반균형에 도달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김수행, 1988: 328). <br><br><br><br>15) 케인즈는 “투기(speculation)는 시장의 심리를 예측하는 활동이고, 기업(enterprise)은 자산의 장래 수익을 그 자산의 생애 전체에 걸쳐 예측하는 활동”(Keynes, 1936: 158)이라고 구분하고, “모든 금융거래에 상당한 크기의 이전세(transfer tax)를 부과하는 것이 미국에서 투기가 기업보다 훨씬 더 지배적인 상황을 개선하는 가장 훌륭한 개혁이 될 것이다”(Keynes, 1936: 160)고 말한다. 증권거래에 대한 이전세는 외환거래에 대한 토빈세(Tobin tax)의 원조(元祖)이다. <br><br><br><br>16) 그러므로 케인즈의 이론에는 장기정체설(secular stagnation theory)이나 과소소비설(underconsumption theory)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br><br><br><br>17) 포스트 케인즈주의자인 민스키(Minsky, 1977)는 불확실성으로부터 금융불안정이론을 정립했다. <br><br><br><br>18) 케인즈는 1925년 42세의 나이에 러시아의 발레리나 리디아 로포코바(Lydia Lopokova)와 결혼하면서 그 이전의 동성애자(homosexual)의 생활을 마감했다. 처가는 레닌그라드에 있었다(Skidelsky, 2004: 339-363). <br><br><br><br>19) 다른 곳(Keynes, 1926)에서도 소비에트 러시아가 서방보다 나은 점으로 거의 종교적인 혁명적 열정, 보통 노동자들의 낭만주의, 이윤획득에 대한 비난을 들고 있다. <br><br><br><br>20) 소련을 위해 스파이활동을 했다고 1960년대 이후에 큰 논란을 일으킨 케임브리지 출신의 8명 중 4명―앤써니 블런트(A. Blunt), 기 버제스(G. Burgess), 레오 롱(L. Long), 미셸 스트라이트(M. Straight)―가 Apostles의 회원이었다. <br><br><br><br>21) 케인즈의 전기를 쓴 해로드(Harrod, 1972)나 스키델스키(Skidelsky, 1983; 1992; 2000; 2004)는 이것에 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br><br><br><br>22) 두 개의 예를 들어보자. 첫 번째 예는 대불황기였던 1929～1930년에 영국 재경부의 차관으로 있던 모슬리(Sr. O. Mosley; 케인즈의 친구였다)는 케인즈적인 불황대책을 정부에 건의했지만 정부가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자 영국파시스트당(British Union of Fascists)을 만들었다(Skidelsky, 2004: 511). 두 번째 예는 1997년 12월 한국에서 공황이 폭발하자, 공황의 원인을 둘러싸고 아시아모델 때문에 공황이 발생했다는 측(IMF와 신고전파)과 아시아모델의 해체 때문에 공황이 발생했다는 측으로 크게 갈라졌는데, 후자의 대부분은 케인즈주의자들이었으며 이들은 박정희체제를 크게 찬양하고 있었다(Kim &amp; Cho, 1999). <br><br><br><br>23) 투자의 사회화를 스웨덴의 임노동자기금과 연결시키는 논의도 있다(Whyman, 2006). <br><br><br><br>24) 이런 면에서 케인즈는 프리드만(M. Friedman)과 하이에크(F. A. von Hayek)와 비교할 때 대립점보다는 공통점이 더욱 크다고 말해야 한다. <br><br><br><br>25) 케인즈는 산업이 소수의 기업가들에 의해 집중되고 통제되는 시대에는 이 독점적 기업들이 자기 마음대로 이윤을 추구하도록 방임해서는 안되며 정부의 허가와 감독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Keynes, 1926), 이것도 정부의 개입을 확대하는 이유의 하나다. <br><br><br><br><br><br><br>26) 이런 생산의 사회화과정에 의거하여 엥겔스(1878)는 자본주의가 경쟁자본주의 → 독점자본주의 → 국가독점자본주의(State monopoly capitalism) → 사회주의로 진행하는 것을 제시했는데, 스탈린은 이 도식을 더욱 강화하여 사회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노동해방이 아니라 계획경제라고 주장했다. <br><br><br><br>27) 1944년 하이에크가『예종에 이르는 길』(The Road to Serfdom)을 발간하자마자, 케인즈는 하이에크에게 편지를 보내어, “자유방임과 중앙계획 사이 어디에 경계선을 그어야만 하는데, 당신은 아무런 지침도 주지 않는다”고 불평했다(Skidelsky, 2004: 722-723). <br><br><br><br><br><br><br>28) 1926년에 영국에서는 최초의 총파업이 있었다(Pollard, 1969: Ch.5). <br><br><br><br>29) 맬더스가 제시하는 ‘과소소비’(underconsumption)의 제거방법이 가진 문제점에 관해서는 김수행(1986: 72-75)을 참조하라. <br><br><br><br>30) 세금이나 국채의 발행에 의해 조달하는 정부의 자금은 결국 자본가들의 잉여가치의 일부를 정부로 이전한 것이기 때문에, 정부의 지출에도 일정한 한계는 있다. 뒤에서 다시 논의한다. <br><br><br><br>31) 각 정책들의 ‘효율성’(efficiency)을 (수익-비용)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수익과 비용에 어떤 항목을 넣어야 할 것인가, 수익과 비용을 장래의 어느 시점까지 고려할 것인가, 화폐로 계산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등등의 문제 때문에 처음부터 불가능하며, 따라서 효율성은 하나의 환상이라는 주장이 있다(Wolff, 2004). <br><br><br><br>32) 이 시기의 케인즈를 전기의 저자는 ‘fighting for Britain’이라고 표현하고 있다(Skidelsky, 2000). <br><br><br><br>33) Sweezy &amp; Baran(1966)에는 잠재적 경제잉여를 추계하는 방법과 그것의 연도별 추계치(미국의 것)가 실려 있다. <br><br><br><br>34) 정부가 독점자본가들로부터 세금을 거두어 그 세금으로 독점자본가들의 잉여생산물을 산다고 가정하면 좋다. <br><br><br><br>35) Sweezy &amp; Baran(1966)의 부제(副題)인 ‘미국의 경제적‧사회적 질서에 관한 논문’이 가리키는 바와 같이, 이 책에는 미국 경제와 사회의 ‘비합리적인’ 측면이 상당히 많이 폭로되고 있다. <br><br><br><br>36) 정부의 예산에 있는 ‘국방비’에는 군수품의 구매비, 군수품의 연구개발비, 군인과 군관계 인원의 인건비, 재향군인의 연금 등이 포함되어 있다. <br><br><br><br>37) 물론 무기와 탄약은 해외에 수출하는 품목이라는 점에서는 비군수품과 전혀 차이가 없다. 세계 최대의 군수품 수출국인 미국은 정부가 앞장서서 민간군수산업의 이익을 위해 값비싼 무기류를 ‘동맹국들’에게 강매하고 있다. <br><br><br><br>38) 물론 군수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얻은 기술이 비군수산업을 위해 이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경로를 택함으로써 매우 큰 자원이 낭비되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br><br><br><br>39) 물론 납세자들이 저축한 것을 세금으로 거두었다면 사회의 총구매력은 증가할 것이다. <br><br><br><br>40) 국채의 상환기일이 오면 새로운 상환기일을 가진 국채를 발행함으로써 옛날의 국채를 상환할 수 있기 때문에 국채의 상환기한은 크게 연장될 수 있다. 그리고 국채의 원리금 상환액(상당한 기간에 걸친 분할상환)은 국채금액 그 자체보다는 매우 작기 때문에 상당한 기간에 걸쳐 (A+B)보다 (A'+B')이 클 수가 있다. <br><br><br><br>41) 중동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에 관해서는 김수행(2005: 204-205)을 참조하라. <br><br><br><br>42) 정성진(2004)은 서독과 일본이 미국경제의 군사화로부터 큰 이익을 얻었다는 점을 들어 세계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서독과 일본의 제2차세계대전 이후의 경제발전은 경제의 군사화와 큰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br><br><br><br>43)『자본론』 제3권에서는 상업과 금융에 종사하는 노동을 비생산적 노동으로 분류하며, 상업과 금융에 투자한 자본은 직접적으로는 잉여가치를 낳지 않지만 산업자본의 가치증식에 ‘간접적으로’ 기여하기 때문에, 산업자본에 고용된 생산적 노동자들이 창조한 사회의 잉여가치 전체를 산업자본과 함께 ‘사회적 평균이윤율’에 따라 나누어 가진다(김수행, 2004: 130, 250-253). <br></td></tr></tbody></tab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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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3 Dec 2008 04:53:14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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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맑스주의 경제학 역사의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 - 정 성 진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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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맑스주의 경제학 역사의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 - 정 성 진<br>&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div><div>1. 머리말<br><br>이 글은 얼마전 호워드(M.C.Howard)와 킹(J.E.King)이 두 권으로 출간한 {맑스 경제학의 역사} (A History of Marxian Economics, vol. Ⅰ, 1883-1929, Macmillan, 1989; A History of Marxian Economics, vol.