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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quot;Aber es war genug.&quo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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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quot;이상도 하죠. 우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가까이 있었어요.&quo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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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3 Jul 2009 06:51:47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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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quot;Aber es war genug.&quo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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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quot;이상도 하죠. 우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가까이 있었어요.&quo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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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이사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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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div>이글루스에 너무 오래 붙어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nbsp;</div><div><br />
</div><div>너무 오랫동안 방치해 놓기도 했지만, 떠날 때가 된 듯.&nbsp;</div><div><br />
</div><div>여기 남은 과거의 포스팅들은 차츰 정리해나가겠지요.</div><div><br />
</div><div>저작권 문제로부터는 비교적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털어보면 것두 아닐듯.</div><div><br />
</div><div><br />
</div><div><br />
</div><div><br />
</div><div>티스토리로 옮겨갑니다. 아마 그쪽도 포스팅 의욕이라고는 없는 방치 블로그가 되겠지만. 흐.</div><div><br />
</div><div>이제 대학원생이니, 공부에나 매진할게요.&nbsp;</div><div><br />
</div><div>별볼일 없는 제 뻔뻔한 잡문이라도 보고 싶으신 분들만 아래 주소로 찾아와주세요.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div><div><br />
</div><a href="http://barsur.tistory.com/">http://barsur.tistory.com/</a><div><br />
</div><div><br />
</div>			 ]]> 
		</description>

		<comments>http://barsur.egloos.com/5020214#comments</comments>
		<pubDate>Thu, 23 Jul 2009 06:51:47 GMT</pubDate>
		<dc:creator>BarSur</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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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단수를 벗어나, 그러나 정신줄부터 잡고.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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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div>小說을 쓰겠오.</div><div>&lt;おれ達の遺鞭を神様にみせびらかしてやる></div><div>그런 駭怪망測한 소설을 쓰겠다는 이야기요.</div><div><br />
</div><div><b>- 私信(三)</b></div><div><br />
</div><div><br />
</div><div>여기에서 사사로운 편지(私信)를 빌어 소설을 쓰겠다고 말하는 이는 우리가 익히 아는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이상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중간의 일본어 문구를 거칠게 해석해보면 “우리들의 遺鞭을 신에게 보여주겠어.”라는 뜻이 될 것인데,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단연 “우리들의 遺鞭”이라는 부분이다. 왜 ‘나의’가 아닌 ‘우리들의’가 되는 것인가. 이미 소설을 쓰는 작가로서 이상이라는 인물이 단순한 일인칭으로는 표기될 수 없음을 스스로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더욱이 遺鞭은 ｢종생기｣에 나오는 “산호채찍珊瑚鞭”과도 연결 지을 수 있겠으나, 좀 더 쉽게 생각하면 같은 발음의 遺編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遺作 혹은 遺書임에 다름 아니다. 즉, 조선총독부 건축기사였던 김해경은 소설을 씀으로서 단수가 아닌 복수가 되어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李霜을 새롭게 얻었으며, 그것이 곧 그 자신의 유서를 쓰는 행위임을 밝히는 것이기도 하다. </div><div><br />
</div><div><br />
</div><div>--</div><div><br />
</div><div>그런데 이건 결국엔 소위 예술을 하겠다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통용되는 이야기라 할 수있다. 소설을 쓴다는 것도 "나"라는 단수를 벗어나 복수가 되어보는 행위이며, 결국 그건 자아의 상징적인 죽음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요즘 스터디를 하면서 자주 듣고 또 쓰게 되는 말이 "메타적"이라는 말이다. 학문이든, 예술이든 "나"로부터 한 발 물러난 곳에서 지금의 위치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폴 오스터의 &lt;기록실로의 여행>에서 보여지듯 무한히 반복되는 미장아빔<i>mise en abyme</i> 속에서 우리는 패배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지만, 이 제멋대로 미끄러지는 기호들 속에서 다시금 "나"라는 허망한 서사의 퍼즐을 끼워맞추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div><div><br />
</div><div><br />
</div><div>ps. 오늘 이상 발표를 했어야 했는데, 결석해서 못했습니다. 흐흐, 이건 뭐, 창피해서 남한테 말도 못하는 뒷사정에 몸서리치며 이상이나 다시 읽고 있네요. 학기말에나 할 재발표나 미리 준비할 요량으로. 쩝. 대학교 마지막 학기에 왜 이렇게 정신줄을 놓고 살지. 단수를 벗어나기 전에 정신줄부터 잡아야지요. </div><div><br />
</div><div><br />
</div><br/><br/>tag : <a href="/tag/이상" rel="tag">이상</a>,&nbsp;<a href="/tag/김해경" rel="tag">김해경</a>			 ]]> 
		</description>
		<category>읽은 이야기</category>
		<category>이상</category>
		<category>김해경</category>

		<comments>http://barsur.egloos.com/4928303#comments</comments>
		<pubDate>Mon, 27 Apr 2009 14:48:26 GMT</pubDate>
		<dc:creator>BarSur</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대물림 되는 서사, 해체되는 서사.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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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div>조정래의 &lt;회색의 땅>은 여러 가지 면에서 독특할 것이 없는 소설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형제가 다시금의 아버지의 과거를 알아가게 되는 서사의 흐름은 지극히 평범하다. 서사를 끌어가는 서술방식의 측면에서도 그렇고, 82년도에 쓰인 소설로서 결말에 드러나는 아버지의 과거사나 그 소재상의 측면 또한 신선함을 안겨주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 독자로 하여금 서사를 읽도록 추동하는 힘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결국에 가족을 붕괴하도록 만들었으며 이제는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과거를 반추함으로써 되새겨지는 ‘대물림’의 정체를 알고자 하는 서사적 욕망이다. </div><div><br />
</div><div>사실 소설이 취하고 있는 형식은 ‘대물림’의 본질을 알려주기를 꺼려하면서 현재 ‘아버지 사후’의 이야기를 진행시키다가 어머니와의 합장이 다 끝난 뒤에야 박 영감의 목소리를 빌려 과거의 이야기를 설명하는 액자식으로 볼 수 있다. 이 소설의 힘은 끊임없이 현재 속에서 과거로 되돌아가 그 순간을 설명하고자 하는 욕망에 근거하고 있는데, 많은 것들에 대하여 서술자인 ‘나’의 목소리를 빌려침착하게 과거와 현재 사시의 인과관계를 풀어내려 한다. 이것이 가장 1차적인 욕망의 해소 방법이라면 결국에는 한계에 봉착하게 되는데, 공백으로 가려진 아버지의 삶의 비밀에 대하여 알 수 없다면 인과관계만으로는 그 서사를 완전히 이해하는 거의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div><div><br />
</div><div>형이 네 차례에 걸쳐 실패를 경험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아버지의 ‘대물림’이자 ‘나’와는 달리 형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일 것인데,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결국 우리의 욕망을 통해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한 하나의 서사는 과거의 것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현재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프로이트의 주장은 그에 대한 비판과 관계없이 유효하다. 바로 억압된 것은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있다는 점. 이 소설을 통해 알 수 있는 놀라운 점은 그것이 개인의 서사로만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대를 이어서까지 이어져 되돌아온다는 점이다. 결국 형이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단순히 ‘대물림’된 아버지의 과거 경력 때문만이 아니라 끊임없이 그 자신을 통해 재현되는 서사이자, 아버지 때부터 억압된 욕망이기도 하다. </div><div><br />
</div><div>결국 이 소설의 결말에 형이 “난 결국 아버지 속에 있는 놈일 뿐이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과거의 실패뿐만이 아니라 최초의 욕망에서부터 이미 그는 아버지의 서사 속에 이를 되풀이했을 뿐임을 고백하는 것이 된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내 마음속에서 아직 돌아가시지” 않을 수밖에 없으며, ‘거미만도 못한 아버지’와 ‘술 취한 박쥐’인 형은 닮은꼴임을 상기시켜준다. 이제 아버지를 ‘한 마리 거미만도 못해’라고 비난한 형의 목소리는 하나의 역설이 되는 것이다. 자기 몸을 자식에게 먹여 키운 부모 거미처럼 아버지의 서사는 고스란히 형의 몸을 통하여 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형이 아버지의 삶의 비밀을 알고 싶어 했던 것은 그것이 아버지의 서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삶을 읽는 데에도 필수불가결한 것이었기 때문임은 이런 의미에서도 말해볼 수 있을 것이다. </div><div><br />
</div><div><br />
</div><div><br />