Ⅱ, 1929-1990, Macmillan, 1992)를 읽고 느낀 소감을 정리해 본 것이다. 나는 이 책의 저자들인 호워드와 킹을 네오 리카아디안 경제학자들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nbsp;&nbsp; 책의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이 책은 예컨대 이안 스티드만(Ian Steedman)이나 브로디(A.Brody)의 책처럼 맑스주의 경제학을 네오 리카아디안의 이른바 분석적 내지 수학적 방법으로 나름대로 재단한 책이려니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생각은 책을 펼쳐 목차를 보면서부터 곧 바뀌었다. 왜냐하면 이 책은 네오 리카아디안이 애호하는 주제들, 예컨대 가치론, 전형문제 뿐만 아니라 맑스 사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에서 등장한 주요 주제들과 쟁점들을 거의 망라하고 있었으며, 이를 비교적 균형된 관점에서 다루고자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기 때문이다.<br>무엇보다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점은 이 책이 우리에게 익숙한 스탈린주의 교과서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이 책이 그간 '공식' 맑스주의 역사에서 '존재하지도 않은 인물'로 치부되었던 트로츠키주의 경제학을 거의 4개 장을 할애하여 다루고 있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제1권 제12장 [트로츠키의 불균등결합발전론]과 제15장 [사회주의로의 이행: 공산주의 경제학, 1917-29], 제2권 제3장 [소비에트 생산양식], 제8장 [영구군비경제]가 그것이다.) 이 책에서는 자골로프의 정치경제학 교과서 같은 것은 단 한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소련 정치경제학 교과서류의 스탈린주의 관점에서 맑스주의 경제학을 학습하고 이해해 온 것이 사실이다.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는 맑스의 {자본론} → 레닌의 {제국주의론} → 소련 정치경제학 교과서 (국가독점자본주의론/사회주의적 생산양식론)의 순서로 일방통행식으로 중단없이 전진해 온 역사로 묘사되고, 이 코스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것은 부르주아적 프티 부르주아적 일탈, 또는 좌·우 편향으로 매도되어 왔다. 그러나 호워드와 킹의 이 책은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를 이와 다른 방식으로 읽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책은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가 소련 정치경제학 교과서를 정점으로 수렴되는 과정이기는 커녕, 다양한 상호갈등하는 조류 간의 활기찬 논쟁의 발산으로 전개되어 왔음을 보여 주고 있다. 나는 이 점에서 이 책이 우리나라 상황에서도 중요한 이론적·정치적 의의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선 이 책을 읽음으로써 소련 정치경제학 교과서가 맑스주의 경제학을 가장 정통적으로 이해하고 발전시킨 것이라는 우리나라 진보진영에 널리 퍼진 잘못된 고정관념을 타파할 수 있다. 또 우리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스탈린주의의 붕괴가 맑스주의의 위기와 파산을 증명하는 것이라면서 맑스를 버리고 포스트맑스로 나아가는 오늘의 유행에 대항하여 맑스주의 경제학을 재흥시키고 새롭게 발전시킬 수 있는 몇가지 계기를 발견할 수 있다.<br>호워드와 킹의 이 책은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에 대한 비스탈린주의적 해석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스탈린주의가 반대하는 입장이 반드시 맑스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 즉 혁명적 맑스주의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에 대한 이들의 비스탈린주의적 서술은 혁명적 반스탈린주의, 혁명적 맑스주의라기보다는 아카데미즘적 리카아도주의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같은 이 책의 한계도 염두에 두면서, 이 책에서 서술되고 있는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로부터 우리나라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를 반성하고 재서술할 수 있는 단서들을 찾아 보고자 한다.<br><br><br>2. {맑스 경제학의 역사}의 주요내용 평주<br><br>{맑스 경제학의 역사}는 맑스주의 경제학의 전개과정을 시대별·주제별로 다루면서 맑스주의 경제학의 거의 모든 주제를 망라하고 있다. 맑스 사후 가치론, 공황론, 제국주의론, 및 사회주의론의 전개과정이 대체로 빠짐없이 개관되고 있다. 1권과 2권은 각각 맑스 사후 대공황에 이르는 시기 (1883-1929년)와 대공황 이후 최근 (1929-1990년)에 이르는 시기를 다루고 있다. 이하에서는 각각 359 페이지, 420 페이지나 되는 방대한 분량의 이 책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내용들을 균등하게 요약하기보다는,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던 논점만을 간추려 정리해 보겠다.<br>제1권 제1부에서는 1883-1914년에 독일에서 이루어진 맑스주의 경제학에 대한 기여들이 검토된다. 제1장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맑스의 유산, 1883-95]에서 저자들은 엥겔스가 맑스의 '유산'을 제대로 '집행'하지 못했으며, 이것이 엥겔스를 매개로 하여 '정통'을 자처했던 제2인터내셔날 맑스주의가 맑스의 본래의 사상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원인의 하나라고 서술하고 있다. 예컨대 엥겔스가 맑스의 유고를 편집하면서 '초기' 맑스의 소외론이나 '중기' 맑스의 {그룬트리쎄}에 주목하지 못한 것 (혹은 무시한 것)은 엥겔스 이후 제2인터내셔날 맑스주의가 경제결정론으로 편향되게 한 중요한 요인이었다는 것이다.<br>제2장 [엥겔스와 가치론에서의 '현상논문공모']는 제목 자체의 독특함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기존의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새로운 주제이다. 엥겔스는 1884년 {자본론} 제2권 서문에서 곧 출판될 {자본론} 제3권에서 맑스는 평균이윤율이 형성되는 과정을 가치법칙을 위배하지 않고 설명하고 있다고 밝히고, {자본론} 제3권이 출판되기 전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은 손을 들어 보라고 공개적으로 제안한다. 이 책의 저자들이 '논문현상공모'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같은 엥겔스의 제안이며, 저자들은 이 장에서 이와 같은 엥겔스의 '논문현상공모'에 응모한 학자들의 견해와 이에 대해 {자본론} 제3권 서문에서 엥겔스가 내린 평가의 정당성을 검토하고 있다. 저자들은 '논문현상공모'에 참여한 일부의 학자들은 {자본론} 제3권에서 맑스가 전개하고 있는 가치의 생산가격으로의 전형문제에 대한 해법에 거의 접근했다고 보며, 따라서 이를 인정하지 않은 엥겔스의 평가는 정당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또한 저자들은 엥겔스가 이 '공모'된 문제와 관련된 {자본론} 제3권의 초고 일부를 공개해 달라는 '논문현상공모'에 참여한 학자들의 요청을 묵살하고, 이를 공개하기를 거부함으로써, 맑스주의 가치론의 발전이 10년 이상이나 지체되었다고 지적한다.<br>제3장 {자본론} 제3권 전형문제에 대한 뵘바뵈르크의 비판과 이에 대한 힐퍼딩의 반비판이 검토되고 있는 [가치론에서의 최초의 논쟁, 1895-1914]에서 저자들은 힐퍼딩 (및 힐퍼딩이 의지하고 있는 엥겔스)이 맑스의 전형문제 해법을 옹호했던 방식, 즉 역사적 전형론 (가치 범주에서 생산가격 범주로의 논리적 전형을 역사적으로 존재했다고 주장되는 단순상품생산 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의 역사적 이행에 대응시키는 것)은 전형문제의 논리적 난점을 회피한 것일 뿐만 아니라, 방법론적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맑스의 전형문제의 논리적 난점을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시도들로 보르트키에빅츠 (그리고 이보다 앞서 뮐포트와 드미트리에프)에 주목한다. 제4장 [베른슈타인, 카우츠키와 수정주의 논쟁]은 베른슈타인의 정통 맑스주의에 대한 문제제기와 이에 대한 로자 룩셈부르크와 카우츠키의 반비판이 비판적으로 검토된다. 제5장 [금융자본과 제국주의: 칼 카우츠키와 루돌프 힐퍼딩]에서 저자들은 힐퍼딩을 독점이윤율 이론의 원조로 위치지우고 있다. 제6장 [자본축적, 제국주의와 전쟁: 로자 룩셈부르크와 오토 바우어]에서 저자들은 로자 룩셈부르크와 바우어의 확대재생산표식의 수치예를 일목요연하게 해설하고 있다. 저자들은 로자 룩셈부르크의 과소소비설은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과잉축적'과 '과소축적'의 주기적 교대로 구성된 바우어의 경기순환이론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br>제2부에서는 1917년까지 러시아에서 이루어진 맑스주의 경제학에 대한 기여들이 검토된다. 제7장 [러시아 맑스주의가 물려 받은 것들]에서 저자들은 '만년'의 맑스의 러시아론과 러시아 인민주의 사상에 주목하면서, '만년'의 맑스는 [베라 자술리치에 보낸 편지 초고들]에서 보듯이, 러시아에 남아있는 촌락공동체 (obshchina)를 기반으로 하여 자본주의를 건너 뛰어 사회주의로 직접 이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 러시아 인민주의 사상가들의 생각에 공감한 부분이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저자들은 '만년'의 맑스의 생각은 일국사회주의론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저자들은 '만년'의 맑스는 소외론으로 대표되는 '초기' 맑스, {자본론}으로 대표되는 '중기' 맑스에 비교하여 이렇다 할 내용과 체계를 갖추고 있지 못하므로, 이를 과대평가해서는 안된다고 본다.