</div><div><div>물론 이것은 합당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모든 아들들은 아버지의 서사를 답습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서사는 나름의 방식으로 변형되거나 전혀 다른 의미를 낳기 마련이다. 라캉이 "프로이트로(기원으로) 돌아가자"고 말했을지라도 그가 읽어낸 아버지의 서사는 이미 전혀 다른 방식의 그의 서사가 되었듯이 말이다(물론 라캉이 프로이트의 아들이라 부른다면, 딸로서의 크리스테바에게도 이는 통용될 것이다) 그런 식으로 프로이트는 그 아들격인 라캉에 의하여 새롭게 태어나 우리에게 다시 읽혀진다. </div><div><br />
</div><div>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끊임없이 아버지를 해체(데리다의 관념을 빌어 말하자면)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아버지를 새롭게 탄생시킨다. 이제 내가 아버지의 아버지가 되고, 그리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와 관념까지 해체된다. 결국 대물림 되는 서사란, 새롭게 읽는(다시 읽는, 고쳐 있는) 서사이며 헤체되는 서사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 </div><div><br />
</div></div><div><br />
</div><div><br />
</div><div>ps. 태백산맥도 읽지 않은 내가 조정래의 단편을 논하기란 어딘가 찝찝한 일이었는데, 결국엔 어떤 식으로든 이글에서도 조정래의 &lt;회색의 땅>은 죽고 결국 나의 &lt;회색의 땅>에 대한 이야기가 되어버린다는 것. </div><div><br />
</div><div>ps2. 대학교 마지막 셤공부나 열심히 해야죠. 이번주엔 학위청원서 내고, 다음주엔 대학원 원서 접수로군요. 별 볼일 없는 근황이랍니다.</div><div><br />
</div><div><br />
</div><br/><br/>tag : <a href="/tag/조정래" rel="tag">조정래</a>,&nbsp;<a href="/tag/회색의땅" rel="tag">회색의땅</a>			 ]]> 
		</description>
		<category>읽은 이야기</category>
		<category>조정래</category>
		<category>회색의땅</category>

		<comments>http://barsur.egloos.com/4920542#comments</comments>
		<pubDate>Mon, 20 Apr 2009 11:42:07 GMT</pubDate>
		<dc:creator>BarSur</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길어지는 잠수.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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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물론 살아있는 하지만, 시간적인 여유도 있지만,<div><br />
</div><div>정신적인 여유가 없어서 블로그는 수심 천미터 단위 아래를 잠행하고 있네요. <div><br />
</div><div>벌써부터 준비하는 건 많아지는데, 과연 졸업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div><div><br />
</div><div>옛날에 깔아놓은 지뢰들 때문에, 벌써부터 마음은 지뢰밭 위로군요. </div><div><br />
</div><div><br />
</div><div>실질적으로 내 침대에서 내가 잠자는 공간보다 더 많은 공간을, 기간내에 읽어달라는 책들이 차지하고 점거농성중인데 </div><div><br />
</div><div>마음만 싱숭생숭해서 갈수록 책들의 높이만 높아지는군요. </div><div><br />
</div><div>그러고보니 한동안 도서관 대출 가능 권수가 7권으로 바뀐지도 모르고 기존의 5권 맞추면서 아둥바둥 했던게 우습네요. </div><div><br />
</div><div>요즘 잊고 사는 게 왜 이렇게 많은지. 하루 세끼를 다 먹어본 게 언젠지 기억도 안나요.</div><div><br />
</div><div><br />
</div><div><br />
</div></div>			 ]]> 
		</description>
		<category>잡스런 이야기</category>

		<comments>http://barsur.egloos.com/4904388#comments</comments>
		<pubDate>Sun, 05 Apr 2009 15:13:03 GMT</pubDate>
		<dc:creator>BarSur</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슬럼독 밀리어네어>, 정답이 없는 또 하나의 퀴즈쇼 ]]> </title>
		<link>http://barsur.egloos.com/4887239</link>
		<guid>http://barsur.egloos.com/4887239</guid>
		<description>
			<![CDATA[ 
  <div><br />
</div><div><b>1.</b> </div><div><br />
</div><div><br />
</div><div>영화는 최초에 묻는다. </div><div><br />
</div><div><font class="Apple-style-span" color="#FF9900">"자말은 퀴즈쇼에서 2,000만 루피가 걸린 최종단계까지 왔다. 어떻게 왔을까?"</font></div><div><font class="Apple-style-span" color="#FF9900"><br />
</font></div><div><font class="Apple-style-span" color="#FF9900">A : 속임수로</font></div><div><font class="Apple-style-span" color="#FF9900">B : 운이 좋아서</font></div><div><font class="Apple-style-span" color="#FF9900">C : 천재여서</font></div><div><font class="Apple-style-span" color="#FF9900">D : 정해진 운명이었다. </font></div><div><br />
</div><div>이것은 당신에 참여한 퀴즈쇼이자, 삶의 질문이기도 하다. </div><div><br />
</div><div><br />
</div><div><br />
</div><div><b>2. </b></div><div><br />
</div><div><br />
</div><div>"텍스트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 이것은 데리다의 말이지만, 결국 그 말을 따라가면 우리의 인생도 결국엔 한 권의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먼지가 쌓이고 책장이 닳아버린 의문투성이의 이 책. 그리하여, 그 책 속에 적혀진 문장과 문장, 그 사이 행간의 거리처럼, 도저히 읽어낼 수 없는 지난한 우리 삶의 인과관계의 단면에 대하여 우리는 수많은 질문들을 던지게 된다. 그것이 당신 삶의 퀴즈쇼이기도 하다. </div><div><br />