<br>제8장 [플레하노프의 정치경제학]에서 저자들은 플레하노프의 사상은 제2인터내셔날과 맥락을 같이 할 뿐만 아니라, 스탈린주의적 교조주의로 가는 길을 열었다고 평가한다. 제9장 [1890년대의 인민주의와 정통 맑스주의]과 제10장 [러시아 수정주의]에서 저자들은 스탈린주의 교과서에서는 거의 무시되었던 19세기 러시아 합법적 맑스주의자들, 특히 투간 바라노프스키의 공헌을 밝혀내고 있다. 그리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인민주의의 경제학은 스탈린주의 자력갱생론의 기원이 되었으며, 과소소비설의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된다. 또 저자들은 레닌의 공황이론은 인민주의의 과소소비설과 합법적 맑스주의의 불비례설을 변증법적으로 해결한 독창적 공헌이라는 스탈린주의적 레닌 우상화를 거부하고, "대중의 소비의 일정한 수준 자체가 비례성의 하나의 요소"라는 언급을 제외한다면, 러시아 자본주의 논쟁에서 레닌이 독자적으로 기여한 것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소위 '시장문제'에 관하여](1893)와 {러시아에서 자본주의의 발전}(1899)에서 레닌은 시장 혹은 상품생산 일반을 자본주의와 동일시하는 유통주의적 오류를 범했다고 비판된다. 또 투간 바라노프스키의 {19세기 러시아의 공장}(1898)은 러시아 자본주의 발전을 공장, 공업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러시아 자본주의 발전에서 국가의 역할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이들 요인을 경시하고 농촌에서 자본주의 발전과 농민층분해를 특권화한 레닌의 러시아 자본주의론에 비해 더 우수하다고 평가한다. 또한 레닌은 러시아 촌락공동체의 견고성을 과소평가한 반면, 농민층분해의 진전 정도, 농업자본주의 발전 정도를 과대평가한 오류를 범했다는 점도 지적된다. 저자들은 또 이와 같은 투간 바라노프스키의 러시아 자본주의론이 트로츠키의 불균등결합발전론과 영구혁명론의 지적 자원으로 되었다고 언급한다. 그리고 저자들은 맑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에 대한 투간 바라노프스키의 비판은 정곡을 찌른 것으로서, 후에 오키시오 노부오(置鹽信雄)의 '오키시오 정리'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이윤율을 상승시키는 기술만이 선택되며, 실질임금이 상승하는 경우에만 이윤율이 저하한다는 주장)를 반세기나 앞질러 발견한 것이라고 평가한다.<br>제11장 [레닌의 정치경제학, 1905-14]에서는 레닌의 경제사상이 농업강령과 자본주의 발전의 두가지 길의 이론을 중심으로 해설되고 있다. 저자들은 레닌이 1905년 혁명기에 농민의 지주토지의 전면몰수의 현실을 목격하고 이전에 자신이 주장했던 '절취지'(otrezki) 강령을 버리고, 전면몰수와 국유화강령을 주장하게 되었다고 본다. 그런데 국유화강령은 최대강령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틀내에서 성취될 수 있는 강령이며, 절대지대의 제거를 통해 자본주의의 자유로운 발전을 촉진한다. 또 레닌은 그 당시 프러시아형 자본주의 발전의 길을 걷고 있던 러시아에 대해 아메리카형 자본주의 발전의 길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저자들은 이러한 점들로 미루어 볼 때 1905년 혁명 이후 1917년 혁명까지의 레닌은 여전히 2단계혁명론자였다고 지적한다. 이와 아울러 레닌의 프러시아적 길의 이론은 합법적 맑스주의자 스트루베의 '둔화된 모순' (blunted contradiction)의 개념을 받아 들인 것이라는 점도 지적된다.<br>제12장 [트로츠키의 불균등결합발전론]은 아마도 트로츠키의 사상을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에 포함하고 복권시킨 최초의 시도가 아닌가 한다. 저자들은 도시에서 공업발전, 도시로의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의 집중, 러시아 자본주의 발전에서 국가와 외국자본의 역할 등의 측면에 주목한 트로츠키의 불균등결합발전론은 레닌의 {러시아에서 자본주의 발전}보다도 더 탁월한 러시아 역사적 발전과정에 대한 훌륭한 묘사이며,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은 1917년 혁명의 동학에 대한 예언자적 통찰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그러면서도 저자들은 트로츠키에 여전히 제2인터내셔날에 특징적인 경제결정론의 잔재가 남아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들은 영구혁명론은 러시아 혁명의 설명으로서는 타당하지만 사회주의 혁명의 일반이론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제2차대전 이후 동유럽, 중국, 쿠바 등에서 사회주의 혁명은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의 도식과는 판이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또 저자들은 트로츠키의 자본주의론에는 로자 룩셈부르크와 같은 과소소비설적 요소가 있으며, 불균등결합발전론을 선진자본주의 열강들 간의 갈등을 설명하는 데 적용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br>제13장 [제국주의와 전쟁: 부하린과 레닌의 독점자본주의론, 1914-17]에서 저자들은 레닌의 제국주의론이 제국주의와 경쟁자본주의 간의 관계나 제국주의의 '5개 표지' 상호간의 관계를 이론적으로 정식화하지 못했으며, 자본수출을 과소소비설로 설명하는 등의 약점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 세계경제의 주체로서의 제국주의 국가의 역할을 강조한 부하린에 비해, 레닌의 제국주의론에는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 혹은 매개적 역할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 즉 그 경제결정론적 약점이 지적된다. 그리고 저자들은 1917년 [4월테제]를 계기로 하여 레닌이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을 받아 들였다는 주장, 그리고 레닌은 원래부터 트로츠키처럼 세계혁명론자였으며,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론의 기원을 레닌에서 찾을 수는 없다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주장에 유보를 달고 있다. 러시아 자본주의의 불균등결합발전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영구혁명론을 도출했던 트로츠키와는 달리, 레닌은 그것을 선진자본주의에 대한 분석 (예컨대 국가독점자본주의론)으로부터 도출했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들은 레닌은 소련 사회주의가 장기간 고립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트로츠키와는 달리 스탈린주의 일국사회주의론과 부합되는 방식으로 해석될 여지를 포함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끝 로 부하린이나 레닌은 모두 독점자본주의론의 이론화에 불가결한 독점과 초과이윤의 이론적 관련의 문제, 독점자본주의에서 가격, 임금 이론의 문제를 해명하지 못했으며, 이 때문에 그들의 노동귀족 이론과 이에 기초한 개량주의 비판은 많은 약점을 갖고 있다고 지적된다.<br>제3부에서는 1917-1929년의 사회민주주의와 공산주의 경제학이 개관된다. 제14장 [수정주의의 재흥]에서는 힐퍼딩의 조직화된 자본주의론과 프리츠 스텐버그 (Fritz Stenberg)의 제국주의론이 비판적으로 검토된다. 제15장 [사회주의로의 이행: 공산주의 경제학, 1917-29]에서는 1920년대 소련사회주의 건설논쟁이 검토된다. 레닌의 국가자본주의론과 신경제정책, 부하린의 전시공산주의론과 노농동맹의 정치경제학, 프레오브라즈헨스키 (및 트로츠키)의 사회주의적 원시축적론이 비판적으로 검토된다. 저자들은 1920년대 소련경제의 문제점을 부하린처럼 과소소비설적으로 농민의 낮은 구매력, 수요부족에서 찾기보다, 공산품의 공급부족에서 찾고, 이를 공업화 우선정책을 통해 해결하려 했던 좌익반대파 (프레오브라즈헨스키, 트로츠키)의 대안이 부하린의 그것보다 이론적으로 더 우수한 것이라고 평가한다.<br>제16장 [헨리크 그로스만과 자본주의의 붕괴]에서는 그로스만의 붕괴표식이 명쾌하게 설명되고 있다. 저자들에 따르면 대공황 직전에 츨판된 그로스만의 {축적의 법칙과 자본주의 체제의 붕괴}(1929)는&nbsp;&nbsp; 때까지 투간 바라노프스키, 카우츠키, 힐퍼딩 같은 수정주의자들 뿐만 아니라, 로자 룩셈부르크, 레닌, 부하린, 트로츠키 등 정통 맑스주의자들도 주목하지 못했던 맑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의 공황이론으로서의 가치를 입증한 최초의 시도라고 평가된다. 저자들의 지적대로 맑스 사후 그로스만에 이르기까지 공황이론은 과소소비설과 불비례설 간의 논쟁사로 전개되어 왔는데, 그 어느 쪽도 맑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을 자본주의의 장기적 운명에 관한 법칙으로만 간주했으며, 그것이 자본주의의 순환적 변동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적용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저자들은 그로스만의 시도가 많은 이론적 결함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그 후 마틱(P.Mattick), 야폐(D.Yaffe), 코고이(M.Cogoy)와 같은 '평의회 공산주의자' (Council Communist)들, 혹은 근본주의적 맑스주의자들에서 보듯이, 맑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에 기초하여 공황이론을 구성하고 현대자본주의의 위기를 설명하려 한 시도들의 이론적 기초가 되었다고 본다.<br><br>제2권 제1부에서는 1930년대 대공황기에 전개된 맑스주의 경제학이 검토된다. 제1장 [맑스 경제학과 대공황]에서는 1930년대 대공황의 원인에 대한 바르가와 모스코브스카 (Moszkowska)의 과소소비설적 설명이 비판적으로 검토된다. 제2장 [스탈린의 정치경제학]에서는 스탈린주의 공업화 모델과 펠드만의 중공업우선 모델의 차이점이 논의되고, 소련에서 가치법칙의 지위 문제가 논의된다. 하지만 이 장을 통해 우리는 이 책의 저자들이 스탈린주의에 비판적이면서도 혁명적인 반스탈린주의적 입장에는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우선 저자들은 스탈린의 이론이 레닌주의로부터 비껴 나간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자들은 스탈린이 레닌주의를 제국주의 시대의 맑스주의로서 체계화한 공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스탈린의 테러는 그의 긍정적인 기여와 쉽게 분리될 수 없다고 말한다. 또 저자들은 스탈린의 트로츠키 비판은 적절하고 정곡을 찌른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스탈린이 코민테른을 소련의 국익을 위해 이용했다는 비판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또 저자들은 스탈린의 1930년대 경제정책이 1920년대 좌익반대파의 대안을 채택한 것이라는 '개명된' 스탈린주의들의 상투적인 트로츠키 비판을 되풀이하고 있다. 심 어 스탈린주의에 대한 볼셰비키의 반대는 객관적으로 반혁명적인 것이었다고 하면서, 스탈린주의는 다른 볼셰비즘과 마찬가지로 맑스주의의 한 형태로 분류될 수 있으며, 사회주의적 실천을 고무했다고 주장한다.<br>제3장 [소비에트 생산양식]에서는 스탈린주의에 반대한 트로츠키주의 각 분파들의 스탈린주의 체제에 대한 평가가 검토된다. 트로츠키의 관료적으로 타락한 노동자국가이론, 브루노 리찌(Bruno Rizzi)의 관료적 집산주의론, 및 토니 클리프의 관료적 국가자본주의론이 비판적으로 검토된다. 저자들은 그 중에서 클리프의 관료적 국가자본주의론에 특히 더 비판적인데, 우리가 보기에 그 비판은 부정확하고 일면적이다. 예컨대 자본가들의 경쟁은 경제적 경쟁이라는 형태만을 취하기 때문에, 클리프처럼 군사적 경쟁에 기초하여 소련을 자본주의라고 규정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비판이라든지, 관료들의 대량 숙청이 주기적으로 이루어졌던 스탈린주의 체제를 관료적 국가자본주의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는 비판 등이 그것이다. 현대자본주의에 와서 경쟁은 단순히 경제적 경쟁, 가격 경쟁이 아니라 정치군사력과 결부된 총체적 구조적 국가적 경쟁이라는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은 상식이 아닌가? 저자들처럼 관료의 주기적 숙청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이유로 이 사회를 관료가 지배하는 사회로 보는 클리프의 견해가 틀렸다고 한다면, 자본가들의 대량 파산이 항존하는 사회를 자본가들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규정한 맑스의 견해 역시 틀렸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자본의 파산이 자본주의 발전의 필수적 요소인 것처럼, 관료의 주기적 숙청 역시 관료적 국가자본주의를 유지하는 고유한 방식일 뿐이다.<br>제2부에서는 제2차대전 이후 1970년대초까지의 장기호황기 (이른바 '황금시대')에 전개된 맑스주의 공황론이 검토된다. 제4장 [자본주의는 변했는가?]에서는 이 제목을 주제로 전후 장기호황의 원인 해명을 위해 1958-59년에 조직된 맑스주의자들의 국제적 논쟁이 검토된다. 저자들은 이 논쟁이 국제관계를 무시했다는 점, 맑스의 궁핍화론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 등의 한계를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장에서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이 검토되며, 이와 관련하여 최근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는 프랑스의 트로츠키주의자 까쓰또리아디스 (Cornelius Castoriadis)의 견해도 소개된다. 제5장 [케인즈와 맑스]에서 저자들은 맑스 경제학에 대해 케인즈가 가졌던 태도, 그리고 케인즈의 {일반이론}에 대한 맑스주의 경제학자들의 반응을 검토한다. 케인즈의 자본의 한계효율 저하론은 맑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론과 유사하며, 맑스와 케인즈는 과소소비설론자라는 공통점을 갖는다는 점 등이 지적된다. 저자들은 돕을 비롯한 당시 스탈린주의 '공산주의자'들은 1936년 출판된 케인즈의 {일반이론}에 대해 오히려 우호적이었다고 하면서, 그 이유를 당시 스탈린주의 코민테른의 반파시즘 인민전선 전술 ('대동단결')에서 찾고 있다. 사실 유효수요의 부족이 불황의 원인이라는 케인즈의 생각은 과소소비가 자본주의 경제 위기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맑스주의 경제학의 과소소비설적 조류와 쉽게 결합될 수 있었는데, 이것이 칼레키(M.Kalecki)로 대표되는 좌파 케인즈주의이다. 그러나 저자들은 좌파 케인즈주의가 아니라, 마틱의 케인즈 비판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윤율의 경향적 법칙의 적용에서 케인즈에 대한 진정한 맑스주의적 비판과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의 위기는 잉여가치 실현의 위기가 아니라 잉여가치 생산의 위기, 즉 수익성의 위기이며, 케인즈적 국가개입은 잉여가치 생산의 위기를 오히려 심화시키므로, 위기 해결에는 무용하다는 것이다.<br>제6장 [독점자본]에서 저자들은 1966년에 출판된 바란(P.Baran)과 스위지(P.Sweezy)의 {독점자본}이 야기한 맑스주의 경제학 내부의 논쟁을 검토한다. 저자들은 {독점자본}은 챔벌린의 독점적 경쟁 모델이라든지, 결합이윤 극대화 모델과 같은 부르주아 경제학으로부터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독점자본}이 과소소비설에 치우쳐 수요의 부족 (증가하는 잉여의 흡수)이 아니라 수익성의 위기에 그 근원을 두고 있는 현대자본주의의 위기를 해명하는 데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점점 더 경쟁적으로 되어 가는 현대자본주의의 성격을 잘못 파악했다는 비판에 공감한다. 제7장 [저하하는 이윤율]은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을 중심으로 한 논쟁사를 개관한다. 저자들은 맑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의 의의를 중시하면서도, 이 법칙에 대한 투간 바라노프스키, 보르트키에빅츠, 시바타 케이(柴田 敬), 모스코브스카, 오키시오 노부오, 사무엘슨 등의 비판을 상세하게 소개하는 반면, 2차대전 후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을 재발견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한 야페와 만델에 대해서는 인색한 평가를 내린다. 예컨대 저자들은 야페의 1973년 논문은 맑스의 법칙을 논리적으로 방어한 것이라기보다는 재진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절하하며, 만델의 경우에는 이윤율의 저하가 공황을 야기하는 것인지 공황이 이윤율의 저하를 초래하는 것인지 인과관계가 불분명하다고 비판한다. 저자들은 제16장에서 '오키시오의 정리'에 대한 맑스주의 입장에서의 반비판으로 인정되고 있는 안와르 샤이크(Anwar Shaikh)의 1978년 논문 역시 부적절한 것이라고 본다. 제8장 [영구군비경제]에서는 군비지출이 자본주의 경제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맑스주의 경제학자들의 상반된 견해들이 검토된다. 군비지출은 유효수요를 진작하여 과소소비공황 압력을 완화함으로써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로자 룩셈부르크에서 바란, 스위지에 이르는 과소소비론자들의 주장과, 군비지출은 제Ⅲ부문 (사치재부문) 투자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에, 군비지출은 경제 전체의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를 가져 오지 못하며, 따라서 경제전체의 이윤율을 저하시키지도 않기 때문에, 이윤율의 저하에 기초한 공황압력을 완화한다는 키드론(M.Kidron), 토니 클리프와 같은 트로츠키주의자들의 견해가 비판적으로 검토된다. 저자들은 전쟁과 자본주의는 불가분하며, 영구군비경제가 전후 장기호황의 원인이라는 맑스주의 경제학자들의 견해를 반박하고, 민간의 생산적 투자를 '구축'하는 군비지출의 부정적 효과에 주목한다. 저자들은 군국주의가 자본주의의 결과라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군국주의가 자본주의의 존재를 위해 필요불가결한 조건이라는 주장은 받아 들일 수 없다는 카우츠키의 견해에 공감하면서, 전쟁없는 평화적 자본주의의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br>제3부에서는 제2차대전 후 전개된 신제국주의론이 검토된다. 제9장 [자본주의와 저개발]에서 저자들은 프랭크와 왈레스타인으로 대표되는 종속이론의 기원을 바란의 {성장의 정치경제학}에서 찾는다. 저자들은 제3세계의 제국주의 중심부에의 종속이 제3세계의 저개발을 결과시켰다는 바란의 핵심적 주장은, 일본과 캐나다의 성공 사례와 신흥공업국에서 수출지향적 공업화의 성공 사례에서 보듯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본다. 또한 저자들은 중공업우선발전을 통한 자력갱생을 저개발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바란의 주장에서 스탈린주의적 영향을 읽어낸다. 