</div><div>빈민가 출신의 자말이 남들이 도달할 수 없었던 퀴즈쇼의 마지막 단계에 까지 이르며 승승장구하게 된 이유. 그것은 단순히 친절하게 소개된 보기 안의 답안들, 그리고 영화 마지막에 소개된 정답 "정해진 운명" 때문이었을까? 그렇다면 영화는 무엇 때문에 자말의 우여곡절 많은 이 삶의 텍스트를 우리 앞에 그 퀴즈들과 함께 병치하여 펼쳐놓았을까. 마릴린 로빈슨은 &lt;하우스키핑>에서 "이 모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실이란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설명을 요하는 것이 사실이다."라고 적었다. </div><div><br />
</div><div>삶이라는 사실, 이 텍스트야 말로 너무나 많은 설명을 요구하는 문제들인 것인데, 자말이 퀴즈쇼를 통해 이 모든 것에 답하고 있다면 그것은 곧 그가 그 자신의 삶에 대하여 가장 열렬한 독자였으며 곧 자신만의 상상력을 지닌 창조자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읽기"라는 행동은 언제나 다시 읽는 것이며 고쳐 읽는 것인데, 이 새로운 읽기의 연속 속에서 그는 마침내 그 자신의 삶을 창조해냈다. </div><div><br />
</div><div><br />
</div><div><br />
</div><div><b>3. </b></div><div><br />
</div><div><br />
</div><div>나는 최초에 &lt;슬럼독 밀리어네어>의 가벼운 설정만을 듣고서 그것이 비카스 스와루프의 &lt;Q&amp;A>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극장에서 접한 &lt;슬럼독 밀리어네어>와 내가 알고 있는 &lt;Q&amp;A>는 전혀 다른 작품인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나는 이 이야기가 완전히 별개의 다른 두 개이거나, 결국에는 같은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얼굴을 하고 서로를 거울처럼 투영하는 이야기임을 알게 되었다. &lt;Q&amp;A>에서 주인공 토머스가 지니고 있는 운명의 동전과 그 앞뒷면처럼. 텍스트 밖에는 아무 것도 없으므로, 결국 거기에서 어떤 의미를 읽어내는가 또한 때로는 운명같은 것이기도 했다. </div><div><br />
</div><div>물론 소설의 주인공이며 기독교과 힌두교와 이슬람의 이름을 모두 지닌 람 모하마드 토머스의 복잡한 이름은 자말이라는 단순한 이름으로, 토머스가 읽어왔던 수많은 인물들과 그 텍스트들이 자말에게는 그 자신과 라티카를 읽는 일로 변했다. 그러나 토머스와 자말이 탄생한 도시 뭄바이처럼 혼성적이고, 탈식민주의적이며 조금은 페스티쉬적인 소설 텍스트가 헐리우드적인 감각으로, 어딘가 단순화된 러브스토리로 변화하였을지라도, 결국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이 삶을 읽어야만 하는 이 과정에 대하여 암시해준다. 조금은 지난하게, 조금은 희망적으로. 물론 라캉의 욕망이론대로 주체의 욕망은 언제나 미끄러져 버리고 우리는 영원히 그 대상에 도달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자꾸만 자밀에게서 멀어지는 라티카처럼. </div><div><br />
</div><div>이 영화의 답인 "운명"에 대하여 말한다면, 이처럼 쉽지 않은 우리의 삶을 읽어야만 하는 그 연유와 과정이야 말로 운명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당신의 삶을 열렬히 읽고, 이윽고 창조함으로서, 당신의 라티카를 만나는 일. </div><div><br />
</div><div><br />
</div><div><br />
</div><div><b>4. </b></div><div><br />
</div><div><br />
</div><div>소설 &lt;Q&amp;A>에서 토머스는 살림에게 말했다.</div><div><br />
</div><div>"봐, 살림. 너는 운명을 믿는다고 했지? 그럼 이 동전으로 우리 운명을 결정짓자. 앞면이 나오면 도망가고, 뒷면이 나오면 여기 있는 거야. 좋아?"</div><div><br />
</div><div>나중에야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 동전은 앞면과 뒷면이 같은 것이었다.</div><div><br />
</div><div><br />
</div><div>일찍이, 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 </div><div><br />
</div><div><br />
</div><div>"왜 행운의 동전을 던져버렸나요?"</div><div>"이젠 더이상 필요하지 않으니까요. 행운은 내면에서 오는 것이니까요."</div><div><br />
</div><div><br />
</div><div>난 사실 이 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람 모하마드 토머스의 삶은, 우리의 삶은 이와 같은 말로 간단히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동전을 던져버린 이유는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텍스트란, 그리고 삶이란 과정 중의 주체가 생산한 과정 중의 의미일 따름이니까. 퀴즈쇼의 답안처럼 정답이 주어지지 않음으로서, "슬럼독"과 "밀리어네어"의 역설처럼 그 간극을 뛰어넘어 새로운 의미로 나아간다.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이다. 우리의 삶의 답은 그렇게 쉽게 나오지도 않으며, 요약할 수도 없다는 것. 인간은 어찌할 도리 없이 불완전하다는 사실.</div><div><br />
</div><div>그리하여 오히려 토머스나 자말이 하지 못한 말들, 반드시 정답일 수 없었던 것들 속에 더 중요한 것들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 소설 속 행간을 읽고, 영화속 컷과 컷 사이, 침묵과 여백을 읽는 일. </div><div><br />
</div><div><br />
</div><div><br />
</div><div><b>당신은 당신의 삶이라는 텍스트를 열렬히 읽고, 이제는 그 새로운 의미의 문 앞까지 도달했다. 어떻게 왔을까?</b></div><div><br />
</div><div><b>D : <span class="Apple-style-span" style="line-height: 20px; white-space: pre-wrap; -webkit-border-horizontal-spacing: 2px; -webkit-border-vertical-spacing: 2px; ">It is written</span></b></div><div><br />
</div><div><br />