저자들은 제3세계에 대한 수탈과 저개발을 대가로 해서만 중심부 제국의 발전이 가능했으며 또 가능하다는 프랭크의 종속이론은 유통주의의 오류와 세계경제의 발전을 제로섬 게임으로 본 오류를 범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반면 저자들은 소련을 제3세계 발전의 대안으로 간주했던 바란이나 프랭크와는 달리 왈레스타인이 소련을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편입된 자본주의 체제로 간주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또 저자들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장기간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 스탈린, 바란, 프랭크의 일국사회주의론은 환상이며, 자본주의는 세계체제이기 때문에 세계적 수준에서만 전복될 수 있다는 왈레스타인의 주장에도 공감을 표시한다. 제10장 [부등가교환]에서 저자들은 엠마누엘(A.Emmanuel)의 {부등가교환}(1969)을 중심으로 한 국제적 부등가교환 문제에 대한 논쟁을 검토한다. 이 문제에 대해 저자들은 국제적 부등가교환과 무역의 이익은 양립불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즉 상대적으로 손실을 보면서도 절대적으로 이득을 보는 것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또 엠마누엘의 국제적 부등가교환 이론은 국제적 생산성 격차가 고려되지 못한 완전특화모델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으며, 노동계급의 국제적 연대에 기초한 계급투쟁을 포기하고 부국에 대한 빈국의 투쟁과 고임금 수입대체 전략에 기초한 자력갱생을 대안으로 내세우는 제3세계주의라는 비판에도 공감을 표시한다. 제11장 [저개발 이론의 비판]에서는 종속이론에 대한 비판으로 제기된 생산양식의 접합이론, 로버트 브레너(Robert Brenner)의 계급투쟁 이론, 빌 워렌(Bill Warren)의 종속이론 비판, 나이젤 해리스(Nigel Harris)의 신흥공업국론 등이 소개된다. 저자들은 워렌의 정치적 입장과 19세기말 러시아의 합법적 맑스주의와 유사성에 주목한다.<br>전후 가치론의 전개과정을 전형문제를 둘러싸고 네오 리카아디안(스라피안)과 맑스주의 경제학 간에 전개된 논쟁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는 제4부는 제12장 [스라파 이전의 가치이론], 제13장 [스라파와 맑스 이론의 비판], 제14장 [스라파 이후의 맑스 가치론], 제15장 [맑스 경제학과 잉여 경제학]의 4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격은 주어진 기술과 분배조건으로부터 직접 계산할 수 있으므로, 가치를 거쳐 가격을 도출하는 맑스의 전형문제 해법이 불필요한 '복잡한 우회로'(complicating detour)이며, 결합생산(joint production)의 경우에는 그 '우회'조차도 불가능하다는 사뮤엘슨과 스티드만의 주장에 저자들은 공감한다. 반면 전형문제에 대한 네오 리카아디안의 비판을 맑스주의의 입장에서 효과적으로 방어한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는 샤이크의 반복(iterative process)에 의한 전형문제 해법이나 던컨 폴리(Duncan Foley) 혹은 제라드 뒤메닐 (G.Dumenil), 알랭 리피에츠(Alain Lipietz) 등의 '새로운 해법'(new solution)에 대한 저자들의 평가는 부정적이다.<br>제5부에서는 맑스주의 경제학의 최근 논쟁들이 다루어진다. 제16장 ['두번째 불황': 1973년 이후의 공황이론]에서는 1973년 이후 선진자본주의 제국의 불황을 임금상승에 기인한 이윤압박으로 설명하려는 네오 리카아디안의 시도와 사회적 축적구조(Social Structure of Accumulation) 혹은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의 붕괴에 따른 생산성의 위기 내지 수익성의 위기로 설명하는 사회적 축적구조학파와 조절이론이 개관된다. 저자들은 1973년 이후 자본주의의 위기는 임금상승-이윤압박의 위기라기보다는 생산성 상승의 둔화에 따른 수익성의 위기라는 입장을 지지하는 듯하며, 사회적 축적구조이론과 조절이론에 대해서는 분석수준이 일국적이며, 유로코뮤니즘의 '역사적 타협'과 유사한 정책적 함의를 갖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제17장 [합리적 선택 맑스주의]는 최근 크게 유행하는 분석적 맑스주의 주요내용을 존 로머(John Roemer)의 맑스 경제학의 '미시적 기초'에 관한 논의를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다. 저자들은 맑스 경제학에 대한 로머의 비판은 네오 리카아디안의 비판과 많은 점에서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제18장 [사회주의의 정치경제학]은 미제스(L.von Mises)와 랑게(O.Lange)의 사회주의 계산논쟁과 1983년 출판된 알렉 노브(Alec Nove)의 {실행가능한 사회주의 경제학}과 관련된 논쟁이 비판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저자들은 노브의 시장사회주의론은 노동자참여와 노동자통제에 중심적 의의를 부여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br>[결론]에서 저자들은 이 책에서 전개된 논의를 총괄하면서 맑스 이후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적 성과는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저자들은 오늘 맑스주의 경제학이 논박될 수 없는 변호론적인 '퇴행적인 과학연구 프로그램' 내지는 종교적 교조로 타락했다는 블라우그(M.Blaug)나 콜라코프스키(L.Kolakowski)의 '파산선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저자들은 맑스주의에 대한 비판자들이 흔히 상정하는 일괴암적 단일체로서의 정통 맑스주의라는 것은 적어도 1929년 이후부터는 존재하지 않으며,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는 다양한 조류들 간의 상호갈등과 논쟁으로 점철되었다고 본다. 또한 저자들은 맑스주의 경제학은 경제사회학으로서 혹은 다양한 유형의 경제체제에 대한 포괄적 분석으로서 여전히 부르주아 경제학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장점을 갖는다고 본다. 또한 저자들은 맑스 사후 맑스주의 경제학은 끊임없이 정정되고 발전되어 왔다고 본다. 하지만 저자들은 맑스 사후 100년 이상이 흐른 오늘 맑스 경제학에 핵심적인 중요성을 갖는 노동가치론, 잉여가치론,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 등이 결정적인 이론적 결함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고 주장하면서, 이들 요소를 빼고 나면 맑스주의 경제학에 무엇이 남을 수 있을까 라고 자문한다. 하지만 저자들은 맑스주의 경제학은 이같은 이론적 난점들에도 불구하고, 계급투쟁, 재생산, 모순, 및 불균등발전이라는 맑스주의 경제학에 고유한 4개의 '중핵' 개념은 여전히 유효하며, 이 때문에 맑스주의 경제학이 자신의 독자성을 잃고 사회학적으로 또는 역사학적으로 경도된 신고전파 경제학의 한 작은 분과학문 같은 것으로 전락하는 사태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현재 맑스주의 경제학에서 살아 남아있는 것은 계급투쟁, 재생산, 모순, 불균등발전 같은 개념 정도이며, 노동가치론, 잉여가치론 개념,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 같은 것은 모두 틀린 것으로 판명되었다는 저자들의 주장은, 이미 언급되었듯이 이 문제들을 둘러싼 논쟁사에 대해 네오 리카아디안적으로 편향된 해석일 뿐이다. 그리고 맑스주의 경제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인정하지 않는 저자들의 입장은 결국 맑스주의 경제학의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는 주장으로 연결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br><br>이제 이 책의 전체구성의 문제점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먼저 서술 대상이 구미, 그 중에서도 독일, 영국, 미국 및 러시아에서 전개된 맑스주의 경제학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 지적될 수 있다. 이는 주로 일본, 소련, 동독 일본에서 이루어진 정치경제학 교과서류로 맑스주의 경제학을 학습해 왔던 우리로서는 막대기를 구부리는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 전체를 구성하는 작업으로서는 불충분한 것이다. 예컨대 국제적 부등가교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제2권 제10장은 1970년대 이후 구미에서 전개된 엠마누엘의 국제적 생산가격이론과 관련된 논쟁만을 서술하고 있으며, 이보다 훨씬 풍부한 내용을 갖고 있으며 이보다 앞서 동유럽과 일본에서 전개된 국제가치 논쟁은 거의 언급되어 있지 않다. 비록 스탈린주의로 왜곡되었다 할지라도, 2차대전 이후 구소련, 동유럽 등 '현존 사회주의' 제국에서 이루어졌던 '맑스주의' 경제학 연구성과를 비판적으로 개관하는 것은 스탈린주의의 청산이라는 입장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또&nbsp;&nbsp;이미 우노 코조 (宇野弘藏)의 독창적인 맑스 해석으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일본의 맑스주의 경제학 연구성과나 프랑스 공산당의 국가독점자본주의론과 알뛰세리안을 비롯한 프랑스의 맑스주의 경제학이나 라틴아메리카 제국에서 전개된 맑스주의 경제학이 제대로 다루어지지 못한 것 역시 중요한 한계이다. 또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공황이론의 새로운 조류인 조절이론과 사회적 축적구조 이론도 그 중요성에 비교하여 너무 간략하게 다루어졌으며, '현존 사회주의' 제국의 붕괴 후 제기되고 있는 새로운 문제들, 가령 포스트맑스주의, 신사회운동, 환경문제, '재사유화', 민족·인종문제, 지구화(globalization)등의 문제들에 대한 검토가 누락된 것도 아쉬운 점이다.<br>이 책은 이상과 같은 중요한 부분을 누락하면서도, 스라파 경제학 또는 네오 리카아디안 경제학에 너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즉 제1권 제3장 [가치론에서의 첫번째 논쟁, 1895-1914]와 제2권 제4부 4개장 전체가 네오 리카아디안 경제학에 대한 검토로 채워져 있다. 이것은 이 책의 저자들의 입장이 네오 리카아디안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공평하지 못하다고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스라파 경제학, 네오 리카아디안 경제학을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에 포함시킬 수 있을지가 문제시될 수 있다. 또 저자들의 스탈린주의와의 불철저한 단절 역시 문제시될 수 있다. 앞서 지적했듯이 저자들은 스탈린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스탈린주의 체제를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하는 토니 클리프의 견해에는 반대하고, 스탈린주의 체제는 제한된 의미라 할지라도 일정한 역사적 진보성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에서 보여지는 리카아도주의와 스탈린주의의 화해는 스탈린주의 영국공산당 당원이면서도 리카아도 경제학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했던 모리스 돕과 로날드 믹(Ronald Meek), 혹은 네오 리카디안 경제학자인 동시에 광적인 반트로츠키주의자였던 호지슨(G.Hodgson)의 사례에서 이미 입증된 바 있다. 자유분방한 비판적 분석으로 모든 '우상'을 파괴하는 데 정평있는 네오 리카아디안들이 스탈린주의와 손을 잡는 것은 일견 기이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네오 리카아디안의 정치적 입장이 스탈린주의에 특징적인 개량주의와 동일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네오 리카아디안들이 자신들의 반사회주의적 입장을 변호하기 위해 '스탈린주의=사회주의'라는 스탈린주의의 등식을 역방향에서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네오 리카아디안과 스탈린주의의 친화는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br>또 이 책에는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서술을 위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방법론이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들이 맑스의 경제학 혹은 맑스주의 경제학의 핵심을 무엇으로 파악하고 있는지가 분명하게 전제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책 전체가 일관된 흐름에 기초한 통사적 서술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토픽'에 대한 이질적이고 단편적인 논의들의 모자이크와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맑스주의적 방법, 즉 역사유물론의 방법에 따라 맑스주의 경제학 역사를 서술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들은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를 경제적 토대의 변화와 계급투쟁의 추이와 긴밀하게 관련지우지 않고, 마치 자기 자신의 논리에 따라 독자적으로 전개되어 온 역사처럼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와 계급투쟁의 규정 하에서 이론의 역사를 서술하는 맑스주의적 방법은 맑스주의 자신의 역사 서술에 가장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br><br><br>3. {맑스 경제학의 역사}가 남한 맑스주의 경제학 역사에 시사하는 것<br><br>이제 {맑스 경제학의 역사}가 남한의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에 대해 시사하는 점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우리나라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 맑스주의, 공산주의 일반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스탈린주의의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식민지시대 조선공산당이나 해방이후 남한에서 남로당, 북한에서 조선노동당의 공식노선이 모두 스탈린주의였기 때문에, 당의 공식노선에 종속될 수 밖에 없는 맑스주의 이론연구에서도 스탈린주의가 관철될 수 밖에 없았다. 하지만 이같은 스탈린주의의 역사조차도 남한에서는 전쟁과 분단 이후 '단절'되었다. 그것이 다시 '복원'되기 시작한 것은 주지하듯이 1980년대 중반 이후이다. '복원'된 스탈린주의는 1990년대 들어 현실 스탈린주의 체제의 몰락과 함께 그 운명을 같이 했다. 이로써 남한의 스탈린주의의 역사는 종결되었다. 물론 그 파장과 잔재는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지만.<br>따라서 나는 남한에서 엄밀한 의미에서 맑스주의 이론 연구의 역사라는 것, 따라서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라는 것은 있어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PD'의 이론가인 윤소영은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을 남한 맑스주의 경제학의 "전사"로 간주하면서, 1980년대 중반 이후 한국사회성격논쟁에서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이 우세하게 된 것을 두고서 남한에서 맑스주의 경제학의 "복원"이라고 주장한 바 있지만,&nbsp;&nbsp;는 옳지 않다. 왜냐하면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이나 국가독점자본주의론 모두 맑스주의라기보다는 스탈린주의 2단계혁명론의 상이한 형태들이기 때문이다. 민족경제론은 스탈린주의 코민테른의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을 각색한 것에 다름 아니며, 윤소영이 "복원"했다고 주장한 맑스 경제학이란 실은 재수입된 스탈린주의 소련 정치경제학 교과서에 불과하다.<br>사실 오늘 1990년대를 살고 있는 진보적 지식인 세대는 거의 스탈린주의를 맑스주의라고 배워 온 세대이다. 우리 시대 진보적 지식인들의 스탈린주의적 뿌리가 얼마나 강고한지를 알기 위해 나의 (그리고 아마도 우리 시대 진보적 지식인들 대부분의) '맑스주의' 학습의 기억을 더듬어 보자. 우리 세대처럼 광적인 반공주의 탄압에 짓눌려 있던 1970년대 중반경에 (아마 1950-60년대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맑스주의' 경제학을 학습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대개 경제사 학습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맑스주의 학습을 시작했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우리 사고방식의 스탈린주의적 세뇌가 시작되었다. 그 당시 우리의 경제사 학습교재는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모리스 돕(M.Dobb)과 폴 스위지(P.Sweezy)의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논쟁 논문집, 돕의 {자본주의 발전 연구}(1946), 오쓰까 히사오(大塚久雄)의 서양경제사 관련저작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학습은 '스위지=유통주의=오류', '돕=생산 중시=정설'이라는 도식을 암송한 다음, 돕이나 오쓰까의 책을 더 보는 것으로 끝났다. 나의 기억으로는 그 당시 경제사를 학습했던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돕이 충실한 영국공산당 당원으로서 1930년대 스탈린주의 소련경제를 찬양한 스탈린주의자라는 사실,&nbsp;&nbsp;리고 오쓰까 역시 강좌파라는 '정통' 스탈린주의의 일본공산당의 계보에 속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알았다 하더라도 별 차이 없었겠지만.) 돕이 스위지와는 달리 유통이 아니라 생산을 중시했다는 점은 옳지만, 봉건제 내부에서의 생산력 발전의 사실을 경시했으며, 봉건제 내부에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의 변증법으로 이행을 설명하지 않고 브레너와 마찬가지로 생산력발전과 유리된 계급투쟁으로 이행을 설명하려 했을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는 세계자본주의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일국적 차원에서 이행의 계기를 발견하려는 일국자본주의의 문제설정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결국 스탈린주의 일국사회주의론의 정당화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내가 깨닫게 된 것은 1980년대 후반 이후이다.<br>또 오쓰까의 자본주의 성립사론은 맑스의 {자본론} 제3권에 제시된 자본주의 이행의 두가지 길에 관한 테제를 '소생산자형의 길=혁명적 길=정상적 자본주의 발전' / '지주 상인형의 길=보수적 길=파행적 자본주의 발전'으로 도식화한 것이다. 1960-70년대 당시 우리는 오쓰까와 같은 일본 강좌파의 경제사 이론에 의거하여 남한자본주의의 파행성을 비판했던 것인데, 이것이 매판적 관료자본주의론이다. 그러나 오쓰까의 이행의 문제설정 역시 돕과 마찬가지로 일국적이며, 소생산자형의 길, 즉 본원적 축적의 경제적 과정 (=가치법칙의 관철에 의한 소생산자층의 양극분해)에 의거한 자본주의의 발생을 자본주의 발전의 '고전적' 이념형으로 절대시하고, 역사적 자본주의 발생과정의 폭력적 성격, 본원적 축적의 경제외적 과정을 부차화함으로써, 최선의 경우에는 민족자본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발전의 길 (소생산자형 자본주의 발전의 코스, 아메리카형의 코스)을 당면혁명의 성격으로 내거는 스탈린주의 2단계혁명론 (반제반봉건BDR, 혹은 반제반독점PDR)의 역사적 정당화에 지나지 않으며, 최악의 경우에는 '고전적' 자본주의 발전 코스의 미화와 투항 (결국 중진자본주의론)의 길로 빠지고 만다는 사실을 내가 깨닫게 된 것 역시 1980년대 후반 이후의 일이다.