</div><div><span class="Apple-style-span" style="font-family: Tahoma; line-height: 20px; ">(덧) 결국엔 "It is written"에서 숨겨져 있는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일 수도 있을 텐데, 신(이것은 운명이었다), 혹은 감독(이것은 영화이므로, 감독의 창작이므로)의 2가지의 해답이 나올 수있지만, 그것이 결국에는 '자말' 그 자신이며, '당신'이며, '우리'라고 보았기 때문에 "It is written"이란 답은 결국 '운명'이라는 말을 뛰어넘을 수밖에 없다. 감독의 코멘트에 따르면 '운명이었다'라는 점이 어느 정도 의도되었기 때문에 국내번역은 이를 따르고 있는 것 같지만.</span></div><div><font class="Apple-style-span" face="Tahoma"><span class="Apple-style-span" style="line-height: 20px;"><br />
</span></font></div><div><font class="Apple-style-span" face="Tahoma"><span class="Apple-style-span" style="line-height: 20px;"><br />
</span></font></div><br/><br/>tag : <a href="/tag/슬럼독밀리어네어" rel="tag">슬럼독밀리어네어</a>,&nbsp;<a href="/tag/비카스스와루프" rel="tag">비카스스와루프</a>,&nbsp;<a href="/tag/퀴즈쇼" rel="tag">퀴즈쇼</a>			 ]]> 
		</description>
		<category>본 이야기</category>
		<category>슬럼독밀리어네어</category>
		<category>비카스스와루프</category>
		<category>퀴즈쇼</category>

		<comments>http://barsur.egloos.com/4887239#comments</comments>
		<pubDate>Sat, 21 Mar 2009 16:50:01 GMT</pubDate>
		<dc:creator>BarSur</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에>와 오레스트의 광기 ]]> </title>
		<link>http://barsur.egloos.com/4884688</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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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괴테의 &lt;타우리스의 이피게니에>는 에우리피데스에 의해 그려진 그리스 비극 중 하나인 이피게니에의 이야기를 신고전주의 문학으로 변모시킨 희곡 작품이다. 그리스 비극의 이피게니에의 결말이 어디까지나 신들의 손바닥 위에 올려져 그 운명이 좌우되고 있다면, 괴테의 &lt;타우리스의 이피게니>에서는 고매한 이성을 지닌 인물들이 이성적인 대화를 통해 극을 이끌어나가고 있다.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가장 큰 힘은 이성에 대한 믿음이며 대화로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도록 극의 구조를 완결시키는 것이 괴테의 문학적 전략이기도 했다. 여성이며 이방인으로서의 이피게니에가 남성이며 권력자인 타우리스의 왕 토아스와 동등한 대화를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곧 이성의 힘이며 인간에 대한 신뢰이고, 이피게니에가 보여주는 극치의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div><br />
</div><div>그리나 이 작품에서 되짚어보아야 하는 인물은 이피게니에의 동생이며, 신들의 저주에 의해 근친살해의 저주를 받고 광기에 휩싸이게 되는 인물 오레스트가 아닐까 싶다. 그는 신탁에 의해 그 자신의 광기를 치료하기 위해 다이아나의 여신상을 훔쳐 달아나야 하는 인물이다. 괴테의 &lt;타우리스의 이피게니에>의 2막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div><div><br />
</div><div><font class="Apple-style-span" color="#FF9900">고난이 시작되었다고 말하게. 그게 진실이야. </font></div><div><font class="Apple-style-span" color="#FF9900">내 운명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font></div><div><font class="Apple-style-span" color="#FF9900">페스트에 걸려 쫓겨난 사람처럼 내가</font></div><div><font class="Apple-style-span" color="#FF9900">가슴속에 은밀한 고토와 죽음을 품고 있는 거라네. </font></div><div><br />
</div><div>괴테는 재미있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바로 "페스트"라는 질병의 언급이다. 당연히 중세의 공포였던 페스트가 그리스 신화에는 등장할리 없는 것인데, 오레스트는 페스트라는 질병을 통하여 그 자신의 광기를 지칭하고 있다. 즉, 이미 광기는 광기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사회병리학적인 질병의 위치에 처해 있으며, 타자에 의해 명명됨으로서 그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div><div><br />
</div><div><div><div><font class="Apple-style-span" color="#FF9900">광기가 자리잡는 것은 사람들이 광기를 멀리 물리침에 따라서이고, 광기의 양상과 차이는 빈번해지는 관심이 아니라 광기를 멀리하는 무관심에서 비롯된다.</font></div><div><br />
</div></div><div>- 미쉘 푸코, &lt;광기의 역사></div><div><br />
</div><div>에우리피데스의 비극에서 오레스트는 결국 에피게니에와 함께 여신상을 훔쳐 달아나고, 추격대의 위기로부터 신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벗어나게 된다. 그러나 고매한 이성의 소유자들이 등장하는 괴테의 &lt;타우리스의 에피게니에>에서는 에피게니에가 토아스 왕에게 모든 진실을 말하고 대화로서 문제를 해결하고 이 땅을 벗어나게 되는 것으로 변모한다. 더욱이 오레스트는 다이아나의 여신상이 아니라, 곧 이상적인 이성적 인물 에피게니아를 통해 그 자신의 광기를 치유할 수 있으리라 믿게 된다. 그 변모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이성의 위대한 승리를 말하는 것일까? 아니, 우리는 거꾸로 말해야 한다. 괴테의 시대에 이르러서 광기는 이미 그 자체의 진실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div><div><br />