<br>1970년대 당시 우리의 학습커리에서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후진국경제론이었다. 조용범의 {후진국경제론}(1975)을 읽은 다음, 고급 수준에서는 원서로 된 바란(P.A.Baran)의 {성장의 정치경제학}을 읽는 것이 통상적인 코스였다. 이 학습을 통해 남한자본주의의 제반모순은 자본주의 자체의 내적 모순보다는 남한자본주의의 파행성과 이를 결과시킨 제국주의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것이 고정관념으로 굳어진다. 게다가 이 책들에서 남한자본주의와 같은 후진국 민중의 대안으로 제시된 것은 민족민주혁명을 통한 자력갱생의 길이나 소련형 중공업우선발전론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바란이 제3세계의 발전모델을 폐쇄적 자급자족적 국가자본주의 체제였을 뿐인 스탈린주의 소련에서 찾았다는 사실은, 바란 혹은 종속이론의 반스탈린주의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불철저한 것이었는지를 잘 말해준다. 남&nbsp;&nbsp;진보진영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이 대학시절에 학습한 후진국경제론이 결국 스탈린주의 체제의 미화론이며 일국사회주의론이라는 사실을 1990년대 이후 스탈린주의 체제의 몰락 이후에야 깨닫게 된 것은 우리 운동의 비극이다. 1980년대 중반 남한 진보진영에서 남한자본주의의 모순을 자본주의 자체의 모순에서 구하지 않고 남한자본주의의 발생 성립과정의 파행성 (예컨대 식민지종속적 성격, 기생성, 부패적 성격 등)에서 구하고 이러한 파행성을 제거하는 것이 당면혁명의 과제라고 주장했던 NL, PD, ND 등 모든 종류의 스탈린주의 단계혁명론이 각축 번창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그 당시 진보진영에 속했던 사람들의 스탈린주의적 학습과정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같은 스탈린주의 경제학조차도 1950-70년대 광적인 반공 군사정권의 폭압 하에서는 밀수입되고 암거래될 수 밖에 없었으며, 이같은 밀교적 성격이 도리어 스탈린주의의 '혁명적' 가치와 '정통성'에 대한 환상을 턱없이 증폭시켰다.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에 잠시 유행했던 네오 리카아디안 경제학의 '자본논쟁'과 종속이론은 앞서 언급되었듯이 스탈린주의와의 외관상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본질에서는 스탈린주의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1980년대 중반 상대적으로 개방된 이념적 공간에서 소련과 북한에서 직수입된 스탈린주의 경제학이 각각 정통 혁명사상으로 쉽사리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 역사적으로 형성된 진보진영의 지적 지반 자체가 이미 스탈린주의에 깊이 침윤되어 있었기 때문이다.<br>오늘 진보진영이 스탈린주의 몰락이라는 정세에서 맑스주의를 재흥시키고자 하면, 다른 무엇보다 남한 진보진영에 역사적으로 뿌리깊은 스탈린주의적 관념과 작풍을 남김없이 쓸어 내는 것이 긴급하게 요구된다. 스탈린주의를 맑스주의와 동일시하게 한, 그리고 맑스주의를 비판될 수 없는 무오류의 신성한 종교적 체계처럼 우상화하게 한, '수업시대'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 심층에 각인된 스탈린주의를 깨끗이 청소하는 작업이다. 이와 같은 스탈린주의에 대한 철저한 청산작업을 통해서만, 과학적인 따라서 진실로 혁명적인 맑스주의 경제학이 진정 처음으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호워드와 킹의 {맑스 경제학의 역사}는 그 비맑스적 리카아도적 입장에도 불구하고 비스탈린주의적 관점에서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현재 남한 진보진영에서 긴급하게 요구되는 스탈린주의 청산작업에서 유용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br></d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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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3 Dec 2008 04:51:37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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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변증법에 대한 메모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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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1.<br>&nbsp;대입 준비를 위한 비문학 문제들을 풀면서&nbsp;배경지식으로 교육받았던&nbsp;변증법은 보통 정-반-합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것이 보통의 변증법에 대한 이해다. 그렇지만 변증법을 유명하게 한 헤겔은 정작 정-반-합의 구도를 단 한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br><br>&nbsp;변증법은 크게 2가지 요소를 가진 것으로&nbsp;보인다. 부정의 부정, 그리고 부단한 자기지양<br><br>&nbsp;부정의 부정은 좀더 포괄적인 개념으로 보인다. 다양한 영역에서 사용되는 것처럼 보인다. 자기지양은 좀더 학문적이며, 이론적인 영역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두 요소들은 인식에 대한 것임은 분명하며, 분리된 것이 아니라 변증법 전체에서 어떤 부분적 측면들만을 서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br><br>&nbsp;일반적으로 부정의 부정은 대우관계이다. 그러나 헤겔은 부정의 부정은&nbsp;다시 원래로 환원되지 않으며 새로운 것이 있다고 말한다.<br><br>2.<br>&nbsp;우리들은 대상을 파악한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자기 자신이 정립되어간다. 변증법의 합리적 핵심은 대상에 대한 인식이 자기 반성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반성해보건데 나 역시 이 자기반성에 소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서 나타난&nbsp;많은 사람들도 끊임없이 자신이 본 현상들을 중얼거리며, 나열하면서 나름의 체계를 만들어내려고 하고 있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거의 반성하지 않는다.<br></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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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메모</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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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6 Nov 2008 09:26:54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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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경제학에 대한 메모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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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nbsp;경제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경제학자들의 사기에 놀아나지 않기 위해서다. 조안 로빈슨이 한 말이라고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다. 경제라는 현상이 자본주의의 출현과 함께 나타났던 것처럼 경제학은 자본주의와 함께 탄생했다.<br><br>&nbsp;경제학의 목표는 사회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공학적 개조에 있다. 이 점이 중요하다. 경제학은 끊임없이 미래를 말한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경제학은 미국과 한국의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신고전파 경제학이다. 경제학은 지배 계급을 위한 공학과 프로파간다를&nbsp;제공하는 신학으로서 그 역활을 충실히 해왔다.<br><br>&nbsp;경제학이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에 대해서 엄격한 정의를 내릴 수도 없는, 모델이 추상화시킨 변수의 현실성 자체를 검증할 수단이 없는, 학문의 기본 요건조차 갖추지 못한 이 학문이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은 그 때문이다. 진정한 형이상학적 궤변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맨큐와 상담하면 된다. 또한 이론이 세계를 말아먹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다면 역시 맨큐와 상담해보면 알 수 있다. 래퍼 커브라는, 냅킨 위에 그려진 곡선 하나가&nbsp;파멸시킨 사람들을 알 수 있다.<br>(혹자들은 마르크스와 레닌은 ? 