</div><div>즉, 신고전주의의 로고스적 사유를 통해 괴테의 &lt;타우리스의 에피게니에>에서 광기는 광기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병리적인 증상이며, 어디까지나 이성에 의해 치유되어야만 하는 대상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푸코가 그 계보학을 통해 증명하듯이, 이처럼 광기를 대상화하는 담론은 중세를 거쳐 본격적으로 거대한 수용의 논리를 통해 광기를 감시하고 정신병원을 비롯한 수용소로 몰아넣었다. </div><div><br />
</div><div><div><font class="Apple-style-span" color="#FF9900">이 자유는 광인이 미치게 되는 이유이자, 광기가 아직 주어지지 않은 가운데 광인이 비(非)광기와 소통할 수 있게 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광인은 자기 자신과 광인이라는 자신의 진실에서 벗어나면서, 진실도 결백도 아닌 영역에서 과오나 범죄 또는 우스꽝스러운 행동의 위험과 다시 만난다. 매우 근원적이고 매우 모호하며 매우 지정하기 어려운 출발과 분할의 시기에 광인으로 하여금 ‘총칭적’ 진실을 포기하게 만드는 이 자유는 광인이 언젠가는 ‘자신의’ 진실에 사로잡히는 것을 방해한다. 광인은 자신이 광인이라는 진실 속에서 자신의 광기가 고갈되지 않음에 따라서만 미친 사람일 뿐이다.</font></div><div><br />
</div></div></div><div>cogito,ergo sum. 확고부동한 이성의 발견을 토대로, 인간이 대화를 통해 완벽히 소통할 수 있으리라는 고매한 이성의 논리는 오히려 이성과 언어로는 전해질 수 없는 종류의 진실을 은폐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잊혀진 광기의 목소리가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 웅성거린다. 얼마간은 광인이며, 얼마간은 환자인 운명을 지닌 우리는 영원한 패배 속에서 다시금 우리 자신의 진실과 마주치게 되리라. </div><div><br />
</div><br/><br/>tag : <a href="/tag/괴테" rel="tag">괴테</a>,&nbsp;<a href="/tag/타우리스의이피게니에" rel="tag">타우리스의이피게니에</a>,&nbsp;<a href="/tag/미쉘푸코" rel="tag">미쉘푸코</a>,&nbsp;<a href="/tag/광기의역사" rel="tag">광기의역사</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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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읽은 이야기</category>
		<category>괴테</category>
		<category>타우리스의이피게니에</category>
		<category>미쉘푸코</category>
		<category>광기의역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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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9 Mar 2009 09:20:53 GMT</pubDate>
		<dc:creator>BarSur</dc:creator>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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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롱런의 이유.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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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다시는 어줍잖은 스타리그 관련글을 포스팅할일은 없을줄 알았는데,<div><br />
</div><div>KTF가 SK를 7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포스트시즌에서 승리한 오늘 같은 날은 어쩔 수가 없네요.</div><div><br />
</div><div>스타리그 롱런의 이유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스토리 라인과 끝없는 떡밥 투척인 듯. </div><div><br />
</div><div>쌓이고 쌓인 역사적 징크스가 깨지는 것은 물론이고, 적절한 타이밍에 "스타의 신" 황신, 홍진호의 등장. </div><div><br />
</div><div>이제 화승전을 앞둔 정ㅋ벅ㅋ자까지. 너무나 많은 스토리 요소와 떡밥들이 자체적으로 제공되는데다가</div><div><br />
</div><div>허구적 상상력을 가장 큰 무기로, 자유로운 팬덤의 시대에 팬들로부터 몇배나 부풀려지고 살이 붙어가는</div><div><br />
</div><div>이 결말없는 플롯으로 진행되는 스토리라인의 매력이란! </div><div><br />
</div><div>이제 스타리그는 게임 내적재미가 대략 30% 정도라면 나머지 70%는 팬들에 의해 창출된 컨텐츠에 의해 생명을 얻는 것 같네요.</div><div><br />
</div><div>어떻게 한때 리그브레이커로 불리던 박지수가 팬들에게 "정ㅋ벅ㅋ"로 연호되는 매력덩어리 선수로 한순간에 변모할 수 있었는지 정말 신기할 정도. </div><div><br />
</div><div>과연 정ㅋ벅ㅋ자가 화승까지 정ㅋ벅ㅋ할 수 있을지? </div><div><br />
</div><div>황신의 가호에 의해 KTF는 결승까지는 직행할 것인지? 혹은 2위가 예약된 것인지? </div><div><br />
</div><div>흥미진진하네요.</div><div><br />
</div><br/><br/>tag : <a href="/tag/정ㅋ벅ㅋ" rel="tag">정ㅋ벅ㅋ</a>,&nbsp;<a href="/tag/황신" rel="tag">황신</a>			 ]]> 
		</description>
		<category>게임 이야기</category>
		<category>정ㅋ벅ㅋ</category>
		<category>황신</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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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5 Mar 2009 08:04:49 GMT</pubDate>
		<dc:creator>BarSur</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타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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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소설 &lt;광장>으로 유명한 최인훈이 1973년에 쓴 희곡 &lt;봄이 오면 산에 들에>는 언어를 통해 꿈을 꾸었던 소설가가 언어가 아닌 다른 꿈을 꾸게 된 연유를 지시해주는 작품이다. 말더듬이 아버지와, 자꾸만 침묵하는 딸 달내, 그리고 바람소리 속에 섞여 흐느끼듯 존재하는 문둥병의 어머니.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소리'의 존재로만 등장하며 달내를 통해 재현되고 동일시되는 어미는 배제의 논리가 만들어낸 일종의 국외자인 것이다. 또한 달변의 포교를 통해 드러나는 랑그(Langue), 언어를 통한 권력의 작용이 존재한다면, 억압적인 현실 속에서 말과 행동을 더듬은 아비의 모습과, 달내의 침묵이야 말로 우리에게 오히려 언어가 아니라 침묵 속에 진실이 숨겨져 있음을 알려준다. </div><div><br />
</div><div>문둥이의 탈을 통해 드러나는 어미의 존재는 푸코의 말처럼 "가면을 쓴 진실"을 지시해주는 것이며, 자신의 목소리로 소리낼 수 없는 광기(사회적 병리학을 통해 배제된 그 모든 것들 : 노인, 여성, 광인, 성적소수자, 불법체류자. 그 모든 우연적인 특성을 마치 고유의 정체성처럼 부여받은 자들)가 가지는 오롯한 자기증명이기도 하다. 어미가 흐느낌이 담겨있는 바람소리는 개인을 넘어서 어떤 집단적인 분노의 소리로 변화하는데, 이는 배제의 논리에 의해 국외자가 되어버린 자들의 흐느낌이기도 하다. 본디 소설을 보는 것은 언어를 보는 것이면서, 행간을 읽는 것이고, 보이지 않는 침묵에서 소리를 듣는 행위이기도 한데, 이것을 모르면서 타자와 소통하기 위해 소설을 읽는다는 건 허사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1970년대, 언어로서 언어를 억압하는 시대에서 소설가 최인훈이 정통하지도 않은 희곡이라는 장르를 선택하면서 행위와 침묵으로 전달했던 가면의 진실과 그 목소리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div><div><br />
</div><div><br />
</div><div>그건 결국 타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 아닐가. </div><div><br />
</div><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color="#FF9900">남과 내가 서로 스미고 얽힌 자리는 혼돈스럽다. 남도 남이 아니고 나도 나일 수 없으며, 그렇다고 해서 남이 곧 나인 것도 아니고 내가 곧 남일 수도 없는 혼돈은 게서 그치지 않는다. 함께인 듯 홀로 살고, 홀로인 듯 함께 사는 게 우리네 삶 아닌가. 토도로프의 표현대로 '고독한 공생(Living Alone Together)'이란 역설적인 운명 앞에서 그 누군들 함부로 자유로울 수 있으랴. 그런 점에서 모든 삶은 불우하거나 불온하다. 문학 또한 마찬가지다. 삶과 문학의 관계 역시 그렇다. 그렇다면 문학을 통해서 남의 얼굴을 보고 타자의 목소리를 듣고자 애쓰는 것은 '홀로-함께 살기'의 운명을 확인하는 것임과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려는 낭만적 동경이자 형이상학적의 욕망의 형식인지도 모른다. 또 남 속의 나, 나 속의 남을 새롭게 발견하여 신생의 에피파니를 도모하려는 상호주관적 타자와 상호주관적 주체들의 힘겨운 안간힘인지도 모른다. </font><div><br />
</div><div>- 우찬제, &lt;타자의 목소리> 중에서.</div><div><br />
</div><div><br />
</div><div><div>결국 딴소리지만, 2MB의 용량으로 유명한 현정부를 비롯한 현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압도적인 담론에 대해 내가 가지는 반감이란 아주 단순한 것이다. 타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줄 모르는, 상상력이 제한된 대뇌의 기능만을 수행하려는 모습. '국외자'로 표현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추방하고 수용하려고만 하는 논리는 이미 용산참사에서 드러나지 않았던가. 그들은 자꾸만 우리를 막다른 골목으로 추방한다. 일제강점기 임화의 &lt;네거리의 순이> 이후 한 세기를 지나 정끝별 씨의 시 &lt;또다시 네거리에서>가 또다시 지시하듯 이 훤히 뚫린 네거리에서, 또한 막힌 골목에서 우린 어디로 더이상 물러날 것인가. </div><div><br />
</div><div><br />
</div><div><span class="Apple-style-span" style="color: rgb(102, 102, 102); font-family: dotum; line-height: 19px; "><br />
이 아름다운 밤......<br />
<br />
내가 낯선 존재라니......<br />
<br />
나는 참 기쁘다.<br />
 <br />
  - 시집&lt;화창>의 자서 중. 김영승</span></div><div><br />
</div><div><br />
</div><div>타자가 된 나를 상상하며, 이 사랑스러운 웅성거림에 귀를 기울인다. </div><div><br />
</div><div><br />
</div></div><br/><br/>tag : <a href="/tag/최인훈" rel="tag">최인훈</a>,&nbsp;<a href="/tag/봄이오면산에들에" rel="tag">봄이오면산에들에</a>,&nbsp;<a href="/tag/타자의목소리" rel="tag">타자의목소리</a>			 ]]> 
		</description>
		<category>읽은 이야기</category>
		<category>최인훈</category>
		<category>봄이오면산에들에</category>
		<category>타자의목소리</category>

		<comments>http://barsur.egloos.com/4877204#comments</comments>
		<pubDate>Thu, 12 Mar 2009 09:43:58 GMT</pubDate>
		<dc:creator>BarSur</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그녀들을 상상하는 일.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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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span style="color:#ff9900;">나는 그녀의 유일한 소설이다.<br />
플롯은 멜로드라마틱하고<br />
뜨거운 연인들은 잡목 숲에서부터 튀어오르고<br />
그것은 당신을 많이 울게 만들었다.<br />
혁멱적인 영웅다움과<br />
가정식 수프를 잘 만들기 사이에서.<br />
이해한다 : 나는 내 어머니의<br />