이라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 이해에 있어서 마르크스가 끼친 영향과 무엇을 할것인가?의 레닌을 안다면 이런 소리를 할 수 없을 것이다.)<br><br>&nbs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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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메모</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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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9 Oct 2008 08:34:14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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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경제학에 대한 메모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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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1.<br>&nbsp;A. 스미스는 시장에 참여하는 주체들의 이기심에 따라 행동할 것을 주장하지 않았다. 단 한번도 그런 적이 없으며, 오히려 그러한 이기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단호하게 비판했다. 상인들의 독점에 대한 스미스의 단호한 비판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A. 스미스는 자유로운 시장을 옹호하는 학자로 알려져 있다.<br><br>&nbsp;이 일반적인 이해는 거의 절반만 정확한데 A. 스미스가 승인한 것은 이기심이 아니라 자기 이해이기 때문이다. A. 스미스는 글래스고대학의 도덕철학을 담당한 교수로, 스토아주의 철학에 기반한 사람이었다. A. 스미스가 긍정적으로 생각한 주체는 이기심에 충실한 것이 아닌, 엄격한 자기 반성과 성찰,&nbsp;금욕주의적인 태도와 지성을 지닌 사람 - 홍교수님 표현으로는 이상적인 영국 신사 - 의 자기 관심(혹은 이해, 원문은 self-interest)에 충실한 주체였다.&nbsp;&nbsp;<br><br>&nbsp;오해의 직접적 원인은 일본 역자들이 이기심과 자기 이해를 구분하지 못했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정우 교수의 표현을 인용할 때, 학계의&nbsp;형편없는 미국적인 교양과 지성에 더 직접적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br><br>2.<br>&nbsp;경제학은 기본적으로 사회공학이다. 그런데 지금의 경제위기에서 볼 수 있듯이 공학의 근본에 심각한 오류가 있음이 입증되었다. 경제학 그 자체를 요구할 금융사들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으며, 경제학적 마인드의 무용함은 현실에서 입증되었다. 그렇다고&nbsp;학과의 특성이 높은 교양수준을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다.&nbsp;내가 경제학과지만 내가 인사담당자라면 경제학과 출신 안쓰겠다는 말이다. 케인즈와 같은 거물이 돌아온다고해도, 힉스나 사무엘슨과 같은 인물들이 또 나타난다 해도 나의 취업길에는 전혀 도움이 안된다는 뜻도 된다.<br><br>3.<br>&nbsp;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로운 시장은 애초에 존재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애초에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다. 가장 현실에 접근한 설명은 독점적 경쟁 시장과 독과점 시장이다. 포스트케인즈주의는 자본주의의 적나라한 현실을 파헤치는 도구로서 유용하며 참고할 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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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메모</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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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7 Oct 2008 06:39:20 GMT</pubDate>
		<dc:creator>RedGhost</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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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기룡전자에 대한 메모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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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1.<br>&nbsp;어떤 덜 떨어진 머저리의 헛소리에서 알 수 있듯이 저항의 이름은 근본적으로 악령의 형태를 취한다. 북한, 한총련, 민주노총, 민변, 노동조합 등, 지배 계급에게는 피지배 계급이 어떤 세부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느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민주의자든 사회주의자든 그냥 친북좌파, 주사파라는 유령과도 같은 이름으로 다가선다는 것이다.<br><br>2.<br>&nbsp;자본과 노동의 대립은 어설프게 타협 가능한, 점진적으로 해결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가 필연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해결 불가능한 근본적인 적대이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실재다. 왜 그러한가? 자본과 노동의 관계가 담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의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이기 때문이다.<br>&nbsp;구사대와 용역을 동원하고 공장을 멈추는 것이 더 저렴할까? 아니면 타협을 하는 게 저렴할까? 분명 타협을 하는 것이 더 저렴하다. 아울러 민주노조 성립에 따른 생산성 향상의 효과도 볼 수 있다.(일반적인 착각과 달리 민주노조가 회사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면 생산성이 올라간다.) 그러나 이런 실증적 사례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기업들은 거의 무조건적으로 노동자를 억압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실질적으로 지배의 근본적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는 곳이 바로 기업이기 때문일 것이다.<br><br>3.<br>&nbsp;만약 합리적인 주주라면, 대표이사는 물론이고 구사대에 동원되었던 직원들까지 남김없이 정리해고 - 문자 그대로 무조건 해고 - 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것은 정치적이거나 도덕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다.<br>&nbsp;1990년 이후로 세계 경제는 과잉 공급 시대이다. 물건을 만들어서 파는 기업들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는데, 그에 반해서 그 물건들을 사줄 시장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미국을 제외한다면 이렇다할 대규모 소비시장이 없는데 반해, 중국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경제 개발에 들어가는 동남아 등... 값싸고 질 좋은 물건으로는 더이상 팔리지 않는다. 마켓팅과 디자인이 중요해지는 것은 이런 배경이 크다.<br>&nbsp;그런데 경제위기로 세계적으로 유효수요가 말라붙어 버렸다.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는 이제 기업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저런 천박한 교양과 편협한 인식을 가진 사람들로 어떻게 창조적 파괴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자본주의의 가혹함 속에서 어떻게 기업을 유지할 수 있을까? 기룡전자의 내일을 위해서라도 덜떨어진 머저리들은 하루속히 회사를 나가야 한다.<br><br>(또한 첨단산업일수록 숙련된 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제아무리 첨단산업이라도 현장에서의 암묵지는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정밀기계라도 결국 그것을 조율하고 운용하는 것은 사람이다. 또한 첨단산업일수록 사람손이 많이 들어간다. 2차대전 당시 독일과 미국의 전차 생산량의 자세한&nbsp;비교에서 알 수 있듯이 크고 무겁거나, 첨단일수록 사람 손이 많이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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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메모</category>

		<comments>http://redghost.egloos.com/985764#comments</comments>
		<pubDate>Tue, 21 Oct 2008 01:24:13 GMT</pubDate>
		<dc:creator>RedGhost</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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