소설-딸 : 나는<br />
그것을 수행할 의무를 가진 것이다.</span><br />
<br />
<strong>- 마지 피어시, <내 엄마의 소설> 중에서.</strong><br />
<br />
<br />
내 학사과정 마지막 학기에 김승희 교수님 강의를 듣게 되리라고는 지난 2004년 즈음에 현대시론을 듣던 시기에는 도저히 예측할 수 없었던 일이리라. <여성문학의 사적 이해>라니. 내가 여성에 대해 무얼 안다고. 퍽이나 마지막 학기가 편하지 않을 것을 예상하며 괜시리 도둑이 제발 저리는 심정으로 김승희 교수님의 <여성이야기>를 빌려다 읽기 시작했다. <br />
<br />
<br />
<span style="color:#ff9900;">아프거나 바쁘거나, 그 외에 무슨 말이 더 있어야 할까요?<br />
피동적으로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기꺼이 가지고 싶고 가져야 할 말들.<br />
사랑한다. 보고 싶다. 만나다. 말하다. 듣다. 나누다.<br />
즐거워하다. 꿈꾸다. 생각하다. 바꾸다. 치유하다. 채우다. 비우다. 웃다. 이해하다. 공감하다. 주다. 받다. 버리다. 빼다. 덜다. 만족하다.<br />
행복하다. 미소하다. 기쁘다. 믿다. 사랑하다.<br />
축하하다. 축하하다. 기꺼이 축하하다. 진심으로 축하하다.<br />
<br />
마음-샘을-살-리-다.</span><br />
<br />
<strong>- <김승희, 윤석남의 여성이야기> 중에서.</strong><br />
<br />
<br />
여성이 아닌 내가 아프거나 바쁘거나 할 수 밖에 없는 여성에 대하여 상상하게 되는 이유. 김애란의 소설 <칼자국>과 같은 어머니, 여성, 타인의 상처에 대하여 상상하게 되는 이유. 트루먼 카포티의 단편소설 <차가운 벽>에서 어떤 여성이나 가지고 있을 법한 그 차가운 벽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남성들을 되돌아보게 되는 이유. 그 지난한 이유들과 그와 관련된 수많은 말말말들이 벌써부터 나를 덮쳐누른다. <br />
<br />
<br />
ps.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전여옥 씨의 각막에 대하여 걱정할 일은 없겠지요. 도무지가 "그녀"라고 부를 수 없는 그분의 감히 짐작도 할 수 없는 '상처'에 대하여 상상하는 일은 너무나 불가해하므로. 아무래도 그럴 수는 없을듯.<br />
<br />
<br />
			 ]]> 
		</description>
		<category>읽은 이야기</category>

		<comments>http://barsur.egloos.com/4866229#comments</comments>
		<pubDate>Mon, 02 Mar 2009 11:40:12 GMT</pubDate>
		<dc:creator>BarSur</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어쨌든 살아야 겠어서.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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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strong>드라이 아이스 - 김경주</strong><br />
      - 사실 나는 귀신이다 산목숨으로서 이렇게 외로울 수는 없는 법이다<br />
 <br />
 <br />
문득 어머니의 필체가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다<br />
그리고 나는 고향과 나 사이의 시간이<br />
위독함을 12월의 창문으로부터 느낀다<br />
낭만은 그런 것이다<br />
이번 생은 내내 불편할 것<br />
 <br />
골목 끝 슈퍼마켓 냉장고에 고개를 넣고<br />
냉동식품을 뒤적거리다가 문득<br />
만져버린 드라이아이스 한 조각,<br />
결빙의 시간들이 피부에 타 붙는다<br />
저렇게 차게 살다가 뜨거운 먼지로 사라지는<br />
삶이라는 것이 끝내 부정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br />
손끝에 닿은 그 짧은 순간에<br />
내 적막한 열망보다 순도 높은 저 시간이<br />
내 몸에 뿌리내렸던 시간들을 살아버렸기 때문일까<br />
온몸의 열을 다 빼앗긴 것처럼 진저리친다<br />
내 안의 야경(夜景)을 다 보여줘버린 듯<br />
수은의 눈빛으로 골목에서 나는 잠시 빛난다<br />
나는 내가 살지 못했던 시간 속에서 순교할 것이다<br />
달 사이로 진흙 같은 바람이 지나가고<br />
천천히 오늘도 하늘에 오르지 못한 공기들이<br />
동상을 입은 채 집집마다 흘러들어가고 있다<br />
귀신처럼.<br />
<br />
<br />
ㅡㅡ<br />
<br />
내 안의 야경을 다 보여줘버린 듯한 시기가 지나가고 있어서, 산 목숨으로 이렇게 외로울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그럼에도 할 말이 없으니, 김경주 시인의 시라도 올렸네요. <br />
<br />
문제는 그래도 어쨌든 살아야 겠어서. 세상엔 남의 삶도 죽음도 먹어 치우고 멀쩡히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란 놈은 아직 무엇 하나 나 자신 하나도 해치울 요량이 못되어서.... 문제는 그래도 살아야 겠어서.<br />
<br />
되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글도 쓰지 않고, 아무 것도 읽지 않았던 긴 겨울이 다 지나가려합니다.<br />
<br />
귀신이 채 다 되지 못해서, 산 목숨인 채로 또 봄은 다가오네요. <br />
<br />
봄이 되어서, 지난 겨울은 어땠나요? 묻는다면.<br />
<br />
"지난 겨울은 빈털털이였다 / 풀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설사 / 풀어도 이제는 쓸모 없다는 것을 / 무섭게 깨닫고 있었다. 나는 / 외투 깊숙이 의문 부호 몇 개를 구겨넣고 / 바람의 철망을 찢으며 걸었다."고 적은 기형도의 문구를 빌려올 수 밖에.<br />
<br />
<br />
<br/><br/>tag : <a href="/tag/김경주" rel="tag">김경주</a>,&nbsp;<a href="/tag/겨울" rel="tag">겨울</a>			 ]]> 
		</description>
		<category>읽은 이야기</category>
		<category>김경주</category>
		<category>겨울</category>

		<comments>http://barsur.egloos.com/4854214#comments</comments>
		<pubDate>Thu, 19 Feb 2009 14:15:52 GMT</pubDate>
		<dc:creator>BarSur</dc:creator>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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